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lgus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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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이별

달팽이의 이별
언젠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땅을 기어가던 달팽이들을 너도 기억할거야. 아주 조금씩,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만큼의 속도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을 그 자리를 떠나던 그 달팽이들 말이야. 그 때 난 오랜만에 본 달팽이가 신기해서 호들갑 떨었고, 넌 달팽이가 남긴 끈적거리는 흔적을 보고선 질겁해댔었어. 그리곤 넌 먼저 간다고 저만치 앞서갔지. 나도 곧 녀석들을 놔두곤 널 따라갔고.
그냥 특별한 사건이 아닌데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들이 있잖아. 내 경우엔 달팽이가 그렇더라고... 너랑 헤어지고 나서 가끔씩 그 장면이 생각이 나. 그러면 난 '녀석들은 지금쯤 서로가 없는 세상에 도착했을까?' 라던가 '걔들은 무슨 이유로 인해 반대로 가게 된 걸까?' 같은 답안지가 없는 문제들을 혼자 풀곤 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길도 없는데 이걸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어. 물론 네가 들었다면 또 한 소리 했겠지. 그런 잔소리 안 들으니까 좋아. 술 먹고 네 전화번호 눌러놓고 통화버튼 위에서 갈등하는 것도 좋고, 네 생각하면 웃기보단 울게 되는 날이 더 많아서 좋아. 그래서 아마 네 흔적 지우는 건 좀 오래 걸릴 거야. 근데 조금은 느려도 괜찮은 것 같아. 우리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멀어질 거야. 그 날의 그 달팽이들처럼, 헤어진 여느 연인들 처럼...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서 벗어나겠지. 참 슬픈 일이야.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별은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from.hh
rnlgus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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