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rgence8
10,000+ Views

[테니스라켓고르는법] 4가지 확인사항

1. 라켓면(빵)의 크기 현행 모델의 규격은
85∼135평방 인치의 범위에서, 일반적으로 MID ( 85∼95평방 인치)
< MIDPLUS (95∼103평방 인치)
< OVERSIZE (103∼평방 인치)로 표기
MID∼MIDPLUS는 중급자에게서 상급자의 플레이어가 많지만,
OVERSIZE은 초급자에게서 상급자까지 폭 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스트링 패턴
스트링 패턴과는 통상 스트링 가로와 세로의 개수를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는, 라켓의 스트링 패턴은 16(세로)×19(가로)이 주류입니다. 스트링 패턴이 빽빽한 라켓은 크게 빠르게 스윙을 하는 하드 히터(hard hitter)가 아니면 볼을 충분히 날릴 수 없으므로, 중급자에게 추천입니다. 작게 느긋한 스윙으로 볼을 치는 플레이어에게는 스트링 패턴이 빽빽하지 않는 라켓을 추천 ■ 빽빽하지 않은 라켓 이점■ 홀드감이 높고 볼을 찌부러 뜨리기 쉬워진다. 스위트 스팟이 넓어진다. 느긋한 스윙이라도 스핀을 걸어 쉽다. ■ 빽빽하지 않은 라켓 결점■ 잘잘한 패턴의 라켓이라고 비교하면 스트링 소모가 빠르다. ■ 빽빽한 라켓 이점■ 가로 세로의 크로스하는 수가 많아져 크로스부분의 힘이 분산되어지므로, 빽빽하지 않은 라켓과 비교해서 스트링이 끊어지지 않는다. 탄력이 낮아진다. 타구감이 날카로워진다. ■ 빽빽한 라켓 결점■ 스위트 스팟이 좁아진다. 3. 프레임 밸런스 ■ 톱헤비(top heavy)(밸런스330mm이상)의 라켓 라켓면의 머리측에 무게를 느끼는 라켓으로 300g이하의 라켓으로 잘 채용되어 있는 밸런스입니다. 라켓 중량이 가벼운 물건은, 빨라서 무거운 볼에 대하여 타력이 떨어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톱에 무게를 가져 가면 스윙하면 원심력이
일하므로 타력이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단지 발리와 같은 순간의 움직임에 반응하기 어려워지므로, 베이스라이너에 적합한 라켓입니다. ■ 이븐 밸런스(310∼329mm)의 라켓 라켓의 중심부에 무게를 느끼는 라켓으로, 스트로크 플레이와 네트 플레이도 좋아하는 올라운드플레이어(all-around player)에 적합합니다. ■ 톱 라이트(top light)(밸런스310mm이하)의 라켓 그립에 편파적으로 무게를 느끼는 라켓으로, 발리등의 순시의 움직임에 대응해 쉽게 네트 플레이어에 적합합니다. 4. 중량
일반적으로 무거운 라켓은 상급자 또는 완력이 있는 분에 적합하고 있어, 가벼운 라켓은 힘이 약한 쪽이나 초급자에게 적합합니다. 라켓 중량을 대범한 구분 차면 【초경량(245g미만)】, 【경량(245∼280g】), 【일반(280g이상)】이 되고, 테니스 인구의 약7할이 초경량인가 경량의 라켓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5년전에 초경량의 라켓이 유행했습니다만, 현재 그러한 모델은 대부분 소멸하고, ​바뀌어서 280g이상의 라켓을 사용하는 분이 증가되었습니다. ■ 무거운 라켓의 이점■ 빠른 상대의 숏(서브나 스트로크)에 대하여, 면을 만드는것만으로 볼을 눌리고, 상대의 타구를 받아치기 용이하다. 가벼운 라켓보다 스윙하면 원심력이 생기고, 볼을 눌러 치기 쉽고, 무 거운 볼을 칠 수 있게 됩니다. 무거운 라켓은 가벼운 라켓과 비교해 크게 휘두를 수 없으므로, 볼이 뜨는 것을 줄일 수 있다. ■ 무거운 라켓의 결점■ 무거우므로 힘이 약하면 스윙 할 수 없고, 볼의 반응이 늦어진다. 가벼운 라켓과 비교해서 볼이 날지 않게 됩니다. ■ 가벼운 라켓의 이점■ 힘이 약해도 편안히 스윙 할 수 있고, 라켓의 처리가 나아집니다. ■ 가벼운 라켓의 결점■ 상대가 빠른 샷에 대하여, 자신에게서 스윙해 가지 않으면, 라켓이 밀려버립니다. 무거운 라켓과 비교하면, 볼을 히트 했을 때의 진동과 충격이 커집니다.
2 Comments
Suggested
Recent
와~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저는 차음에 초보라 오버사이즈 라켓만 쓰다가(107) 어느정도 공을 라켓에 잘 맞추게되고 미드플러스 (98) 쓰기시작했어요! 무게에 대해서는 둔감했는데 295그람에서 304그램으로 바꿨더니 처음 1~2주 정도는 손목에 무리가 오다가 다행히 적응이 되서 이젠 괜찮더라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lovekk021 님! 기초상식과 예절 관련 내용 조만간에 올리께요~^^
이제 막 입문했어요 기초 상식 예절 많이 올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사람의 마음을 감염시킨 컴퓨터 바이러스
흔히들 우리가 알고있는 바이러스는 동물과 식물에게 감염하여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로 잘 알려져 왔다.  누군가 컴퓨터 바이러스도 사람에게 옮을수 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누구라도 공상과학소설이나 SF영화에 나올 이야기라며 비웃을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날때도 있다.  2000 년 5월 필리핀 AMA 컴퓨터 대학 (Philippine AMA Computer College)의 학생이었던 '오넬 구즈만(Onel de Guzman)이 자신의 졸업논문이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큰 앙심을 품었고, 5월 4일 그는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만든 한 컴퓨터 바이러스를 학교의 인터넷망에 전송했다. 구즈만 자신도 그저 이것은 단지 작은 헤프닝에 지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바이러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세계의 전산망으로 퍼져나갔고,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감염된 컴퓨터가 늘어나 결국 전세계의 인터넷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구즈만은 곧바로 잠적했다. 구즈만의 바이러스는 처음 전파된지 5일도 지나지 않아 세계의 금융권, 기업, 언론을 막라하고 수많은 사회시설에 피해를 입혔다. 심지어 철옹성의 사이버 방어능력을 가진 미국의 국방부와 백악관까지 침투하자 미국의 조사기관이 급히 바이러스의 방식을 조사하였고 그 결과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였다. 바이러스의 전파 방식은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는 첨부파일을 클릭하는 순간 바이러스는 컴퓨터내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파일을 삭제하고 MS 아웃룩 주소록에 있는 모든 주소가 웜에게 사본으로 전송되어 다음 희생자를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단 하나의 이메일이 너무나도 빠르게 수백, 수천개의 메시지가 되어 전세계의 인터넷을 사용하는 컴퓨터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기관이 놀라워했던 것은 도대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첨부파일을 클릭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불과 2년 전 전 세계를 마비시킨 '멜리사 바이러스'와 방식이 동일하였기 때문이었다. 멜리사 바이러스는 1999년 3월 26일 경에 발생하여 이메일을 통해 유럽 전역에 확산된 바이러스였다. 멜리사의 방식은 MS워드프로그램 첨부파일 형식의 이메일로 배달되었다. 이메일은 제목에 "[보낸 사람의 이름] 긴급메세지"로 날아왔고, 본문엔 '요청한 문서는... 다른사람에게 보여주지 마십시오.' 라는 형식의 글로써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첨부된 파일을 누르는 순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감염된 컴퓨터의 주소록에 있는 50개의 주소로 똑같은 방식의 이메일이 전송되게끔 하였고  컴퓨터 보안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만들어 과도한 첨부 메일로 인해 기업들의 이메일 시스템을 과부화시켜 장애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멜리사 바이러스는 빠르게 수십만대의 컴퓨터로 전파되어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텔사 역시 감염시켰고 이에 마이크로 소프트는 확산을 막기위해 인터넷 이메일 발신 서비스를 아예 종료하기도 하였다.  멜리사 바이러스는 총 추산 4억달러의 피해를 입혔고 많은 IT종사자들에게 의심되는 메일의 첨부파일을 함부로 열지 않게 하는 경각심을 심게 해주기 충분했다. 조사기관은 분명 2년 전의 멜리사 바이러스로 인해 의심스러운 이메일에 대한 위험성을 아는 사람들이 마치 무엇에 홀린것 마냥 누른것에 대해 놀라워 했고 이 특이한 필리핀발 바이러스의 메일의 내용을 확인하자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수많은 기관들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바이러스의 여파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4000만대 이상의 컴퓨터가 감염되어 추산 10억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결국 발생한지 일주일만에 전세계를 마비시킨 이 컴퓨터 바이러스는 그 위용을 널리 떨치며 2000년 5월 11일 TIME지의 메인을 장식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러브 바이러스 당시 사람들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이러스가 이메일을 통하여 급속히 전파된 이유는 바로 첨부된 메일의 이름 때문이였다. ' I love you '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제목의 이메일은 사람들의 의심의 벽은 어처구니 없이 쉽게 허물어졌고,   '당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내용의 첨부파일은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보인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사랑한다는 이 한마디에  홀린채 아무런 의심없이 첨부파일을 눌러 자신의 컴퓨터를 감염시켰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컴퓨터 바이러스가 사람의 마음을 매개체로 전파되게 된 것이다. 조사기관은 구즈만이 졸업논문용으로 제출한 프로그램이 이 러브버그 바이러스와 너무나도 유사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게된 이후 구즈만은 자취를 감추고 숨어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친구인 레오멜 라몬즈(Reomel Ramones)를 만나기 위해 다시 나타나자 곧바로 친구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필리핀에 악성 코드에 관한 법률은 없었음으로 오넬 구즈만은 기소되거나 구속되지 않았다. 단 몇글자의 텍스트로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허문 러브 바이러스는  최초로 인간의 심리를 매개체로 이용한 컴퓨터 바이러스로 알려져있다.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최악의 마약 펜타닐, 그리고 중국.
펜타닐 -최악의 마약이라는 헤로인의 50~100배의 위력과 중독성을 지녔으며 완전치사량은 위 사진과 동일한 약 2mg. 애초에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절단 환자, 복합부위통증 증후군을 겪는 일반적인 수술이나 진통제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투여하는 용도의 약물이며 이것도 일반적으로 고통을 어느정도 줄여주기만 할 뿐 해소해주진 못한다.. 애초에 치사량이 너무나도 적기때문에 투여량 또한 극미량이기 때문... 근데 이게 왜 문제라는거임?..어차피 의료목적인데.. 왜냐면 이 마약은 합성도 쉽고 중독성도 그만큼 강하기에 중국의 패권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마약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그럼 중국은 펜타닐이라는 마약을 어떻게 주요 전략으로 삼는거지? 그럼 중국의 외교전략인초한전이라는걸 먼저 알아야됨. 이 사진에서유격전- 마약전을 봐야한다. *참고로 밑의 이데올로기전이 요즘 중국이 한복입고 김장하는 짓거리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문화예속의 시도라는 것.. 그럼 중국은 이짓거릴 어떻게 하나? 1. 불법 펜타닐 제조 2. 싼값에 알리나 알리바바등 쇼핑몰에 유통 3. 현지 중국인이 구매 후 현지 유통업자에게 판매 3-1 . 또는 외국인이 온라인 직구매 4. 중독자 양산 . . . 이게 끝이다. 참 쉽다. 한마디로 중국은 지금 총만 안쏠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생화학무기를 날리고 있는셈이다. 그럼 얘네 대체 왜 이러는거임? 마약에 트라우마도 있는 새끼들이? 단속하기 힘드나? 얘넨 단속을 못하는게 아니라일부러안하는거다. 위에 언급했던 어떻게 보면 미중 패권경쟁의 전략이기때문. *마약 :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이 있어서 장복(長服)하면 중독 증상을 나타내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아편ㆍ모르핀ㆍ코카인ㆍ헤로인ㆍ코데인ㆍ페티딘ㆍ메타돈ㆍ엘에스디(LSD) 따위가 있으며, 의료에 사용하지만 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므로 취급 및 사용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펜타닐 - 최악의 마약이라는 헤로인의 50~100배의 위력과 중독성을 지녔으며 완전치사량은 위 사진과 동일한 약 2mg. 애초에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절단 환자, 복합부위통증 증후군을 겪는 일반적인 수술이나 진통제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투여하는 용도의 약물이며 이것도 일반적으로 고통을 어느정도 줄여주기만 할 뿐 해소해주진 못한다..애초에 치사량이 너무나도 적기때문에 투여량 또한 극미량이기 때문... 근데 이게 왜 문제라는거임?..어차피 의료목적인데.. 왜냐면 이 마약은 합성도 쉽고 중독성도 그만큼 강하기에 중국의 패권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역시 모든 원인은 대부분 다 그곳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마약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 - 도람뿌 그럼 이새끼들은 펜타닐이라는 마약을 어떻게 주요 전략으로 삼는거지? 그럼 중국의 외교전략인 초한전이라는걸 먼저 알아야됨. 출처 : 국방일보 이 사진에서 유격전- 마약전 을 봐야한다. *참고로 밑의 이데올로기전이 요즘 중국이 한복입고 김장하는 짓거리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문화예속의 시도라는 것.. 그럼 중국은 이짓거릴 어떻게 하나? 1. 불법 펜타닐 제조 2. 싼값에 알리나 알리바바등 쇼핑몰에 유통 3. 현지 중국인이 구매 후 현지 유통업자에게 판매 3-1 . 또는 외국인이 온라인 직구매 4. 중독자 양산 . . . 이게 끝이다. 참 쉽다. 한마디로 중국은 지금 총만 안쏠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생화학무기를 날리고 있는셈이다. 그럼 얘네 대체 왜 이러는거임? 마약에 트라우마도 있는 새끼들이? 단속하기 힘드나? 얘넨 단속을 못하는게 아니라 일부러 안하는거다. 위에 언급했던 어떻게 보면 미중 패권경쟁의 전략이기때문. ...근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 우리 마약청정국 아녔음? 당연히 상관있다. 중국은 미국은 경쟁상대로 보지만 대한민국은 복속시키고 흡수 시켜야 할 속국으로 보기때문. 이런 뉴스가 언젠가부터 자주 보이고..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뉴스까지 점점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중국은 미국에겐 단속하겠다라는 포장이라도 했지.. 한마디로 위의 문화예속 시도 및 마약류의 유통망 공급으로 인해 먼 미국보단 가까운 중국을 의지하게끔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한반도를 대륙과 동화되게 만드는것이 중국의 목표다. 중국이 아무 이유없이 일대일로니 뭐니 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주요 거점들을 99년 임대 이딴식으로 점점 먹어가고 있는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중국은 점점 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방법으로 주변국들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제껏 말한마약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제껏 마약청정국이란 이미지도 어느순간부터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단순히 사회 문제를 넘어선 좀 더 거대한 위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탁스 펌
#독자서평_200가지고민에대한마법의명언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 했거나 마주할 200가지 고민에 대한 명언 해설서입니다. 전문가들의 명언을 통해 인간관계, 삶,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200가지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찾은 독자께서 남겨주신 서평을 소개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나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융통성을 발휘해서 어떨 땐 이래야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이래야 할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서 남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내 신념을 지켜야할 순간이 온다. 현명하게 어떤 말이 내게 도움이 될지 판단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추후 마음이 불안할 때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 듀(sun_sta***) "나는 이 책을 특히 나처럼 이제 막 여러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되는 사회 초년생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중략) 이 책의 명언들은 훗날 내가 어렵고 힘든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 왔을 때,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그 해결책들의 역사로 만들어진 구절들이니까, 믿고 볼만 하지 않을까!" - 변희조(csm03***)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했어도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은 바로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내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교훈을 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고난이나 역경을 조금 더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 화제의 도서 ★ 걱정인형처럼 내 고민을 털어놓는 책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책 상세보기: http://www.yes24.com/Product/Goods/97137324 ★ 베스트셀러 ★ 「2022년 꼭 읽어야 할 인문 교양 베스트 7선」 https://ritec.modoo.at/?link=9s8a7i9w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것
어린 시절 저는 병 우유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할 때마다 막둥이인 저에게 병 우유를 하나씩 사 주셨습니다. 어려운 살림 탓에 먹을거리가 늘 부족했지만 아버지는 저에게 우유를 주는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가족들도 잘 알아보시지 못하고 계시지만, 아버지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님이 어린 시절 병 우유에 대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가 사 주시던 그 우유는 사실 아버지의 출근 교통비와 맞바꾼 것이었습니다. 버스를 탈 수 없기에 서둘러 일찍 일어나 회사까지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막내 우유 사 주는 게 아버지에게 어떤 것보다 큰 행복이고 즐거움이었어. 좋아하는 막내의 모습이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이라며 말하곤 하셨는데…” 저는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외투 한 벌조차 없던 가난한 살림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아버지의 출근길이 얼마나 추웠을지 잠시 생각하니 그저 뜨거운 눈물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 시절엔 모르고 지나간 작은 일상의 기쁨이 사실 누군가의 사랑이자 헌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런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 오늘의 명언 사랑이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이 아니며 둘을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홉을 주고도 미처 주지 못한 하나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 브라운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사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방치된 마그네슘에 23살 청년 전신 화상.news
건물 밖으로 불길이 치솟는가 싶더니 흰 연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잠시 뒤, 한 남성이 고통스러운 듯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릅니다. 이 남성은 경기 양주시에 있는 의료제품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던 23살 A씨입니다. A씨는 이 사고로 온몸에 2도와 3도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A씨가 일하던 업체는 작업 후 남은 마그네슘 가루를 바로 옆 화단에 묻어왔습니다. 사고 당시 A씨는 공장 문 앞에 불붙은 막대가 있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화단으로 옮겼는데 전날 내린 비로 젖어 있던 화단 안 마그네슘과 불이 만나 폭발이 일어난 겁니다. 마그네슘은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법에서도 2류 위험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마그네슘을 땅에 묻는 것 자체가 특이한 사례라 불법성 여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업체가 사고 전 이런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관리 감독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 가족의 주장입니다. 업체 대표는 사과한다면서도 안전 교육을 충분히 했고 특수 소화기도 배치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너무 적은 양이라 사고 위험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업체 대표 : 사람이 다쳤으니까 관리가 부족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희가 한쪽에다가 모아두는데 양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전문 업체를 거치는 등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기물관리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최돈묵 /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 : 아무리 소량이라도 전문업체가 하면 문제는 없는데 잘못해서 방치를 한다든지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게 그런 문제점들이 생겨요.] A씨 가족은 업체 관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소방관을 꿈꾸던 20대 청년의 청춘은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ㅊㅊ 이종 모야 마그네슘을 저렇게...? 아니 양이 적고 많고가 중요해?? 미쳤다 진짜 사고가 터져서 사람이 저지경이 됐는데 양이 많지 않다 씨부릴 수 있나 ㄷㄷㄷ
생존을 위해 식인을 했던 사례들 ㄷㄷㄷ
만일 너희들이 아사 직전의 극한 상황에 몰린다면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이때 식인(cannibalism)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극단적인 생존 방법이야 물론 그 선택은 당하는 사람이나 행하는 사람이나 의심할 바 없는 엄청난 비극이지 자 그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식량으로 삼았던 몇가지 사례들을 알아보자 맥퀴리 하버 탈출 사건 (macquarie harbour) 1820년대 초, 영국의 감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영국정부는 좀도둑부터 살인마까지 다양한 죄질의 범좌자들을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 남부 해안의 섬, 타스메니아(Tasmania)로 이동시켰어 지도 남쪽을 보면 주황색으로 칠해진 'TASMANIA' 라는 섬이 보이지? 바로 저기야 특히나 살인과 같이 죄질이 나쁜 죄수들은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시킨 맥쿼리 하버로 보내져 수년간 고된 노역을 해야 했지 이곳에서의 노역 생활은 악명이 자자했는데 죄수들은 차라리 교수형 당하는 것이 낫다 생각할 정도였다고 해 덕분에 몇몇 죄수들이 동료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어 1822년 9월, 공동 작업에 동원된 8명의 죄수들은 고된 노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기로 결심해 그들은 간수를 뒤에서 덮친 후 나무에 묶고 약간의 식량과 도끼 하나만을 들고 도주하지 탈출한 8명은 배를 훔쳐타고 아시아쪽이나 남미로 가려고 했어 죄수들은 배를 훔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탈출 사실은 바로 들통나면서 간수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항구가 폐쇄당하고 말지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해 숲이 울창한 미개척지를 지나 육지의 다른 거주지로 향했어 육지로의 탈출을 감행한 죄수들은 여태 꽤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 중 단 한번도 성공한 탈옥은 없었다고 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죄수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다른 방안은 없었어  핑크색 화살표 보이지? 저게 죄수들이 이동한 경로야 왼쪽에 항구라고 적혀있는 곳이 맥쿼리 하버고 쨋든 그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한 100km에 달하는 가파른 산맥에는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 시간이 지나면서 8명의 죄수 중 로버트 그린힐이란 죄수가 무리의 리더가 되었지 그린힐은 선원 출신이었어서 태양과 별로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았고 유일한 무기였던 도끼를 가지고 있던 자였어 탈출을 감행한지 8일째 그들은 완전히 기아상태가 되었지 앞서가던 5명의 죄수들은 체력이 약해서 자꾸 뒤쳐지기만 하던 3명을 귀찮게 여겼고 결국 무리는 강한 쪽과 약한 쪽 두 무리로 나뉘게 돼 리더인 그린힐과 그의 친구였던 트레버스, 보든햄, 매더스, 피어스가 한 무리를 이뤘고 달튼, 캐널리, 브라운이 또 다른 한 무리를 이루었지 밤이 되자 두 무리가 따로 불을 피우고 잠을 청했어 그때 리더인 그린힐이 자신의 무리에게 소름끼치는 제안을 했어 선원이었던 그린힐은 선원의 관습을 예로 들며 얘기를 꺼냈지 선원들의 관습이란 생존이 어려울 시 최후의 수단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선택된 한 명을 먹고 나머지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였어 절박했던 그린힐의 무리는 전원이 찬성하지 하지만 그들은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정하는 대신 약한 3명의 무리에서 그들의 희생자로 골랐어 희생자로 선택된 인물은 달튼이었어 선택의 이유는 죄수 캠프에서 달튼이 규율을 어긴 동료 죄수들을 간수 대신 채찍질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지 약한 무리의 3명이 모두 잠들자 그린힐은 달튼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쳤어 죽은 달튼의 시체는 농부 출신인 트레버스가 양을 도살해본 경험으로 손질했지 다들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날 밤 달튼의 살점을 먹은 사람은 그린힐과 트레버스뿐이었어 하지만 아침이 되자 고기 냄새에 이성을 잃은 나머지 죄수들도 달튼의 살점을 먹었어 배를 채운 죄수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어 죽은 달튼과 같은 무리였던 브라운과 케널리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고 앞의 5명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다시 맥쿼리 하버로 돌아갔어 다음 희생자는 자신들이 될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린힐의 무리는 한참 후에야 2명이 없어진 것을 알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생존 게임에는 큰 차질이 생겼어 5명의 죄수들은 한 번의 살인으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리 중 또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되리란걸 알게 됐지 5일 후 고기가 바닥나자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고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결국 제비뽑기를 했고 당첨자는 보든햄이 됐어 보든햄은 그 즉시 도살당했고 나머지는 그의 살로 굶주린 배를 채웠지 이제 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어  4명의 관계를 살펴보면 도끼를 가진 그린힐과 그의 친구 트레버스가 무리 중 우위였고 나머지 매더스와 피어스가 약자였지 시간이 지나면서 굶주림이 다시 그들을 덮쳤고 어느덧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어 신변에 위협을 느낀 매더스는 피어스에게 둘이서 그린힐과 트레버스를 덮쳐 도끼를 빼앗자고 제안했어 하지만 피어스가 택한 건 강한 쪽이었어 피어스의 배신으로 매더스는 그들의 식사거리가 되었지 이제 친구 사이인 그린힐과 트레버스, 외톨이인 피어스 이렇게 세 사람이 남게 된다 누가 봐도 다음 차례는 피어스였지 트레버스에게 불행한 사고가 닥치기 전까진 말이야 숲에서 트레버스가 독사에 발목을 물린거야 그린힐은 그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트레버스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물린 부위는 썩기 시작했지 가망이 없음을 직감한 트레버스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어 결국 트레버스가 다음 희생자가 됐어 마침내 두 명만 남게 되었어 그린힐과 피어스 사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언제든 상대방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둘은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그게 지켜지지 않으리라는건 둘 다 알고 있었겠지 때문에 둘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이제 누가 오랫동안 안 자고 버티냐의 싸움이 시작된거지 그들은 삼일 밤낮을 꼬박 샌 채로 계속 걸었어 상황은 극으로 치달았지만 죽지 않으려면 견디는 수 밖에 없었지 4일째가 되던 오후 결국 잠이 든 쪽은 그린힐이었어 그린힐이 잠들자 피어스는 곧바로 도끼를 집어들고 그의 머리를 쳐버렸지 이로써 알렌산더 피어스가 유일한 생존자가 됬어 피어스는 그린힐의 고기를 먹고 일주일을 더 걸어 탈출 50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 그는 다시 붙잡히는데 피어스에게 숲에서 일어난 식인에 대해 들은 간수들은 처음엔 이를 믿지 않았어 기독교를 믿는 영국인이 식인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간수들은 피어스가 나머지 죄수들이 추적을 피해 달아날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어 피어스는 다시 맥쿼리 하버로 이송됐고 다른 죄수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어 그 중 젊은 청년이었던 토마스 콕스란 놈이 재탈출하자고 피어스를 꼬드겨 지옥을 경험했던 피어스로는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으나 결국 탈출에 동의했지 육로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단걸 알고 있던 피어스는 이번엔 킹 리버를 헤엄쳐 건너기로 했어 그런데 5일간 걸어 킹 리버에 도착해 강에 뛰어드는 순간 킹 콕스가 갑자기 수영할 줄 모른다고 하는거야 개빡친 피어스는 변명을 늘어놓는 콕스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 피어스는 콕스의 허벅다리와 종아리 살을 챙겨들곤 그 자리를 떠났지 그렇게 2~3일 가다 보니 후회가 엄습해왔고 피어스는 해안가에 맥쿼리 하버를 오가던 배를 붙잡고 자수를 해버렸어 따라서 피어스가 유죄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지 1824년 7월 19일 알렉산더 피어스는 식인 행위로 교수행에 처해졌어 미뇨넷호 난파 사건 (mignonette ship) 1884년 여름 미뇨넷호 4명의 선원들은 요트 한 척을 본국인 영국에서 호주의 새 주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어 미뇨넷호에는 경험 많은 경주용 요트 조타수인 선장 탐 더들리랑 역시 경험 풍부한 선원 네드 브룩스 항해 담당 에드윈 스티븐스,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잔심부름꾼 리처드 파커가 승선해있었지 미뇨넷호는 14년 전에 만들어진 꽤나 오래된 배였고 상태는 아주 개판이었어 19세기에는 배들이 부실했기에 선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직업이었대 미뇨넷호가 침몰한 1884년만 해도 550여척의 영국 배가 침몰했다고 해 항해를 시작한지 7일 후인 7월 2일, 풍랑을 만나자 미뇨넷호는 어찌해 볼 새도 없이 침몰해버렸어 다행히 더글리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무사히 소형 보트에 옮겨탔지만 그대로 대서양을 표류하게 된거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통조림 2개, 나이프 하나, 경도 측정 시계뿐 마실 물조차 없었다고 해 배가 난파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세인트 헬레나'와 '트리스탄 드 코나'라는 곳으로 각각 북쪽과 남쪽 1200km 지점에 있었고 희망봉은 동쪽으로 2600km, 남미는 서쪽으로 3200km나 떨어져 있었어 빨간 점 보이지? 저게 그들이 난파된 지점이야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희망봉을 지나는 배들의 항로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지 표류한지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심한 갈증이 찾아왔어 통조림이랑 빗물, 바다거북따위로 잠깐 동안은 이를 견뎠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나니까 그들은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했지 표류한지 일주일 쯤 되었을까 갈증이 최고조에 다다랐고 항해가 처음이었던 파커는 목마름에 바닷물이라도 마시려 했어 선장인 더글리는 바닷물이 탈수증을 초래하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를 저지했지 더글리는 빨리 구조되지 못하면 선원관습에 따라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골라 인육이라도 먹어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더글리는 이를 선원들에게 말했고 다들 망설이는데 브룩스가 격하게 반발했어 결정은 유보되었고 표류한지 3주 가량이 지난 7월 20일 밤 파커는 갈증을 못참고 바닷물을 마셨어 아침에 잠에서 깬 동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파커를 보게 되지 파커가 죽으면 혈액이 응고되서 마실 피가 없어질거라 판단한 선원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어 반발하던 브룩스에게 더글리는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라고 했대 파커만 빼고 모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거든 이 사람이 리처드 파커야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더들리가 파커의 목을 찌르고 그 피를 통에 담았지 더들리와 스티븐스, 맹렬히 반발하던 브룩스도 갈증을 못이기고 파커의 피를 허겁지겁 마시게 되었어 세 사람은 파커의 피로 목을 축인 후 살을 발라 날것으로 먹었고 남은 살점은 햇볕에 말렸어 작은 보트 안은 피와 살점들로 난자했어 위 사진의 배가 실제로 1884년 미뇨넷호 선원들이 탔던 구명보트야 그로부터 4일이 지났고 남은 고기는 거의 부패한데다 피는 상했어 7월 24일 또 한명의 희생자가 필요해진 순간 기적적으로 그들 눈 앞에 독일 배 한 척이 나타났어 그들은 다행히 구조되었고 2주간을 먹고 자기만 했다고 해 체력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더들리 선장은 독일인 선장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상황을 털어놓았지 더들리는 동료를 죽이고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어 한 명을 희생해 나머지 3명을 살렸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거지 얘가 토마스 더들리다 구조된 지 3개월이 지난 후 미뇨넷호 생존자들은 본국인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미뇨넷호의 주인에게 모든걸 털어놨어 더들리는 이걸 이유로 소송 당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나봐 결국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고 그들은 분노했지 선장이었던 더들리 입장에서는 선원 대부분을 살렸기 때문에 체포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봤는데 영국 정부는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식인은 용납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라고 규정지었어 당시 영토를 확장 중이던 대영 제국은 원주민들이 야만적이라 구원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었거든 그에 대한 증거로 원주민들이 식인을 한다고 주장한거지 때문에 영국 선원이 식인을 했다는 사실은 정부 입장에선 영토 확장에 문젯거리가 되었던 셈이지 영국 정부는 선원 관습을 금지하기 위한 선례로 삼으려고 미뇨넷호 선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려고 했어 그들을 기소하기 위해 검찰은 살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브룩스를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 브룩스는 증인을 해주고 기소를 면할 수 있었지만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리처드 파커에 대한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돼 하지만 당시 여론은 선원들의 편이었지 이렇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림 1884년 11월 배심원들은 더들리와 스티븐스에게 동정적이었기때문에 무죄를 결정해 하지만 판사는 이를 무효화시키고 특별법을 이용해 자신에게 전권을 넘기도록 압력을 행사했어 결국 재판에서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어 하지만 선원들의 관습에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영국 정부는 수감 6개월만에 두 사람을 석방했어 당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더들리는 이런 말을 했대 " 이것으로 선원들의 관습을 금지시킨 줄 알겠지만 진실을 감추게 됐을 뿐이다.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관습을 따르되, 구조된 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증언을 했던 브룩스는 떠돌이 서커스단에 스카우트되었어 서커스단에서 브룩스는 식인마로 분장하고 관객들 앞에서 날고기를 씹어댔지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결국 궁핍한 삶을 살다 죽었어 불행하긴 스티븐스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당시의 충격으로 다신 배를 타지 못했고 브룩스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어 더들리는 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페스트로 사망한 최초의 호주인이 되었다고 해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 조난사고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우루과이 공군의 쌍발 터보 프로펠러기인 페어차일드 FH-227D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스텔라 마리스 대학의 럭비 선수단을 싣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향해 안데스 산맥을 거치는 항로를 비행하고 있었어 페어차일드는 칼라스코 국제공항에서 출발했지만 출발 전날인 10월 12일부터 산맥상공의 날씨로 인해 아르헨티나 멘도사 부근에 착지해 있었다고 해 이게 그 페어차일드임 왼쪽에 산티아고 보이지? 저기로 이어지는 선이 본래 예상경로이고 굵은 선은 실제로 항해한 경로, X는 추락 지점이다 추락 후 동체만 남은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하 40도의 극한 환경에서 72일간을 생존해야 했어 사고 당시 사망 12명 행불 5명으로 생존자는 총 28명이었지 구조대가 오길 기다렸지만 정작 구조대는 2주간의 수색 동안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이 죽었다고 단정지어 버려 이틀 후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찾는 구조 비행기가 지나가는걸 목격하게 돼 그 중 한 비행기가 좌 우로 흔들어대며 신호를 보냈다는데 이걸 목격한 생존자들은 구조대가 자기들을 봤다가 착각을 하지 결국 생존자 중 하나가 구조대가 곧 올거라며 그동안 모아두었던 식량 대부분을 먹어치웠어 하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어 수색대를 만들어 비행기 잔해로부터 약간의 식량을 찾았지만 그들이 모두 먹기엔 부족했지 그러던 중 탑승객이었던 의사 두 명이 식인을 하자고 주장해 생존을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고 최고의 단백질은 자신들이 매장한 시체로 섭취할 수 있다고 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먹어도 좋다며 설득해 탑승한 럭비팀의 이름이 'Old Christians'이었던 만큼 탑승객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들이었어  이들은 계기판에 몸이 끼어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조종사가 권총으로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종교적 신념으로 거절했던 아주 독실한 신자들이었던거지 거기다 이들이 꺼내 먹어야 했을 시체들은 다름 아닌 친구, 형제, 부모였다고 해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은 결국 시체에 손을 대지 구조대에 대한 희망이 점차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건장한 몇몇 생존자를 뽑아 안데스를 넘어 칠레로 구조 요청을 보내기로 했어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재차 시도하여 결국 칠레 진입에 성공해 그들은 20km나 되는 눈밭을 뚫고 지나간거지 다행히 한 농부를 발견하여 구조 요청을 하고 나머지 생존자들도 결국 구조되는데 성공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6명의 생존자들 1줄 요약 인간은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살기위해서 윤리고 나발이고 사람도 잡아먹음 끝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나에게 필요한 동기 부여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원하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취업 준비 생활이 조금 길어진다 싶더니 몇 년이 지나도 이 친구가 취업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아무리 걱정과 조언을 해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있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라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친구의 부모님도 포기하고 방치했지만, 저는 여전히 그 친구가 걱정되어 만날 때마다 ‘취직해, 취직해’라고 잔소리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는 회사에서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경위서에 감봉까지 억울하게 당했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그날 그 친구를 만났고 술에 취한 나머지 그만 이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회사 생활 왜 하는지 모르겠다. 네 팔자가 나보다 백번 낫네.” 친구는 당황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지만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너 그냥 평생 그러고 살아라. 차라리 네가 정말 부럽다.” 그런데 몇 달 후, 친구가 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심정이 변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나한테 잔소리하던 너마저 포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두렵고 무서웠어. 그래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어.”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 때, 아무런 의욕이 없을 때, 불평불만만 쌓여 갈 때, 종이 한 장 꺼내 놓고, 차분히 써 내려가세요. 소중한 사람들, 일상 속 작은 성공의 경험들, 좋았던 일, 그렇게 하나둘 적어 내려가다 보면 보일 것입니다. 내 삶에 남아있는 도전의 불씨가.. # 오늘의 명언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 조지 버나드 쇼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자연스런 그대 -1화- (개인 사진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사진 영상 작가 쿄입니다. 얼마전에 저의 2016년도의 개인 사진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글을 빙글에 쉐어했는데요. 그 글에서 1달동안 촬영한 인물들의 사진 한장씩을 소개하며 가장 처음으로 알고 또 보시고 싶은 인물을 투표받았었습니다. ㅎㅎ 그리고 오늘 가장 많은 투표를 받은 인물과 함께 촬영한 모습을 빙글 여러분들께 쉐어해 볼까합니다. 저의 2016년도 개인 사진 프로젝트의 시작이라 많이 미숙하고 어색해 보여도 이해해주세요~ ㅎㅎ 그래도 2016년! 1년동안 촬영되는 인물들도 계속해서 여러분들께 쉐어하고 소개해드릴테니 기대해주세요~ 그럼 시작합니다. -자연스런 그대- 첫번째 인물은 W.G.S. 입니다 ( 인물의 허락을 받고 촬영/올리는 거지만 보호차원에서 개인의 진짜 이름은 앞으로 이니셜로 공개할께요 ㅎㅎ) 처음 W군과 알게된건 2년전 한인 교회에서 만나게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어렸을때 부터 자라온 곳은 일본! 한국 말보다는 일본 말이 능숙하지만 부모님 두분다 한국 분이셔서 한국말은 거의 다 알아듣고 한국말도 잘 합니다. 학창시절 부터 시작된 테니스와의 인연으로 학창시절 선수 생활도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대학 생활을 하며 테니스를 생활 체육으로 꾸준하게 즐기고 있답니다. 성격은 차분하고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 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가는 인물 이라고 할까요? 알면 알수록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 것을 느낄수 있는 인물이죠. 제가 이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할때도 W군은 한번에 허락해주고 이것저것 제가 요구하는데로? ㅎㅎ 포즈와 제스처를 취해주며 촬영 시간 내내 저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 이었습니다. 촬영전에는 몰랐는데. 외형적인 부분도 사진을 찍으면서... 잘생겼다... 라고 느끼게 되는 얼굴이더군요~ ㅎㅎ 자연스런 그대 -제1화- 테니스 치는 WS 여기에서 마무리 합니다. W군이 요즘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한거 같더군요~ ㅎㅎ 여러분들이 W군의 인스타에 힘이 되어주세요~ㅎㅎ https://www.instagram.com/wonkeunsong/ 그리고 저도 인스타 하오니~ 인스타그램 있으신 분들은 같이 맞팔로우 해요 ~ www.instagram.com/kyohnam 인스타그램 아이디 : KYOHNAM 페이스북도 하오니 같이 친구해요~ ㅎㅎ https://www.facebook.com/kyo.h.nam 그리고 홈페이지도 있으니 저에대해 조금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구경와주세요~WWW.KYOH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