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f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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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등판 ]150624.

이것저것 둘러보다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 냐하 ㅋㅋㅋ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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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
아 느낌 좋아요 ㅎㅎ
역띠 그림감상한눈데ㅡ센스가 :) 올때마다 좋아용용
턱선 와웅!
그냥 그리고싶어서 그린 그림이 너무 고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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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역대 올림픽 메달 디자인🥇🥈🥉
☀ 2000 시드니 올림픽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부터 사용된 디자인 * 21세기 아니지만 비교하려고 넣음 ❄ 2002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 최초로 종목마다 다른 디자인의 메달 수여 (뒷면 팔 안쪽 각인이 종목별로 다름) 최초로 올림픽 비전이 메달에 새겨짐 (Light the Fire Within : 내면의 불을 밝혀라) 바위모양 형상화 ☀ 2004 아테네 올림픽 메달 디자인 변화의 기점 (하계) 🧚🏻‍♀️승리의 여신이 76년만에 일어남..! ❄ 2006 토리노 올림픽 이탈리아 피아차(광장) 모티브 메달 뒷면에 종목별 픽토그램 각인 직경이 가장 큼 (107mm) ☀ 2008 베이징 올림픽 처음으로 메달에 옥이 사용됨 - 뒷면 바탕이 옥..! 금 - 백옥, 은 - 청백옥, 동 - 청옥 ❄ 2010 밴쿠버 올림픽 원주민의 범고래 장식 형상화 - 메달 각각이 고유한 디자인 뒷면에 종목, 세부종목 각인 굴곡진 디자인으로 최초이고, 보기보다 훨씬 입체적이라고 함 ☀ 2012 런던 올림픽 뒷면 리본은 템즈강, 격자무늬는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를 상징 ❄ 2014 소치 올림픽 모자이크가 러시아 연방의 다양한 문화와 민족 상징 수작업으로 개당 18시간 걸려서 만들어짐 그 중 7개 메달엔 운석도 포함 (빅토르안이 하나 받아감) 은메달이 예쁨 ☀ 2016 리우 올림픽 친환경 소재의 메달 은, 동메달의 30%는 재활용 소재로 제작, 리본의 50%는 재활용 PET에서 추출한 소재 ...1년만에 상당수가 부식되어 반납된 메달도 있음🤷🏻‍♀️🤷🏻‍♂️ ❄ 2018 평창 올림픽 나무줄기 모티브, 한글 자음 디자인(최초의 측면 디자인) 리본은 한복 모티브로 한국 전통 직물인 갑사로 제작, 한글 눈꽃 패턴과 자수 적용 메달 케이스는 한옥의 전통 기와지붕 모티브의 원목 케이스 뒷면에 세부종목 각인 ☀ 2020 도쿄 올림픽 빛과 광채 테마 메달 측면에 종목과 경기명 각인 일본 전역에서 기증한 소형가전 (핸드폰 등)을 재활용해 메달 제작 (전부) + ☀ 하계 올림픽은 IOC에서 메달 앞면에  '파나시나이코스 스타디움 앞의 승리의 여신 니케'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앞면 디자인은 크게 다르지 않음. ❄ 동계 올림픽은 완전 개최국 재량에 맡겨서 다 개성있고 보는 재미가 있는 편임 (동계 올림픽 메달이 대체로 무거운 편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음) 내용은 IOC 사이트 참고 출처ㅣ더쿠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적처럼 인생을 바꾼 어느 무명 화가.jpg
여기서 말하는 포스터는 알폰스 무하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라고 함 1860년생 체코 출신인 알폰스 무하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 낙서 하기를 좋아했고 그런 무하를 위해 어머니는 목에 크레용을 걸어주기도 했다고 함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기도 전에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행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재능이 있었나 봄 어찌저찌 살다가 파리로 넘어갔고 파리에 화실을 차린 무하는 후원도 끊기고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 연극 의상 디자인이나 삽화 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1894년 크리스마스 직전, 인쇄소에서 일하는 친구가 무하의 화실로 찾아와 본인은 휴가를 가야 하니 대신 교정쇄 좀 봐달라 함 그렇게 크리스마스 주간에 한창 친구 대타를 뛰던 무하에게 인쇄소의 매니저도 다급하게 부탁을 하네? 새해 첫 날 붙여야 하는 포스터 주문이 들어왔는데 당장 디자이너가 무하 하나뿐이라 도움을 요청했고 무하는 그걸 또 해냄  그게 저 위의 지스몽다 포스터였던 거 이미 여러 유명 화가의 작품을 퇴짜 놓았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지만 다행히 이 무명 작가의 작업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당장 무하와 전속 계약을 맺고 싶어했고 그당시 무지하게 유명했던 사라의 공연마다 무하의 포스터가 따라 다니게 됨 ((사라는 지스몽다 포스터를 아주 소량만 인쇄해서 한정 판매 했는데 하도 사람들이 몰래 뜯어가고 포스터 붙이는 사람을 매수하는 일까지 생겨서 추가 주문 했다고 함)) 자동으로 알폰스 무하라는 사람이 홍보가 된 덕분에 요런 것들을 볼 수 있게 됨 또 예전 전시회 관련 글 찾아보니까 이즈부치 유타카 작가 고야성 작가 클램프 추혜연 작가 임주연 작가 그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무하의 작품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지 않나 싶음  출처ㅣhttps://theqoo.net/1864758327
기발한 아이디어 디자인 모음.jpg
1. 콘돔 광고 2. 도서관 벤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3. 멸종 위기 동물 보호 포스터 픽셀 수가 해당 동물의 남아 있는 개체수 ex: 판다 개체수 약 1600마리. 1600개의 픽셀로는 판다 이미지를 충분히 구현할 수 없죠. "1600은 충분한 숫자가 아닙니다." 4. 성폭력 근절 광고 서로 붙어 있는 종이 두 장을 떼면 위와 같은 사진이 나타납니다. "힘을 써야 한다면 그건 성폭행입니다." 5. 형광펜 광고 : Hightlight the Remarkable 주목받지 못 했던 역사 속 여성 주인공들을 발견하는 프로젝트 광고 시리즈 중 한 장. 하이라이트된 여성은 나사의 흑인 여성 수학자로,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주목받지 못했죠. 하지만 형광펜으로 주목도를 높입니다. 6.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광고 "쓰레기는 당신을 말합니다." 쓰레기 두 개를 같이 배치해서 단어를 조합해 냈죠. LOWLIFE(시궁창 인생), PIG(돼지), DUMB(바보), DIPSTICK(멍청이) 7. 전기를 현명하게 사용하세요. 8. 그래픽 디자이너 구함 이건 많이들 보셨을 듯 9. 현명한 공간 활용 10. 현명한 공간 활용 2 11. 백조와 오리 식당 아이디어도 좋은데 귀엽기까지! 12. 상어 도살 금지 청원 조스 포스터가 떠오르시죠.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상어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 상어잡이 배를 상어보다 더 무서운 괴물로 표현했습니다. "사람은 한 시간에 11400마리의 상어를 죽이지만 상어는 1년에 12명의 사람을 죽인다." 13. 유적지 안내판 유적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간편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14. 발로 누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 15. 멕시코의 동전 디자인 동전의 가장자리 문양을 합치면 아즈텍 달력이 나타난다! 16.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 빙산의 일각을 비닐 봉지 쓰레기로 표현했죠. PLANET OR PLASTIC? 17. 안전벨트 착용 광고 안전벨트 착용으로 사망 년도를 가렸습니다. 착용하지 않는다면...?
영화 크루엘라 모델인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러분이 아시는 그 비비안 웨스트우드 맞습니다. 영화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크루엘라(존멋) 기존 제도에 반대하거나 평범한 걸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전통을 거부하고 미래라 주장하는 모습이 누굴 많이 닮음 특히 이 장면에서 나오는 모습과 펑크 음악이 연상되는 사람이 있음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러분이 아시는 그 비비안 웨스트우드 맞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크의 퀸, 영국 패션계 대모라 불림 그럼 '펑크'가 뭐냐? 펑크는'못 쓰는 것', '폐물'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례한 말로,사회의 불공정한 기존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이를 뒤엎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1970년대 운동이었음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 관련 생애 비비안 웨스트 우드는 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사해 헤로아트스쿨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만에 그만 둠 7살 때 부터 패션에 큰 관심이 있었고, 학교를 그만 둔 후에도 혼자 종종 옷을 만들어 입고 틈틈히 벼룩시장에 팔고 그랬다고 함 이후 말콤 맥라렌과 숍을 열게 되는데 이때 락 문화와 패션에 심취하면서 그에 영향을 받은 옷들을 만들게 됨 그러다 말콤 맥라렌이 펑크 록그룹의 매니저 일을하게 되고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그들을 스타일링 하면서... 새로운 스타일링인 펑크룩을 탄생시킴 펑크룩은 기존 체제에 반발하기 때문에 굉장히 거침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계에 진출하면서 파격적인 행보와 의상으로 펑크의 퀸이라 불리며 단단히 자리매김하게 됨 디자이너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기존체제에 반발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그랬는 듯 지금도 종종 시위에 참여하시고, 그걸 표현하기도 하신다고 한다 (아마 환경 오염시키는 기업에 대한 규탄과 예술 규제에 대한 시위인 듯) 참고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비건 패션-채식주의 지향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주류 독점에 반대하신다고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트위드, 타탄 체크, 니트 트윈 세트, 클래식 테일러링 등은 여전히 가장 영국적인 패션 요소들로 고려되고 있음 같은 여자로서 참 멋진 사람인 듯 출처ㅣ우리동네목욕탕 셰일가스 개발 허가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탱크를 몰고 총리의 집에 찾아갔던 사진이 생각나네요 *_* 다시 봐도 엄청 힙하고 멋지지 않나요 ? 환경에 관련해 언제나 앞서 목소리를 내시는 모습 정말 멋져요 !
고흐를 천재화가로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
고흐. 살아생전에 자신의 그림은 한장밖에 팔지못했고 반년후에는 유일한 지지자였던 남동생이 죽어서 어떻게 봐도 거기서 '끝'이었어야 할텐데 생전에는 그냥 그런 사이였던 동생의 아내가 하숙집을 꾸리면서 고흐의 그림을 꿋꿋하게 장식하고 전시회를 열거나 하면서 서서히 '천재화가'가 완성되어갔다. 이부분이 제일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마도 생전의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에 대해 '잘모르겠다' 라는 감상말고는 없었다고 본다. 그래도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이 남긴 단 하나의 유지이자 유산'이 되었다.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여성이 있었기에 '천재화가 고흐'가 완성되었다. 고갱같은, 생전의 남편이 도움을 주고 남편의 형과도 친교가 있었던 화가들에게 협력을 거절당하면서도 요한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상한 그림이 걸린 하숙집 여주인'이 천재화가 고흐를 만들었다. 만약 그림이 많다고 버렸다면 아무도 고흐를 기억하지 못했다. 요한나는 예술도, 고흐 본인도 아닌 남편이 지닌 화상으로서의 재능과 의지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의 남편은 글러먹은 형님을 실없이 뒷바라지 한게 아니라, 진짜 천재에게 투자한 거라고 수십년에 걸쳐 증명한 것이다. 고흐를 믿는 남편을 믿는 나를 믿어보자! 너무 멋있네요 이 둘의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고흐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게 바로 사랑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