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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페스티벌 & 뮤지 페스티벌 추천 룩

< 뮤직 페스티벌 & 뮤지 페스티벌 추천 룩>
다가오는 봄!
서서히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제 페스티벌 시즌이네요!!
서울 및 각지에서 펼쳐지는 야외 음악 페스티벌들이 많은데요,
가보지 못하셨다면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하나 골라
좋은 음악과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미국에는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Festival),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등
다양한 뮤직페스티벌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패션!
야외에서 진행되는 만큼 자외선으로부터 내 눈을 보호하고
동시에 페스티벌 속 나만의 스타일리쉬함을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선글라스들이 눈에 띄네요.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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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
4년만에...
4년전 그러니까 2015년 가을 친한 동생들과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멤버가 4년만에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뱅기표를 끊고나니 아직은 멀었지만 살짝 여행가는 느낌이... 체코에서 렌터카를 이용해 오스트리아까지 여행하기로해서 렌터카도 알아보고... 결국은 스코다로 낙점... 차량 픽업은 프라하에서 반납은 빈 역에서 하기로... 첫날 숙소는 요기로... 폴란드 항공으로 부다페스트로 들어가서 담날 우라질 라이언 항공타고 체코로 넘어가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심심할때마다 여행갈 도시 날씨를 검색해봅니다 ㅋ 저희가 매진시킨 체코의 고성 호텔... 만족스러웠습니다. 부다페스트 첫날 숙소는 레트로 아파트로 예약했습니다. 넘 마음에 들었었던 체코 첫숙소... 구시가지 광장 근처였는데 넘 좋았어요. 근데 하루만 머무른건 안비밀 ㅋ ㅋ 오늘도 궁금해서... 잘츠부르크에 가는데 황희찬을 안보고 올수가... 근데 예매 안하고 직접가서 현장에서 표끊고 들어갔어요. 미리 희찬이 경기도 수시로 봐줬답니다... 서울 여행가서도 날씨 검색 ㅋ 국제면허증 금방 발급해주더라구요... 이제 그만 알아보자 지겹다 ㅋ 일단 유로만 좀 환전했어요... 아, 드디어 가는건가... 일단 김포공항으로... 김포에서 인천까지 리무진버스 타고 갈랬는데 헐 마감이 되버렸네요. 그래서 공항쟈철타고 이동... 인천공항 밤늦은 시각이라 넘 조용하네요... 로밍하니깐 컵라면을... 지루해서 맥주 한잔했어요... 와우 마지막으로 포카 당첨... 어, 전광판에 드디어 떴다... 자, 이제 부다페스트로 떠나봅니다... 기내식 두번 먹고나니 어느새 부다페스트에... 어느새라고 했지만 넘 지겨웠어요 ㅋㅋㅋ... 아휴,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안경, 호갱방지 팁
안경을 맞췄는데 비싸게 맞춘거 같아 찝찝하다. 설명은 들었는데 못알아 들었다. 그렇다면 집중하자. 내 눈이 되어주는 매일 함께하는 안경, 꼭 정확하게 알고 맞춰보자. 안경 맞출때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소개할테니 꼭 참고하도록! 압축? 안경에 그런거 없다 안경렌즈는 압축이라는걸 할 수 없다. 압축 몇번 했다는 말은 사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방법일 뿐! 압축이 아니라 원료의 구성이 달라져서 얇아지는 것이다. 두께, 무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것의 정확한 명칭은 '굴절률'이다. 굴절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인데, 동일 시력 기준으로 이 숫자가 낮으면 굴절이 조금 되기 때문에 렌즈가 두꺼워진다. 반면 굴절률이 높으면 굴절이 많이 되기 때문에 렌즈가 얇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굴절이 많이 되는 렌즈는 얇기 때문에 '압축을 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압축과 함께 중굴절, 고굴절, 초고굴절등의 명칭도 있지만 이것도 굴절률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도수에 따른 두께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굴절률의 선택이 가성비를 높여주니 꼭!꼭!기억하자. 굴절률의 표기는 1.50 1.56 1.60 1.67 1.70 1.74 1.76이 현재 생산되는 굴절률이다. 1.50 1.56은 근래에는 잘 쓰이지 않고 평균적으로 1.60이 가장 많이 쓰이며 도수가 높아짐에 따라 굴절률도 함께 올라간다.(가격도 같이..) 굴절률 만큼이나 렌즈두께를 결정하는 요인이 안경렌즈의 크기와 눈사이의 거리이다. 안경렌즈의 크기가 크면 두껍고 무겁다. 들어가는 양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눈사이 거리가 넓다면 다른건 몰라도 안경에서 만큼은 도움이 된다. 눈사이가 멀어야 안경렌즈가 얇다. 다만 눈사이 거리는 지금와서 변경 할 수 없으니 굴절률과 안경렌즈의 크기를 안경사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결정을 하도록 하자. 압축 안 해도 비싼 이유? 압축만이 안경렌즈 사양의 전부가 아니다. '설계'라고 하는 요인이 가격을 들었다 놨다 한다. 두께와 무게에 결정요인이었던 굴절률과는 달리 설계는 눈에 편안함과 왜곡에 관계되어 있다. 안경사용자들이 가장 예민한 왜곡은 눈이 작아 보이는 현상과 가장 큰 연관이 있다. 이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설계의 업글레이드가 필수다. 안경렌즈는 바깥면과 안쪽면이 있다. 얼굴에 가까운 쪽이 안쪽면, 반대쪽 면이 바깥면이다. 이 두가지의 면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편안함과 왜곡이 달라진다. 구면, 비구면, 내면비구면, 양면비구면의 큰 분류로 나뉘는데, 구면보다는 비구면이 왜곡을 줄여 편안함을 올려주고 바깥면과 안쪽면을 함께 비구면으로 설계하는 것이 최상의 렌즈가 된다. 국내회사에서도 양면비구면이 출시되고 고유마크까지 있으니 눈이 작아 보이는게 신경쓰였다면 다음구입 때 참고하도록 하자. 굴절률과 설계. 두가지의 조합으로 안경렌즈는 선택된다! 렌즈 수명? 내구성! 렌즈는 여러겹의 코팅을 통해 내구성을 높이고 편안함과 멋을 낼 수 있다. 스크레치를 막아주는 하드코팅은 내구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다른때보다 사용기간에 비해 스크레치가 많이났다면 하드코팅의 강도와 관계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렌즈의 특성 때문에 반사되는 걸 최소화해주는 반사방지도 필수적인 코팅이다. 위의 두가지 코팅은 기본적으로 모든렌즈에 적용 된다. 그러니까 굳이 안경원에서 '하드코팅 되어 있는걸로 해주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가적으로 추가 되는 사양들은 먼지가 잘 안 붙고 물은 잘 닦이며 오염으로부터 지켜주는 발수코팅이 보편적인 추가 옵션이다. 최근에 기능성은 없지만 외관상 효과를 위해 미러 코팅을 추가하기도 한다. 청색광차단코팅 또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코팅은 가시광선에 포함 되어 있는 청색파장 중에 유해한 파장은 반사시키고 무해한 파장만 흡수시킨다. TV, 모니터, 스마트폰 등의 사용빈도가 높다면 눈의 피로해소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청색의 감도를 약간 떨어트려서 색감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입할 때 고려해야한다. 보통 수입렌즈의 경우 코팅의 종류가 세분화되어서 많이 나와있다. 본인의 안경이 완성되는 기간이 대략 5일이상 걸린다고 했다면 주문생산렌즈이기 때문에 코팅을 일정금액 추가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고가의 렌즈를 소정의 금액추가로 내구성을 올릴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애교(혹은 압박)를 통해 코팅업그레이드를 서비스로 받을 수도 있으니 자신있으면 시도해보자. 단, 여벌렌즈. 당일 혹은 하루정도 후에 완성가능한 렌즈는 생산이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코팅이 정해져있다. 코팅의 업그레이드는 주문생산렌즈에 한해 가능하다. 당신의 안경이 여벌렌즈로 가능한데 코팅을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주문생산렌즈로 추가금액을 지불하고 코팅추가비용까지 지불하는 비합리적 소비는 피하도록하자. (특수기능성 코팅 제외) 새로운 눈이 되어주는 안경을 맞출 때 내가 맞춘 안경렌즈가 압축이 몇번인지가 아니라 굴절률이 몇인지, 어떤 설계인지 정도는 합리적인 구입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이기 때문에 꼭! 알고있도록 하자. 참고로 숨겨진 렌즈회사별 고유 마크를 통해 본인의 렌즈를 확인 할 수 있다. 렌즈 표면에 반사된 형광등 빛을 이용해 찾을 수 있으니 궁금하다면 시도해보자. 단, 국산렌즈는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니 참고하도록. 출처:파피루스
아디다스, 한정판 ‘울트라부스트 스타워즈’ 컬렉션 출시
3가지 디자인으로 출시된다. 아디다스(adidas)가 내년 1월 개봉 예정인 스타워즈(Star Wars)의 마지막 시리즈,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기념한 한정판 컬렉션을 출시한다. 이번 아디다스 스타워즈 컬렉션은 스타워즈의 대표적 우주선인 '밀레니엄 팔콘(Millennium Falcon)', '엑스윙 스타파이터 (X-Wing Starfighter)’, ‘데스 스타 (The Death Star)’를 각각 ‘울트라부스트 19’, ‘울트라부스트 S&L’, ‘알파엣지 4D’에 접목해 디자인하였다. 먼저 ‘울트라부스트 19 밀레니엄 팔콘’은 영화 스타워즈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한 솔로’의 우주선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밀레니엄 팔콘’ 우주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우주선은 국내 팬들에게 ‘밀팔’이라는 약칭으로 불릴 만큼 스타워즈 내 가장 인기 있는 우주선이자 ‘은하계에서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높은 반응성과 뛰어난 탄력감이 특징인 울트라부스트19의 특성과도 잘 매치된다. 전체적으로는 우주선 선체의 그레이 컬러가 신발의 메인 바디와 아디다스 삼선 로고에 적용되어 시크한 느낌을 준다. 또한 ‘밀레니엄 팔콘’ 특징인 빛의 속도로 점프하는 기술을 블루 컬러의 ‘JUMP TO LIGHTSPEED’라는 문구로 표현했는데, 이 컬러는 텅 부분 ‘밀레니엄 팔콘’의 심볼과 3D 힐 프레임에도 적용되어 더욱 돋보인다. 이와 함께 미드솔 측면에는 우주선의 도안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디테일한 요소를 확인하는 재미와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울트라부스트 S&L 엑스윙 스타파이터’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반란 연합의 주력 우주선인 ‘엑스윙’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엑스윙은 밀레니엄 팔콘과 함께 주인공 격인 우주선으로, 공격시 펼쳐지는 X자형의 날개와 선체의 레드 컬러가 특징이다. 엑스 윙 역시 미드솔 측면에 우주선의 디테일한 도안이 특징이며, 힐 탭에 새겨진 ‘STAY ON TARGET’이 날렵한 움직임의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엑스윙”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레이 컬러 바디를 중심으로 레드 컬러의 스타워즈 로고와 텅 부분 ‘엑스윙’의 심볼이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마지막으로, 스타워즈의 우주선 ‘데스스타’에서 영감을 받은 ‘알파엣지 4D 데스스타’는 아디다스 4D의 상징적인 컬러 조합인 블랙과 그린 컬러로 디자인되었다. 신발 끈 옆 아일릿 탭에 새겨진 데스스타의 도안과 텅 부분 ‘데스스타’의 심볼, 그리고 힐 탭에 새겨진 “THE POWER OF THE DARK SIDE”의 문구는 ‘데스스타’ 특유의 강력하고 압도적인 파워를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기존 알파엣지 4D와 동일하게 ‘프라임 니트’ 어퍼와 촘촘한 격자 무늬 구조의 정교한 ‘4D 미드솔’로 제작되었으며, 특유의 밝은 그린 컬러가 블랙 바디와 대조되어 모던하면서도 트렌디한 느낌을 자아낸다. 총 3가지 디자인으로 출시되는 ‘울트라부스트 스타워즈 컬렉션’ 한정판은 오는 11월 21일부터 아디다스 온라인 스토어(shop.adidas.co.kr), 수도권 주요 매장과 스니커 멀티숍 등에서 정식 발매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https://www.eyesmag.com/posts/126034/adidas-Star-Wars-collection
카라 델레바인과 함께한 푸마 x 발망 협업 컬렉션
쿠튀르 미학과 스포츠 유산이 접목된 푸마(PUMA)와 발망(BALMAIN)이 이례적인협업컬렉션을 예고한 데 이어, 드디어 그 베일이 벗겨졌다.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뮤즈인 카라 델레바인(Cara Delevingne)과 함께 전개된 이번 캡슐. 브랜드 앰베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델레바인을 주축으로 시작된 독특한 협업은 복싱에서 영감받아 'Troublemaker'라는 테마로 쿠튀르 미학과 스포츠 유산이 함께 녹아 완성됐다. 단 35피스로 구성된 제품군은 브라탑과 복싱 쇼츠의 어패럴부터 셀 스텔라와 데바 부츠 등 총 5가지의 스니커 및 액세서리. 선명한 컬러 팔레트와 골드 디테일을 가미해 고급화된 자태를 엿볼 수 있으며, 카라 델레바인의 정신과 발망의 럭셔리한 감성, 푸마의 퍼포먼스 헤리티지가 접목됐다. “푸마는 항상 훌륭한 팀워크를 보여줬으며 발망은 푸마와 유사한 열정과 자신감을 지닌 브랜드다. 나는 우리가 함께 탄생한 이번 결과물이 매우 자랑스럽다.” - 카라 델레바인 - 발망 CEO 마시오 피엄비니(Massimo Piombini)는 푸마와 발망, 올리비에 루스테잉 그리고 카라 델레바인까지 동일한 목표와 가치를 공유해 순조롭게 컬렉션이 마무리됐다라고 언급하며, 푸마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고 언급했다. 포토그래퍼 브리아나 카포치(Brianna Capozzi)의 카메라에 포착된 캠페인 면면은 위 슬라이드를 통해 확인 가능하며, 푸마 x 발망 x 카라델레바인 컬렉션은 11월 21일 10 꼬르소 꼬모 서울 청담점과 푸마 온라인 스토어(puma.com)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어패럴과 액세서리 및 스니커의 상세 라인업은 아래에서 확인해보자. 10 꼬르소 꼬모 서울 청담점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16 어패럴 액세서리 스니커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