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이냐 인본이냐...
김치는 나에겐 딜레마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여성의 인식은 먹거리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바쁜 일상에서 가정의 먹거리는 여자의 의무요 책임으로, 서구화되는 생활 방식과 바쁜 일상에서 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주부들의 고민은 실상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맞벌이가 성행하는 현대사회는 여성에게 자아를 실현 시켜주는 발판이면서 가사 노동에다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가사 노동에서 금남의 구역처럼 생각하는 전통적 사고의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음식을 만들고 그 뒤를 치우는 일들이,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 과연 현대의 흐름에 맞는 생각일까 하는 의문으로 이 작업이 진행되었다.
부엌에서의 가사 노동 중에 김치를 담그는 일은 그 과정과 시간이라는 면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치를 담그는 일, 특히 전통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김장이라는 일은 긴 시간과 과정을 요한다.
우선 김장에 쓰일 재료부터가 그렇다. 그 양의 방대함으로 배추의 확보에서부터 양념에 쓰일 천일염부터 고춧가루나 마늘, 파, 젓갈 등을 사 들이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길게는 한 달 이상이라는 준비 기간을 요한다. 물론 그 작물들을 키우고 재배하는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재료가 모두 완비되면 하루종일 재료를 다듬고 씻어 버무릴 준비를 하는 일이 밤이 늦도록 이루어진다. 그 중간에 이미 배추를 절여 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절여 놓은 배추는 중간중간 뒤집어 주는 일을 필요로 하고 날이 밝으면 배추를 깨끗이 씻어 내는데, 그 일이 고된 노동에 가까워 요즘은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아예 절인 배추를 사서 담그는 일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준비가 마무리되면 이제 씻은 배추를 양념과 버무리는 작업에 돌입한다. 이제야 겨우 김치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다. 버무려 그릇에 담겨진 김치는 장독대나 김치냉장고로 들어가는데 그나마 장독을 묻는 일이 남자에게 주어진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김장을 하기 위해 한 달 전, 두 달 전부터 걱정하는 어머니들을 볼때 꼭 저렇게 버거운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현대사회처럼 급변하고 시간에 쫓기는 바쁜 복잡다단한 생활과 정신적 여유를 찾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일인가도 싶어진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여자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서 배워왔듯 당연히 해야하는 여자의 일로 스스로의 강요를 받는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더구나 자아를 찾고자하는 자기의 일이 있는 여성에겐 전통적 사고의 강요냐 인본에 입각한 자아의 실현이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집안에서의 폐쇄적 삶을 사는 여성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를 보면서, 자아가 없는 희생의 삶을 살아 온 우리 어머니들의 노년기 우울증은 여성으로서 전통적 가치관에 의해 억압되어 강요된 책임감이라는 허울의 어두운 면을 보게 한다.
나의 작업이 「The Dillemma」라는 주제를 갖게된 배경이 이러하다.
김치 하나로 이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이 어쩌면 과장으로 비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작업에 임하는 나는, 지금까지의 사진 작업과 함께 아이들의 교육과 먹거리라는 주부로서 일상과의 사이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주부라는 여성의 대표적인 노동의 대상 김치와 사진가로서의 작업 김치와의 대비로 전통과 인본의 딜레마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은.. '갤러리 나우' 에서 전시될 '소명'의 작업「The Dillemma」의 메인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