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de6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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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헐리우드 리메이크, 샤를리즈 테론 캐스팅

샤를리즈 테론이 '친절한 금자씨'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 캐스팅됐습니다. 10월28일(현지시간) 미국 데드라인과 커밍순닷넷 등 외신들은 배우 샤를리즈 테론(37)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로써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 이어 '친절한 금자씨'까지 총 두 편의 영화가 할리우드 리메이크되네요. 일단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도 잘하고 차가운 느낌의 미녀라 금자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캐스팅은 마음에 들지만 연출과 각본을 '무간도'를 '디파티드'로 리메이크했던 윌리엄 모나한이 맡는다고 하니 기대가 떨어지네요ㅠㅠ 박찬욱 감독 특유의 어두운 느낌은 다 사라지고 왠지 뻔한 여성 킬러 영화가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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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캐스팅만으로도 대박예감...!
캐스팅 제대로다!
와우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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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 시크릿' 리뷰 : 새로운 자아로부터 시작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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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와 페미니즘
http://blog.naver.com/catship/220381459538 (※ 스포일러 다수 포함) 매드맥스를 보았다. 어떤 영화인지 정보도 없었고, 심지어 예전 시리즈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시간에 맞춰서 그냥 본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스팀펑크류의, 선악구도 내러티브가 극명한 화려한 액션물로만 보였다. 중간중간 아하!하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화려한 액션과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세기말적 분위기에 몰입하여 쭉쭉 따라가다보니 별다른 생각없이 보았던 것 같다. 계속되는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 마지막 대사 등을 보고 '이게 그냥 눈요기로만 만든 영화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페미니스트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하니 감독의 '의도'는 단순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전사가 나오고, 여자들의 편이 남자들과 투쟁하고, 여자들이 착취 당하는 존재로 나와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페미니즘적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요소들이긴 하지만, 악,지배자,착취자(남성) vs 선,피지배자,노예(여성)으로 양분해버리는 것은 '투쟁적이기만 한' 페미니즘의 프레임 속 시각이라, 좀 더 달리 보고 싶었다. 영화의 배경은 단순하다. 아포칼립스적 세계이다. 풍요로운 땅은 없고, 물과 기름 등 자원도 메말랐다. 무정부 상태가 된 것은 오래이고, 폭력과 착취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유일한 힘인 세기말적 세상이, 매드맥스의 배경이다. 주인공인 맥스는 아내와 딸을 잃고 그저 생존만을 위해 사막을 유랑하다가,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잡혀 시타델로 들어가 '피주머니'가 된다. ▶ 맥스는 사막에서 갈 곳을 잃었다. 맥스가 잃은 것이 '아내'와 '딸'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여성성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계발하여 조화롭게 사용하며 완전한 자기(self)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칼 구스타프 융은 그래서 남성 안의 여성적 존재인 아니마와, 여성 안의 남성적 존재인 아니무스를 언급하였다. 맥스는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그렇게 자기 안의 여성성을 일깨워줄 이들을 잃은 남성이다. 자기 안의 여성성을 거세 당한 이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그저 '살아질' 뿐이다.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 착취자 임모탄 뭐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나쁜놈이 있나,하며 보았던 임모탄. 만화 속 악역 캐릭터다. 그만큼 나쁜 놈으로 보인다. 물과 기름을 독점하여 빈민들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게 만들고, 폭력과 탄압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한다. 후계자로 '정상적인 아이'를 얻기 위해 여러 여성들을 씨받이 삼아 가두고, 그녀들을 소유물로서 매우 아낀다. 건강한 여성의 자궁을 통해 '온전한 재탄생'을 꿈꾸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름인 임모탄(IMMORTAN)도 힌두어로 불멸을 뜻하는데, '지배','권력'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한 2세 생산에 집착하고 자신을 영생의 신인양 포장하는 것도 불멸에 대한 욕망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인물에게 있어 여성은 아이를 출산할 도구일 뿐이다. 극단의 마초적 남성성, 공격성, 비겁함, 공감하지 못함, 지배욕, 야망 등, 현실 세계를 시궁창으로 만드는 모든 특징을 한 군데에 모아놓은 듯한 인물이다. 그런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엔, 딱히 좀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워보이(war boy)들이 군대로써 존재한다. 이 세상에 악하고 비인간적인 착취자가 있다면, 그가 진짜 옳은 줄 알고, 아무 의심없이 그가 제공한 시스템 속에서 충성을 다하는 군대같은 조직 또한 존재한다. 그것이 워보이 집단이다. 그들은 의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임모탄이 곧 정의고, 법이고, 신이며 진리라 여긴다. 임모탄을 기쁘게 하면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 믿으면서. 그들은 전사 직전(자폭하러 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죽어가면서) 동료에게 '날 기억해줘!'라고 외치는 관습이 있다. 그러면 동료들은 죽어가는 이를 보고 '널 기억할게!'라고 한다. 이것은 워보이에게 명예로운 죽음이다. 날 기억하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도 중요한걸까? 인간은 누구나 기억에 남길 바라겠지만, 매드 맥스 속의 '기억해줘'는 더 절실하다. 생각없는 노예처럼 세뇌되어 사는 워보이들은, 모두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표정으로 보인다. 흰 칠을 하고, 시커먼 화장을 하고, 머리는 모두 밀었다. 자신의 생각이 없는 이들은, 그래서 지배자가 주입한 생각에 휘둘리며 복종하는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타자와 구별되는 존재감과 개성이 없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이 충실한 '부품'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자기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린 좀비와도 같다. ▶ 처절할만큼 임모탄을 숭배하는 워보이 눅스 그 워보이 중, 병으로 죽어가는 눅스가 있다. 그는 우리의 주인공 맥스를 피주머니(헌혈 바늘을 연결해서 피를 수혈받음) 삼아 차에 매달고 다니며, 임모탄을 위한 공을 세우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든다. 임모탄의 탈출한 씨받이들을 되찾아오기 위해 눅스는 끝까지 여자들을 뒤쫓는다. 그가 아무리 '날 기억해줘!'라 외치고 죽음을 각오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낱 부품일 뿐이다. 그는 one of them으로 남을 것이다. ▶ 임모탄에 맞서 녹색의 땅으로 여자들을 데리고 나가는 여전사 퓨리오사 또 다른 주인공 퓨리오사. 진짜 멋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납치되어 시타델에서 자랐다. 중간 과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그녀는 실력을 인정 받아 임모탄 군대의 사령관을 맡고 있다. 워보이들도 그녀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 모유와 기름을 실은 수송차를 농장까지 안전하게 이송하는 것이 퓨리오사의 임무였으나, 그녀는 임모탄의 씨받이인 여성들을 몰래 숨겨서 어린 시절 자랐던 '녹색의 땅','어머니의 땅'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그녀는 남성적 강인함과 여성적 보살핌, 공감의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강인하기에 워보이와 맞서 싸울 수 있고, 여성이기에 착취 당하는 여인들과 시타델의 빈민들의 현실이 잘못된 것임을 '인식'한다. 퓨리오사(furiosa)는 스페인어로 '분노'다. 그녀가 임모탄과 시타델에 '분노'할 수 있었던 것도 피착취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모탄의 아내도 이 일의 공모자로 등장한다. 임모탄의 늙은 아내는 임모탄을 향해 '당신이 하는 일은 미친 일이다,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게 하겠다'고 외치며 무기를 겨눈다. (물론 한 방에 나가떨어지긴 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이 착취의 대를 끊어내기 위해 2세를 생산할 여인들을 탈출시키는 것을 도왔을 것이다. 임모탄의 아내, 퓨리오사 등 '여성들'이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용감하게 행동에 옮겼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남성도 '시타델은 잘못되었다'는 문제인식을 '먼저; 하지 못한다. 시타델에서 온갖 고생을 한 맥스조차도 말이다. 그냥 나한테 짜증나니까 벗어나야지,하는 생각 정도다. 여성성을 거세 당한(아내와 딸을 잃은) 맥스이기에, 시타델에서 고초를 당하면서도 자기만 피하면 그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여성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성은 '공감'과 관련이 있다. 단순히 남성vs여성의 대결구도에서 떠오르는 여성,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피해자로서의 여성에만 집중하면, 여성성과 페미니즘은 그 의미가 축소된다. '여성성'은, 공감과 보살핌, 아우름, 포용 등의 내적 특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성이고, 생명을 길러내는 태이고, 지구 여신 가이아이고, 우뇌적 특성이고, 직관과 감성이고, 달과 음의 부드럽고 고요한 힘이다. 공감하는 여성들만이 이 착취를 문제시하고, 벗어나려 했다. 이 사회의 문제는 여성성(공감력)의 회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퓨리오사는 그러한 여성성을 바탕으로, 미래(씨받이 여성들은 미래의 어머니)를 구하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반역'이라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남성성(강인함, 결단력 등 좌뇌적 남성적 특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감의 여성성과, 판단의 남성성이 행동으로 빚어질 때 우리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 ▶ 착취 당한 여성들, 임모탄의 씨받이 아내들 퓨리오사가 구출한 다섯 명의 여인들 중 하나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그녀들은 우중충한 시타델의 풍경과 동떨어진 듯 여신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순수함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쉽게 더럽혀지는, 무방비 상태의 취약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들은 정조대를 차고 있다. 성적인 억압과 착취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녀들이 탈출을 계획한 과정이 나오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수동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임모탄에 대한 분노와 녹색 땅에 대한 희망을 품고 죽음을 각오한 탈출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네들이 '구해놓으면 잡혀 가는' 민폐형 캐릭터인 것에 비해, 이 여인들은 꾸밈새와는 달리 강단있고 행동력 또한 있다. 정조대를 끊어낸 여인들이 처음엔 두려워했던 맥스에게 대항하며 퓨리오사를 돕는 장면은, '성적 억압','성적 한계'를 벗어던진 후 힘을 회복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의 카테고리 안에서만 여성을 바라보는, 그래서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물로만 보는 관점의 상징인 '정조대'를 끊어내야, 비로소 인간은 건강한 여성성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이들도 흔들린다. 과연 희망이 있긴 한건지 의심하며, 임모탄에게 돌아가면 용서해주지 않겠느냐고 한다. 성을 바치기만 하면, 물도 기름도, 생활의 혜택도, 먹고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다 풍족하게 주어지고,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존엄성 지키기를 포기하면 표면적 기득권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성을 '외면'하면 시스템에서 상위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존엄성을 지켜서 진실된 삶을 살기를 선택한다. ▶ 기이한 차량, 버기, 원시적 공격 퓨리오사와 맥스, 그리고 여인들을 쫓아오는 임모탄과 그의 군대는 차가운 쇳덩이들을 끌고 나타난다. 그에 비해 무기나 공격법은 그닥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뛰어들고, 장대를 이용해서 육탄 공격을 한다. (저 장대 연기자들이 태양의 서커스 배우들이라고 한다! 오호!) 심지어 차에 입으로 기름을 뿜어 넣는다. 아무튼, 이들과 함께 달려온 눅스는,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처음엔 임무를 완수하고 여인들을 데려가겠다는 각오로 오지만 몸이 약해 죽어가고 있는데다, 일행에게 제압 당한 후에는 완전히 절망에 빠진다. '임모탄님에게 인정 받을 수 없어!'라며 말이다. 이제 쓸모없어졌다며 우는 눅스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는 여인(붉은 머리..이름은 기억이;)이 있다. 눅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일행을 돕게 된다. 시스템의 노예로 살아왔던 눅스가, 공감과 이해의 여성성을 접하고 새로 태어나는 대목이다. ▶ 사라진 녹색의 땅, 그리고 늙은 여인들 퓨리오사 일행은 꿈꾸던 녹색의 땅에 당도한다. 하지만 녹색의 땅은 온데간데 없고, 퓨리오사의 부족은 여성 몇 명만이 전부다.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늙은 여인들이다. 퓨리오사는 희망이 없어진 것에 슬퍼하며 절규한다. 갈 곳을 잃은 일행은, 반대편으로 무턱대고 가보기로 한다.맥스는 거기까지 함께 하고 자기 갈 길을 가겠노라고 하지만, 가던 길을 되돌려 '여성들'에게 돌아가 시타델로 가자고 한다. 다른 곳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시타델에는 확실히 물도, 자원도 있다고. 임모탄 군대가 우릴 찾으러 나온 이 때가 기회라며, 역으로 돌아가 시타델을 접수하자고 한다. 탈출해온 시타델로 다시 돌아가자는 제안이 황당하지만, 그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것임을 깨달은 퓨리오사는, 모두를 이끌고 시타델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임모탄의 군대와 싸우다가, 퓨리오사가 큰 부상을 당하지만, 맥스는 그녀에게 수혈을 하여 살려낸다. 이름을 물어도 알 바 없다던 맥스는, 퓨리오사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내면의 여성성을 택하여 이를 되살리는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한 맥스가 온전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었다. 여차저차하여, 결국 임모탄을 처치하고 시타델로 돌아간 퓨리오사와 일행은 탈출해왔던 그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마지막 장면에 멘트가 나타난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희망 없는 세상,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 존재하는, 그래서 착취와 비인간성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면? 영화는 그 답을 '여성'에서 찾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찾는다. 희망 없는 세상이 '여성성의 부재'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여성적 공감력을 회복하여 세상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그것은 특별한 이상향(녹색 땅)을 찾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기가 속한 곳에서 행동하여 이루어내는 것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여성성을 잃었던 맥스가 여성들을 도우며 자기 내면의 여성성을 되살리고 희망을 되찾은 것, 시스템의 노예이자 좀비 그 자체였던 눅스가 여성적 공감과 보살핌 속에서 '진짜 기억될만한 인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적 공감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맥스의 남성적 강인함, 여성인 퓨리오사가 갖춘 남성적 결단력과 실행력은 여성적 공감 외에도 남성적 판단력과 추진력이 함께 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과의 대결구도가 아닌, 균형과 조화를 통해서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이 없어진 사회의 문제는 그 문제가 있는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려준다. 희망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고민하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굳이(!) 진지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매드맥스의 내적 메세지는 '여성적 공감력을 회복하여 남성성/여성성의 균형을 찾아 당면한 문제들을 재조명하고 해결해가자'인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적 공감은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려 하고, 낙오자를 보듬으려 하는 감싸안음의 정서다. 이 정서에서는 죽은 아이들을 목놓아 부르며 슬픔에 빠져있는 이들을 '지겹다'고 여기지 않는다. 노약자를 보호하고 보살핀다.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시비를 가리며 판단하려고 들기 보단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 남을 누르고 밟아서라도 너만 잘되면 된다고 교육하지 않는다. 함께 해나가는 것의 의미를 알고,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인간'을 보고 연민을 가진다. 볼거리 가득한 오락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상징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와 생각을 정리할 겸 남겨본다. 마지막으로, 퓨리오사 멋져잉~! 예쁜 샤를리즈 테론 짤과 잘생긴 눅스 짤로 마무으리. ^_^
2시간, 우리 동화 속을 걸어요 '빅 피쉬'
오늘은 꿈결같이 아름다운 영화를 소개하려고 해요 :)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 바로 그 명작, '빅 피쉬' 입니다 ! 많은 분들의 인생 영화라고 꼽히는 작품이죠 *_*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아들 윌이 아버지 에드워드의 병환이 깊어 전갈을 받고 아버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평생 모험을 즐겼던 허풍쟁이인 아버지 에드워드는 암으로 병세가 위독한 중에 "내가 왕년에~"로 시작되는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야말로 별의 별 모험담들이 다 담겨 있었는데, 젊은 에드워드 블룸은 태어나자마자 온 병원을 헤집고 다녔고, 원인불명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컸으며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이자 해결사였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된 에드워드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대책없이 큰 거인, 늑대인간서커스 단장(대니 드비토),샴 쌍둥이자매, 괴짜 시인(스티브 부셰미)등 특별한(?) 친구들을 사귀고, 서커스에서 만난 여인과 함께 로맨스를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허풍쟁이인 아버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윌. 마지막이 될지 모를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진 윌은 창고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의 거짓말 속에 등장하는 증거를 하나 찾아내고, 아버지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줄거리만 간략하게 읽어봐도 뭔가 동화같은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 빅 피쉬는 특유의 색감과 동화같은 영상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_+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모아왔어요 ! 저와 같이 감상해볼까요 ? ♥︎ 산드라 (여자 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한 애드워드 블룸 (남자주인공)의 심정을 슬로우 모션과 빨리감기를 이용해 표현한 부분을 정말 좋아해요 ! 그리고 마지막 장면 . . 눈물을 안 흘릴 수 없죠 ㅠ_ㅠ 가장 팀 버튼같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영화 '빅 피쉬' 아직 안 본 빙글러가 있다면 지친 월요일의 마무리를 빅 피쉬로 장식해보는 건 어떨까요? ♥︎ 이미지 출처 : tumblr, 쭉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림 그리기, 좋아하시나요 ? 빙글 드로잉 그룹 놀러오셔서 같이 그림 그리고 놀아요 :) ⬇️⬇️⬇️⬇️⬇️⬇️⬇️⬇️⬇️⬇️
곽철용님의 말씀처럼, '말레피센트2'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이번주는 계속 새벽에 일어납니다. 나태해졌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변화를 주고 싶던 찰나였습니다. 일이 늘었기에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밤낮이 원래대로 돌아오더군요. 덕분에 좋아하는 영화를 언제 봐야 하는지도 비교적 명확해진 요즘입니다. 오늘의 영화는 디즈니가 선사하는 색다른 동화 속 이야기, '말레피센트2'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바로 어제 전작 1편을 챙겨봤는데요. 확실히 안젤리나 졸리의 포스와 비주얼이 압도적이더군요. 매력적인 캐릭터에 신선한 소재를 조합하니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바로 속편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보고나니 라디오스타에서 곽철용님이 말씀하신 명대사가 바로 떠올라버렸습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모든 시리즈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로 원작을 능가하는 속편은 찾기 어렵습니다. 만일 속편이 더 평이 좋다면 원작이 별로였거나 원작과 비슷한 수준을 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는 변수 없이 1편이 더 재밌습니다. 전체적인 작품성도 그렇고 마무리까지 차이가 납니다. 초반에는 1편의 설레임을 간직하고 갔습니다만 루즈함과 답답함을 이어가다 결말로 점프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계속 더 다뤄보겠습니다. 고구마 백개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답답한 스토리입니다. 마치 고구마를 몇 백개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하더군요. 중반부에는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는데 그렇다고 정밀한 세계관 설명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개연성도 부족하고 뜬금없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결론적으로 루즈한 시간은 그대로 허무함과 당혹스러움을 바뀌게 되죠. 결말에 가서 사이다를 조금 붓긴 합니다만 고구마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고 사이다는 기대보다 덜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더 힘들었던 부분은 오로라의 역할이었습니다. 허용치 이상의 민폐 캐릭터였습니다. 주인공은 말레피센트고 영화의 반절은 안젤리나 졸리의 매력에서 나오는데 오로라의 행동이 사건에 지대한 피해를 야기시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입니다. 계속 말레피센트는 불쌍할 정도로 연민을 달고 살고 오로라는 순수한건지 부족한건지 알 수 없는 사고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작품 전체의 답답함은 오로라의 영향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결말을 향한 급발진 그 긴 러닝타임동안 이뤄낸 건 없었습니다. 결말을 향한 세세한 물밑작업도 아니었고 하이라이트를 성대하게 만들어 임팩트를 주지도 못했습니다. 어영부영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끝은 봐야겠으니 갑작스럽게 엑셀을 밟은 느낌이었습니다. 자 이제 마무리갑니다! 하면서 준비도 안 된 관객에게 엔딩을 붓는 모양이었죠. 적어도 저는 마지막가서 실망감이 더 커졌습니다. 말레피센트의 매력, 화려한 비주얼로만 2편까지 이끌어가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한 진심어린 태도도 없었고 동화인 모양새에 설득력있는 교훈도 없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존재보단 이기적인 인간에 더 초점이 있었고 감동스러운 재회보다는 이해못할 감정만이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해피엔딩에 도달했음에도 전혀 벅차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전체적인 작품의 미완결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합격 그럼에도 안젤리나 졸리의 존재감만은 언제나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캐릭터의 이해도가 뛰어나니 매력이 넘쳐 흐르고 비주얼까지 소화하니 이제는 말레피센트 그 자체가 됐습니다. 오히려 초반의 매력은 1편보다 더 뛰어났다고도 봅니다. 게다가 영화 속 CG와 그래픽이 만들어낸 비주얼은 확실히 더 화려했습니다. 스케일도 커지다보니 보여줄 시작적인 요소들이 풍부했는데요. 광활한 디즈니의 동화 속 세상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보면 분명 디즈니의 작품이 맞는데, 왜 스토리나 전개는 생각보다 부족했을까요? 아무튼 아쉬움이 깊게 남는 후속편이었습니다.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기다려봤지만 쿠키영상은 없었습니다. 관객수는 100만명 정도를 밑돌거나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정도면 할 얘기는 다 했네요. 더 이상 시리즈가 지속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요, 평은 회의적이지만 마지막 그녀의 태동은 그럼에도 직접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영화 '말레피센트2'에 대한 솔직한 리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