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의 감초. 이재영
1979년 6월 13일 출생
두산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1979년생인 이재영은 1998년 선린인터넷고(당시 선린상고)를 졸업하였으나 고교 시절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어서 졸업 당시 지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부상 여파로 명문대 진학 역시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서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영남대로 진학하게 됩니다. 참고로 선린인터넷고는 이재명보다 1년 후배인 80년생 3인방(권오준,손시헌, 이종욱)을 배출한 학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후배인 이종욱(현 NC 다이노스)과는 같은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 아마 생활을 했고 두산 베어스에서도 한솥밥을 먹던 사이입니다.
2002년도 신인 1차 지명회의에서 이렇다 할 유망주를 발견하지 못한 두산은 영남대 출신의 투수 이재영을 지명하게 됩니다. 계약금 1억 5천만원을 받고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이재영은 데뷔 2년 차인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요. 6승2패 5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국내 선수들 중 최다 이닝을 투구하며 마무리 투수 구자운과 함께 불펜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떠올랐습니다. 이듬해인 2004년 역시 9승 7패 3세이브 14홀드 2.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불펜 투수로는 팀 내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암흑기 시절 LG의 임시 소방수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4년 말 프로 야구계를 강타한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면서 2005년 늦게 서야 복귀하였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약3년에 가까운 공백기를 갖고 2008년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2008년 시즌 중간, 내야수 김용의와 함께 당시 LG 트윈스 소속이던 이성열(현 한화 이글스), 최승환과2대 2 맞트레이드 되면서 LG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이재영의 강력한 구위를 눈 여겨 본 김재박 감독은 이적 초반 그에게 선발 기회를 부여하였으나, 이재영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불펜으로 보직을 전환하게 됩니다.
2009년 역시 불펜으로 보직을 시작한 이재영은,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부진한 모습을 틈타 마무리로 보직을 이동하게 되었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11세이브를 올리며 일단 위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2010년 스프링캠프 땐 외국인 투수 오카모토와 마무리 투수 후보로 경쟁하였으나, 시즌 중 SK 와이번스와 4:3 트레이드(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최동수 -> 김선규, 박현준, 윤요섭)로 세 번째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SK 마운드의 감초 역할
이적 후에는 승리조와 패전조 불펜 투수를 오가며 지난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SK 와이번스가 3년 10억원의 조건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고 시장에 나왔으나 아무 팀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1+1년간 총액4억 5천만원에 계약하게 됩니다. 현재는 팀의 투수조에서도 고참 역할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 있고 본인 또한 올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감초역할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진 출처 : 일간스포츠, SK와이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