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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믿는 것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단순한 예술적 입장에서보다는 종교적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은 의미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감정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의 묘사이다. 이때의 가치란 단순히 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윤리적 종교적 애국적 도덕적 이념 따위가 포함되기도 한다. 신비한 기적, 하나의 사건도 그것을 자연의 대상으로서 볼 수 있는 한 그것은 시각의 대상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입장에 있어서는 신비한 기적 또는 그러한 자연경관을 봤다고 해서 신을 믿는 신도처럼,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는 믿었기 때문에 성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보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세계이다.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기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들은 성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해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광경의 전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떠한 종교적 경험을 얻게 될 수도 있다. 회화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회화적인 것, 즉 시각적 의미의 것 뿐이다. 그러나 가끔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회화가 본질적 의미에서 색과 형태의 시각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인간이므로 단순히 눈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경우는 그림에 대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하여 종교적 입장에서 믿고 경배할 수 있는 경우이다. 동서의 종교화는 흔히 감상물으로서 보다는 교화시키거나 신앙심을 고양화할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 회화에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이념 따위의 의식이 결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예술의 독자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 의존적 또는 상호 보완적 대등관계에서 서로의 영역이 존립하게 된다. 신은 미술가에게는 보이기 위해 존재하고 신앙인에게는 믿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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