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의 미크로라욘
사진을 보자. 에스토니아 탈린에 있는 건축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으로서, 탈린 도시건축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다. 이게 무엇이냐, 바로 미크로라욘/Микрорайон이 에스토니아에서 처음 등장한 구역의 조감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좀 더 설명하자면(실제 조감에는 러시아어만 쓰여 있다), 1959년에 디자인하고 1962년에 만들었으며, 탈린의 Mustamäe 지구의 건축 계획이라 쓰여 있다. 바로 여기가 에스토니아 미크로라욘의 첫 번째 대상으로서, 이상적인 소비에트 모더니즘 건축의 출발지점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지구는 9개의 미크로라욘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중앙에 거대한 학교와 운동장을 놓고, 중앙을 중심으로 거주지역과 4-6개의 유치원, 우체국과 상점, 공중 사우나 등을 포함한 상업지구와 놀이터를 포함한 녹지가 뻗어 있다. 이 소련의 미크로라욘에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모두 걸어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미리 제조된 콘트리트(Soviet -1-464 표준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건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크로라욘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1920년대였으며, 전쟁 이후인 195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확장하는데, 이때가 마침 소련 경제 부흥기였고, 아파트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소련 당국은 여기저기 SSR에 미크로라욘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바로 에스토니아 무스타마에 지구가 등장한 것. 탈린 시 중앙은 지은지 천 년이 넘는 중세 타운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크로라욘 대상지구는 중심지로부터 좀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소련이 얼마나 이 미크로라욘에 열정적이었냐 하면, 당시 건축가들이 (중립국가들인) 핀란드나 스웨덴에 가서 배워오도록 출장을 허용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건축연맹 회원 절반이 핀란드를 다녀왔다고 한다. 핀란드 건축가들도 에스토니아를 갔었고, 결국은 영국에서 태어난 전원도시운동(Garden City movement)이 발트 국가들에도 전달됐었다. 그러나… 이 미크로라욘은 사회주의 개념이다. 그래서 인당 거주면적이 정해져 있었고(9.5 제곱미터) 대부분은 5층짜리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지만 모든 사회서비스 및 상업지구가 걸어서 500m 안에 있어야 했다. 현재의 탈린시를 생각하면 미크로라욘 개념이 더 나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인데, 올드타운 및 지금 당장 우후죽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중인 해안가 아파트단지 사이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참, 한 가지 특징은 지금도 남아 있다. 상업지구 건물들이 모두 보도블럭 안에 모여있다는 점인데, 주된 도로와 좀 떨어져 있는 형태다. 이건 서울 성수동과 매우 유사한 분위기의 탈린 핫 플레이스인 Creative City(중앙기차역 부근이다)도 마찬가지더라. 다만 내가 아직 에스토니아 가정을 방문해본 적은 없어서… 아파트가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소비에트 개념이 남아 있다면 공공 구역은 극대화되고, 개인 구역은 최소화시키는 방식일 텐데 아마도 독립 이후에는 달라졌을 듯 싶다. 결론은, 에스토니아를 비롯하여 발트 지역 국가들이 주택단지 조성에서부터 서방의 영향을 꽤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비록 구역 구분 자체는 소련의 개념인 미크로라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즉, 발트 3국이 소련 입장에서 일종의 “Soviet West”를 구성하고 있고, 그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급속도로 서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겠다. ---------- 참조 1. 사진 촬영 장소는 에스토니아 건축박물관 : https://www.arhitektuurimuuseum.ee/en/ 2. 논문은 두 가지를 참고했다. Housing Estates in the Baltic Countries 안에 있는 “Collectivist Ideals and Soviet Consumer Spaces: Mikrorayon Commercial Centres in Vilnius, Lithuania and Tallinn, Estonia” :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3-030-23392-1_14 A Soviet West: nationhood, regionalism, and empire in the annexed western borderlands :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00905992.2014.956072?journalCode=cnap20 3. 위키피디어 및 기사 무스타메 지구 도시 개발 : https://et.wikipedia.org/wiki/Mustamäe_linnaosa_linnaehituslik_kujunemine 현대 무스타메 지구의 개발 : Mustamäe uus tulemine ja jätkuvalt kõrged ehitusmahud(2021년 3월 4일): https://favorte.ee/uudised/mustamae-uus-tulemine-ja-jatkuvalt-korged-ehitusmahud 마이크로라욘 : https://en.wikipedia.org/wiki/Microdistr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