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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물고기를 발견한 한 남자... 그가 보여준 놀라운 기적

해외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연 하나를 소개합니다. 기적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작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것은 진실입니다.
해외 커뮤니티 Reddit 의 한 사용자는 집 근처의 애완동물 가게에서 곧 죽을 위기에 놓인 민물고기 베타(betta)를 발견한다. 그는 '어차피 죽을 거 그냥 공짜로 달라'하며 물고기를 데리고 왔다.
몸의 비늘 절반은 보이지 않았고, 헤엄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비록 크지는 않은 작은 어항이지만, 그는 물고기를 위해 깨끗한 물과 건강에 좋다는 약과 소금을 물에 탔다. 그리고 매일 어항 물을 깨끗한 것으로 갈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고기의 상태는 여전히 안 좋았다. 몸의 일부는 부패하기 시작했다. 꼬리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고, 그나마 남아있던 지느러미도 보이지 않았다. 약 10일 동안 다양한 먹이를 주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물고기는 먹이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일 '힘내라'하고 외쳤다.
그의 바람과 외침이 통한 것일까. 약 10일이 지나서, 드디어 물고기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물고기가 이제 기운을 차릴 것이라고 믿고, 전보다 더 크고 여러가지 설비가 있는 수족관으로 물고기를 옮겼다. 물고기가 더 많이 움직이고 건강해지길 기도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더 이상 몸은 썩지 않았고 지느러미가 자라기 시작했다.
다 자라난 지느러미는 점차 반짝이고 화려한 색으로 변했다.
온 몸이 썩어가며 죽어가는 물고기는, 2개월 만에 멋진 모습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이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분명 2개월 전에는 죽어가고 있는, 그것도 몸이 썩어가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물고기는 의료 수술도 받지 않았다. 받은 것은 오직 물고기를 구한 남자의 관심과 그가 주는 먹이 뿐이었다.
먹이를 먹지 않는 물고기를 보며 항상 '힘 내라'하며 외쳤던 그의 진심이 정말 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분명한 것은 작은 친절과 관심, 그리고 믿음. 매우 간단한 이것들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3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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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동..
때론 당신이 기적일때가 있읍니다. 그날을 위하여!
인간의 심성이 아름답습니다.
소름..
감사하다는생각이 드내요~ 모두 본받아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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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일단 수술부터 하고보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이의 위급한 상황을 보면서 안절부절 눈물을 흘리던 아이의 부모가 완강하게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아이의 상황은 일분이 위급한데, 아이의 부모는 "펜타스판"이라는 수액을 사용해서 수술을 해 줄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펜타스판은 고밀도 덱스트란 제제이므로 몸에 수분이 부족할 때 혈관에 투여하면 혈관내의 수압이 증가해서 혈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링거액이다. 그러나 펜타스판은 출혈이 멈추어진 후, 수혈량을 줄이기 위한 제재로서 사용 할 수는 있지만, 출혈중이나 이미 대량의 출혈이 일어난 다음에는 오히려 출혈을 조장하거나 혈액을 희석시키므로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보호자들은 이미 교단에서 교육받은 ( 수혈시에는 대체제인 펜타스판을 사용해 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하라 ) 자료를 들고, 완강하게 수혈을 거부했으며,아무리 설득을 해도 설득이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차라리 아이가 죽게되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수혈을 받아 사는것 보다는 낫다고 말했으며. 아울러 미국에서의 임상자료는 ( 교단자료 ) 수혈을 굳이 하지않아도 사망률의 차이가 없는데 유독 한국의사만 수혈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입씨름은 이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목숨을 해치는 것 이었다. 도리없이 수혈을 하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수술실로 올라가는 과정에도 부모들은 절대로 아이에게 수혈을 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받고자 했다, 논점이 아이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수혈과 비수혈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수술팀 사이에서는 수술실에 들어서는 순간 수혈을 시작하기로 묵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아이의 혈액형에 맞는 적합한 혈액은 중앙공급실 무인이송장치를 타고 이미 수술실에 도착해 있었고 내가 수술복을 갈아입고 수술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마취과에서는 그 혈액으로 수혈을 시작했다.( 사실 그때 우리들의 젊은혈기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모를 격리실에 잡아가두는 일이라도 불사했을지 모른다 ) 수술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목에 연결된 굵은 중심정맥관으로 혈액이 빠른속도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아이의 배를 열고 수술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아이의 우측 간이 절반정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아이의 간을 한시간만에 부분절제 해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간 절제부위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내리는 피의 양만 많지 않으면 아이는 회생 할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우측 옆구리에 드레인 호스를 네개정도 박아 둔채로 수술을 끝내고 복부를 봉합했다, 마취된 아이의 창백한 얼굴에 조금씩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량의 출혈이 멈추고 빠른속도로 수혈이 진행된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의 혈색소 수치가 수술후 체크한 검사에서 7 정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 14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희석을 감안 하더라도 아이의 몸의 피가 절반이상 빠져나간 것이다, 이제 더이상의 출혈만 없다면 버텨 볼 생각이지만, 만약 수술부위로 출혈이 조금씩 계속 이어진다면 재차 수혈이 필요한 수준이었다. 우리는 아이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기전에 수혈을 했던 수액관을 교체하고, 범행의 흔적들은 모두 지워야했다, 또 혹시 아이의 부모가 챠트를 볼까봐 챠트에 수혈딱지도 붙이지 않았고 수혈챠트를 이중장부를 만들듯이 따로 만들었다. 우리는 완전범죄를 자신하면서 일단 아이를 중환자실로 내보냈다. 그렇게 아이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나도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에게 수술 경과를 설명했다. 아이의 간이 파열된 상태이며, 출혈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 출혈량이 과도해서 헤모글로빈 이라고 부르는 혈색소가 감소하면, 혈액을 통해 조직에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고 그로인해 대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수술 경과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록 지금 부분 간절제술을 시행하여 출혈은 멈추었지만, 현재 간의 절단면에서 작은 출혈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만약 그렇게 출혈이 계속 될 경우에는 수혈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다는 점,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도 수혈을 할 수 없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결국 퍼미션 용지에 " 나는 환자의 친권자로서 의사의 수혈 권유를 강력하게 거부하였으며 이로인해 발생 가능한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이 질 것을 약속합니다 " 라는 각서를 받았지만, 사실 그 각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아이에게 수혈을 했고, 또 앞으로도 해야 한다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옳은지 아닌지 아직 판단 할 수 없지만,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는 것과 아이의 수혈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약 환자가 성인이었고 스스로 수혈거부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이미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로서의 아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어느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중환자실에서 드레인을 통해 흘러나오는 피의 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수술 후 대개 너댓시간이면 서서히 양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아이의 드레인을 통해서 흘러내리는 출혈은 수술후 거의 24시간동안 계속 되었다, 비록 양이 많지 않다하더라도 아이의 전체 혈액에서 이미 절반이 없어진 상태에서 그정도의 양은 치명적이었다. 더우기 출혈로 인한 빈혈이 교정되지 않아 혈액의 자연응고기능도 악화되었다. 다시 측정한 혈색소 수치가 드디어 6을 가리켰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같은 양의 혈액이 전신으로 공급이 되더라도 그 혈관내에 흐르는 피의 농도는 절반이 되지 않는 것이다, 즉 아이의 혈관을 흐르는 피는 진짜피는 반 이상이 사라졌고, 링거액과 희석된 묽은 피가 흐르는 것이었으며, 그로인해 산소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전신 세포들의 아우성은 심장 박동을 늘리고, 호흡을 늘려서라도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몸부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의 호흡이 점차 빨라지고, 맥박이 다시 110 회를 가리켰다. 그렇다고 다시 수술을 해야 할 만큼 피가 많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다시 수술을 해도 더 해줄것이 없었다. 정말 신선한 전혈을 3-4파인트 수혈만 해주면 드라마틱하게 좋아 질 수 있는 것인데 , 속수무책으로 지켜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감했다. 수술실이라면 보호자 출입금지 구역이라 몰래 수혈이 가능했지만, 중환자실은 보호자들이 멀리 유리문 너머로 자주 지켜보는데다, 하루에 네번 면회시간까지 있어서, 설령 유리문 너머로 안 들킨다고 하더라도 몰래 수혈을 하는 것은 면회시간과 면회시간 사이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수혈을 하다가 면회시간이 되면 수혈관을 제거하고 다시 끼우고 해야하는 것이다. 링거를 투여하는 수액관으로 피가 투입되면 수액관내에 붉은 혈액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아예 수액관 자체를 자꾸 교체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아이의 팔을 벌집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궁리끝에 희안한 방법을 고안했다. 스테이션에 혈액 봉지를 두고 10 CC 주사기에 혈액을 담은 다음, 아이의 팔에 달린 링거줄에 슬쩍 주사기를 꽂아 주입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원래 링거 관에도 일부는 역류된 피가 보이므로 수혈흔적은 전혀 남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다가 중간중간에 눈치를 봐서 주사기에 피를 담아 아이의 팔에 주사를 했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면, 다른 레지던트가 그일을 맡았고, 또 그다음에는 다른 누군가가 보호자가 입구에 보이지 않으면 아이옆에서 얼쩡거리다가 슬쩍 주사기로 피를 팔에다 주사를 하는 방식으로 기상천외한 방식의 수혈이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틀동안 그런방식으로 무려 3 파인트의 혈액을 수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이의 건강이 회복되었다. 녀석은 자기 간의 절반이 날아갔음에도 황달이나 다른 대사 이상을 보이지 않았고 ( 출혈후의 수혈에 의한 약한 황달은 곧 사라졌다 ), 2차 감염도 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녀석은 결국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넘긴다음, 씩씩하고 건강하게 퇴원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퇴원하던 날 사단이 생겼다. 보호자가 하얕게 질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고, 보호자의 손에는 퇴원비 계산서가 들려있었다. 보호자는 자기의 아이가 수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것은 어떤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우리가 혹시나 일반 병동에 있는 동안 무심코 보호자가 챠트라도 볼 까봐 챠트에 혈액전표도 붙이지 않고 따로 이중장부를 만들다시피 하면서 완전 범죄를 했는데, 엉뚱하게 퇴원비 계산서의 치료내역에서 혈액이 청구된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 수습해야 했는지. 그다음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구차하게 다시 거론하고 싶지않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 사람사는 세상인데 해결이야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원래 종합병원의 퇴원비 계산서는 수술비, 마취료, 진찰료, 입원료, 투약료, 처치료,약품료 와 같은 항목으로 청구되지 보호자가 들고 있는 상세진료비 계산서는 보호자가 특별히 요구 할 경우에만 발급되는 것인데,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그 경황중에 원무과에 내려가서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원무과 여직원으로부터 어떻게 보호자가 상세진료비 명세서를 들고 있고, 그나마 수혈 내역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었는지를 듣는순간, 나는 정말 태어나서 가장 심각하게 화를 냈다. 정말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정도에 이른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문제의 인턴 선생이 이번일에 개입한 것 이었다. 놀랍게도 보호자들이 그 인턴 선생을 찿아가서 아이에 대한 상의를 했고 ( 나는 그 종단의 교우들이 심지어 다니는 집회장소가 서로 달라도, 서로 알음알음으로 그렇게 서로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턴 선생은 아이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인턴 선생은 그일로인해 그 즈음에 병원에서 왕따가 되다시피해서,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출입은 못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에 보호자에게 아무래도 수혈을 한 의심이 가는데, 꼭 상세진료비 명세서를 확인하라고 가르쳐 준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 인턴 선생에 대한 징계 위원회 소집을 요구 할 것인지를 두고 깊은 갈등에 빠졌다. 이정도 사안이라면 가운을 벗길 수 있는 일이었고,공식적인 문제가 된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었다. 더우기 이런 사람이 의사가 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데. 어쩌면 정말 이 친구의 의사면허는 박탈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국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그날 저녘 인턴선생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나는 내심 경우에 따라 이친구의 인턴 수련을 정지시킬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상황에서 전공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면 최소한 인턴 수련을 이어 갈 가능성은 없지만, 어쩌면 그보다도 이일로 인해 이친구의 병원내 입지가 이미 식물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 수혈 사건만 해도 다들 뜨악 하더라도 한번쯤 넘어가 줄 수 있었지만, 이번일은 우리들뿐 아니라 간호사들이나 기타 다른 진료지원부서의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미 한계를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나는 대충 몇가지를 먼저 질문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린 자식의 운명마져 부모의 신념으로 결정 할 수는 없다, 누구던 삶보다 죽음이 중요 할 수 있다, 사실 이차돈의 순교나, 천주교 박해때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는 말 한마디로 수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처럼 종교적 확신 뿐 아니라, 이준,안중근, 등과 같은 영웅적 죽음까지 어떤 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있지 않다. 때문에 왜국의 개가 될 지언정 차라리 죽겠다는 열사들이나, 타인의 피를 수혈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당신들의 죽음이나 다 같은 선택의 문제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아이의 문제와, 신념이 다른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식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번에 엠블란스에서 자네로인해 적시에 수혈을 받지 못했던 환자가 왜 자네의 신념에 의해 죽고 살아야하는가? 그만큼 자네의 신념이 절대적이고 강고한 것인가?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이랬다.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신앙은 확신이다. 그것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없는 맹목성이 존재한다, 믿음이란 문자 그대로 믿어 버리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나는 내 종교를 믿고있고 믿고 있다는 말은 곧 "따른다"는 뜻이다. 선생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죽음에 까지 개입하느냐는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을 확신하는 내 관점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이다, 만약 내가 내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면 아예 "믿음"자체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로, 비록 소수로서 존중 받지 못함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내 믿음대로 행 할 수 밖에 없다., " 사실 내 관점에서 보면 그녀의 말은 틀렸고,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틀렸다. 이대목에서 수혈의 의미를 이야기하거나, 그 종파에서 에이즈나 간염등의 사례를 들어서 수혈금지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이야기들은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냥 그 상황에서 죽으면 되지, 왜 수혈이 의무가 되는 "의사"의 길을 들어 섰느냐? 만약 그것이 확신이라면 의사외에 다른 직업을 택했어야 하지 않느냐? 그녀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교파에는 의사가 거의 없다, 아주 드물게 나이가 들어서 우리의 교리에 믿음을 가지고 뒤늦게 입문하게 된 의사가 몇 분 계시지만, 그분들은 그 수가 극히 적다, 더우기 우리가 수혈을 거부한다고해서 죽음을 쉽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도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만, 다만 수혈을 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누군가 의사중에는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수혈이 없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거나,의술을 발전시켜 줘야한다, 그런데 선생님 역시 그렇지 않느냐, 일단 상태가 나빠지면 수혈을 하고 쉬운길로 가지 않느냐,, 만약 선생님 같은 분이 내 담당 의사가 된다면 나는 몰래 한 수혈 때문에 정신적인 불구자가 되거나, 아니면 우리말을 존중해서 수혈을 하지 않을 경우에도 사실 속수무책으로 죽게되지 않겠는가? 선생님 머리속에는 "그런 상황에서는 수혈외에는 대안이 없어.."라는 확신이 박혀 있지 않느냐,, 하지만 단 한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전통적 가치 기준으로 보면 수혈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목숨도 중요한 것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백만에 한명이 있는 희귀병 치료에는 우리나라의 일류의사들이 매달리면서, 백만이 넘은 우리들의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 않느냐,, 우리도 대수술을 받으면 두렵고 공포스럽다,, 이럴때 우리들을 위해서 어떤 의사가 그나마 수혈을 받지 않고도 최대한 생존률을 높여줄 수 있는 연구와 배려를 해준다면,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않겟는가? 그것이 내가 의사가 된 이유다,,.. 사실 나는 그 종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의사로서 수혈 문제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군복무 문제 등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 그 사람들이 지키려는 원리주의적인 삶은 어떤 면에서는 현재 타락한 기성 교회에대한 모범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은 생명을 담보로 성서에 쓰여진 "피를 취하지 말라"는 구절을 그대로 시행 할 만큼, 소위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즉 수혈 문제를 일으킨만큼 다른 기준이 그만큼 엄격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성종단이 "말씀"을 의역하고 임의로 해석하여, 수혈이나 다른 금기들을 유연하게 피해 갈 수 있는 만큼 대신 다른 규범들을 쉽게 왜곡하고 지키지 않고, 방종하며 , 신앙을 신앙 답지 않게 만들고, 성전에 기름이 번들거리고, 교회에 황금이 넘쳐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나는 결국 그녀의 오류를 덮기로 했다. 다만 그녀가 외과,내과와 같은 수혈로 인해 타인의 생명을 위협 할 수 있는 전공을 택하지 않는 조건으로 나는 더이상 이문제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 ... 지금 그녀는 진단 방사선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같은 교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의원을 개설해서 진료중이며, 교인들이 심각한 외상이나 기타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 , 자신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혈액학회 회원으로서 대체 수혈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삶은 우리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ㅊㅊ ------------- 너무 무섭네여.......................... 여호와의 증인에 별로 악감정 없었는데 저런 자리에 여호와의 증인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또는 내 가족이 내 지인이 수혈을 받지 못해 죽게 된다면 너무 허탈할듯.....ㄷㄷ
시골에서 전해오던 들어가선 안되는 곳
오늘도 귀신썰 하나 가져왔어요! 사진은 이야기와 관련없습니다. - 이 이야기를 정말로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는 대로 한번 얘기해보겠습니다. 이제 수십 년전의 이야기였떤 중학교 1학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가가 일본의 긴키 지방의 어느 시골에 있었는데 매년 여름이 되면 피서를 겸해서 가족들 모두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그곳으로 내려갔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은 절 정말로 예뻐해 주셨습니다. 제가 친가에 내려가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토마토에 설탕 절임을 항상 해주셨던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근처에 사는 동년배 H와 그 남동생과 함께 놀았었습니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술래잡기를 하거나 잡목림에서 도토리 수집을 하거나 공원에서는 매실을 찾으며 놀기도 했는데, 딱 한 군데. 들어가서는 안되는 장소가 존재했었습니다. 잡목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변을 단단하고 높은 벽으로 둘러싼 살풍경한 땅이었습니다.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해봤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어서, 애초부터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저곳에 가까이 가면 안 돼. 코오니 님이 계셔 가지고, 벌을 받게 될 거야." 라며 귀가 아플 정도로 말하셨기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무서워진 나는 그곳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땅만 피해 셋이서 자주 놀았는데, 그날만큼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야야, 저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을래?" 라며 H가 그 땅을 가리켰습니다. 깜짝 놀란 난 "하아, 저기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너도 들었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H는 코웃음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괜찮다니까. 이 근처에선 질릴 정도로 놀았잖아. 우리가 모르는 곳은 저기뿐이야. 우리 할머니가 저 안에 들어가면 코오니 님의 놀잇감이 될 것이라하시긴 했지만, 우리도 이제 중학생이라고." 중학생이 되고 조금 기가 세졌다고나 할까,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야!라는 마음은 다들 이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미신이야, 미신. 우리들이 만지면 안되는 뭔가 엄청난 보물 같은 게 숨겨져있는 게 아닐까?" 라고 H는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뒷걸음치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 말자. 자물쇠도 걸려있는데." 라고 내가 말하니 H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거 녹슬어서 금방 부술 수 있다니까. 너 혹시 무섭냐?" 라며 대답해 왔습니다. 흔한 패턴이긴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사나이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 나는 "… 알았어. 문 앞까지만 가줄 테니까, 안에는 너 혼자 들어가. 알았지?" 라고 결국 말했습니다. 그때 H의 5살 정도 된 H의 남동생은 검지를 열심히 빨아대고 있었습니다. H는 단숨에 근처에 있던 돌을 주워 자물쇠를 부수기 시작했고 자물쇠 자체는 굉장히 오래된 철제 자물쇠였는데, 녹이 슬어 질척질척 지저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입니다. 나도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봐오던 문. 대체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되어있을까? 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포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기분으로 H가 부수고 있는 자물쇠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H가 돌을 든 손에 전신의 힘을 다하여 5회 정도 자물쇠를 내려치니 결국 금이 가더니 부서져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H는 돌을 내려두고 한번 심호흡을 한 뒤 "그럼 열어볼게." 라고 말한 뒤 양손으로 천천히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나와 H는 너무 이상한 내부 풍경에 몸과 시선이 동시에 멈추었습니다. 안쪽은 바닥 한 면 전부 흰모래가 덮여있었고 정중앙에 아주 오래된 신사가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예감이 든 나는 등골이 오싹오싹하여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아, 역시 안되겠어. 그냥 돌아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H의 남동생은 그때 울기 시작했습니다. H가 떨리는 몸을 안고 흰모래 위에 발을 들인 순간. 공기가 순간 뭔가 바뀌었습니다. 공기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공기 전체에 몸이 압도되어 그 장소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기분이라 해야 할까 …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에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순간 우후후 … 후 … 후 하고,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남녀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 듯한 기분이 든 그때. 내 몸이 위험을 감지한 건지,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몸 구석구석에 전해졌습니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엉엉 우는 H 남동생의 팔을 꽉 쥐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단숨에 집까지 도망갔습니다. 그때 마침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계셨습니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땀에 젖은 상태로 울부짖는 H 남동생의 팔을 꼭 쥔 채 그곳에 뛰어든 것입니다. 순간 그 장소가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엔 그렇게 온화했던 할아버지가 헉헉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날 보더니 갑자기 "이놈 ○○(나), 너 그 안에 들어간 거냐! 바보 같은 녀석, 이 멍청한 놈이!" 라며 엄청 화난 얼굴로 말을 하셨고, 이어서 절 때리려고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한 번도 화를 낸적이 없으셨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할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말리고 일단 한바탕 진정을 한 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전부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분위기가 조금 기묘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지방 경찰도 무표정으로 슬픈 얼굴을 하며 "형식적으로" H군을 찾아다녔고 그대로 끝이 났습니다. 나와 부모님은 당장 마을에서 나가달라는 말에 당일에 바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갈 때 H군의 할머니께서 "H 짱이, 우리 H 짱이, 놀잇감이 되어버렸어 …" 라고 울부짖던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날을 경계로 더 이상 친가에는 가지 않게 되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날 이후 바뀐 것이 있습니다. 정말 기분 나쁜 꿈을 가끔씩 꾸게 된 것입니다. 짙은 안개가 깔린 그 장소에서 어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곳을 바라보면, 단발머리에 기모노를 입은 아이가 뒤돌아선 채 공을 튀기고 있는데 저를 보며 항상 똑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 같이 못 놀아서 참 아쉽네~" " 그때 들어왔으면 지금 같이 놀수 있을텐데 지금이라도 와서 같이 놀래? " 항상 같은 말을 하는데 저는 그때마다 느꼈습니다.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들고있는 사람 머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입니다. 지금은 저런 꿈을 전혀 꾸고 있지 않은데 이유는 현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저 사건 이후 연락을 하지 않다가 돌아가시기전 편지 한통과 염주 하나를 보내주셨습니다. 편지에서는 "그때 화를 내서 미안했고 이곳으로 절대 다시 와서는 안된다." " 이곳으로 니가 다시 온다면 너에게 큰일이 날거다. 그 신사에 있던것이 두 번은 절대 놓치지 않을거야" " 염주 하나를 보낼테니까 니가 죽을때까지 이 염주를 항상 차고 있어야 한다 " 이 내용을 끝으로 편지내용은 마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물쇠가 걸려있던 그 장소와 신사에 대해서는 부모님은 전혀 모르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끝끝내 전혀 알려주시지 않고 하늘나라로 두분 다 떠나셨습니다. 지금 현재도 그 염주는 제가 착용하고 있으며 더 이상 나쁜꿈은 전혀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가 시골 마을에 있던 가서는 안된다는 장소와 신사가 무엇인지는 현재도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전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출처) 가지 말라는 데는 가지 말라는 이유가 있는 건데 항상 왜 말을 안들고 갔다가 탈이 나는 걸까요ㅠㅠㅠ
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걸, Kate MccGwire
이게 뭘로 보이시나요? 마치 책장에서 물폭탄이 쏟아지는 것만 같은 이 무언가는 런던의 아티스트 Kate MccGwire의 작품입니다. 이 무언가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거냐면, 그리고 Kate MccGwire은 주로 무엇을 재료로 작품을 만드냐면 바로 이 작품의 하단부를 자세히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비둘기 깃털이죠. 하얀 깃털을 아래에 배치해서 정말 물보라같은 느낌이 들죠? Kate MccGwire씨는 비둘기의 털갈이 시즌인 8월부터 10월까지에 떨어진 깃털들을 수집해서 이런 작품들을 만든다고 해요. 물론 실제로 수집한 건 아니고, 윤리적으로 수집하는 수집가들이 따로 있다고 해요. 설마 실제로 잡아서 뜯었을 리는 없으니 걱정 노노하시고요 ;) 이런 역동적인 작품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바닥 깔개도 만들 수 있죠. 비둘기 깃털로 만든 러그라니. 알고 봐도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물론 방대한 규모와 패턴에 감탄하다가도, 이게 새의 깃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면 혼란스러워하고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그 또한 작가의 의도라고 합니다. 종종 간과되곤 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자 한 것이죠. 더 많은 작품들은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 관찰 카메라에 찍힌 '숲의 요정'
얼마 전,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제프 워스(Jeff Wirth) 씨는 집 근처 숲으로 출사를 나갔다가 쓰러진 나무 위에 누워있는 보브캣을 발견했습니다. 제프 씨는 거대한 나무 위에 엎드려있는 보브캣의 모습에 반했으나 보브캣은 그가 셔터를 누르기 전에 멀리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제프 씨는 아쉬움을 달래며 보브 캣이 있던 자리를 향해 동작 감지 센서와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움직임을 감지되면 사진을 자동으로 촬영하는 장비로, 그는 보브캣이 이 나무 위를 다시 건너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죠. 일주일 후, 숲으로 돌아와 카메라를 확인하던 그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보브캣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 것이죠! 그런데 다음 사진을 확인한 제프 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낯선 남자가 귀여운 포즈로 나무 위에 엎드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프 씨의 카메라를 발견한 남성이 동작감지기를 이용해 깜찍한 셀카를 남긴 것입니다. 제프 씨는 이 사진을 미국 최대 소셜 커뮤니티 레딧에 올리며 그가 겪은 사연을 공유했습니다. "야생 보브캣을 촬영하기 위해 남겨둔 무인 카메라에 깜찍한 인간이 찍혔습니다. 그는 제 작업을 이해하는 듯 다양한 포즈와 사진을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게시물은 순식간에 15만 회의 좋아요를 받으며 커뮤니티의 메인에 떠올랐고, 결국 사진 속 귀여운 남성의 신원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 시즈모어. 숲을 돌아다니며 외래 식물을 관리하는 숲 관리자였죠. 제프 씨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발견하고도 훔쳐 가지 않은 남성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카메라에 무엇이 찍혀있을지 확인하는 작업은 언제나 설렙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깜짝 놀랐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깜짝 출연한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