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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20,pm:3

최근에 그림을 그리는 어느 한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그림은 그냥 보기엔 아주 심플한 펜으로 그린 그림이었죠. 처음 그 그림을 보게 되었을 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 분의 컬렉션을 팔로우하고 자주 찾아가 그림을 보며 또 다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빙글에서 글을 쓰면서부터 메시지함으로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답변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는 게 예의일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진지한 척하며 궁상을 떠는지' 라는 질문. 우선 일부 분들이 말씀하시듯, 온라인 공간이 '원래' 가볍게 노는 곳이라는 말씀은 사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80년대 후반, 처음으로 온라인 소통이 이뤄졌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물리적 한계로 서로에게 닿지 못했던 비슷한 취향,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그때까지는 현실 세계에선 결코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았던 말들을 더듬더듬 발설하기 시작하던 순간을. 아마도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말들이 쌓여있던 사람들에게 특히 기능적인 공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유로든, 대부분 일반인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던 건 사실이죠. 그러한 '다름'을 조롱꾼들의 언어로는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이라고 지칭하나봅니다. 왜 진지하고 그래? 너 걔네들 중 하나야? 진지한 논쟁, 진지한 고민 사이에 이런 함의를 가진 조롱이 던져지는 순간, '현실에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주홍 글씨가 두려워 최소한의 예의나 진지한 분위기가 산산조각나버리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과거의 얘기를 꺼내는 건 온라인 고고학을 읊으며 훈장질 하고자 함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곳에 처음 투영되었던 사람들의 욕망을 살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과거 온라인이 사람들을 매혹했던 건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는 그 '실체없는 평균'에서 비껴간 '다름'을 토로하거나 혹은 감출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온라인은 원래 조금 다르지만 자신을 감추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해방구였습니다. 잠깐 제 얘기를 해보죠. '왜 그리 어둡냐' 라는 질문. 왜 어둡냐구요? 전 현실에선 어두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영업을 하며 서비스교육을 이수하였고 항상 웃으며 친절함을 몸에 지녀야 하며 어떤 컴플레인에도 고객,손님에게 항상 '예예, 잘 알겠습니다' 라고 일괄하며 대답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 때문이죠. 또 직원들에게는 어떻구요. '네가 기분이 나쁘더라도 앞에선 잘 응대하며 웃고, 뒤에가서 담배한대 태우고 와라. 너도 곧 괜찮은 가게를 하게 될텐데 많은 도움이 될거다'라며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꽤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림자를 갖고 있지요. 그런 제게 이 공간은 그동안 감춰뒀던 가면을 쓰고 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무도의 장입니다. 저 말고도 여기 그 누구든 가짜라고, 진지하다고 조롱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은 예전부터 모든 이들에게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됐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외무준수한 이들이 현실의 우위를 넷상으로 끌고 오려 발버둥치는 공간이 된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여긴 어차피 가짜라고, 조롱하는 나보다 진지한 네가 바보라고, 현실의 좁은 풀 안에선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얘기를 여기서도 할 수 없게 만들려는 시도. 현실을 이미 지배한 이들이 현실에서 가진 물질적, 사회적, 신체적 우위가 통하지 않던 그나마 유일했던 공간인 온라인조차 현실처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장 말입니다. 그것까지는 좋습니다만, 이젠 과거의 친구들조차 주홍글씨가 두려워 그들과 똑같은 가면을 뒤집어 써야 하는 현실은 짜증납니다. 온라인은 원래 그렇다는 쿨함, 너만 유난 떤다는 조롱. 하지만 그런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거지, '원래' 그런 건 아닙니다. 부디 진지함이 수치스런 주홍 글씨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nvylust1 님의 '강간'이라는 작품에 덧글 다신분들께 이 글을 드립니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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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간이 원래 그런곳은 아니라는 님의 말 정말 공감해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신경쓰지 마세요.
역시 필력이 쩝니다. 캬아 ~~ 깊이 흡수되네요. 크게 끄덕이고 갑니다~
@ilmjh8400 저는 신경 안써왔는데, 다른분의 게시물의 덧글에서 좀 ㅋㅋ 욱 했네요ㅋㅋ
@liloc11 과찬이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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