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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 현대까지, 시대 별 이상적인 여성 체형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까지, 시대별 이상체형을 모아보았습니다.
30년전만 하더라도 '미인'의 기준이 달랐군요.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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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것도 해당되지않는다
욱김
미친!!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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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천재의 박사논문 심사 과정
1. 막스 베버 사회학자로 유명한 막스 베버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의외로 중세의 무역 회사에 대한 역사학 연구였음 (사실 그때는 대학에 사회학과가 있지도 않았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독일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논문 주제에 관해 심사위원들과 토론을 하고 자신의 논지를 지켜내야 했는데 이 과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외부 청중들도 많이 참석했고, 토론은 무사히 끝남 베버: ㅎㅎ 더 논박하실 분 있으신가요? 당연히 베버가 정말로 더 논박할 사람을 찾는 건 아니었고, 이 멘트는 그냥 전통이었기 때문에 독일어도 아니고 라틴어로 말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함 그런데 청중 중 누군가가 진짜로 손을 들어버림 "저요" 어떤 병신이 진짜 논박하라는 줄 알고 손드냐? 손을 든 사람은 베버보다 47세 많은 테오도르 몸젠 몸젠은 평생 로마사 관련 연구를 1500편 (150편의 오타 아님) 이상 발표했으며 나중에는 로마사 집필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는 거물로 학계의 교황이라고 평가받기도 함 (위 그림은 젊을적이고 이건 늙은 사진) 몸젠: 로마 식민도시에 대한 의견이 나랑 좀 다른 거 같은데? 해명해봐 어쩔 수 없이 베버와 몸젠은 현실에서 키배를 뜨게 되고 누가 봐도 베버가 개좆된 상황 그리고 수십분간 토론하다가 몸젠이 토론을 중단시킴 (아쉽게도 자세한 토론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것같음) 몸젠: 베버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수험자의 앞길을 막을 생각이 없고 사실 젊은이들은 틀딱들이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하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몸젠: 내가 무덤으로 갈 때가 되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들아, 내 창을 받아다오. 이젠 내 팔에는 너무 무겁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아주 존중하는 막스 베버에게 말입니다. 몸젠의 급발진 후 역주행으로 논문 심사는 훈훈하게 끝남 2. 비트겐슈타인 사실 진짜로 일개 대학원생이었던 베버와 달리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에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유명한 철학자였고 그냥 과거에 출판한 논리철학논고를 박사학위 논문 대신으로 제출함 마찬가지로 구술 시험이 있었고 심사위원은 천재 철학자 G.E. 무어와 천재 철학자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 시험이 끝난 후 비트겐슈타인은 심사위원들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함 "너무 걱정 마십쇼. 나는 당신들이 절대 이해 못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Don't worry, I know you'll never understand it.) 그러나 무어는 이 지랄을 당하고도 심사 보고서에 "나는 이것 (논리철학논고)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박사학위에 필요한 기준을 훨씬 능가합니다." 라고 적고 통과시킴 (출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 10
10위 데카음원사는 비틀즈와 계약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앨범이 잘 안 팔릴것 같아서 9위 나사는 화성궤도 탐사선을 잃어 버렸는데 팀의 반(외국인)은 미터단위를 사용하고 다른 반(미국인)은 인치를 사용해서. 8위 조지벨 exite ceo 는 1999년에 구글이 750,000$ 우리돈으로 약 7억5천만원 제의 했을 때 인수 하지 않았다. (현재 구글 약 190조 8142억원) 7위 나폴레옹은 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6위 히틀러는 자기가 나폴레옹처럼 할 수있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러시아 침공) 5위 독일은 영국보다 100년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는데 쓸모없는 사막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다. 4위 소련이 미국에게 알레스카를 1 에이커당 (1224평) 23원에 판 것, 총 720 만 달러 (한화 약 72억원) 3위 12개 출판사가 해리포터 출판 거부 2위 일본의 진주만 공습 1위 2300년 전 그리스, 이집트관련 역사상 최대규모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누가 태웠는지 모르지만 보존했다면 지금 문명의 지식수준이 더 높았을것으로 추정, 또한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의 관한 문제도 풀수있었을거라 생각됨. 약 70만개 문서 , 10만게 넘는 책 그 증거로 아리스타르코스- 기원전3세기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것을 발견함 에라토스테네스 - 기원전2세기 지구가 둥글다는걸 콜로버스보다 1700년 빠르게 알아냄 히파르쿠스 - 기원전1세기 신성과 혜성을 관측하였고, 1,080개의 항성에 대하여 그 밝기를 6등급으로 분류하여 항성목록 작성을 시도하였고 그리고 성표(성도)를 만들어 1080개의 별의 위치와 밝기를 표현했다. 또한 세차운동의 발견하여 태양년과 항성년을 더욱 정확하게 구할 수 있게 하였다. 칼리마코스-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의 학자이자 시인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정주하면서 도서관의 사서로 활약하였다. 그리스의 문학사 라고도 할 수 있는 《피나케스》를 저술하였고 《아이티아》를 비롯한 많은 시작품을 남겼다. 유클리드 - 기원전 3세기 기하학자 그의 연구자료가 지금도 전세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음. 히로피러스 - 기원전 3세기 뇌가 장이나 신체를 조종하다는것을 밝혀내고 약을 만들기 시작함. 그 밖에 학문에 관한 자료가 엄청남 출처 인류는 정말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군요...
원래 수명이 어느정도였을지 궁금해지는 루이 14세의 몸 상태.txt
17세기에는 목욕하는 습관이 없었으므로 고약한 체취는 일반적이었으나 루이 14세의 악취에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루이 14세는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루이 14세의 궁중의 다칸은 인간의 몸 가운데 치아처럼 위험한 질병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왕폐하의 이를 건강할 때 모두 빼버려야 한다고 확신했다. 물론 루이 14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폐하의 건강은 곧 폐하의 영광'이라는 다칸의 말에 승낙했다. 루이 14세는 멀쩡한 이빨을 다 뽑고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의사는 제 딴엔 훌륭한 조치를 취한다고 왕의 아랫니를 빼다가 턱에 금이 가게 했고, 윗니와 함께 입천장의 대부분을 날려보냈다. 이러한 조치는 마취도 없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아랫턱은 금방 아물었지만 뚫린 입천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의사 다칸의 일기를 보면, "살균할 목적으로 폐하의 입천장에 뚫린 구멍을 뜨겁게 달군 쇠막대로 열네번에 걸쳐 지졌다." 고 되어있다. 그 이후로 왕이 포도주를 마시면 반잔 정도가 곧바로 콧구멍으로 흘러내렸다고 한다. 또한 왕의 입에서 코를 향해 뚫려 있는 구멍에 끊임없이 음식물 건더기가 들러붙어 며칠이 지난뒤에야 콧구멍을 통해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는 이도 없는 입으로 씹지도 않고 많은 음식을 삼켰고, 덕분에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으므로 장내에는 가스가 가득했다. 당시 의사들은 장이 비어있어야 건강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루이 14세에게는 많은 양의 설사약(관장약)이 처방되었다. 루이 14세 시대에 화장실은 그의 가장 주된 정무 공간이었다. 위장병이 심한 나머지 속이 좋지 않아 의자에 앉은 채로 똥을 쌌다고 한다. 왕의 배변 순간에 함께한 사람들 중 일부는 닦아주는 뒤처리를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남에게 항문을 맡긴다는 것은 굉장히 큰 빈틈을 보이는 것인 만큼, 암살위험 등이 없다고 확신하는 굉장한 신뢰관계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왕의 뒤를 닦아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바다 건너 영국의 헨리 8세도 시종 중에 자신의 뒤를 닦아주는 걸 전담하는 청결관이라는 직책을 뒀었는데, 후작급의 고관대작들이 담당했다. 또한 그는 평생 목욕을 단 3번밖에 하지 않았다. 이는 중세시대에 더러운 물로 인한 감염과 전염병에 트라우마를 가진 유럽인들이 물을 멀리하면서 몸을 씻지 않게 된 시대적 특성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안씻던 루이 14세의 엉덩이에는 주먹만한 종양이 생겼다. 관리들은 비슷한 종양을 갖고 있는 시민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된다. 이들은 루이 14세에게 행해질 수술을 미리 당해볼 인간들이었다. 따라서 이 수많은 시민들은 묘지로 보내졌다. 마취도 없이 엉덩이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한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 루이 14세는 전유럽에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아물지도 않은 엉덩이로 직무를 봐야했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대중들에게 드러내기를 매우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일요일의 만찬은 누구나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루이 14세가 삶은 달걀을 까먹는 모습이 우아하다고 소문이 나서 구경꾼들이 매우 좋아했다. 왕은 그런 백성들의 기대에 답하기 위해 한 번에 5개씩 까먹기도 했다. 천성이 연예인이었던 그는 배우에게 향하는 박수조차 질투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서는 쪽을 택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죽음의 순간에 몸의 반신이 썩어들어가는 와중에도 귀족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할 정도였다. 근데 이러고도 76세까지 살았음 (1600~1700년대에) ++ 71덬이 치아 다 뽑게 된 이유 & 자세한 치료(?) 상황 알려줘서 추가함 단것을 입에 달고 산 까닭에 치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루이14세는 10대부터 잇몸에 염증이 생겼고, 30대에는 턱 치아 전체가 썩었습니다. 결국 1685년에는 위턱의 치아 하나만 남긴 채 이를 전부 뽑아냈고, 치아가 없어진 상태에서 왕의 음식은 모두 유동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1685년 받은 수술이 잘못되면서 루이14세의 입천장에 구멍이 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액체를 마시면 분수처럼 그 일부가 코로 흘러들어 갔고, 잇몸에 염증이 생겨 혈농이 흘렀고 왕 주변에 가면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결국 루이 14세는 1685년 1월10일 이 구멍을 막기 위해 잇몸을 14번이나 뜨거운 쇠로 지지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이 수술은 세 차례나 계속됐다고 합니다. 왕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위쪽 문제가 해결되나 싶으니 아래쪽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잇몸수술 1년여 후인 1686년 왕은 항문 근처에 종기가 발견됐고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결국 1월20일부터 왕은 수차례 종기를 짜내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더쿠펌 워우 ㄹㅇ 유병장수했네.. ㄷㄷ
발 각질제거기 추천 및 전동, 줄, 발 각질제거팩 선택 방법
줄 타입이나 전동 발 각질제거기 추천 제품을 살펴보기 전 자신의 발 상태와 어떤 발 각질제거기 종류가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발 각질제거기는 크게는 줄 타입과 전동 타입 등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스크럽이나 크림, 팩 타입의 제품들도 있으므로 피부 손상이 걱정되거나 피부가 약하다면 해당 유형의 제품들을 활용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세한 발 각질제거기 추천 정보와 선택 방법은 아래에서 자세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발 각질제거기 추천 발 각질제거기 추천 제품들은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선 줄 타입의 경우 양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바렌 발 각질제거기와 발각질지우개 등이 있으며 전동 발 각질제거기인 루아모 샤인 충전식 발 각질제거기와 베베풋 글라스 전동 발 각질제거기, 그리고 팩 타입의 오션스킨 비타민 발각질팩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자세한 발 각질제거기 추천 제품 정보와 구매 정보는 BUYINDEX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발 각질제거기 추천 발 각질제거기 유형별 선택 방법 줄 타입 줄 타입 발 각질제거기는 직접 발 각질을 문질러서 제거하는 유형으로 효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지만 줄에 따라 피부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줄과 세척 방법 등을 확인하고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동 타입 전동 발 각질제거기는 전동으로 헤드 부분이 고속 회전하며 발 각질을 빠르게 제거해주는 타입으로 쉽고 깔끔하게 각질을 제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동 발 각질제거기는 파워나 충전 시간, 세척 및 관리 방법 등을 체크해 보고 구매해야 합니다. 크림 및 액상 타입 크림 및 액상 타입 발 각질제거기는 발 뒤꿈치에 크림을 바르거나 필링액 등에 발을 담그고 시간이 지나면 각질이 쉽게 벗겨지는 타입입니다. 줄 타입에 비해 효과가 강하지 않으므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팩 타입 팩 타입은 마스크팩처럼 필링 성분이 있는 발 각질제거팩을 발에 일정 시간 붙이고 있으면 각질을 부드럽게 해주는 유형입니다. 일정 시간 꾸준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략 2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발 각질제거기는 각질 상태에 따라 효과적으로 각질 케어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형의 제품들을 확인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 각질제거기 추천 순위와 고르는 법을 참고하여 깨끗한 발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jpg
스웨덴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창립자 벤 고햄 깔끔한 바이레도 디자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 인도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캐나다, 미국, 스웨덴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농구 선수로 활동하다 순수미술을 공부하였음 향수에 문외한이었던 벤 고햄은 조향사 피에르 울프를 만나게 되고 향기에 매료돼 그와 협업하여 향수를 만들기 시작함 By ~에 의한 + Redolence 향기,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 = By Redolence -> Byredo 바이레도 로고 B가 숫자 13처럼 보이는데 이는 의도된 것 농구선수 시절 벤 고햄의 등번호가 13 이였음 (TMI 키 198cm) 바이레도의 특징은 아주 적은 수의 원료를 쓰는 것 5개 이하로 쓸 때도 있다고 함 벤 고햄은 향을 맡았을 때 어떤 향인지 빨리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며 60~70가지를 써서 복잡한 향을 만드는 과정을 불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 했음 이러한 그의 생각은 향수병에서도 드러남 투명한 유리병에 검은색 반구 모양의 뚜껑, 하얀 라벨에 검은색 잉크로 새겨진 향수 이름 이게 전부인데 그는 연구실이 떠오르는 단순한 용기를 쓰고 싶었다고 함 병보다는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만든 것 단순해 보이지만 향수병 디자인에 2개월이 걸렸고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1년 가까이 공을 들임 벤 고햄이 처음 만든 향수의 이름은 그린 어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서 났던 냄새가 초록색 완두콩 냄새였다는 것을 회상하면서 만듦 대표향 몇 가지 비누향으로 유명한 블랑쉬의 뜻은 ‘흰색’ 사랑하는 연인의 순수함을 표현한 향 라튤립은 한 계절에 처음 맺는 꽃 봉오리처럼 활기넘치고 매력적이며 낙천적인 느낌의 향 루바브, 시클라멘, 후리지아는 상쾌한 첫인상을 남기고 베이스 노트인 따듯한 느낌의 블론드 우드와 베티버는 튤립과 어우러져 그 깊이를 더함 발다프리크는 무도회를 뜻하는 프랑스어 '발(Bal)과 아프리카를 의미하는 '아프리크(Afrique)'가 합쳐진 이름으로 20세기 말 파리에서 퍼지던 아프리카 문화를 담고 있음 네롤리 천수국 모로칸 시더우드로 강렬한 삶과 넘치는 행복함을 그려냄 집시 워터는 신화적 열정에 바탕을 둔 집시의 삶을 미화한 향으로 신선한 토양, 깊은 숲속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환상, 자유에 대한 꿈, 그리고 자연에 가까운 열정적인 삶을 느끼게 함 모하비 고스트는 모하비 사막의 건조함과 황량함을 이겨내고 피어난 “고스트 플라워(GHOST FLOWER)”의 매혹적인 생존과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오마주로 탄생함 자메이칸 네스베리의 신선한 향에서 시작하여 샌달우드, 목련등의 향이 잔잔하게 남음 출처 : 도탁스
흑인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된 백인.jpg
존 브라운 1800년 5월 9일 ~ 1859년 12월 2일  그의 아버지는 가죽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으로 노예해방사상을 품고 흑인 노예들을 숨겨주거나 탈출 시켜줬는데 존 브라운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받아 노예해방주의자가 되었다. 그가 나이가 들었을 무렵 캔자스로 이주하게 되는데... "유혈의 캔자스" 뒷배경을 잠시 설명하자면 캔자스가 캔자스 주로 승격되면서 과거 미주리 협정의 "위도 36도 30분선 아래로 노예주"에 따라 노예찬성주가 될 예정이었으나 캔자스의 정착민들은 대부분 북부 출신 또는 남부 출신이나 노예제를 반대하던 사람으로 그대로 노예주가 되기엔 곤란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투표로 결정하자는 결론이 나왔지만 해방자들은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농장주들은 노예주로 만들기 위해 무장한 채 캔자스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한다. 결국 온갖 부정선거 끝에 캔자스는 노예찬성주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정착민들은 노예찬성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예 지지자들의 분풀이로 정착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로렌스 약탈) 존 브라운은 캔자스에서 무장충돌과 유혈사태를 겪으면서 미쳐버린 나머지 완전히 과격파로 전향하게 되어버린다. 그는 미국 길리애드 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창설하여 이들을 주축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혁명활동에 선을 넘어버리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예시 이미지) 어느날 존 브라운은 노예제를 옹호하던 백인 5명을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브로드소드로 무참하게 살해한다. 그는 피해자의 시신을 찢어발긴 뒤 그들의 사지를 캔자스 주 경계에 뿌려 노예찬성주의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 했는데 이를 계기로 전미의 해방주의자에 대한 인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 저 이 사람 모릅니다. 진짜로"  이 사건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에 링컨을 비롯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던 정치인들은 황급하게 존 브라운과의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해명해야했다.  더불어 분노한 노예찬성주의자들은 민병대를 끌고 캔자스 주에 처들어가기까지 했는데, 존 브라운의 비밀결사들이 저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선전을 거둬 존 브라운의 명성이 좋든 나쁘든 북미 전역에 떨치게 되었고 특히 남부 노예주 사이에선 악마의 화신 그 자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1859년 그는 노예 해방 나라의 주춧돌로 삼고자 버지니아 주 하퍼스 페리의 정부군 무기고를 기습점령하였으나 머지않아 출동한 연방군에 의해 패배 당하고 사로잡힌다 그는 그 해 12월에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나 존 브라운은 이 죄악의 땅의 범죄를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피 뿐이라고 이제 확신한다." - 그의 유언 그리고 그의 사형 집행 4개월 뒤 남북전쟁이 터진다 그러자 북부군은 그를 상징으로 삼아 추앙하게 되는데, 그를 주제로한 군가가 바로 "존 브라운스 바디" 찬양가, 옛날 군가 때로는 광고 노래에도 흘러 나오는 음율의 원조 되는 곡이다. - 플로리다 주에서 백인들 불편하지 않게 인종차별역사 교육방침 바꾼다는 기사 읽고 옛날에 쓴 글 끌어다가 렉카해봄 차라리 그 시대에 백인들이 했던 선한 일을 알리던지 인종차별 과거사 비호는 역시 좀 그렇지 않나 출처 : 루리웹 인종차별과 남북전쟁하면 저 사람을 빼놓을 수 없죠 링컨과 함께 미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라.. 하지만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