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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역대 시청률 BEST 10 & WORST 10

*일본 시청율 기준
<명탐정 코난> BEST 시청율 TOP 10
1위 : 1999년 3월 1일 / 137화 / 푸른 고성의 탐색 사건 (후편) - 23.4%
2위 : 1999년 1월 18일 / 131화 / 경기장 무차별 협박 사건 (후편) - 23.2%
3위 : 1997년 12월 1일 / 83화 / 종합 병원 살인 사건 - 23.1%
4위 : 1999년 2월 8일 / 134화 / 마술 애호가 살인 사건 (해결편) - 23.0%
공동 5위 : 1998년 2월 9일 / 90화 / 꽃 향기 살인 사건 - 22.8%
1999년 2월 22일 / 136화 / 푸른 고성의 탐색 사건 (전편) - 22.8%
6위 : 1998년 1월 12일 / 86화 / 유괴 현장 특정 사건 - 22.7%
7위 : 1999년 2월 15일 / 135화 / 사라진 흉기 수색 사건 - 22.6%
8위 : 1998년 3월 23일 / 2시간 스페셜 96화 / 궁지에 몰린 명탐정 2대 연속 살인 사건 - 22.4%
9위 : 2000년 1월 17일 / 176화 / 검은 조직과의 재회 (하이바라편) - 22.0%
10위 : 1999년 1월 25일 / 132화 / 마술 애호가 살인 사건 (사건편) - 21.9%
<명탐정 코난> WORST 시청율 TOP 10
공동 1위 : 2009년 7월 18일 / 541화 / 모리 코고로 탐정 폐업의 날 (후편) - 5.0%
2010년 4월 10일 / DR 395화 / 기발한 저택의 대모험 (장치편) - 5.0%
2위 : 2009년 6월 6일 / DR 4화 / 대도시 암호 지도 사건 - 5.2%
공동 3위 : 2011년 8월 20일 / 627화 / 코난 키드의 료마 보물 공방전 (전편) - 5.4%
2010년 2월 27일 / 566화 / 파트너는 산타씨 - 5.4%
공동 4위 : 2010년 8월 7일 / DR 154화 / 소노코의 위험한 여름 이야기 (후편) - 5.5%
2012년 12월 29일 / 매직 카이토 12화 / 다크 나이트에게 사랑의 눈물을 - 5.5%
5위 : 2013년 8월 17일 / 706화 / 수수께끼를 푸는 버번 - 5.7%
공동 6위 : 2009년 4월 18일 / 530화 / 도시 괴담의 정체 (전편) - 5.8%
2010년 6월 19일 / 577화 / 반딧불이 밝힌 진실 - 5.8%
공동 7위 : 2009년 5월 2일 / 532화 / 첫 사랑의 상처 자국 - 5.9%
2009년 7월 11일 / 540화 / 모리 코고로 탐정 폐업의 날 (전편) - 5.9%
2009년 8월 1일 / 543화 / 물고기가 사라지는 일각 바위 (후편) - 5.9%
2010년 7월 24일 / 582화 / 좀비가 죽은 밤 - 5.9%
공동 8위 : 2009년 8월 22일 / DR 69화 / 어둠의 남작 살인 사건 (의혹편) - 6.0%
2011년 4월 16일 / 611화 / 이누부시성 화염의 마견 (도깨비 불의 장) - 6.0%
9위 : 2009년 8월 15일 / DR 68화 / 어둠의 남작 살인 사건 (사건편) - 6.2%
공동 10위 : 2009년 12월 26일 /561화 / 사망의 관, 붉은 벽 (공성의 계) - 6.3%
2010년 8월 21일 / 584화 / 시라토리 경부의 실연 - 6.3%
2011년 7월 23일 / 625화 / 절규의 수술실 (전편) - 6.3%
2013년 8월 10일 / 705화 / 밀실에 있는 코난 - 6.3%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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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binkusillver 코난 = 살인이죠ㅋㅋㅋ
살인사건 들이 best 순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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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데릴사위가 키운 스즈키 자동차
... 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얼굴 사진). ... 은행원 하다가 오너 집안에 장가들어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현직 동시에 쓰러지면서 사장 자리 올라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즈키 오사무(鈴木修‧87) 회장은 이렇게 큰 변화를 두 번 겪었다. 그는 경차의 대명사인 스즈키를 ‘위대한 중소기업’(偉大な中小企業)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즈키 오사무는 2000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스즈키의 차는 차체만 작을 뿐,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다. 스즈키자동차의 슬로건은 ‘작게(小), 적게(少), 가볍게(輕), 짧게(短), 아름답게’(美)이다. 경차는 이익을 남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원가 절감이 생명이다. 오사무 회장은 공장 바닥에 나사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공장 바닥에 돈이 떨어져 있다”며 한 푼의 돈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즈키의 효자 상품은 알토(Alto:라틴어로 높다는 뜻의 altus에서 따왔다)다. 오사무의 사장 취임 직후인 1979년 첫 출시된 알토는 오랜 기간 인기를 끈 스즈키의 주역이다. 알토는 한국 대우자동차의 티코 모델이기도 하다. 스즈키 집안은 방직기계로 출발 스즈키 자동차는 창업주 이름에서 비롯됐지만, 처음부터 자동차업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목화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스즈키 미치오(鈴木道雄:1887~1982)가 스즈키 방직기계(주)를 설립한 건 1920년이다. 그의 아들 스즈키 슌조(鈴木俊三)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내놓으면서 업종을 변경했다. 1954년 ‘스즈키자동차공업’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스포츠바이크와 경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붉은 S자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58년부터다. 1990년 10월에는 현재의 스즈키로 사명을 바꿨다.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 스즈키의 역사에서 인도 진출을 빼놓을 순 없다. 오사무 회장은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며 일본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먼저 인도 시장에 눈떴다. 그가 사장 4년차이던 1982년(당시 52세), 스즈키는 자동차 기업으로서는 일본에서 꼴찌였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 1등하기 어렵다면 해외에서 하자”고 마음 먹었다. 모두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도 시장 진출 선언이었다. 인도 정부와 공동으로 합작사‘ 마루티 우도요그’(Maruti Udyog)를 설립, 이후 자회사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스즈키 마루티 인디아’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마루티는 인도에서는 ‘국민차’로 불린다. 스즈키는 한때 인도 시장 점유율 70%를 웃돌기도 했지만, 현재는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 철도 레일 폭은 왜 제각각일까?
... <일본의 선구자들⑨/ 철도의 아버지 관련 기사입니다> 1435mm 궤간이 세계 철도 표준궤 일본 철도 마니아라면, 열차 레일의 폭을 유심히 한번 살펴봤을 것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너비의 궤간(軌間)이 혼재하고 있다. 레일의 폭을 궤간이라고 한다. 궤간의 세계적인 표준은 1435mm로, 신칸센에도 사용되고 있다. 1435mm 궤간을 ‘표준궤’라고 부른다. 일본 궤간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사설 철도법’(私設鉄道法)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사철(私鉄)은 1067mm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간사이의 사철 상당수는 1435mm이다. 1067mm와 1435mm 중간인 1372mm도 있다. 일본은 왜 이렇게 궤간의 너비가 제각각일까. 역사적으로 좀 거슬러 올라가 보자. 1076mm 궤간이 만들어진 이유 일본 최초의 철도 신바시~요코하마(新橋~横浜) 노선이 개통된 건 1872년. 당시는 3피트 6인치, 즉 1067mm을 궤간으로 정했다. 당시 영국 철도기사인 에드문드 모렐(Edmund Morel)의 의견이 반영됐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이는 대장대보(大蔵大輔)라는 직책을 맡은 오쿠마 시게노부(1832~1922년)로 알려져 있다. (오쿠마는 두 번이나 총리를 지낸 인물로, 후에 와세다대를 창설했다.) 원래 일본의 철도는 관영(국철)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관영만으로는 부족해 사설(私設) 철도를 허가해 줬다. 그때 레일 폭은 1067mm로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1887년 제정된 ‘사설 철도 조례’(私設鉄道条例)다. 이 조례는 1900년에 시행된 ‘사설 철도법’(私設鉄道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전국의 주요 간선은 사철로 건설됐다. 그러다 1906년 사철을 국유화하는 ‘철도 국유법’(鉄道国有法)이 만들어져 17개 기업이 국가 소유가 됐다. 17개 업체가 한꺼번에 국유화 되면서 민간 철도 건설은 시들해 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10년 자율성을 높이고 민간에 의한 지방철도 정비를 추진하기 위해 ‘경편전철법’(軽便鉄道法)을 시행했다. 이 법은 궤간을 1067mm에 한정하지 않고,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좁은 궤간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국철의 표준인 1067mm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과거에는 있었다. 1910년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내각에서는 1435mm로의 변경을 고려했다. 궤간이 넓은 편이 수송력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다 1964년 마침내 국철에 1435mm 궤간 철도가 탄생했다. 이것이 도카이도 신칸센이다. 같은 회사인데도 궤간 서로 달라 같은 철도 회사이면서 노선에 따라 궤간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도쿄도 남서부~ 가나가와현 북부에 걸친 노선을 운영하는 게이오 전철(京王電鉄)이다. 게이오의 노선망은 약 85km로 비교적 짧지만 게이오선 계통(京王線系統)과 이노카시라선(井の頭線)은 궤간이 다르다. 차량의 외형도 전혀 다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원래 이노카시라선은 전쟁 전, 오다큐 계열(小田急)계열의 제도전철(帝都電鉄)이 1067mm를 선택해 개업했다. 반면 게이오선은 ‘게이오전기궤도’(京王電気軌道)라는 이름으로 개업, 1372mm를 선택했다. 혹시, 일본 여행 중이라면 철도 궤간에 한 번 눈길을 줘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A.D.? ~ 220
이 칼럼에서 앞서 다뤄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나아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대부분, 본래의 생애와 인물됨이 평가절하 내지는 너프를 잔뜩 받거나 또는 버프를 이빠시 받은데 비해... 버프or너프를 떠나 그 실제와 소설 속의 이미지 차이가 확연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하후돈"이다. 오늘날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인 "패국 초현" 출신이며 조조와 동향이고 여기는 당시 서주의 소패 인근인데, 그때의 이 곳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후한의 수도인 낙양, 그리고 업과 허창과 함께 후한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꽤나 잘 나가는 동네였다. 도시남자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터프가이의 싹수를 뽐내며 자란 대개의 무장들과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학문을 배우던 나름 곱상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고 대체로 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교육받던 당시의 학생들과 달리 집으로 스승을 모셔 배우는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은근 좀 사는 집 아들이였던거 같다. 하기사, 파탄에 가까운 후한 말의 배곯는게 일상인 여느 백성들에게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되었다는 반증.(올~~) 그러던 돈이가 14세 때....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하후돈 앞에서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패죽였다는 기록을 보건데 단순 중2병을 넘어 이미 그 나이 때부터 완력도, 의기도 남달랐던 슈퍼청소년이였던거 같다. 지금 만약 어떤 중학생이 누가 지네 담임 흉본다고 그 사람을 때려 죽이면 바로 소년원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후돈이 강직하다며 사람들이 그의 의로움을 칭찬한걸 보면..... 진짜 후한 말 중국이 개판은 개판이였던 모양.ㅋ 어릴 때부터 조조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체구가 작고 근력도 그냥저냥이던 조조의 주먹 노릇을 했던 하후돈은 그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도 조조가 거느렸던 숱한 인물들 중 가장 드높은 충성을 바친 맹목적인 조조빠였고 조조 역시 자기 휘하의 문무에서 날고 기던 무수한 쫄자들 중 하후돈을 가장 아꼈기에 그런 하후돈은 그래서인지 항상 본인의 능력 이상의 직위와 직책을 맡았었다. 연의에서는 물불 안가리고 무예와 용맹이 대단하여 조조세력의 초창기, 전투에 앞장서는 맹장으로 그려지나 사료에는 그의 군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포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조조와 여포의 전투에서 여포군의 사항계에 속아 인질로 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하후돈을 득템하여 몸값을 요구하던 적들에게 당시 조조휘하의 '한호'라는 하후돈의 부장이 협상 그런거 없이 인질범들을 그대로 공격했고 하후돈은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ㅋㅋㅋ 물론, 한호 입장에서는 인질극에 휘둘리다 군세가 꺾이고 군법이 문란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그랬고 후에 조조 또한 한호를 매우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앞으로 그 어떤 인질극에서도 절대 상대와 타협없이 인질의 생존과 구출여부 떠나 공격하라는 메뉴얼을 정했다는... (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급구! 저랑 같이 드로잉 그룹 하실 빙글러 괌! (0/00)
안녕하세요 여러분! ! 이렇게 개인적인 카드는 처음 적어보네요 :) 평소 일러스트와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사진예술이나 일러스트레이션에 작품과 작가님을 소개하는 글을 종종 쓰고는 해요 *_* 멋진 그림과 사진을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슥-슥-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물론 재료도 지식도 딱히 없어서 간단한 라인 드로잉이지만요 . . ) 어제 그려본 드로잉입니다 +_+ 너무 허접해서 부끄럽네요 . . 그런데 혼자 그냥 그림을 그리려니까 뭔가 동기부여도 안되고 나태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ㅠ_ㅠ 그래서 그래서요.... 혹시 저와 드로잉 그룹을 함께 하실 빙글러를 구합니다 :) 뭔가 드로잉 그룹이라고 하니 멋져 보이는데 그냥 일주일에 3-4일 정도 서로 주제를 정해서 드로잉을 하고, 공유하는 그룹을 생각하고 있어요 *_* 서로 으쌰으쌰 응원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만날 수 있으니 동기부여도 되고! 꾸준히 드로잉을 하다보면 그림 실력도 UP UP! 이거 완전 일석이조 아닌가요오 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지만 . . ㅠㅠ 실력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점 알고 계시죠?! 이 세상에 똥손이란건 존재하지 않는다구욧 ㅎ_ㅎ 그림에 관심있는 빙글러 여러분들 저와 소소한 그림모임 어떠신가요? 제발 제발 제발 저와 함께 해주세요 ㅠㅠㅠㅠ 관심있으신 분들은 댓글을 달아주세요 :) ⬇️⬇️⬇️⬇️⬇️ 톡방에서 함께 얘기하며 어떻게 드로잉 그룹을 운영할지 함께 얘기 나눠봐도 좋을 것 같아요♥︎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태풍 피난처 제공한 재일동포들…日시민들 "정부, 차별 멈춰라"
지난 3월 일본 후쿠오카(福岡)지법 고쿠라(小倉)지부가 규슈(九州)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 68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750만엔(약 7천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법원 주변에 있던 이 학교의 여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태풍 '하기비스'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일본에서 조선학교들이 피난처를 제공해 일본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조선학교의 선행은 조선학교 무상교육 배제 등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루어져 더 큰 의미가 있다. 지난 12일 도쿄 아다치구에 있는 조선학교 '도쿄 제4초중급학교'는 건물을 일본 시민들이 피난처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뿐만 아니라 피난민들을 위해 물과 식량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시민들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고마움을 전하며,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의 한 네티즌(트위터 아이디: Do*****)은 "왠지 눈물이 났다. 이렇게 지역을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왜 참정권이 없는 걸까. 왜 조선학교는 고등학교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되어야 하나. 너무 불합리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네티즌(트위터 아이디: 4z*****)도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에 살고, 납세도 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적극 활동한다. 한 마디로 좋은 이웃이다. 그들을 교육 등에서 차별하면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시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은 심화하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학생 1명당 연간 12만~24만엔(약 134만6천~269만3천원)의 취학지원금을 학교에 지원하는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조선학교도 무상화 대상으로 검토됐으나, 제2차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결국 2013년 2월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령이 확정됐다. 이후 조선학교 졸업생들은 도쿄, 나고야, 히로시마,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 5곳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를 비롯한 일본 법원들은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문제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외에도 재일동포들은 지방참정권과 고위공무원 임용권을 갖지 못하는 등 일본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유아 교육·보육 시설에 대한 무상화 정책에서도 조선학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제외해 재일동포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불매운동 상징' 유니클로 회장…"이대로 가면 日 망해"
"한국인의 반일 이해할 수 있어" "일본인은 원래 냉정했는데, 전부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어" (사진=연합뉴스) 일본 불매운동의 상징이 된 일본 유명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70) 회장이 아베 신조 정부와 자민당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야나이 회장은 "지금의 자민당 의원은 정말로 정떨어진다. 누구도 아베 총리에게 이의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평가하지만 성공한 것은 주가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개혁을 단행하는 것 말고는 나라를 살릴 다른 길이 없다"며 "정부 세출을 절반으로 줄이고 공무원도 절반으로 감원하는 등 2년 안에 이를 실행할 정도의 과감한 개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면 일본은 망한다"고 단언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창업자. (사진=연합뉴스) 또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우리도 엉망이 됐지만, 한국을 향해 모두가 싸울 듯이 덤벼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인의 반일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일본인은 원래 냉정했는데, 전부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미국의 속국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멋대로 말하는데 그걸 추종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야나이 회장은 "서점에 가면 '일본이 최고'라는 책뿐인데, 예전은 몰라도 지금도 최고냐"고 반문했다.
빠른 시사회 후기! '날씨의 아이' 영화 솔직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오늘 오랜만에 시사회 다녀왔습니다. 제가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작품이었어요. 게다가 메가박스 MX관이라는 최고 좋은 관에서 감상해서 그런지 시험기간 중임에도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의 또 다른 세계, 영화 '날씨의 아이'입니다. 가장 최근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이전부터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로 유명했는데요. 점점 스케일도 커지고 이야기도 흥미로워지는 모습입니다. 시사회로 빠르게 감상하고 온 후기 솔직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압도적 비주얼 전작(너의 이름은)과 비교하는 내용이 다소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작이기 때문이죠. 날씨의 아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비주얼이 더 화려해졌다는 점입니다. 원래 섬세한 묘사로 명성이 높은 감독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더 화려한 그림으로 영화를 꾸몄습니다. 확실히 판타지적인 요소가 증가하면서 그래픽에도 더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큰 스크린으로 봐서 그런지 몰입이 더욱 잘 됐습니다. 한편, 이번 날씨의 아이에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반가운 얼굴들도 등장하니까요! 새로운 재미로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여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보통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애틋한 사랑이야기, 여름이 배경, 정교한 비주얼이 공통적인 특징인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의 이러한 특징들이 잘 녹아들어있습니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만의 여름은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네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애절하게 슬픈 사람 이야기가 날씨의 아이에서 잘 표현됐습니다. 정말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신카이 마코토의 여름에서 쭉 살고 싶네요. 개연성 부족 다만 이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설득력이나 개연성 부분이 취약합니다. 그래서 공허한 부분을 채우려 여러 장치들을 구비해놨는데요. 쓸데없는 요소들로 인해 중간중간 난잡해지기도 합니다. 왜 굳이 이 인물이 있어야할까,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했는가?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채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내용 예측이 쉽게 되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영화가 주는 반전이나 임팩트가 부족해졌습니다. 더 슬펐고 더 예쁜 영화였지만 작품이 주는 충격은 부족했습니다. 너의 이름은 양식 한 번 대박을 치고 나니 앞으로의 영화도 '너의 이름은' 양식과 골격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마치 같은 뼈대에 내용만 갈아끼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OST노래들은 전작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지만 나오는 타이밍이나 활용도가 너무 비슷합니다. 그리고 도입부 부분 전개나 대사 역시도 이전 작품의 냄새를 지우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초반이 잔잔하다보니 유사한 부분이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분명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때문입니다. 따뜻한 설레임, 얕은 여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노래와 함께 마음이 설레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랬던 부분이 대부분 충족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보통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남기는 여운은 생각보다 얕았습니다. 자세히 생각보면 지나치게 일본 특유의 미신에 의존한 감이 있으며,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싶은 의문마저 듭니다. 스포는 하지 않기에 자세한 얘기는 못하지만 '너의 이름은'을 좋아했고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이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한 번 더 볼 의향이 있습니다만, 이전작처럼 흥행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고 관객수는 100~200만 정도 예상해보겠습니다. 그래도 과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입니다. 노래와 사랑 이야기로 힐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날씨의 아이'였습니다.
[펌] 냉혹한 일본 채식주의의 역사 썰.txt
요즘 트위터 비건들 공통점이 있는데 공감능력 없냐고 하는 주제에 본인들이 공감능력이 개바닥났단 것이다 동물 고통이 안 느껴지냐면서 고기 처먹지 말라고 지랄질을 하는데 왜 고기를 안 처먹었을 때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근데 지금이야 비건들이 트위터에서 지들끼리만 저러니 다행이지만 비건들이 실제 권력을 잡아버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냐 국가에서 고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차라리 딸딸이를 포기하지 고기는 포기 못한다 그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생긴 일이다. 일본놈들은 윗대가리 비건들이 맘대로 내린 명령 때문에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몇년 동안이나 그랬을까? 무려 1200년이다! 1675년도 아니고 675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킹 오브 킹이었던 텐무텐노라는 비건이 있었다. 이 새끼는 그야말로 트위터 비건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내로남불이 개쩔었단 소리다. 텐무텐노는 즉위할 때부터 미친놈이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조카 통수를 후려쳐서 덴노에 올라간 개새끼다. 불쌍한 조카는 어떻게 됐냐고? 억지로 할복시켜서 죽여버렸다. 뭐 여기까지야 개새끼긴 해도 옛날 정치인들이 다 하던 일이었으니 봐줄만한 일이긴하지만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흑흑 너무 슬퍼 조카는 니가 죽여놓고 이제와서 왜 우냐 처음부터 죽이질 말든가 아니 조카는 조까고ㅋㅋ;; 내가 슬픈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럼 니들 저기 소 보이지? 흑흑 음머 흑흑 저 소를 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아마 농사일이 너무 힘들거나 바람막이가 너무 비싸서 그런가봐 근데 너희 농민 새끼들아 니들은 소의 눈물이 안 보여? 공감능력 없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소를 잡아먹기까지 할 수 있어?? 그게 다 육식 때문 아닐까?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공감능력이 휘발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도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비건이 되면 어떨까? 니 새끼는 공감능력을 우리한테는 왜 발휘를 안 하는데 그 힘든 농삿일을 고기도 안 처먹고 어떻게 하냐 미친 새끼야 고기 처먹으면 니들도 고기로 만들어버릴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미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조카한테 사시미 쑤셔넣은 놈이 살생은 나쁘다고 고기를 처먹지 말라니 근데 문제는 이 비건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비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내로남불 비건 새끼가 친 지랄질은 일본에 1000년이 넘는 육식금지시대를 만들어내고 만다. 소, 닭, 돼지, 개, 원숭이, 말을 먹는 놈은 그날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육식금지령도 아니고 살생금지령이라서 사냥도 마음대로 못했다. 뒤에 3개는 그렇다치고 소랑 닭이랑 돼지를 못 먹는다니 개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처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굶어죽으라고 바위밖에 없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사실 말은 군사용도니까 못 처먹고 소는 농사지어야하니까 못 처먹으니 이 두 개 정도면 옛날 이라는 거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돼지랑 닭을 못 처먹는건 그냥 개같은 비건 심보다. 돼지랑 닭은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인간들한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필수가축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단절해버린 거다. 당연히 영양상태가 바닥날 수 밖에 없지 당시 일본이 왜 왜소할 왜자 써서 왜놈이라고 불렸겠음? 영양보급이 박살나서 키가 크고 싶어도 못 컸던 거다. 어딜가나 윗대가리가 지랄하면 아랫놈들만 고생을 한다. 이리하여 세계역사에서도 기형적인 일본의 식사문화가 시작되는데, 고기를 못 처먹으니 도축문화가 실전되어버려서 막상 동물이 죽어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엘프들 나오는 이세계 요리만화 기억하냐 그게 진짜로 일어나버린 거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밥만 처먹는 이세계인들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이라는 만화. 주인공이 미개한 식문화를 가진 엘프들에게 음식을 전파해준다는 내용인데 유목민이 치즈도 못 만드는 등 인류학적으로도 너무 말이 안되는 전개 탓에 작가의 무식이 매번 비판받는 작품.) 이 이세계물을 처음으로 체험한건 다름 아닌 조선 사람들이었다 국사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일본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조선의 통신사란걸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조선은 아시아,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파오후들의 나라였다. 당연히 고기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개 좋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강제비건화된 일본에 놀러갔으니 그야말로 이세계물을 찍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아아 이것은 [배고프다]라는 것이다. 밥을 내놓으란 뜻이지 오옷! 근데 배고픈게 뭔진 나도 알아 ㅄ아 맨날 그렇거든 아무튼 처먹으샘 뭐임 이건? ㅅㅂ 니들 우리 싫어하냐? 이게 뭔 밥이야 살무사 양식장이지 밑에서 뱀 나오겠다 개새끼들아 고기 없어? 먼 곳에서 온 사람들한테 이따구로 개같이 굴기임? [고기]...? [고기]란 것이 너희 세계에 있는 건가? 그렇다 지금부터 이세계 전개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하아니 진짜 미친놈들인가 저기 닭도 있잖아 니들 닭 안 먹음? 안 먹을 건데 치킨 왜 키움? 닭...? 아아 저건 [시계]라는 거다 아침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너희들의 세계에선 [시계]를 먹는 건가...? 그렇다. 일본에게 닭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자명종이었다! 하 ㅅㅂ 닭은 됐고 그럼 저기 있는 소나 한 마리 잡아서 구워와 님 어디 아픔? ? 아픈건 니들 미각 아님? 아니 소는 아플 때 먹는 거잖아 아프니까 약 찾는 거 아니냐고 아니 소를 왜 아플 때 처먹어 니들 농사 짓다 뒤진 소 안 먹었어? 스테이크 모름? [스테이크]...? 우린 소 뒤지면 그냥 태우는데 아 기름 많이 나와서 촛불 켤 때 개꿀임 ㅋㅋㅋ 이거 진짜 아픈 놈들이네 심지어 소가 그냥 죽어도 아무도 안 먹었다. 애초에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소가 뒤지면 일본 사람들은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한점 떼어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태워서 기름만 가져다가 썼다. 고기 타고 남아있는 뼈도 고아먹긴 커녕 땅바닥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소를 아예 전혀 안 처먹은건 아니고 약재로 쓰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약이라서 맛 같은 거엔 1도 신경을 안 썼다. 그냥 고기 가루내서 뭉친 미트볼을 약이랍시고 팔았던 거다. 이 약을 얻는 과정도 가관인데 고기를 안 처먹으니 소를 어떻게 죽여야 할 지도 몰라서 도축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소를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떨어뜨려 죽인 다음에 살점을 주먹만큼만 때어가는 식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만하자. 돼지는 있지? 삼겹살 정도로 타협하자 우리 돼지 안 키우는데 니들은 대체 왜 사냐? 소도 안 처먹고 닭은 시계로 쓰는데 돼지는 기르겠냐. 당연히 돼지고기 같은 것도 꿈도 못꿨다. 아 근데 돼지 먹을 방법은 있음 오 뭔데 멧돼지 산 채로 잡아옴 우리 어떻게 죽이는지 모르니 죽이는건 니들이 알아서 하샘 아니 미친놈아 어어억 하도 고기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니 일본은 통신사들한테 멧돼지를 생포해서 가져다준다. 솔직히 이건 엿먹어보라는 의도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기괴한 식습관이 하도 기억에 남았는지 이 새끼들 처먹는거 존나 이상하다고 기록을 존나 남겼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세계 기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뇌가 있고 혀가 있는데 천년 동안이나 강제 비건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원하는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내려온 인류의 본능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뽑냐 일본 서민들은 어떻게든 비건 파시스트들의 눈을 피해 고기를 처먹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그중 대표적인게 위에도 나온 멧돼지다. 집에서 대놓고 돼지를 기를 수는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몬스터 헌팅을 해서 멧돼지를 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다고기는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흙수저 새끼들이 고기 처먹고 ㅈㄹ이냐 뒤질래? 아니 이거 고래고긴데 이게 뭔 고래고기야 누구 눈깔을 ㅄ으로 암? 님 고기 종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음? 님 혹시? 일본 흙수저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고기를 먹는걸 '야쿠세키야'라 불렀다. 해석하면 약식이란 뜻이다. 즉 병 걸려서 약 처먹는다고 핑계대곤 마약거래하는 것마냥 어두운 곳에 숨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야쿠세키야를 하는 가게에는 주로 고래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속 나왔을 때 걸리면 고래라고 구라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야쿠세키야에서 밀매한 고기들은 소, 돼지 같은 맛좋은 정석 고기가 아니라 여우, 늑대, 곰 등의 육식동물이나 산양이나 물소 같은 생소한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법도 모르니 닥치고 굽거나 삶아버리는게 전부였는데 그걸 또 맛있다고 숨어서 먹어대니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 이련 연유로 생선요리는 엄청 발전한 주제에 일본 고기 요리는 개박살이다. 뭐 천년만년 비건으로 살 순 없다. 텐무텐노가 비건 지랄을 친지 120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도 더 이상 비건질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쓰마' 같은 밀매랑 깡패짓으로 유명한 동네에선 공공연하게 돼지고기를 처먹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제대로 터진다 배틀크루저 오뻐레이셔널 1800년대 초기까지 일본은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마냥 쇄국정치를 하면서 여전히 풀만 뜯어처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배틀크루저를 끌고 일본에 처들어와서 대포를 쏴갈기면서 개항하라고 지랄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보는 시꺼먼 배틀크루저에서 존나 큰 대포를 빵빵 쏴갈기면서 야마토포의 위용을 보여주자 일본 친구들은 개쫄아버린 나머지 바닥을 뒹굴면서 항복항복을 외쳤다. 이게 그 유명한 '흑선사건'이다. 배틀크루저의 위용을 보고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개ㅈ밥이었구나 이러면서 테크차이를 실감하게 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인을 모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그동안 개같이 굴었던 비건 파쇼들까지 개박살낸다. 가장 먼저 비건 파쇼들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메이지 덴노였다 왜 우린 양키들한테 발렸을까 헤어스타일이 ㅄ같아서? 스크롤 늘리는덴 도움이 됨 아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양키들 앞에만 가면 우리 키가 땅딸만한게 실감되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우린 왤케 키가 작냐 진짜 진짜 이유 모름? 진짜? 알았어 ㅅㅂ 이제부터 고기 처먹자 1872년 1200년을 이어왔던 육식금지령이 드디어 취소된다. 일본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게 150년도 안 됐단 거지. 근데 1000년이 넘도록 채식주의자들한테 조교당하다보니 처음에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거에 존나 거부감을 느꼈다. 심지어 밀교에 심취한 비건들이 고기 먹지 말라며 황궁에 처들어가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비건파쇼들이 지랄을 하건 말건 일본 윗대가리들은 이전까지와 180도 태세를 바꿔서 국민들한테 고기를 먹이려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오죽 열성이었으면 그 당시 쇼군 별명이 '돈이치상', 즉 돼지씨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마다 돼지고기를 츄라이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니 먹으라고 하니까 또 지랄이네 도대체 왜들 그럼 먹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은거 어떡함;; 아니 그동안 고기 몰래 존나 처먹은거 나도 다 안다 것도 돈 있는 새끼들이나 그랬거든 익숙하지않고 나발이고 일단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애들 덩치 키운다고 육식을 장려하면 뭐하냐 서민들은 돈이 없는데...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 안 먹던 놈들한테 익숙함을 주거나 적은 고기로 양 많은 음식들이 발명되게 되는데 고기의 비린내를 일본에 익숙한 된장으로 가리고 값도 싼 '규나베'나(당시 서양 스테이크의 5분의 1 정도의 가격) 우리 지갑처럼 얇아터진 고기에 튀김을 두껍게 둘러 양을 늘린 '돈까스'가 탄생하게 된다 행-복 뭐 그렇게 비건 파쇼들의 천년이 넘게 이어진 지랄은 끝나게 된다. [출처-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진짜 역대급 분량에 역대급 욕설... 필터링을 거치긴했으나 여전히 욕이 많읍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