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jy827
3 years ago10,000+ Views
어느 날 이 나라에서 '왜'라는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단순한 계기에서 출발했다. 두 아이가 놀이터에서 투닥이며 너는 왜 그래, 니는 왜 그 모냥이야 싸우기 시작한 말이 이내 너는 외 그래, 너는 외 그 모양이냐는 말다툼으로 번졌다. 일본 담요도 왜요가 아닌 외요가 됐고 세상의 모든 왜곡은 외곡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왜 내가 사는지, 왜 너를 사랑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을 못 하게 됐다. 외? 외? 외마디 말만 반복해보지만 이 말이 왜 너는 그 길을 걷느냐는 물음으로 가달지 못했다. 왜 우린 취직해야 해, 왜 우린 결혼해야 해, 왜 우린 성공해야 해, 수많던 왜들은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한 획 모자란 외가 들어차며 이 나라는 한 자루의 옆구리가 부족한 왜로운 사람들로 넘쳐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기현상을 두고 정부 부처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지만 해결책을 찾진 못했다. 오히려 외 그렇냐는 골 아픈 의문이 잠식한 세상은 일단 열심히, 최대한 빨리 내달리는 모범을 보이고 있기에. 수뇌부 회의에선 오히려 지금의 현상을 미니멀리즘의 극치로 홍보하며 '심플, 외를 외치는 당신의 것'이란 캠페인을 기획했다. '왜'라는 말이 없어지면 그냥 살면 되지 않느냐는 단순한 논리가 들어찼다. 티비와 SNS로 확산되는 '왜'의 미니멀라이제이션은 하나의 문화 트랜드가 되어 기어코 '외의 유혹'이란 막장드라마를 양산했다. 하나 빼니 세상이 다르단 문구와 함께 세상이 왜 이렇냐고 말하는 공인은 나가리가 났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는 외칠 수 없는 비명으로 치부됐다. 그 때 한 멍청이가 입을 뗐다. 왜 우리는 왜를 외로 부르게 된 것이냐고. 그의 미련한 말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멍청이는 말을 이었다. 내가 서울대 들어와서 뽕빠지게 공부를 하곤 있는데 도대체 내가 외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외 나는 이 자리에 있는지, 외 나는 시와 노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말했다. 쏟아지는 왜에 현기증이 날 때쯤 그는 왜냐, 외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타면 어떠랴, 궁금해 하는 게 참신한 일이지. 왜 너는 공부를 하니? 외 너는 빨리 졸업해? 왜 너는 걔를 사랑하니? 외 너는 돈을 벌어야 해? 뭔 개소린가 싶어 벙 쪄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한심스런 야만어를 씨부리고 씹는다. 왜 우린 살아야 해? 외 우린 이렇게 살지? 왜 성공해야 하고 지금 내가 힘들게 버티는 일들이 외 다 내 잘못이지? 왜 너는 그게 안 궁금해? 외 우리는 숨가쁘게 뛰지? 왜 너는 그렇게 노력하고 외 너는 마음 아파야 하니? 그의 지도교수는 이내 그가 현대 문화 트랜드의 반대급부로 왜에 대한 키치 혹은 복고적 소비를 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이는 오늘날 현현하는 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보편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니 만큼 앞으로 외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말했다. 그제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아 적었다. 교수는 뿌듯해하며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라 말했다. 어느새 '왜'는 천연기념물로 등재되어 점점 멸종해가는 존재로 전락해갔다. 사람들은 왜냐는 단어를 자료화면으로 보며, 그 땐 참 피곤하게 살았지, 회상에 잠겼다. 오직 한 명의 바보만이 모두가 왠지 모르게 왜로운 방향, 세상에 대해 왜 이럴까 고민하고 고민했다. 왜라는 질문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국정원은 신상을 털어 그의 자취방을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2015.05.07 #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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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3855777 감사합니다!:-)
크으....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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