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hiker
3 years ago10,000+ Views
<무뢰한>의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레옹>, <아저씨> 같은 권총과 소녀의 플롯이었습니다.
형사 재곤(=김남길)이 살인범 준길(박성웅)을 잡기 위해 유일한 단서, 준길의 애인 혜경(=전도연)을 표적수사한다는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말이죠. 여기에 예고편만 보자면 혜경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쉽게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편승한 느낌까지 줍니다.

제목도 <응징자>, <용의자>류의 세글자 시리즈였으니 사실 <무뢰한>을 보러 갔을 때는 일종의 좋지 않은 기대감을 가지고 간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화면부터 <무뢰한>은 쓸 때 없는 걱정을 잠재워주었습니다. 연출 이력이 무려 15년의 간격이 있는 감독의 작품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지요. 미술/소품을 비롯한 장면 요소들과 컷에서 컷으로 넘어갈 때의 행간을 살린 편집이 아무런 말이 없는 장면에도 이야기를 불어 넣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미쟝센이니, 몽타주니 하는 아주 기본적인 영화 미학적인 요소를 맛깔나게 살린 한국 영화를 그간 만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무뢰한>의 관람의 키포인트라고 한다면 역시나 '허세'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관용도의 문제입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상업적으로 잘 나가는 영화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를 페이스북에 빗대는 것이라고 주변에 말하곤 합니다.
'좋아요' 버튼을 많이 받을만한 요소가 영화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김수현, 원빈같은 절세 미남의 화보를 감상할 수 있다던가, 혹은 봉준호나 박찬욱같은 거장의 귀환작이라던가, 혹은 <변호인>처럼 시의적절한 정치적 메세지라던가.
그런 의미에서 <무뢰한>은 분명 지나치게 폼을 잡고 있는 영화입니다. 선뜻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재곤은 매장면마다 지나치게 무언가를 결의하고 있는 표정을 짓습니다. 나 건드지 마라, 너 다친다류의 대사도, 담배를 꼬나물고 잠시 감상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적인 포즈도 그렇고, 정말 온갖 좋지 않은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고 있어요. 재곤의 '바깥'에서 보자면 말이죠.
<무뢰한>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허세 때문에 몰입이 깨지는 그 순간조차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재곤의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한 허세는 혜경 앞에서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위태로운 데이트에는 누군가를 속이고, 사랑하고, 속고, 사랑하는 이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어요. 허세는 그 진실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게 만드는 강조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어찌 <무뢰한>의 허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보면 허세라는 것도 어떻게든 자신의 몸집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자신의 약점을 가리는 생존법입니다. 사랑 앞에서 허세를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를 껴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작디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오승욱 감독이 김남길의 왜소하고 신경질적으로 뒤틀린 걸음걸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김남길이 포즈와 액션으로써 감정을 과장한다면, 전도연은 1밀리미터 단위의 단위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혜경의 패는 너무나도 쉽게 읽히는데, 예고편이 암시하는 팜므 파탈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라, 예기치 않은 반전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무뢰한>을 보고 감정적 동요가 일었다면, 그건 거대한 절규의 소리와,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희망의 빛과 어둠을 담담한 혜경의 인내 이면에서 읽어냈기 때문입니다. 관객이 혜경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 셈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 상처로써 뜨겁게 포옹하게 됩니다. 정말 아픈 순간인데, 오히려 기만과 허세의 겉껍질을 벗겨내는 과정같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아니라,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를 직시하는 것, 도무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도, 그것만큼의 진정한 속죄는 없습니다. 지나간 사랑 앞의 속죄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filmhiker
14 Likes
4 Shares
1 comment
Suggested
Recent
그런건가요.... ^^;;
14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