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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로율 100% 갓오하 게임 출시

갓오브하이스쿨 구독자가 상당히 많은 걸로 아는데요.
즐겨 보시는 분들이시라면 잘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갓오하에 한번 빠져 봅시다 !
엄청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갓오하!
출시한다 한다 한다 계속 말만하다 진짜로 출시하니 흥미만발 !
웹툰과 게임이 만나니 색다른 재미가 있는데요?
주인공(진모리) 근처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 !
최강의 팀을 구성해서 전 세계 짱의 도전 !
케릭터가 진화를 한답니다.
웹툰 보시는 분들은 아실 듯 ㅎㅎ
진화하면 쎄지는거 아시죠?
최강의 팀으로 전국제패를 노려보자구요 !
바로가기 : http://goo.gl/rLqRbg
다 좋은데 목소리가 좀 깸.....ㅠ 사운드 좀 줄여놓고 해야 흥미진진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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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 첫 퍼블리싱작 테라 히어로 "RPG의 본질을 고민한 게임"
크래프톤, '테라 히어로' 3월 5일 출시 앞두고 간담회 진행 크래프톤 연합의 첫 퍼블리싱 타이틀인 <테라 히어로>가 베일을 벗었다. 크래프톤은 오늘(17일), 간담회를 열고 게임에 대한 내용을 공개했다. 개발사 레드사하라의 이지훈 대표는 "<테라 히어로>는 <테라> IP의 즐거움, 그리고 IP가 대표하는 여러 성격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모바일로 선보일 지에 대한, RPG의 본질을 고민한 게임"이라고 밝혔다. <테라 히어로>는 모바일로 출시된 <테라> IP의 세 번째 게임으로, 기존 <테라> IP가 MMORPG로 개발된 것과 달리 MORPG 장르로 개발됐다. 게임은 오는 3월 5일 론칭을 앞두고 있다. 간담회 내용을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 짜릿한 전투, 캐릭터성, 그리고 RPG의 본질 - 레드사하라가 고민한 테라 IP 특징들 개발사 레드사하라의 이지훈 대표는 <테라> IP의 특징에 대해 1) 전투가 재미있는 게임, 그리고 2) 엘린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게임, 그리고 3) RPG의 본질에 충실한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 대표는 "IP가 가진 전투의 즐거움을 자사의 제작 역량과 혼합, 모바일로 재해석하는데 중점을 두고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테라 히어로>를 개발하는 과정은 위 3가지 특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었다"며 고민한 내용을 공유했다. <테라 히어로>를 개발한 레드사하라의 이지훈 대표. 먼저 '전투'. 앞서 이 대표가 얘기했듯, <테라>는 전투가 핵심이고, 그 속에는 파티 플레이가 적지 않게 포함되고 있다. 레드사하라는 이 파티 플레이에 집중했고, 일부 모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파티 플레이가 <테라 히어로>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 되도록 설계했다. 이를 위해서는 PC 버전의 재이식이 아닌, 원작의 특징을 새롭게 담아내는 '재해석'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테라 히어로>는 3인 파티 플레이를 기본으로 한다. 이지훈 대표는 "파티 플레이는 접근은 쉬우나 마스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라며, "3인으로 즐기는 게임이기에 보는 게임을 넘어 과도하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컨트롤도 제공, 재미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3인 파티 플레이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레드사하라는 캐릭터 각각 이동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조합해 캐릭터 시너지를 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대표는 조합에 따라 플레이 경험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몬스터의 뒤를 노리고 백어택을 노리거나, 적절하게 연계기를 사용한다던지. 또는 특정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조합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등 <테라> 고유의 시원한 몰이사냥, 전략적 전투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다음으로 '캐릭터'. 레드사하라는 모바일에서도 아름답게 구현해냄과 동시에 유저들에게 효율적으로 캐릭터를 제공하는데 신경 썼다. 이지훈 대표는 "해답은 다양한 캐릭터를 모으고, 모험을 함께 하는 것이 <테라 히어로>의 핵심 재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 수집을 넘어 캐릭터를 모으고 육성하는, 다중 캐릭터 수집형 RPG"라고 게임을 소개했다. 캐릭터는 종족과 직업이 다양하게 나뉘어 있으며, 저마다 '인연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일종의 친밀도를 형성하는 콘텐츠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을 유료 결제로 벌이는 '가챠' 시스템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다. <테라 히어로>는 캐릭터 획득에 있어 일절 유료 가챠를 연계짓지 않았다. 캐릭터는 유저가 게임 콘텐츠를 진행하며 확정형으로 얻을 수 있다. 모험을 진행하며 영입하는 캐릭터들로 자신만의 원정대를 꾸릴 수 있도록 개발했다.  또, 시나리오를 통해 성장 보상으로 캐릭터를 꾸미는 '커스텀'도 얻을 수 있다. 이지훈 대표는 "가챠 위주의 플레이가 아닌, 콘텐츠를 소화하며 자연스럽게 성장, 재미를 경험하는 RPG 고유의 본질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RPG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답. <테라 히어로>는 개개인의 성장과 함께 다른 유저와 관계를 맺으며 함께 협동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도 하는 장르적인 특징도 강조했다. 게임은 <테라> IP와 평행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유저 개인 베이스캠프 '벨리카'를 통해 원작과 동일한 시나리오를 경험할 수 있다. 좀 더 세밀한 내용 전달을 위해 캐릭터 각각의 스토리를 경험할 수도 있다. 숨겨진 콘텐츠도 있으며, 이를 통해 반전 요소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대표는 밝혔다. 또, 성장적인 부분이 잘 체감되도록 하기 위해 PvP부터 PvE 콘텐츠까지 다양한 곳에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커뮤니티 기능을 활성시키기 위해 론칭 빌드에 '거래소'도 제공한다고 밝혔다.  # 질의응답 장병규 의장 복귀 이후 첫 타이틀이다.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나? 이지훈 대표(이하 이): 크래프톤 연합의 일원이 된 이후 첫 작품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다. 연합의 모토가 '도전'과 '장인정신'인데, 레드사하라도 설립 이후 같은 모토로 게임을 개발해왔다. <테라 히어로>를 만들며 그런 점을 충실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기대도, 걱정도 크다. 왼쪽부터 레드사하라의 이지훈 대표, 노동환 디렉터. 과금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밝히고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는 게임사가 많았다. <테라 히어로>는 가챠를 지양하는 것으로 아는데, 수익 구조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박기현 사업본부장(이하 박): 과금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개발했다. 과금을 하면 그렇지 않은 유저보다 좀 더 빠르게 즐기는 정도다. RPG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유저에게 인정 받는다면 매출도 충분히 의미 있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가 게임의 핵심이기는 하나, 가챠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론칭 후 유저가 플레이를 하며 소위 '뒤통수 맞는' 경험은 없도록 구성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연합 안에 같은 IP를 개발한 곳이 있었다.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이: 현재 모바일에서만 같은 IP가 2종 나온 것으로 안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테라 히어로>는 우리만의 해석으로 <테라> IP를 바라본 게임이다. 이를 잘 고민하고 유저에게 평가 받는 것에만 집중했다. 3인 파티 플레이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다.  레드사하라는 <불멸의 전사>를 개발했을 때 파티 시스템을 내세운 바 있다. <테라 히어로>에서 3인 파티를 꾸리면서 신경쓴 부분은? 노동환 디렉터(이하 노): 최초 전투 시스템은 3인이 아닌 4인 파티였다. 그러나 이후 테스트 과정에서 난이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와서 3인으로 최종 결정했다. 모바일에서 보여주는 파티 플레이는 동적인 요소보다 조합이 강조되는데, <테라 히어로>는 조합은 물론 동적인 요소 역시 강조해 좀 더 심도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타 MORPG의 전투와 게임의 파티 플레이는 무엇이 다른가? 노: 캐릭터를 모으고 조합하는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앞서 얘기했듯 <테라> IP가 가진 동적인 전투 요소를 좀 더 게임에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3인 파티 플레이라 하면, 반드시 탱, 딜, 힐을 조합해야 하나? 노: 전략을 요하는, 도전 난이도가 있는 콘텐츠의 경우 탱딜힐 조합을 갖춰야 하는 부분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에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클리어하고 싶은 경우 적절히 버틸 수 있는 3딜러를 조합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유저 선택에 달려있다. 캐릭터를 수집하는 만큼 이를 심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어떤 것들이 있나? 노: 베이스캠프 격인 '벨리카'에서 소화할 수 있다. 일례로 몇 가지를 설명하면, 원정대 동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유저가 획득한 캐릭터와 대화하고 그들의 스토리를 수행, 속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파트너라 불리는 펫도 수집, 벨리카에 배치하며 각종 상호작용도 할 수 있다. <테라 히어로>의 개발 기간이 제법 오래 걸린 것으로 안다. 이유가 있나? 이: 최초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면서 높은 수준의 게임성과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엔진도 언리얼 엔진4를 사용했다. 내부적으로 여러 도전을 하다 보니 예상했던 기간보다 좀 더 걸린것 같다. 레드사하라가 개발한 <블멸의 전사>와 어떤 부분이 다른가? 더불어, <테라 히어로>의 흥행 결과를 전망한다면? 이: 아마 <불멸의 전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내보내려 했다면 2년 전쯤 론칭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현재 유저 트렌드도 반영하면서 기존 <테라> IP와 차별화된 형태를 섞었다고 자부한다. 유저 반응도 다양하게 나올것 같다. <테라> 하면 논타깃 액션 MMORPG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테라 히어로>는 MORPG 장르다. 팬들도 특이하게 받아들일것 같은데. 노: <테라 히어로>도 논타깃팅 기반으로 설계되기는 했는데, 유저가 플레이를 하면 논타깃팅 자체가 게임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PC로 나왔을 때 논타깃팅이 색다른 요소였고 좋은 평가를 받았겠지만, 10년 정도 지난 지금 <테라 히어로>가 추구할 혁신이 논타깃팅일까 하고 물음을 던진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모바일에서도 역동적인 전투를 벌이는 과정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테라> IP 평행세계를 설정으로 하고 있는데, 원작 IP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했나? 노: 다른 <테라> IP를 보면 원작을 스토리적으로 그대로 잇거나 그 밖의 다른 것을 전개 시키지 않았기에 <테라 히어로>는 이를 그대로 이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작 감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설정을 잡아가는 것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3인 파티 시스템이 좀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작이 강조되도록 어떻게 설계했는지 궁금하다. 노: 원작은 유저마다 1개의 캐릭터를 이용하기에 상황에 맞게 저마다 스킬을 사용해 파티 플레이를 이어간다. 그러나 <테라 히어로>는 3인 파티 플레이기에 효율적으로 구동되도록 여러 시스템을 넣었다. 각 캐릭터가 적절한 시점에 스킬을 사용해 파티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게임 속 여러 장치를 통해 유저에게 전달된다. 그밖에 캐릭터 조합에 따른 패시브 효과도 있어 이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캐릭터 조합이 핵심인 만큼, 어떻게 이를 늘려갈 지도 궁금하다. 론칭 빌드 기준으로 몇 종이 등장하나? 박: 론칭 기준 18개 캐릭터가 등장한다. 적게 보여질 수 있겠으나 소모 속도에 맞춰 적절히 구성했다. 물론, 준비해 놓은 캐릭터는 많다.  크래프톤이 개발하면서 어떤 도움을 줬나? 크래프톤은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있나? 이: 크래프톤은 <테라> IP 홀더고, 레드사하라는 연합의 일원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만들며 다양한 형태로 논의를 계속 해왔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개발 전부터 긴밀하게 수시로 다양하게 협의했다. 크래프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평가는 유저가 하는 것이기에 우리 스스로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 <테라> IP들과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이: 접근이나 구현하는 방식 모두 다르다. 각 게임을 보면 저마다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 레드사하라가 잘 할 수 있는 파티 플레이를 섞어 <테라>의 감성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출시 이후 유저 평가도 궁금하다. 요즘 PC 버전을 출시하는 회사도 많은데, 이에 대한 계획은? 이: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으나, 유저 피드백 등 여러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저에게 한 마디. 노: 모바일로 선보이는 세 번째 <테라> IP다. 이는 레드사하라가 프로젝트를 선택한 시점에서도 인지했고, 개발 내내 어떤 차별화 요소를 선보일지 고민했고 노력했다. RPG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반영할 수 있어 기쁘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크래프톤 연합 일원으로 내는 첫 번째 게임이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결실을 맺고 선보이는 시점에 다가왔다. 늘 도전하는 레드사하라가 되겠다. 많은 기대 부탁 드린다.
게임회사에서 역조공 받은 덕후 썰
성덕이란 말이 만연한 이 세상에 진짜 성덕 of 성덕을 꼽으라면 이 사람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한 애정을 돌려 받은 디씨인이 있어서 한 번 가져와 보았소. 일본의 게임회사여서 이시국씨가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한국어 패치가 매우 잘 된 귀여운 회사니 한 번 이야기나 들어 보시게들 껄껄. - 카이로 소프트에서 선물 받았다... 카이로 소프트 : 도트 게임을 만드는 일본의 게임회사인데 모바일게임이 먼저 한국에서 유명해져서 비공식 한글패치가 돌았었고, 지금은 스위치나 플스로도 이식되어 판매중인 게임회사임. 주로 경영계 시뮬레이션 위주로 나옴. 도트성애자들은 아마 게임발전국 정도는 해봤을거임. 지금은 공식 한글패치로 안드로이드, ios, 스위치, PS4로 즐길 수 있다. 내 취미가 엽서쓰기인데, 가끔은 할리우드 스타나 일본으로도 엽서나 편지를 쓰고는 했음. 이 사진은 본 사람도 있고 못 본 사람도 있을건데 2~3년전쯤 카이로 소프트에 게임 재밌어요 신작좀 내줘요 하고 쓴 건데 뜬금없이 답장을 해줬을때 받은거임 ㅋㅋㅋ 그때 답장 받은게 정말 고마워서, 이번에 연하장 쓸때 보냈는데.... 또 답장이 와버렸다; 솔직히 이번에는 진짜 회신 고맙다는 의미었거든? 여기 또 답장오면 또 답장줘서 고맙다고 답장 보내야되고 끝이 없을거 아냐????? 근데 이번에는... 그냥 답장도 아니고.. 택배가 왔다; 해외에서 소포올게 없는데 소포가 도착해있으니 찾으라는걸 보고 뭔가 싶어서 갔는데.. 카이로 소프트 주소가 적혀 있더라 ㅋㅋㅋ 헐 이거 뭐야 하고 두근거리며 열었더니 ??? 화장실 휴지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면 사실 도트회라고 일본에서 도트겜이나 그림 관련 박람회인지 행사인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카이로 소프트가 참가하면서 팔았던 [사활을 걸고 만든 굿즈]들 중 하나인데 진짜 쓸데없이 귀여워서 가지고 싶어가지고 일본에 갈까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내가 지방충인데 한창 불매운동 어쩌구 할때라서 지방 비행기가 전부 사라지고 뱅기값이 너무 치솟아서 못갔었다 ㅠㅠ 그래서 너무 아쉬워서 휴지 귀엽던데요~라고 적어놨던건데 ㅋㅋㅋ 헐 ㅋㅋㅋ 그 휴지를 보내준거임 그것도 비싸디 비싼 EMS로.. 그뿐만이 아니라, 내가 엽서에 글만 적기 그래서 대충 이렇게 그림을 그려놨는데 이렇게 일러스트도 한 장 뽑아서 보내줬다;;;;;;; 미친거 아니냐 진짜?????????????????? 그걸로 끝나지 않고 따로 크게 편지까지 써서 보내줬다. 위에 한글로는 휴지 위에 귤을 올려 두면 카가미모찌로 바뀐다고 카가미 모찌가 있으면 행운이 찾아올거야! 라고 적어놨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귤 하나 구해와서 책상에 전시해놨다. 와.. 여러번 편지를 써봤지만 답장이 오는 경우도 극히 드문데 이렇게까지 팬서비스 해주는 곳은 처음인것 같다. 감사의 인사는 따로 메일로라도 보내던가 하고 이제 엽서는 그만 보낼 생각이다... 뭔가 선물을 요구하고 편지를 쓴 걸로 오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ㅠㅠ 괜히 휴지 이야기를 써서 회사를 부담스럽게 만든건 아닌지 고민이다. ...... 어째 이 문구가 [이제 그냥 트위터로 연락해줘]라고 말하는거 같기도 하고.. 저거 표정봐라. 이제 더이상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거 같지않냐?????????????? (출처 : 디씨 중세게임 갤러리) 아니 정녕 이것이 일본에서 온 게 맞단 말이오? 저 첫 번째 카드의 한국어 글씨는 본인보다 더 잘 쓰는 것 같은데 말이오. 아래 보면 '띵작'이라는 말도 쓰는 걸로 보아 한국어 패치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긴 하오만. 이 정도의 역조공이면 평생 애정을 바칠 만 하지 않소. 일본 게임 회사인 것이 아쉽긴 하오나 나라가 나쁘지 사람 개개인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니...
인간미가 느껴지는 조선왕들의 일화 (꿀잼 시간순삭)
왕이라는게 진짜 준니 하드코어하구나.. 를 느낀 일화들 잼나는 것도 있고 안타깝고 씅나는 내용도 있고 재밌어서 퍼옴 ㅇㅇ 어진을 찾을 수 없는 왕들은 걍 뭐 대충,,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태종 1. 직업정신 투철한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 거수 일 투족을 다 기록해서 태종이 걷다 헛발질한 것도 적었다. 태종이 그건 제발 지워달라, 창피하다 애원까지 했는데도 사관은 끝까지 '왕이 길을 걷다 헛발질하다. 헛발질한 것을 적지 말라고 말한 것은 적지 말라 명하셨다' 라고 적었다. 2. 하도 사관이 쫓아다녀서 못 쫓아오게 멀리까지 사냥을 나갔는데 사관이 거기까지 말 타고 쫓아와 사냥기록을 적었다고 한다. 3. 태종은 아들 양녕대군이 너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자 속이 상해 밤새 울어 목이 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양녕대군의 아들인 이혜는 아버지인 양녕대군보다 더 많은 사고를 쳐 양녕대군의 속을 썩혔고 결국 왕자의 아들의 직위인 '군'의 작위를 깎여 서산군에서 서산윤으로 강등당했다. 결국 이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자살시도를 하였고 이틀 뒤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혜는 사람을 때려 죽이라고 시키기도 하였고 직접 사람을 죽이기도 하였으며 남의 첩을 빼앗기도 하고 시전에서 종친들과 패싸움을 하였고 과격한 놀이판을 벌이다 놀이 중 사람이 죽어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실록에서는 이혜가 망가진 원인을 사랑했던 첩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난 후에 울화병이 생겨 이리 되었다고 한다.) 4.태종은 운명론자가 아닌 현실론자였는데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어느날은 우연히 하급관리 두명의 토론을 듣게 되었다. 한명은 부귀영화는 모두 임금에게서 나오는것이라고 하였고 도 한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실론자였던 태종은 부귀영화가 임금에게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한품계를 올려주려 하려고 그 관리에게 '지금 가는 아무개에게 한 품계를 올려주도록 하시오'라는 종이를 세종에게 전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관리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운명론자인 관리에게 대신 종이를 전해주라 하였고 결국은 그 관리가 진급을 하였다. 5. 조선왕들중 가장 많은 자식을 가진 왕으로 12남 17녀, 29명의 자식을 가졌다. 세종 1. 세종대왕은 좋아하던 후궁에게 신하들 몰래 따로 불러서 말없이 귤 하나를 쑥- 내밀어 준 얘기도 있다. (그 당시 귤이 귀한 것이었다.) 2. 친경한다고, 소 끌고 밭 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배고픔을 못 견뎌, 밭 갈던 소를 때려잡아서 국 끓여 먹은 적도... 3. 명재상 황희는 청백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임금이 사람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너무도 기분 나쁘게 점검하는 바람에 ‘내참 더러워서 뇌물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케이스다. 4. 훈민정음 반포식을 축하하는 잔치 행사에는 집현전 학사 절반이 참석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와 임금의 요구사항에 시달리다 못 견뎌 병석에 누운 탓이었다. 성군의 캐치프레이즈는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였다. 5. 세종은 부하들을 휘몰아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아침 조회 격인 새벽 4시 상참에서부터 과업 달성이 부진한 부하들을 닦달하였다. 밤낮으로 시달리다 못한 김종서의 경우 임금 곁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 스스로 궁궐을 떠나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을 개척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섰다. 정인지는 임금이 너무 독촉하고 소위 ‘갈궈 대는’ 바람에 모친 3년 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려 했으나, 임금은 법령까지 바꿔서 그를 다시 붙잡아다 오히려 일을 더 시켰다. 6. 양녕대군이 평안도를 유람하게 되어 세종은 형인 양녕대군에게 ‘제발 여색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몰래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하기를 “만일 양녕대군이 기생을 가까이하거든 즉시 그 기생을 역마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내라” 라고 하였다. 양녕은 세종과의 약속도 있고 하여 가는곳마다 기생의 수청을 물리치고 근신하였으나, 그가 평안북도 정주에 이르렀을 때 그만 양녕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세의 미인이 나타났다. 양녕은 그날로 동침하고 귀신도 모르리라 자신했다. 그래서 시를 지어 하룻밤 풋사랑을 읊기를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사람의 베게를 들여다 보진 못할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라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정주수령은 이 기생을 역마에 태워서 서울로 보냈다. 세종이 기생에게 명하기를 “너는 양녕대군이 읊은 시를 노래로 불러 익혀두라” 하였다. 양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유유히 서울로 돌아와 세종을 알현하였다. 세종: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신신 당부한 말씀을 잘 지켜주셨는지요? 양녕: 물론입니다. 어찌 어명을 어기겠습니까? 한 번도 여색을 가까이 한 일 없습니다. 세종: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제가 형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자 가무를 준비하였습니다. 양녕은 기생이 나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니 자신이 지은 시구가 아닌가. 깜짝 놀란 양녕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세종을 웃으며 뜰에 내려와 형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그날 밤 그 기생을 양녕댁에 보냈다. 7.양녕대군과 세종은 원래 우애가 깊지 않았다. 태종은 양녕과 효령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유독 충녕, 즉 세종을 편애 하였다. 게다가 세종은 알려진것과 같이 머리가 아주 좋았고 공부를 좋아했다. 태종이 충녕에게 나중에 '너는 할일이 없으니 놀아라'라고 하며 글씨,그림, 비파등을 마련해준 때가 있었다. 그 때 양녕은 충녕에게 비파를 배우며 서로 친해졌고 다른 면에서 보면 자신의 경쟁자였던 충녕이 공부를 포기 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것이다. 그 후로는 양녕대군도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비파, 글씨 등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다시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양녕에게 많은 충고를 하였다. 양녕은 열등감으로 인해 방황하였고 다시 비행에 빠져들게 되어, 결국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자리는 세종이 차지하게 됬다. 8. 나라에 큰 일이 있어,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이었다. 태종은 특별히 세종에게는 삼시 세끼 고기를 챙겨먹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충녕(세종)이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종 1.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운장과 같은 풍모를 냈었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궁을 정리하는데 타다 남은 왕의 어진이 한 장 나왔다. 수염이 길고, 풍채도 당당하여 신하들은 인종의 어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은 수염이 길다는 말만 듣고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어진을 조사하다가 보니 어진 구석에 문종대왕의 어진이라는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2. 학식, 외모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건강 세조 1. 술 먹고 신하 팔 꼬집고 신하한테 '너도 나 꼬집어라' 라고 시키자 신하는 세조를 꼬집었다. 그 뒤 자기 혼자 열 받아서 혼내주려다 그냥 넘어갔다. +세조의 팔을 꼬집은 것은 신숙주다. 정확히 말하면 꼬집은 게 아니라 팔씨름하다가 세조의 팔을 두 손으로 넘겼다. 그래서 세조가 신숙주 죽이려고 했다가, 술 취한 것을 감안하여 넘어갔다. 2. 세조는 후궁이 단 한 명뿐이고 평생 중전인 정희왕후와 금슬이 좋았는데, 국사를 논할 때도, 국가의 모든 행사에도 꼭 정희왕후를 대동했으며 사냥을 할 때도 둘이 나란히 말을 타고 사냥에 나갔다. 3. 신숙주가 영의정었을 때 구치관이라는 사람이 좌의정이 됐다. 이때 세조가 신숙주하고 구치관을 불러서 "내 오늘 경들에게 질문을 할 테니 대답을 잘 못하면 벌을 줄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조가 "신 정승!"하고 부르니까 신숙주가 대답했는데 세조가 "나는 새로 된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벌주를 먹였다. 그리고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니 그리고는 "나는 옛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구치관한테도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 다시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이번에는 신숙주가 대답했다. 근데 이번에는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 못하는구료" 하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서 또 "신 정승!"하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는데 구치관한테도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은 잘못 대답하였소" 하고 벌주를 먹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신 정승! 구 정승!" 하고 부르니까 둘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임금이 부르는데 신하가 대답을 안하는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고 한다. 성종 성종은 후추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후추 씨앗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결국 후추는 구하지 못 하고 주변국에 성종이 후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 계속해서 조공으로 후추가 들어오는 바람에 창고에 후추가 가득히 쌓여, 예쁜 비단 주머니에 담아 조정 관리들에게 다 하사하였다. 연산군 1. 성종과 연산군이 오랜만에 밖에 바람 쐬러 나와서 성종이 ‘융아, 좋지 않으냐?’ 하니 연산군이 소떼를 보며 ‘아바마마 저 송아지도 어미 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미가 없습니까’ 라고 말했다. 2. 또 다른 야사에서는 연산이 동궁이었을 때 어느 날 성종에게 거리에서 나가 놀고 싶다고 하여 성종이 허락하였다. 저녁에 동궁이 궁궐로 돌아오자 성종이 “오늘은 밖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고 묻자 연산은 “구경할만한 것을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 소가 울면 송아지도 따라 우니 그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여 성종이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짐. 3. 공부하는 걸 엄청 싫어하여, 왕자를 훈육하는 학자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매일 꾸중 듣고 야단맞아,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두 죽여버렸다. 4. 춤을 잘 췄다고 한다. 5. 모후인 폐비 윤씨와 고려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공서에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수집하게 한 일도 있었다. 6. 엄청난 꽃미남이었다고 한다. ++ 보너스 연산군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 연산군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고 폭군의 모습을 다소 보인점은 사실이지만, 몇가지 왜곡된 사실들이 있다. 1.연산군은 궁궐 담장 아래 백척 내에 있는 민가들을 철거하여 쫓아냈다. - 하지만 이것은 원래 불법주택들이였다. 선왕, 후궁들의 모습이 민간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법도에 의한 것들이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오히려 봄까지 기다려주고 주택의 등급을 나눠 무명을 보상으로 주고 대토 와 거주지까지 마련해 주었다 2.궁을 짓기 위해 열한 고을의 백성들을 내쫓았다 - 백성들을 내쫓은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는 500여호에 불과했고 열한고을은 사관이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쓴것이다. 또 지나가는 자는 죽여서 시신을 구경시키는 형을 내린다고 했으나 무덤이 있는 자들에게 명절 출입을 허가했으며 불법주택에도 보상을 해준 연산군이 보상을 안해줬을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궁은 큰집 50칸으로 몇몇 사대부들의 99칸 집들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3.연산군은 음란했다. -연산군이 비구니를 간음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은 기생의 출입도 소문이 두려워 꺼렸던 인물인데 늙은 비구니를 몽둥이로 쫓고 젊은 비구니들을 간음했다는것은 말이 맞이 않는다. -연산군이 여성 음악인들을 혼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에게 그들을 예술가들였을뿐이며 오히려 여성 음악인들은 사대부들에겐 첩을 들이는 통로였다. 사대부들은 연산군에게 연산군이 남성음악인들만 잔치때 내려주자 불만을 갖고 여성음악인들 을 내려달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좋은 왕으로 묘사되는 성종은 16남 21녀를 가졌으나 그의 아들 연산군은 4남3녀만을 두었다. - 연산군이 백모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강간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임신을하고 약을 먹고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를 추측해보면 그 때는 이미 쉰세살에서 쉰다섯으로 당시에 그나이엔 잉태가 불가능했다. 4.정치는 하지않고 사냥을 즐겼다 -연산군은 군사력 강화를 원했던 왕이다. 연산군 5년 여진족이 백성들을 사로잡자 연산군은 정벌에 나서려 했으나 그때마다 신하들은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노비들이 부역에 나가는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냥은 군사력 강화를 위했던것이고 이것이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 결과가 임진왜란이다. 5.폐비 윤씨사건으로 폭군이 되었다 -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연관인들의 처형은 신하들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였기도 하다. 그러나 훈구파를 무너트렸으면 사림을 불러들였어야 하는데 사림들조차 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를 보호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연산군은 백성들에게는 폭군은 아니였지만 모든 사대부들에게는 적이였다. 그 결과 사관들에 의해 폭군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기록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믿어지고 있다. 명종 1.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 있거라 하고 노래 잘 부르는 내관이랑 둘이서 내관은 노래 부르게 하고 명종은 그에 맞게 춤추며 2인조 가수 못지 않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 꾀병 부려서 총애하는 내관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3. 위의 내관은 동일인물로 남자이다. 4. 내시와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던 명종은 몸이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경연을 취소하고 내관들과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5.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명종에게는 손빈이라는 총애하는 환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집과 많은 값비싼것을 하사했으면 원하는것들은 모든지 들어줬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장령을 만났을때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명종으로부터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벼슬길도 막혔다. 명종의 조울증에 관환 일화는 이밖에도 많으며 아침에 파면했다가 저녁에 회복시켜주는 일들도 많았다. 중종 1. 자식 사랑이 남달라서 공주, 옹주랑 왕자들이 오랜만에 문안 오면 눈물을 흘리며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2. 또 중종은 동궁 전에서 불이 나자 맨발로 달려 나와 훗날의 인종을 애타게 부르며 울었다. 3. 또한 효정옹주의 남편(부마)가 바람을 피우고 다니자 철거지악이었던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딸을 꾸짖은 적도 있었다. 결국 효정옹주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 하고 죽자 직접 부마를 잡아와 친국을 하기도 했다. 4.연산군을 폐위할 때, 중종을 보호하려 군사들이 오자 중종은 자기를 잡으러 온줄 알고 놀라서 자결 하려고 했다. 다행히도 그의 부인 신씨가 말려서 중종은 살아서 왕이 되었다. 5. 중종이 연산군 폐위후 왕위에 즉위했을때, 위에서 말한 신씨는 당연히 왕비책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반정때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을 죽였는데 보복이 올줄도 모른다는 이유로 조강지처였던 신씨를 중종은 '조강지처'라는 말 한마디의 저항을 딱 한번 하고는 출궁시켰다. 중종 11년 3월 28일,ㅡ 그는 고려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가 배운 부분은 최충헌 최충수가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는 부분이였다. 최충수는 배필이 있던 태자에게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고 신종을 협박했다. 신종은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며 태자비를 폐출시켰다. 이 부분을 읽으며 중종은 울먹거리며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종 인종은 모후인 장경왕후가 자신을 낳고 7일만에 죽자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손에 자란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어린 인종을 끈임 없이 못살게 굴었다. 하루는 밤에 쥐의 꼬리에 불을 붙이고 인종이 잠을 자고 있는 궁 안에 들여 보냈다. 인종이 창문을 보니 문정왕후가 웃으며 빨리 불이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빈궁만 내보내고 자신은 문정왕후에게 효를 행하기 위해 불 속에서 죽으려 했다. 빈궁과 인종이 어쩔 수 없이 불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그때, 밖에서 중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종은 죽는 것이 문정왕후에게는 효가 되지만 중종에게는 불효가 되므로 곧바로 나왔다. 그 후 인종은 불을 지른 장본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종에게 고하지 않았다. 선조 1.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을 하는데, 의주에서 어느 백성에게 생선이 올려진 상을 접대 받았다. 그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인조가 생선의 이름을 묻자, 백성은 '묵'이라 대답하였다. 선조는 생선의 이름이 그 맛에 비해 별볼일 없다 생각하여 '은어'라 명했다. 나중에 궁에 돌아와 그 생선을 먹었으나.. 맛이 전 같이 않아 '도로 묵'이라 하게 하였는데, 바로 여기서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2.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밀어오는 바람에 의주로 도망하였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명에 혼자 도망가기 위해 망명을 요청하였다. 명은 일국의 왕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찌 그럴 수 있냐며 거절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명에 끊임없이 압록강을 건너겠다고 시위를 했다. 결국 명은 그렇게 오고싶으면 개처럼 네발로 기어서 북경까지 건너오라고 무안을 줬고 선조는 그제서야 망명을 포기했다.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명 지원군이 선조앞에 도착했고 이여송은 선조가 보는 앞에서 조선의 대신들의 싸대기를 후려치면서 어찌 나라를 이지경까지 만들었냐며 타박을 주었으나 선조는 아무말도 못하였다. 광해군 선조가 세자를 가리기 위해 여러 왕자를 시험하였는데 “반찬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이 제일이냐?”라는 질문에 광해군이 “소금이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키려면 소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라고 답하여 그 현명함을 인정받았다. 이에 선조가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느냐?” 라고 묻자, 광해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가장 애통하옵니다” 라고 답하였다. 효종 1.나르시즘에 빠져, 항상 거울을 볼 땐 스스로 만족에 차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2.효종의 얼굴에 난 종기의 치료를 놓고 침으로 피를 빼내어 독기를 제거하자는 신가귀와 그에 반대하는 유후성이 싸웠다. 이에 왕이 가귀의 의견을 취하여 침을 놓았는데, 침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왕이 "이제 정신이 좀 든다. 가귀가 아니면 큰일날 뻔했다"라고 말했는데 침이 혈락(血絡)을 범하여 과다출혈로 사망. 어의 가귀는 조사결과 수전증 있는걸로 밝혀졌다. 현종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이다. 숙종 1.신하들이 따뜻한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자 온돌을 빼버리고 얼음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2.관우의 팬이였다고 한다. 인조 1.소현세자는 손톱밑이 시커멓게 변하고 얼굴은 검게 변하며 죽었다. 전혀 확인되지 않은 병이었다. 독살이라는 소문은 퍼져나갔지만 인조는 이것에 대한 조사를 피하려 했으며 어의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2.자신의 몸과 봉림대군의 몸이 아프자, 소현세자의 아내가 저주를 내려서 아프다고 하여 사약을 내리고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소현세자를 죽일 때 11살과 6살이던 아들들도 다 죽이고 임신했던 세자빈까지 죽였다. 영조 1.연애소설을 좋아하여 가끔 자신의 글에서도 소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검하여 백성들에게 사치를 금하라는 뜻으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2. 영조의 어진에 나와있는 쌍꺼풀지고 길쭉한 눈과 오뚝한 코에 조그마한 입술은 조선의 남성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미인상이었다. 왕실에서는 이런 외모를 천하다 하여 기피하였으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양반 사대부가 출신이 아닌 무수리 출신에서 정1품 빈까지 신분상승 한 것을 감안할 때, 숙빈 최씨는 굉장한 미인이지 않았을까. 3. 영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연잉군이었던 시절, 달성 서씨 집안의 규수(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이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영조가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 면 서 칭찬을 하자, 연잉군부인이 무심코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했더니 영조가 그날로 부인을 소박하며 그 다음부터는 멀리하였다. 아마, 무수리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발을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4.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간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지 않자,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식이 어찌 아버지의 존함이 쓰인 방석을 깔고 앉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또 ‘고개 중에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드냐’ 묻자, 강원도에서 온 규수가 대관령고개라 답하고 경상도에서 온 규수가 추풍령고개라 답하였다. 헌데 김규수는 보릿고개라 대답하였다. 보릿고개라!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세끼, 아니 두 끼, 심지어 한끼를 채우기가 그 얼마나 난감한가. 이것이 보릿고개인데 김규수가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라 하니 얼마나 명답인가! 다음으로 꽃 중에 제일인 꽃을 묻자, 김규수는 목화 꽃이 제일이라 답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목화 꽃이 다른 꽃들보다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핀 연후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면에서는 다른 꽃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한 꽃이니, 바로 목화가 백성의 옷감이 되어서 예절도 지키고 품격도 살리고 추울 때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정조 1. 정조가 말하길,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 했으나 오래도록 계속 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2. 연애소설을 비롯한 소설을 무척 싫어하여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서고에 있던 모든 소설을 불태웠다. 또한 숙직을 하던 규장각 학자들이 몰래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들켜서 정조에게 혼이 났고 벼슬을 삭탈했다. 그들은 정조에게 다시는 소설을 안 보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벼슬길을 다시 열어주었다. 3. 영조는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정조는 개인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서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금주령을 없앴다. 4.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 끈임 없이 시키며, 숙제를 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망신을 주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신하에게 술을 강요하여 기절할 때까지 마시게 하고, 활을 못 쏘는 신하에게 끊임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5. 술을 무진장 좋아하여, 정약용에게 필통에 술 한가 득 부어 원샷! 하기를 강요하여 정약용은 술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필통에 술 붓기라면, 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 거와 맞먹는다고 한다. 6. 정조 20년, 이정용이라는 유생이 술에취해 늦은밤 궁궐 담장 아래에서 잠에 들었다 잡혀간적이 있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했던 정조는 요즘 유생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술을 좋아한다고 칭찬을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생들이 숙박하던 잡촌과 집춘영은 벽을 맞대고 있으니 이정용은 잡촌에서 잤던거라는 궤변을 펼쳐서 오히려 상까지 주어서 보냈다. 헌종 1. 이 헌종이 그렇게 미남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여색을 즐기는 왕 때문에 궁궐 내 용모가 예쁘다고 하는 궁녀들은 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한다. (덕분에 후궁첩지도 아무나 내리지 못했음. 딸을 낳은 궁인 김씨도 첩지를 받지 못했다.) 왕 자체가 너무 미남이라 젊은 궁인들이 참 많이 유혹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진 잦은 성관계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직전에는 피가래까지 토하며 고생하다가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궁녀들이 유혹을 할 정도였으니 엄청난 미남이 아니었나 한다. 2. 헌종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프게 여겨 한 신하에게 늘 물었는데, “진전에 모신 수용이 오히려 매우 닮으신 전하의 용안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니 헌종이 거울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고종 1. 고종 황제가 행차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저런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2. 명성황후가 죽고 나서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끼던 후궁이 있었는데 명성황후가 부리던 상궁이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그녀를 곁에 둔 이유가 못생겨서 고종이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곁에 두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는 명성황후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3.당시 1887년대, 전신(전보총국)의 등장과 함께 최초 궁궐에 가설된 전화를 경험한 고종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음을 들을 수 있군" 이 생각에 고종은 상당한 고액의 전화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 홍릉에 설치한다. 그 곳은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민씨)의 무덤. 전화의 설치가 끝난 직후 고종은 아침마다 그 곳으로 통화를 걸어 말을했다. "여보, 어제는 춥지 않았소?"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를 걸어 죽은 민씨에게 안부를 전했고 매일아침 울었다고 한다. "아무리 멀리떨어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저승까지는 못 하는구나." 그럼에도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하는 그 날에도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더러운 갑질의 참담한 결말.txt (요약 有)
그리고 갑질한 사람 등판 그리고 몇달 후... 요약) 택배 기사 아버지를 도와 택배일을 하던 딸이 착불비 3000원으로 진상부리는 고객 만남 계좌 번호 문자로 보내고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고객이 택배회사에 계속 컴플레인 걸고 아버지께 갑질 문자를 보냄 속상해서 네이트판에 하소연함 갑질 고객이 네이트판 글을 보고 해명글을 올림 사람들이 해명글보고 더 욕하니까 지인 동원해서 택배 착불 + 컴플레인 테러함 그 때문에 아버지는 택배회사에서 짤리고 딸은 죄책감에 자살함 가족은 딸과 아버지 둘 뿐이었다고 함 - 세상이 진짜 미쳐 돌아간다 지인들까지 대동해서 클레임을 제기할 정성이면 그냥 착하게 살지 도와준 지인들은 또 뭐고... 정신병 아닙니까 이거? 아버지 고생하실까봐 저렇게 나서서 돕는 착한 딸을... 말이 안나오네요 미친사람같으니라고 택배 갑질 진짜 많던데 좀 더불어 삽시다 사람들 참... +) 댓글로 묻는 분들이 계셔서 청원 주소 추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FJIq04 그리고 찾다가 고인이 쓰신 다른 글도 발견해서 추가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 거주중인 26세 여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네이트판에 하소연 삼아 쓴 글에 보배드림에서 오셨다 하시며.. 직접 가입해서 글 써달라 하셨던 기억에 용기내어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네이트판에 작성했던 글은 아빠가 하시는 택배일을 잠시 도와드리던중 저와 고객님의 마찰이 생겨 아빠께 컴플레인이 걸리셨고 그로인해 아빠가 해당 고객님께 지속적인 사과를 하셨음에도 돌아오는건 아빠의 인격을 모독하시는 답변들 뿐이였읍니다 당시에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였고 당장 전화해서 해당 고객님께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정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아빠가 그동안 택배업을 하시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셨음에도 오로지 가족을 위해 꿋꿋하고 묵묵하게 참아오셨던 긴 세월을 제가 감히 헤아릴 자신이 없었고 그런 아빠를 위해 제가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저와 고객님의 마찰로 인하여 발생한 상황이기에 직접 댁을 방문하여 사죄드리는 방법밖에는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고 아빠의 노고를 생각하면 더한것도 할수있었기에 정말 다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왔었습니다 그후 가슴이 뻥 뚤린 기분으로 정말 그냥 마땅히 털어 놓을곳은 없고 하소연 삼아 익명의 힘을 빌어 작성한 글 하나로 아빠가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아주 조금의 실수에도 컴플레인이 누적 되는 상황이고 의도적이라 말씀 드리기에는 증거가 없지만 택배를 착불로 시키신후 착불비를 안주시는 고객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로인해 아빠가 착불비 안내 문자를 다시 보내시면 그걸 또 꼬투리 잡으셔서 아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시며 마지막에는 꼭 컴플레인을 걸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십니다 이뿐만아니라 자동으로 통화녹을을 제가 설정했었는데 아빠의 직업 특성상 시간에 너무 쫒기시다보니 특별한 지시사항 없으시면 대부분 문앞 배송인데 이 사건 이후 문앞배송 항의전화와 분실했다시며 찾아달라시는 전화에 막상 방문하면 다른 물건과 착각하셨다며 헛걸음 하게 하셨고 정말 너무 어처구니없는 항의 연락을 너무 많이 받고 계십니다 제가 고통스러운건 이런 아빠를 도와드릴 방법이 마땅히 없는 것이고 아빠는 누적 컴플레인으로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까 하루하루 노심초사 하고 계십니다 저와 아빠는 아무 힘이없는 그냥 정말 평범한 가족입니다 정말 정직하게 살아오신 우리 아빠한테 왜 이런일이 생기는건지 그렇다고 제가 마음대로 나서기에는 아빠에게 돌이킬수없는 피해가 갈까 너무 두렵고 그냥 능력없는 제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조언받고 싶습니다 매일을 가슴조리며 오늘은 또 무슨일이 생길까 아빠가 혼자 얼마나 힘들게 계실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늦은시간 불편은 글을 올려 죄송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보배드림) - 어디서든 갑질 좀 하지 맙시다 이건 다른 사람 갑질임 이러지도 말고 ㅉㅉ
영준씨의 잃어버린 25년
25년전 실종된 박영준씨 사진.  박영준씨 20대 초반 당시 엄마와 집을 나갔다가 실종됨 (둘다 지능이 낮은 장애인임) 누나는 25년간 신문에 광고도 내보고 했는데 성과가 없어 절망했다가 2017년 9월경 실종자를 찾기위한 유전자을 등록하면서 3개월만에 동생을 찾음 ㄷㄷㄷ 당시 박영준씨를 데리고 있던 사람이 박영준씨 신분을 새로 등록해서 이름이 두개가 됨...(장애인 연금을 타먹기 위한 수작) 그동안 어디서 뭘했는지 역추적 ㄱㄱ 알고봤더니 고흥의 한 농가에서 쌀포장 밭농사 등 잡부일을 하고 있었음... 당시 노예처럼 일했던 농장에 가보니 마침 한여자가 있었는데 이사람이 피의자(농장주)의 아내였음.. 이 아내의 말이 참 어처구니가 없더라... 농장주 아내의 결론 : 밀린 임금 다 줄테니 합의하자. 이부분에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임금은 당연히 주고 그후 합의를 해야하는데 임금갖고 합의를 하자고 함.. 그런 와중에 박영준씨가 서있는 자세가 삐딱하다며 지적질하자 박영준씨 엄청 긴장함 ㄷㄷ 박영준씨는 노예생활하면서 허리를 다쳐서 구부정한거임.. 하여튼 좋게 좋게 하자는 농장주 아내와 긴장한 박씨 박영준씨를 어떻게 데려온거냐고 묻자 자기엄마가 깜짝선물로 자기가 데리고 있던 노예 양도해줬다 함. 엄마네 집으로 ㄱㄱ 노예 특화섬으로 ㄱㄱ 하지만 집주인 부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 마을회관 가보니 박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랫동안 노예 생활 하는걸 봐왔는데도 잘있냐? 뭐하고 사냐? 등 남얘기하듯 함. 주인을 잘못만났다고 함ㅋㅋㅋㅋㅋㅋㅆㅂ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주인이라는 단어를 씀 내용이 너무 길어서 사건 벌어진 동네 주민 인터뷰 내용을 마지막으로 글 마침 [출처 - 개드립] 분노할 사건이지만 지역차별적인 댓글은 자제 부탁...
카운터사이드 “내부 정보 유출 없다. 내부자 사칭 인물 끝까지 추적할 것”
내부자 사칭 비밀 단톡방 및 사내 쿠폰 외부 유출 관련 입장 밝혀 스튜디오비사이드가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서브컬처 소재 어반판타지 RPG <카운터사이드>의 내부자를 자칭하는 인물이 단톡방을 개설하고, 소수의 유저에게 정보를 흘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넥슨은 해당 인물의 정보는 허위이며,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스튜디오비사이드 류금태 대표는 19일, “먼저 불미스러운 일로 유저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다. 어제(18일) 저녁에 관련 이슈에 대해 통보받았고, 급하게 확인한 결과 해당 단톡방을 통해 알려진 정보는 근거가 없는 허위 내용으로 모두 확인이 되었다. 실제로 개발팀 내부에서 기획하고 있거나 준비를 하는 내용과는 하등에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해당 정보는 내부 유출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 스튜디오비사이드 류금태 대표(오른쪽) 이어서 그는 “내부자를 사칭한 해당 인물은 끝까지 추적할 것이며, 혹시라도 외부 관계자로 파악이 된다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후, 우리는 혹시라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유저들이 즐겁게 <카운터사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넥슨은 마찬가지로 ‘넥슨 내부용 <카운터사이드> 쿠폰의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한 거래’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넥슨의 김종률 사업 본부장은 “조사결과 넥슨의 내부 직원이 사내에 배포된 쿠폰을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정황이 확인되었다. 해당 인물은 위의 단톡방 관계자는 아니며, <카운터사이드> 개발팀도 아닌 넥슨의 다른 프로젝트 관계자다. 이에 대해 오늘 오전부터 내부징계 절차에 따라서 해당 직원에 대한 직무를 정지시키고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징계절차는 노무법에 따라 보통 3일 정도의 시간을 잡는다. 이 부분은 최대한 신속하게 절차를 밟을 것이며, 그 결과는 추후 <카운터사이드> 커뮤니티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형제간의 용서
5년 전 동생과 연이 끊겼습니다. 사실 동생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다툼이 생겼는데 그만 제가 참지 못하고 심한 말과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 동생에게 큰 상처가 되었나 봅니다. ​ 그렇게 헤어진 동생은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전화번호도 바꿔버렸습니다. 그렇게 5년간 동생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습니다. ​ 최근 길에서 우연히 동생의 절친을 만났습니다. 말을 걸어보니 동생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동생과 통화 한 번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 그 친구는 동생에게 형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문자를 보내주었고 덕분에 일주일 후에 동생을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나 있으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동생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용서를 구하자는 생각으로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동생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 “형, 그동안 고생 많이 했나 보네. 얼굴이 많이 상했어.” ​ 저는 힘껏 동생을 껴안고 미안한 맘에 그만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큰 잘못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단 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진심으로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신천지 31번 확진자의 대구 초토화 실황.txt
- 교통사고로 입원 4일차, 발열 시작. 한방병원 영상의학검사 진행 폐렴 확인. (내과 전문의 있는 병원) - 병원측,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검사 가능 병원 전원 권유. - 31번 신천지 `해외 여행 안하고, 확진자 접촉 안했다. 안간다` - 병원, 항생제 투여. 차도 없음. (4인실에 홀로 입원시켜 격리) - 31번, 입원 상태에서 15일 대구 퀸벨 호텔 결혼식 참석 16일 대구 남구 신천지 예배 참석 -> 새로난한방병원 일시 폐쇄. 환자 33명 대구 의료원 전원     한방병원 1층. 약국. 신협 범어지점 임시 휴업(자가격리) -> 수성구 보건소 전체 방역. 민원실 폐쇄. 직원,공익 11명 자가 격리 -> 퀸벨 호텔. 휴업. 방역 시작. CCTV로 동선분석. 휴업 -> 신천지. 다단계 폐쇄후 방역중 -> 환자 아들이 다니는 자동차 부품업체. 환자 아들 자가격리. 사무실 소독 -> 병원 간호사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 휴원 -> 대구시 주최 행사 모두 취소. -> 수성구 도서관 8개 2.19~3.3일 임시휴과ㅣㄴ -> 청도군, 2월 22일 재개 예정 소싸움 무기한 연기.     청도군. 이서면 주민 수십명이 퀸벨 호텔 결혼식 방문 이력 확인. 조사중.  성주군, 직원 51명 동료 결혼식 퀸벨 호텔 참석 -> 전원 자가 격리중(재택근무) (군수 재량으로 결정한 재택근무라고 함. 질본차원에서 하는 공식 조치 아님.) 새로 확진된 15명 중 10명이 31번 확진자와 같이 예배 본 신천지 신도들이라고 함. 덕분에 신천지 예배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