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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 12선

★ 노력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 12선 ★

1. Whatever you do, do cautiously, and look to the end. 무얼하든 주의 깊게 하라, 그리고 목표를 바라보라. 2. Weakness of attitude becomes weakness of character. 나약한 태도는 성격도 나약하게 만든다. 3. The man who moves a mountain begins by carrying away small stones. 산을 움직이려 하는 이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하느니라. 4. Try not to become a man of success but rather try to become a man of value.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힘써라. 5. For the things we have to learn before we can do them, we learn by doing them. 우리가 할 수 있기 전에 배워야 하는 일들을, 우리는 하면서 배운다. 6. Our greatest glory i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7. Just because something doesn't do what you planned it to do doesn't mean it's useless. 어떤 것이 당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다고 해서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8. Improvements are invented only by those who can feel that something is not good. 개선이란 무언가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9. 성공하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하다면, 노력하지 않게 되고 정진이 허사가 되어 성공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10. Integrity without knowledge is weak and useless, and knowledge without integrity is dangerous and dreadful. 지식이 없는 성실은 허약하고 쓸모 없다. 성실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다. 11. Respect your efforts, respect yourself. Self-respect leads to self-discipline. When you have both firmly under your belt, that's real power. 당신의 노력을 존중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자존감은 자제력을 낳는다. 이 둘을 모두 겸비하면,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 12. Create a definite plan for carrying out your desire and begin at once, whether you are ready or not, to put this plan into action.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즉시 시작하라. 준비가 됐건 아니건,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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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클립해 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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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멈춰 맥박도 호흡도 끊긴 상태를 심정지라고 하는데, 두 달 새 두 번이나 심정지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가 집에 CCTV까지 설치하고 남편을 두 번 구했습니다. 침대에 자고있던 구본철 씨가 기운을 잃고 몸을 축 늘어뜨립니다. 구 씨의 아내가 달려와 남편을 똑바로 눕히고 가슴 부분을 계속 누릅니다. 심정지에 빠진 남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겁니다. 잠시 뒤 도착한 119구급대원이 구 씨를 바닥에 옮기고 한참 응급처치를 하자, 구 씨의 호흡이 돌아오면서 가슴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의식도 되찾았습니다. 구 씨는 두 달 전에도 심정지로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아버지와 아내가 구급대원과 영상통화를 하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아내는 만일에 대비해 남편이 자는 방에 CCTV를 설치하고, 심폐소생술 방법을 자세히 익혔습니다. 아내의 경험과 대비가 남편의 생명을 구한 겁니다. 구 씨는 두 번째 심정지 이후 심장 시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심정지 환자가 뇌 손상 없이 소생 가능한 골든타임은 4분 남짓. 심폐소생술 시행법 관련 영상은 대한심폐소생협회나 한국소방방송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채널A 어후 다행이다 다행이야 남편분 평생 아내를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면서 떠받들어야될듯 애기도 어린데 진짜 다행이다 아내분 넘 대단하심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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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옛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엑스포 개막식에 당시 소련 수상이었던 흐루시초프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닉슨이 한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가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었는데, 미국 전시관을 방문한 흐루시초프 수상에게 펩시 마케팅 담당이었던 부사장 도널드 M 켄들이 펩시가 담긴 잔을 내밀며 서슴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펩시 한 잔 하시겠습니까?” 켄들 부사장이 공산주의 종주국의 수장에게 자본주의의 상징인 펩시를 내민 순간 많은 사람이 긴장했습니다.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화를 낼 것인가? 그런데 수상은 선뜻 잔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닉슨 부통령과 건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소련의 수상이 펩시를 들고 있는 것은 수천만 불의 광고보다 효과가 컸습니다.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던 펩시는 단숨에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고 1986년에 코카콜라가 소련에 진출하기 이전까지 소련의 콜라 시장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후일 많은 사람이 켄들 씨에게 물었습니다. “소련 수상 앞에 자본주의의 상징인 펩시콜라를 권한 배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켄들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마케팅 전략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삶을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낙심하는데 자신감은 그런 삶을 희망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지 부끄러움보다 자신감을 가진다면 당신을 성공으로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 겸손하지만 합리적인 자신감 없이는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 노먼 빈센트 필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마음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
한 스승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빙 둘러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는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이 잡초들을 없앨 수 있느냐?”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제자들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버리면 깨끗이 없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 제자들의 모든 대답을 경청한 스승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너희들을 향한 나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각자가 말했던 대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잡초를 없애 보아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1년 뒤 다시 이곳에서 만나도록 하자.”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제자들은 무성하게 자란 자기 마음속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가 약속했던 그곳으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잡초로 가득했던 그 들판이 곡식으로 가득한 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판 한편에 이런 팻말 하나가 꽂혀 있었습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곡식을 심고 관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 또한 선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뽑아낼 수 있다.”   이기심, 미움, 욕심, 허영, 시기 대신 이타심, 사랑, 인애, 겸손, 존중을 심어 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무성했던 마음의 잡초는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 오드리 헵번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마음의잡초 #잡념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
날마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는 그날도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더 분주했던 엄마는 식초병을 참기름병으로 착각하고 찌개에 넣고 말았습니다. 순간 아차 했지만,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까운 마음에 그냥 식탁에 내놓았습니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중학생 큰딸이 찌개 맛을 보더니 잔뜩 찌푸린 채 말했습니다. “엄마 찌개 맛이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초등학생 둘째 딸도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가 했던 말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자식들의 쏟아지는 음식 불평에 엄마는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런 두 딸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가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디, 맛 좀 보자. 조금 시큼하긴 하지만, 먹는 데는 문제가 없구나.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한 것 보니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있는 듯하구나. 음식 맛을 말하기보다 먼저 엄마의 걱정거리가 뭔지 여쭤보지 않겠니?” 순간 딸들의 얼굴에 죄송함이 묻어났습니다. 딸들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감싸주는 아빠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금세 식탁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느 순간에도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며 존중하며 그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녀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며, 엄한 훈육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 E.리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느린 엘리베이터
지금 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 어느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의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 봐도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은 최신형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보는 순간 지배인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이유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사 기간 손님들이 불편을 겪으며 나타날 매출 하락을 생각하면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배인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담당 청소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나섰습니다. 지배인은 속는 셈 친다는 생각으로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정말로 고객들의 불평이 없어졌습니다. 청소부가 고안한 해결책은 엘리베이터 안에 큰 거울을 달아놓는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두커니 서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고객들이 이제는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도 쓰다듬어보고, 음식물이 이빨 사이에 끼었는지 체크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매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잊어버렸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청소부보다 호텔경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엘리베이터 엔지니어는 청소부보다 엘리베이터 구조와 원리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린 엘리베이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손님들의 마음은 바로 그 손님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청소부가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항상 문제 곁에 있다는 말처럼 멀리 돌아볼 필요 없이 편견 없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로 살필 수 있다면 어떤 문제든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어떤 돌을 옮기려고 할 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면 주변의 돌부터 움직여라. - 비트겐슈타인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펌) 응급차와 고의사고? 응급환자 사망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 사거리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당시 응급차를 못가게 막아세워며 실갱이 하는 내용 블박영상이지만 소리만 들리내요~ 택시기사의 블박영상은 더 가관이지만 경찰에서 못준다고 합니다. 퍼온 영상입니다. 아래 글은 돌아가신 고인의 아드님이 쓰신 글입니다. 그간 어머님께서는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시며 회복되었다가 다시 아프셨다가를 반복하며 어언 수년간을 싸워 오셨습니다. 아플때마다 급히 응급실을 찾으면 금방 다시 좋아지시고 하시기를 여러번 그때마다 온식구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어머님 회복에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오후 3시 15분 그날따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님의 호흡이 너무 옅고 심한통증을 호소하시어 응급실을 예약하고 응급실로 급히 모셔야 했기에 응급차를 불러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와 아버지와 동승하여 응급차로 어머님을 모시고 가고 있는 도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다 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응급차 기사분은 신속하게 차에서 내려 택시 기사에게 “사경을 헤메는 위급 환자를 급히 응급실로 이송중에 있으니 응급실에 먼저 모셔드리고 사건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지만 야속하게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 막아서며 위급환자 맞냐며 “응급환자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환자 죽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죽으면 책임지겠다”라고 말하며 응급차 문을 열어제끼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신음하시는 어머님 얼굴을 사진을 찍고 응급환자 아닌거 같다는둥의 망언을 하며 응급차에 올라타 응급차가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아세우며 위중환자가 있으니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저의 처와 아버지의 말도 아랑곧 하지않고 15분~20분가량 내리쬐는 때앙볓에 어머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어머님의 눈동자가 뒤로 뒤집히시고 급기야 하혈까지 하시면서 상황이 걷잡을수 없도록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한참후에야 119 구급차가 도착하여 어머님을 옴겨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였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탓인지 어머님은 고통 속에서 매우 신음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저와 저의처,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배우자이신 저의 아버지... 수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누구하나 소홀함없이 어머님 간호에 집중하며 곧 병마를 딛고 일어서리라는 희망으로 간호해왔던 우리식구들은 세상을 잃어버린양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그 허망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정도로 원통합니다. 지금도 그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고 조금만 빨리 병원에 도착했으면 어머님은 아직도 우리 식구 곁에 머물며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로 몇날 몇일을 보내고 있으며 아버지는 평생의 동반자를 먼저 보냈다는 생각에 식음을 전폐 하시며 지내고 계셔서 또한번의 불행이 오지않을까 매우 걱정이 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7jT0fT ↑↑↑↑↑↑↑↑↑↑↑↑↑↑ 고인의 아들이 올린 국민청원 입니다 이슈화되게 도와주십시오. ----- 글만 보는데도 너무 화가 납니다. 미친 건가요...?
박정희
[박정희(오까모또 미노루)] 1917년 경북 선산출생. 1925년 구미보통학교 입학. 1932년 대구사범입학. 이 해에 일본제국의 괴뢰정권 만주국수립. 1935년 5월 만주수학여행. 일본제국 지배 때 만주견문. 같은 해 김호남과 결혼. 1937년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부임. 같은 해 큰 딸인 박재옥 출생. 1939년 교직을 떠남. 1940년 만주신경군관학교 입학(혈서지원으로 특혜 입학 허용). 1942년 만주군관학교에 일제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고 일본육사 3년 편입. 1944년 일본육사 졸업 후 만주군 보병 제8단 배속, 중국항일군토벌종사. 1945년 일제패망, 만군이탈, 북경에서 조선인 광복군에 편승, 이 당시부터 친일행적 은폐. ⊙1947년 소위에서 대위로 승진 사관학교 중대장 근무. ⊙1948년 소령진급.10월 여순반란사건 발발,11월 남로당간부사실이 발각되었으나 수사협조(밀고)로 처형모면하고 석방. ⊙그 후 6.25전쟁 전까지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보도연맹원 처리안 기획. 이 사실은 미국정보공개에 의한 문서조사에서 드러났다. 월간 ‘말’2001년 5월호에 실린 이도영의 ‘제주도민 예비검속은 이승만 피신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글을 보면 박정희와 김종필은 전쟁 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의 주역으로 그 육군본부정보국 작전 과장이었다. 이 사실은 피살자 유족이기도한 제주도 교사인 이도영의 미국에서 공개된 문서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1950년 박정희 소령지위 회복. 중령진급.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결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준장으로 진급. ⊙1957년 제7사단장. ⊙1958년 소장진급. ⊙1960년 부산군수기지사령관. 2군 부사령관. ⊙1960년 4-19혁명으로 전쟁전후의 민간인학살과 친일파죄과에 대한 조사 성토로 불안을 느낀 박정희 등 친일파의 반혁명 음모가 싹틈. ⊙1961년 군사반란인 5-16 쿠데타를 일으킴. 박정희 가계도 가계(家系) 증조부: 박이찬 조부: 박영규(1840년~ 1914년, 호는 일부당(一斧當)) 조모: 성산 이씨(星山 李氏) 숙부: 박용빈 숙부: 박일빈 부: 박성빈(1871년 ~ 1938년) 모: 백남의(1872년 ~ 1949년) 형: 박동희(1895년 ~ 1967년) 조카: 박재홍, 박재선 형: 박무희(1898년 ~ 1960년) 조카: 박재석(1922년 ~ ), 박재호 누나: 박귀희(1902년 ~ 1974년) 의 아들, 은봉남과 은희만 조카: 은봉남(첫째1918년 ~ 1994년), 은희만(둘째,은지원의 부친)약력:단국대,연세대대학원,한국전력지점장,국무총리비서관,청와대, 보광개발(주)회장,현자영업. 형: 박상희(1906년 ~ 1946년) 조카: 박준홍, 박영옥, 박계옥, 박금자, 박설자 형: 박한생(박한희, 1910년 ~ 1928년)[287] 누나: 박재희(1913년 ~ 1996년) 첫 번째 아내: 김호남(1920년 ~ 1990년, 1950년 11월에 박정희와 이혼) 딸: 박재옥(1937년 ~ ) 본처 몰래, 박정희,이현란과(1948년) 약혼 (이현란과~ 3년간 동거)그후 본처와 이혼. 세 번째 아내: 육영수(1925년 ~ 1974년, 1950년 12월에 박정희와 결혼) 딸: 박근혜(1952년 ~ ) 딸: 박서영(1954년 ~ )근령에서 서영으로 개명. 아들: 박지만(1958년 ~ ) 손자: 박세현(2005년 ~ ) 첫 결혼 후 협의 이혼... 한국전쟁 중 육영수 만나 재혼 박정희는 대구사범 4학년 때인 1935년 여름 부친의 강권으로 억지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대구사범 교칙에 재학생은 결혼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비밀결혼을 한 셈이죠. 상대는 선산군 도개면에 사는 김호남(金浩南, 1920~1990)으로 그보다 세 살 아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 후 여름방학이 돼 귀국해서도 처자가 있는 고향집 대신에 교사 시절에 머물렀던 문경 하숙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50년 11월 협의 이혼하였는데, 그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박재옥(朴在玉)이 그 주인공인데, 박재옥의 남편 한병기(韓丙基)씨는 3공 시절 민주공화당 국회의원과 UN대사 등을 지내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박정희가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만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습니다. 1950년 8월 하순 피난지 부산에서 송재천(宋在千) 소위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는데, 4개월 뒤인 그해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허억 당시 대구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일화가 몇 가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육 여사 부친의 불참으로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 대신 신부를 인도했습니다. 또 주례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이라며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으며, 또 신부의 예물반지를 갖고 있던 송재천이 이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김재춘이 급히 나가서 새로 하나 사오기도 했습니다. 박-육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근혜, 근영, 지만 등 2녀1남을 두었습니다.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여대생과 동거 한편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기 직전에 한 여대생과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산 루시여고 출신으로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이현란(당시 24세)이 그 주인공인데, 이현란은 이국적인 외모에다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해 박정희 눈에 든 모양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요, 1947년 12월 경리장교였던 박경원(朴璟遠, 작고)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육군 대위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현란과 약혼한 후 곧 이현란을 용산 관사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으며, 이후 이현란이 수차례의 가출과 방황을 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습니다. 박정희와 동거녀 이현란에 대해 그간 알려진 내용은 이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촛불 같은 사람
어떤 마을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마을 주변에서 예쁜 돌을 주웠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아들은 돌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돌 좀 보세요. 친구들과 놀다가 주웠는데, 너무 예쁘지 않나요? 저는 이 돌처럼 늘 반짝이는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창가에 놓아둔 초를 가지고 와서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어두웠던 방안이 환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이 촛불 같은 사람이 되어라!” 후하고 불면 바로 꺼지는 촛불 같은 사람이 되라니…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들이 주워 온 돌은 빛이 있어야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만 이 촛불은 스스로 자신을 태우고 빛을 내어 주변의 어둠을 밝혀주고 있구나. 너도 이 촛불처럼 세상에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사람들은 외부의 빛이 자신을 비춰주길 원합니다. 그것이 외모일 수도 있고, 학력, 직업,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한시적인 빛입니다. 꺼지지 않는 빛은 외부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빛입니다. 내 안에 충만한 사랑과 감사,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여 그들의 인생을 밝혀주는 빛. 그 빛이 영원히 자신을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험악한 세상에선 착한 행동도 꼭 저렇게 빛날 거야. – 윌리엄 셰익스피어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