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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현금을 없앤다

시작은 5월 6일, 덴마크 재무부의 성장촉진제안(참조 1)부터였다. “Delvis afskaffelse af kontantreglen”, 즉 현금사용의 부분적인 배제다. 만약 덴마크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내년 1월부터 덴마크는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다. (덴마크 여론은 호의적이며, 통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슨 말이고 하니, 현금을 계속 사용할 경우 경비도 서야 하고, 점원들 교육 및 감시 비용이 들어가며, 잔돈 바꾸기에 들어가는 시간도 비용이 크다는 얘기이다. 더불어 현금과 관련된 범죄율도 상당히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덴마크의 신용카드 및 스마트폰 지불은 전체 지불의 80%를 차지한다. 아마 여행가서 덴마크 크로네로 지불하려 하면 점원이 놀라워할지도 모를 일.
이런 제안이 나온 배경이 있기는 하다. 덴마크 중앙은행이 이미 현금과 동전을 더이상 발행하지 않기로 했었고(참조 2), 이미 시중 은행 중에 현금이 아예 없는 은행도 많다. 그래서 은행을 털러 간 도둑들이 아무 소득 없이 나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이건 나도 들은 말인지라 링크를 못 찾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전에 얘기했던대로(참조 3) 마이너스 금리라는 새로운 외계 행성을 방문중이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현금의 사용을 더 늘릴(금리가 마이너스이니 잔고에 돈을 예금할 이유가 없다) 테지만 현금이라는 형태가 남아 있을 경우, 중앙은행이 더 낮은(!)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할 수가 없다. 목표가 소비 진작인데, 현금의 형태로 침대 밑에 들어가버릴 테니 말이다. 현금을 못 쓴다면 결국 소비 진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참조 4).
물론 “현금이 곧 금전화된 자유(참조 5)”라고 하는데, 여러분 혹시 외국 돈 자세히 보신 적 있는지? 영국 파운드에는 엘리자베스 언니가 “이 만큼 금액 지불을 내가 약속함세”라 쓰여 있다(그러면서 서명은 여왕의 서명이 아니다). 하나의 약속에 불과하다는 얘기. (참고로 브라질 화폐에는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장의 서명이 들어 있다.)
난 결국은 전자화폐로 가야 하잖을까 싶은데, 여담으로 오늘 물건 하나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가 공인인증/보안키보드 콤비로 결국 못 사고 계좌이체로 해결했다.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우리나라가, 나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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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 Cashing out: ‘Electronic payments taking over, banks to abandon paper money soon’: http://rt.com/op-edge/198060-denmark-electronic-money-cash-banks/
3. 거시경제학의 변화(2015년 4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164941364831
4. 케네스 로고프의 논리이다. Überflüssig oder nützlich? Ökonom Rogoff will Bargeld abschaffen: http://www.faz.net/aktuell/finanzen/meine-finanzen/geld-ausgeben/nachrichten/oekonom-rogoff-will-bargeld-abschaffen-13274912.html
5. 도스토옙스키가 했다는 말인데 출처는 불분명하다.
6. 마이너스 금리에 관해 일반인용(?)으로 근사한 논문이 하나 있다. Negative Nominal Central Bank Policy Rates: Where Is the Lower Bound?: http://www.ny.frb.org/newsevents/speeches/2015/mca1505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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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맹견사고 도와주세요.
2월 28일 저녁 6시경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에 있는 한강 9공구 산책중 목줄과 입마개를 안한 로트와일러에게 견주인 저와 저희강아지가 공격을 당했습니다. 로트와일러는 목줄과 입마개도 하지않은 채로 공원에 있었고 저희강아지와 저를 보고 정말 죽일듯이 달려왔습니다. 저는 저희 강아지를 안고 도망가려 했으나 순식간에 달려온 로트와일러에게 밀쳐져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저희 강아지는 순식간에 배를 물렸습니다. 떼내려고 하는 저의 손과 얼굴을 물어 크게 다쳤습니다. 현재 얼굴은 10바늘 꿰맨상태고 저희 강아지도 복부쪽에 꿰매고 치료중입니다. 로트와일러 견주는 자신의 강아지가 뛰는걸 보고 바로 뒤쫓아 달려왔으나 줄과 입마개를 안한 자신의 강아지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떨어져나와 강아지를 안전한데로 데려가야한다고 판단하여 자동차로 이동했고 사건 장소로 다시 갔으나 견주는 자신의 강아지와 도주한뒤였습니다. 불과 10분~15분 사이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도주했습니다. 다른피해자가 발생하지않도록 꼭 잡고싶습니다. 현재 가평경찰서에 접수된 상태고 담담형사가 배정되서 연락오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그 근처 산책중에 보셨거나 그 근방에 로트와일러 키우는 사람을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견주 나이는 30대에서 40대 초로 보였고 남성이였으며 키는 175cm 가량에 마른체형이였습니다. - 사진은 보기 힘드신 분들 있을 것 같아서 다 퍼올 수는 없었고, 대신 이에 관련해서 강형욱씨가 쓰신 글에 사진이 있어서 글과 함께 캡처해서 왔어요 진짜 로트와일러같은 맹견을 입마개도 목줄도 안하고 밖에 데려나가는 건 무슨 배짱인지... 얼른 범인 잡혔으면 좋겠네요 많이들 보시고 혹시 범인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부득이하게 유머에도 올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래 원글 출처로 가시면 사진들 더 보실 수 있습니다ㅠㅠ
이탈리아식 이혼
이탈리아 역사를 보면 의외로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때가 1970년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생각보다 꽤 현대에 와서야 허용됐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전에는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것이 민법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지간하면 현대 이탈리아 역사에 꼭 끼어드는 무솔리니 때문이었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무솔리니는 이혼을 막았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을 완성해냈다. 어지간한 유럽 나라들이 다 매한가지였지만 이탈리아는 가톨릭의 본산지답게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교회의 개입이 거의 필수적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이 잠시 점령했을 때에는 나폴레옹 민법에 따라 이혼이 허용됐었으나… 나폴레옹이 물러난 이후로는 결국 다시 교회가 결혼을 관장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솔리니가 이혼을 막았다고 내가 표현했을까? 바로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 1929, 참조 1) 때문이다. 보통 바티칸의 독립을 인정한 이탈리아 왕국과 바티칸 간의 조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총리가 바로 무솔리니였다. 그런데 이 조약이 다루는 것 중에 하나가 결혼의 인정, 이걸 조약상 가톨릭 교회에 모두 맡겼다. 관습화되어왔던 것을 성문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잠깐, 실제 라테라노 조약(제34조)을 보면 “혼인의 무효(nullità del matrimonio)”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혼이 왜 안 됨?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가톨릭 교회에서 이혼은 가능합니다, 고갱님. 교회 최고법원(참조 2)의 혼인 무효 허락을 받으면요(참조 3). 일반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최고법원까지 이용할 수 있겠는가? 무솔리니 이후 60년대까지 이혼을 원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독립국인 산마리노에 가서 이혼을 해갖고 공증받는 절차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솔리니의 몰락 이후의 이탈리아 공화국이 (무려 헌법에 적었다!) 라테라노 조약을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이다. --------- 마리아와 소피아 로렌, 1960년대에 촬영됐다. 역시 주말 특집, 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소피아 로렌의 동생이 등장합니다. 마리아 시콜로네(Maria Scicolone, 1938-현재)가 무솔리니의 네 번째 아들인 로마노 무솔리니(Romano Mussolini, 1927-2006)와 1962년 결혼한 것이다. 언니인 소피아와 함께 치네치타(Cinecittà, 영화촬영소이다)에서 그를 만나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 부인에게 고난의 세월이 시작됐다. 하루는 남편의 옷에서 길다란 갈색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원래 금발인 그녀는 결혼 생활 유지를 위해 자기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었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금발의 여배우(Clara Puccini)를 사귀면서부터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남편은 1971년 그녀를 떠났고, 1970년에 이혼법이 통과된 덕택에 1976년 정식으로 이혼할 수 있었다. 한편 다행히도? 1974년의 이혼법 반대 국민투표(참조 5)는 유지로 결론. 이혼에 5년이 걸린 이유는 당시 이혼 숙려기간이 5년이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1년(상호 동의의 조건에 따라 6개월)으로 줄어있다. 마리아는 그길로 병원에 들어갔는데, 그녀 담당의였던 이란 출신 의사, Abdul Majid Tamiz와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녀의 딸 중 하나인 알레산드라 무솔리니(Alessandra Mussolini), 현재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 소속이며 2019년까지도 유럽의회 의원이었다. 오랫동안 의원이었던 그녀가 (이름 외에) 유명해진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한 번은 2006년 유럽 최초의 트랜스젠더 국회의원(공산주의재건당, PRC)이었던 Vladimir Luxuria로부터 파시스타라는 공격을 받았고(그 주장이 맞긴 맞을 것이다), 그녀는 “호모가 되느니 파시스트가 되는 편이 낫다(참조 6)”라 했었다. 다른 한 건은? 로마노 무솔리니가 금발 배우와 새로 결혼하여 낳은 또 다른 딸인 라켈레(Rachele) 무솔리니다. 알레산드라와 라켈레는 예전부터 매우 앙숙, 그러나 나란히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고 있는 중이다. 라켈레의 소속정당은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의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 레가와 매우 가까운 정당이다. -------------- 참조 1. 바티칸 사이트에서 원문을 봅시다. 결혼 관련은 제34조에 있다. 이 웹사이트는 거의 90년대 후반 웹사이트의 느낌이다. http://www.vatican.va/roman_curia/secretariat_state/archivio/documents/rc_seg-st_19290211_patti-lateranensi_it.html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 라테라노 조약은 조약(trattato)과 재정조약(CONVENZIONE FINANZIARIA), 그리고 콘코르다토(CONCORDATO)로 나뉘는데, 이탈리아 정부 간섭 없이 신도들의 제도를 교회가 관장하게 하는 부분이 바로 콘코르다토에 있다. 이건 번역어가 따로 없으며, 바티칸과 타국이 맺는 조약 자체를 콘코르다토라 부르기도 한다(보통은 불어식 표현인 콩코르다라 말한다). 2. Rota Romana, 이탈리아어 풀네임으로는 Tribunale della Rota Romana라 부른다. 천주교 사제나 몬시뇰 겸 신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교회 행정조직과는 별개로 돌아간다. 사용 언어는 라틴어. 3. 교리상 결혼/혼인은 배우자 사이를 인간이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이 결혼이 원래부터 무효였다는 상태를 “인정(riconoscimento di nullità)”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현대 이탈리아 민법으로는 소정의 절차를 통해 이혼으로 간주된다. 다만 “기술적으로” 이탈리아 민법이 이 가톨릭 최고법원의 결정을 뒤엎을 수도 있는데 거기까지는 내 지식의 밖에 있다. 4. 짤방도 이 기사에서 가져왔다. Célébrités : La scandaleuse histoire d'amour entre Maria Scicolone, la sœur de Sophia Loren, et le fils de Mussolini(2021년 2월 26일): https://www.vanityfair.fr/culture/people/story/maria-scicolone-la-soeur-de-sophia-loren-qui-a-scandalise-la-nation/13491 5. Referendum abrogativo in Italia del 1974 : https://it.wikipedia.org/wiki/Referendum_abrogativo_in_Italia_del_1974 6. Mussolini a Vladimir Luxuria "Meglio fascista che frocio”(2006년 3월 9일): https://www.repubblica.it/2006/c/sezioni/politica/versoelezioni35/muslux/muslu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