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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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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머 대도서관 "학생들이 게임 중독? 성취감 못 주는 교육 환경이 문제"
유명 게임 스트리머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이 게임 중독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과몰입은 한국의 교육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도서관은 3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에서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해 '기성 세대들이 생각하는 게임 중독은 그들이 만든 교육 환경 때문'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이 게임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은 성취감으로 사는데, 현실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기성 세대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그 중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학생들은 5% 밖에 안된다. 반면 게임은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등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있다. 게임을 비판하지 말고,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환경을 비판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도서관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말하며, 기성 세대가 학생들을 둘러 싼 환경을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폭령성•선정성 같은 것만 부각하며 무작정 게임을 위험시 한다고 비판했다. 기성 세대가 예술이라 생각하는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도 요소 요소를 분리하면 폭력적•선정적인 면이 많은데, 영화는 전체의 맥락을 보고 예술로 판단하지만 게임은 요소 요소를 분리해 비판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대도서관은 이날 행사에서 게임 중독에 대한 자신의 의견 외에도 ▲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 게임 사전 심의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펌][역사툰]백정의 사위가 된 이장곤 이야기.jpg
조선 시대에는 천인은 아니었지만 천인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있었다.  조례(皂隷)⋅나장(羅將)⋅일수(日守)⋅조졸(漕卒)⋅봉수군⋅역졸(驛卒) 등 이른바 ‘신량역천(身良役賤)’층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하는 일이 천하다고 하여 천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천하게 여겨진 부류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백정(白丁)이다. 백정은 본래 고려 시대의 여진족 출신 재인(才人)과 화척(禾尺)을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에 하나로 합쳐서 부른 이름이다. 고려 시대의 재인과 화척은 유목 생활을 하던 여진족의 후예로 천인 취급을 받았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하기 위해 천하게 불리던 재인이나 화척 대신에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을 뜻하는 백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울러 백정들에게 호적을 만들어 주고 평민과 섞여 살게 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정은 호적을 갖게 되었고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조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들을 ‘신백정(新白丁)’이라 부르며 계속 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반이나 관료들은 노비처럼 멋대로 부리기까지 하였다. 한편 화척의 후예인 백정들은 재인들과는 달리 마을에 거주하며 도살이나 유기(柳器) 제조 등에 종사하였다. 유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유기의 우리말인 ‘고리’를 붙여 ‘고리백정(古里白丁)’이라고도 불렀다.  이들 백정은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심한 멸시를 받았다.  1809년(순조 9) 개성부의 한 백정이 혼인을 하면서 관복(冠服)을 입고 일산(日傘)을 받쳤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관복을 빌려 준 사람을 난타하고 백정의 집을 부순 후 개성부에 호소한 사건은 백정들의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잘 보여 준다.  마을 사람들은 심지어 관청에서 그 죄를 엄히 다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성부 건물에 돌을 던지며 소란을 피우기까지 하였다. 성대중의 아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에 따르면 백정 가운데 고리백정이 소를 잡는 백정보다 더 천시받았고 그 때문에 주현에서 사형시킬 죄수가 있으면 그들에게 형 집행을 맡기기도 하였다고 한다.(『연경재집』 권59, 「楊禾尺」) 자료에 나오는 백정이 고리백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당한 처사에 맞섰던 데서 백정들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백정들의 그러한 모습은 다음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는 백정이다. 그렇지만 가장 두려워할 만한 자도 백정이니, 그들이 가장 천하기 때문이다. 문경의 공고(工庫)에 소속된 종이 백정을 구타하였는데, 백정이 죽자 재판을 하여 그를 사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관아에서 종의 편을 들까 염려한 나머지 온 군내의 백정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날을 세우고 몰려와서는 마치 자신들의 원수를 갚듯이 하여, 기어이 직접 그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고 관문에서 시끄럽게 굴었다. 이에 관아에서 간곡히 타이르니 그제야 돌아갔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지방 관아에 소속된 종이 백정이 구타를 당해 죽이는 일이 발생하자 백정들이 억울하게 죽은 동료를 위해 집단행동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관노비에게 맞아 죽을 만큼 백정의 처지는 열악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백정들의 의식이 변화했다고 해서 당장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결국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자유의 신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여 나가야 했다. 조선 시대에 백정은 가장 긴 고난의 길을 걸었던 부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전체 출처]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 [역사툰] 백정의 사위가 된 이장곤 이야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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