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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공간’에 대한 표현들

대체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는 얼마나 걸려? 글쎄, 아마 걸어서는 하루에 다 못 갈걸. 안나는 깜짝 놀랐다. 남쪽 도시에서는 아무리 먼 소풍이라도 걷는 데 한 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17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소설 속에서 신도시가 공간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하여) 저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소설가들이 그럴 거예요.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만의 공간에서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 보통 제 경우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려요. 드라마가 아닌 영화요. 그래서 풍경 같은 것들이나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특히 중요해요. 여행을 많이 다니려는 건, 앞서 말했듯 많은 시간을 혼자 집에서 보내니까, 보다 많은 공간적 경험을 얻기 위해서예요. 소설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상상은 작게나마 단서가 있어야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95년 신춘문예를 통해 당선되었을 당시 신도시에서 이 생활을 시작했어요. 신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신도시는 제 모든 이야기의 주요한 배경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의외로 변화를 잘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머물 곳의 변화를 쉽게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여행을 즐겨요. 삶에 탄력이 주어져야 상상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_상상북토크 http://cafe.naver.com/mhdn/83166
Q 소설 속 공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제가 얼마 전에 서촌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책을 읽어서, 또 그 근처에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옥인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동네 풍경들이 그려지는 것 같았어요. 100년 전 한옥과 빌라들, 축대와 텃밭……. 이 동네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소설의 배경으로 쓰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 소설에서는 공간이 촉발하는 계기가 중요합니다.
변화의 요구에 시달리며 가파르게 외형을 바꾸어가는 대도시의 표면과 오래된 고도가 깊숙이 품고 있는 삶의 지속적 속성 사이의 큰 낙차에 매료되었지요. 낡은 것, 잊혀진 것, 겨우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아득함과 애잔함이 은밀했고 시적이었어요. 이제 곧 사라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도처에 사라지는 것 투성이지요. 공간이든, 시간이든, 이야기든, 인물이든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사실과 허구와 사라진 것이 다 같은 허구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이 허구 속에서 내가 소설을 쓰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느끼지요. 실제로 소설은 남고 소설의 무대인 옥인 아파트는 허구가 되어 사라졌어요. 이젠 어디에도 없는 장소지요.
Q 앞의 질문과 연결해서, 작가님 소설 속에서는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공간과 장소는 소설을 쓸 때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나는 연극에 참여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무대를 알지요. 하나의 무대가 바뀌면 소품이 바뀌고 인물의 동선과 사용할 수 있는 소도구와 행동과 장식과 정서와 감각이 바뀌지요. 그리고 디테일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안에서 일어나요.
나는 인물의 내면을 공간에 표출시키고 공간의 디테일을 채집해 내면으로 투영시켜 시적인 구조를 만들지요. 나는 삶에서도 인간과 공간이 이런 식으로 침투하고 이입하며 시적 작용을 한다고 생각해요. _ 교보문고 북뉴스 인터뷰 http://cafe.naver.com/mhdn/87216
4. 긴 여행의 끝
장소에 대한 마음은 사람에 대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내 삶의 뿌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급하게 반했다가 돌연 마음이 떠나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 조금씩 애정이 스미기도 한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내가 버릴 수도 있고 버림을 받기도 하는 반면 장소는 사람을 먼저 떠나는 법이 없다. 장소에 대한 마음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마음과 얽혀 있다 하더라도, 장소의 존재감이 늘 사람의 빛과 냄새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광주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건 그래서 쉽지가 않았다. (…) 나의 연인. 나의 도시. 등을 돌리는 건 도시가 아니라 나였지만, 그렇다고 슬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_ 『어떤 날 5』 중 「나의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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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김수로왕 부인과 바보 온달은 외국인이다.
가야는 신라보다 99년 늦은 AD 42년에 건국되었습니다. 당시 김해 지역은 9명의 촌장(九干)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내가 있는 곳은 어디냐?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여 일부러 여기에 내려온 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임금을 얻으리라.” 이에 촌장과 주민들이 구지봉에 모여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구지가’ 노래를 부르며 한나절 내내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줄에 붉은 궤짝이 내려왔고 상자를 열어보니 6개의 황금알이 나왔다네요. 그중 가장 먼저 깨어 난 이가 김수로왕이 되어 금관가야를 건국했고, 나머지 5알에서 태어난 동생들이 각각 나머지 5개 가야국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뒤 김수로왕은 결혼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아홉 촌장 들에게 “귀인이 바다 건너올 것이다.”라며 맞으러 나가게 합니다. 그러자 정말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 는데, 왕이 직접 데리러 오지 않으면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자, 수로왕이 그 말이 일리가 있다며 직접 맞이하러 가니 허황옥이 “저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 입니다.”라고 밝혔다지요. 이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임시 궁궐을 마련하고 2박 3일간 지낸 후 김해로 되돌아와 알콩달콩 살며 무려 10명의 아들을 두었다는데, 태자 거등왕은 김해 김씨로서 후계를 잇게 되니 현재 대한민국 최대 가문 400만 명의 조상님이 되셨고, 두 아들은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씨가 되고, 나머지 일곱 아들은 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허황후의 인도 공주 기록에 대해 오랫동안 학계는 불교가 도래한 뒤 가문의 신성함을 강조하고자 인도에서 왔다고 윤색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2009년 서울대 의대팀이 김해 이안리 고분 인골을 분석해보니 인도 남부인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고,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대학교 조호영 교수팀에 의뢰해 김해에 있는 파사석탑 재질을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돌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진 상황입니다. 따라서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온 것은 거의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삼국유사》에서 일연 스님이 김해 호계사 파사석탑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에 “허황옥 공주가 중국 동한 건무 24년(AD 48년)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왔다. 부모의 명을 받고 바다를 건너 가야로 오려고 했는데 풍랑이 심해 되돌아오자 아버지가 석탑을 싣고 가라고 명령해 배에 실으니 곧 바다가 잔잔해져 두 달여 만에 가야까지 왔다. 탑은 모가 4면에 5층이고 돌에는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는데, 그 질이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돌이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 사실을 700여 년 뒤 다시금 현대 과학으로 입증한 것이죠. 또한 인도인인데 왜 성이 허(許)씨냐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 같은 시대 이스라엘 땅에 살던 귀족 가문 도 허(Hur)씨였어요. 말도 안 된다고요? 아뇨, 진짜에요. 영화 ‘벤허(Ben Hur)’ 보셨을텐데요. 주인공의 이름이 ‘벤’이고 성이 ‘허’씨에요. 유태인 중 ‘허’라고 불리는 가문이 있으니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인도에 허씨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같은 기록을 재해석해보면, 신라 혁거세와 마찬가지로김해 지역에 나타난 북방 철기 세력이 기존 토착 세력을 아울러 금관가야를 세웠으며, 뒤이어 인도에서 유래한 남방계 해양 세력이 도착해 두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는 ‘바보 온달’ 이야기에는 당시 고구려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고구려가 내분으로 약화되던 25대 평강왕 시절에 그의 딸,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溫達)에게 시집간 뒤 남편을 훌륭히 교육시켜 결국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고, 그후 침략한 중국 후주(後周)군과 맞서 싸워 이기고는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 출정했다가 결국 전사했다는데, 최근 일부에서는 온달이 이란 북쪽 사마르칸트에 살던 스키타이계 유목민인 소그드(Sogd)인으로서, 당시 중국을 거쳐 고구려로 귀화한 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보기엔 아리아계 백인에다가 고구려 말도 못하는 그들이 추하고 바보스러워 보였을 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당시 중국에 피난 온 소그드 왕족이 쓴 성씨가 온(溫)씨였다고 하고, 고구려 각저총 벽화 ‘씨름도’에서도 확연히 우리와 다른 서역인이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라 원성왕릉으로 알려진 괘릉의 무인상에도 서역인 모습을 한 조각상이 남아 있기에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즉,당시 평강왕으로선 귀족들의 병력 동원이 여의치 않아 왕실 직할 병력이 작다 보니 이주민 세력인 소그드인의 우두머리인 온달을 사위로 맞아 이주민 소그드인들을 직할 군사로 편입해 과감히 영토 회복 전쟁을 벌였을 거란 거지요. 그러니 평강공주는 울다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간 게 아니라 이주 외국인 온달에게 시집가라고 하니 싫어서 울었던 것은 아닐까요?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 - 데일카네기 행복론에서
카네기 행복론.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 '인간 관계론'을 읽지만, '행복론'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지인 중 한분이 최근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연히 카네기 행복론 책을 서점에서 보고 후루룩 넘겼는데 몇개 눈에 밟히는 조언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몇개 장난삼아 실천해보기 연습을 했는데... 조금 과장하면, 진짜 훨씬 삶이 행복해진 것 같긴해. 카네기가 대단한 사람은 맞긴 맞나봐."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 - 데일카네기 행복론에서 얘기하는 핵심 이야기,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였다. 원칙을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한두개만 적용시켜보자. 꾸준히. 기회 될 때 마다. 그러면 그 지인이 말한 것 처럼 조금 더 삶은 밝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 #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라. 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먼 곳의 희미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을 실행하는 일이다. '오늘'을 위해서만 충실히 생활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하라. 한번에 한 알의 모래, 한 번에 한가지 일을 하라.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활이다. # 걱정을 해결하는 마술 공식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 것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지만.) 그런 뒤에는 침착하게 그 상황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라. # 걱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걱정을 계속하게 되면 건강을 해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걱정과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단명한다.' 그냥 걱정하지 마라. # 고민의 90%는 해결하는 방법 걱정하고 있는 문제를 종이와 펜을 이용해 적어본다. 그 다음, 그 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나열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 결정한다. 그 결단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 항상 바쁘게 움직여라 온갖 즐거운 행복감이나 깊은 내면적 평화, 행복한 마비상태는 정해진 일에 몰두할 때 찾아온다. 몰두할 때, 신경이 진정되니까 말이다. 몸을 놀리지 말고 언제나 바쁘게 살아라. 이 처방이야말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 중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효험이 있다. #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말라 기억하라. 인생은 한번 뿐.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살아 있는 기간 동안 인생은 시시하게 살기는 너무 짧고 아깝다. #평균율 법칙을 따르라 내가 걱정해 온 일 가운데 90퍼센트는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 #불가피한 일은 그냥 받아들여라 불가피한 일과 싸우는 것을 그만둘 때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에너지는 우리에게 더 풍부한 인생을 창조하게 만든다. 인간이란, 불가피한 일과 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생활을 창조할 수 있는 감정과 활력까지 갖지는 못한다. 유도사범들은 '버드나무처럼 휘어져라. 참나무같이 저항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 나는 이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글구는 마지막에 나온 '불가피한 일은 그냥 받아들여라'다. 실제로 나도 걱정하고 있을 때는 생산적인 다른 것을 하나도 못한다. 거기에 내 모든 정신이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걱정'은 '창조'에 정확히 반대되는 말 같다. 걱정은 과거에 묶이는 거고 창조는 현재에 집중해 미래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니.. 새로운 일을 추구하거나 창의적인 마인드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거, 좋아하는 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바보처럼 잊어버리는게 생산성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 같다. ※ 데일카네기 행복론 Part 2 '평화롭고 행복한 정신 상태를 기르는 7가지 방법'은 여기에.. http://www.vingle.net/posts/408218
#10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 번째 카드 (+ 글씨 잘쓰는 꿀팁)
안녕하세요 :) 필사모임 쓸모있씀이 벌써 열번째 카드를 맞았습니다!!! 👏 무사히 열 번째 카드까지 오게되어 뿌듯해요. 처음 시작할 땐 그냥 호기롭게 시작했었는데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네요 ㅎㅎ 이번 카드도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참여 못하신 분들도 이번 카드에는 댓글 한번 남겨주고 가세요 😊 오늘은 좋은 문장 대신에, 글씨를 잘 쓰는 법을 소개해볼까 해요. 저도 어디서 꿀리지않는 악필인지라 ㅎㅎ 악필 교정에 관심이 많은데요. 글씨 교정하는 꿀팁을 찾아보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많은 유튜버분들의 강의를 찾아봤는데요. 모두 공통된 팁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정리를 잘해주신 유튜버 두분의 영상을 소개해드릴게요. 우리 같이 예쁜 글씨로 필사 해봐요 ~! 첫번째로 유튜버 '샒의 삶' 님 1. 모눈연습장 활용 글씨의 여백과 간격을 맞추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그걸 맞추는데에 모눈연습장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칸에 맞춰서 일정한 간격으로 쓰는 것을 추천했어요! 2. 자음, 모음 통일감 있게 쓰기. 사람마다 글씨체 스타일이 있는데, 어떤 글씨체건 중요한건 통일감 이라고 해요. 정자체면 자음 모음 모두 정자로, 흘림체면 모두 흘리게 쓰는 게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상황에 따라 여러 굵기, 색 활용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면? 제목, 내용에 따라 굵기와 색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추천해주셨어요! 이건 다이어리를 쓸 때 기준이긴 하지만, 필사를 할 때도 중요한 단어는 더 굵게 쓴다던가 제목은 다른 색으로 쓴다든가 한다면 보기에는 더 좋겠죠?!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영상도 첨부할게요! 두번째는 '나인'이라는 글씨체로 유명하신 유튜버의 영상이에요! 마찬가지로 원본 영상 함께 첨부할게요 :) 너무 좋은 강의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1. 모눈연습장 활용 이 분도 마찬가지로 모눈연습장을 추천해주셨어요. 글씨크기, 간격 맞추기 어려운 분들에게 추천! 2. 핵심은 글씨의 높이 / 크기 / 간격 이 세가지만 일정하게 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아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자세한 설명은 바로 아래로! 1. 높이 글씨의 높이를 일정하게 해야해요! 그러니까 세로 길이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글씨를 평행선에 가둘 수 있도록! 2. 크기 글자 하나하나의 크기를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해요. 11pt 로 쓰던 글씨는 그대로 11pt로 써야지, 한글자는 11pt, 그 다음 글자는 12pt 이런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말! 3. 간격 마지막은 간격인데요! 간격에도 여러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해주셨습니다. 3-1. 띄어쓰기 간격 글자 간격이 일정하듯, 띄어쓰기 간격도 일정하게 쓰도록 주의! 3-2. 자음, 모음 간격 이거 보면 정말 글씨 잘쓰시는 분들은 여러 부분을 신경써서 정성들여 쓴다는게 느껴져요 😭 음절 하나하나의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하듯, 음소 하나하나의 간격도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말이죠! 어렵네요 😂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3-3. 글자 간격 자간이라고도 하죠! 넓은 것 <<< 좁은 것 이 더 정갈해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이 역시 일정해야 하고요! 4. 이것만은 절대금지! 마지막으로 설명해주신 절대 하면 안되는 세가지입니다. 1. 겹쳐서 쓰기 2. 끊어서 쓰기 3. 연속해서 쓰기 인데요! 놀랍게도 저는 세가지를 모두 하고 있었어요 하하 예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제 글씨라서요 푸하하 이거 완전 제 글씨체 같은걸요? 이렇게 보니 제가 왜 악필이었는지, 제 글씨가 왜 못나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영상으로 보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영상으로 보면 더 이해가 쏙쏙된답니다.ㅎㅎ 이 자료는 오로지 두분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랍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신 샒님과 나인님 감사합니다!!! : ) 오늘의 문장은 간단하게 윤동주의 <서시>를 놓고갈게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 카드의 댓글로 필사사진 달아주세요!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참여하지 못하신분들도 오늘은 꼬옥~! 댓글 기다릴게요!!! 고럼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 신규 참여신청👇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님들..'코즈믹 호러'라고 들어봤어..?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말 그대로 해석하면 '우주적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ㅇㅇ 즉, 미지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다루는 호러물을 말하지!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미지의 외계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가하는 공포를 다루는 장르라고 하징 벌써 오줌 찍... 코즈믹 호러의 핵심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야.. ㅎㄷㄷ 거대 괴수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것 like 신, 운명, 죽음, 시간, 행성, 우주, 심해 등등의 존재를 보고 느끼는 공포지 예를 들어볼까? 영화 '그래비티'에서 우주로 튕겨나간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압박감도 코즈믹 호러라고 할 수 있어 인간은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존재잖아..?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다구 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아득할 만큼 거대한 존재와 현상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이 사무치는 그 순간들도 코즈믹 호러의 범주 안에 들 수 있어. (+알 수 없는 매개체에게 느끼는 미지의 공포심도 포함) ㅇr.. 좃댓다..... 디스토피아st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코스믹 호러 쪽에 분명 관심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좀 더 하드코어 하긴 하지만 (시무룩) 아,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 엥? 그럼 디스토피아, 괴수물이랑 코스믹 호러는 뭔 차이야? 나의 짧은 지식으로 설명해보자면... 작품의 결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 인류가 초월적 존재(괴수, 현상)을 극복 해냈느냐? 자자, 예를 들어보자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를 보면, 그는 모든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면서 전 인류 아니 우주상의 모든 존재의 반을 싸그리 조사버릴 정도로 초월적인 힘을 가지게 되지! 히어로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ㅃ2...☆하게 되지만 이는 코스믹 호러가 될 수 없어 ㅇㅇ 결국 히어로들이 이기게 되니까. 힝.... 노쓰.. 똑땅헤... 코스믹 호러는 대체로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어.. 햄보칼 수 업어.....ㅠ 설령 모든 사건이 해결된 거처럼 보여도 끝까지 공포, 파멸의 근원은 여전하다던가, 살아남더라도 미쳐버리거나 자살해버리던가.. 끔살은 기본... 보통 코스믹 호러작품은 극도의 찝찝함을 남기는 경우로 마감하는 게 정석이라고 해.. 영화 '미스트'가 떠오르지 않아? (입틀막) 미스트 또한 코스믹 호러 장르 중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어! 등장인물들이 뭐 어찌저찌해서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뭐 운이 좋아서 살아 남았을 뿐... 사건을 파멸로 이끄는 공포의 존재와 근원은 여전히 남아있는채 막을 내리지... 우주적인 존재나 괴물들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격퇴되는 대상으로 묘사된다면 그건 코스믹 호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돼! (간단) 딱 봐도 인간따위에게 지지 않게 생기셨잖아.... 코스믹 호러는 상당히 오래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작품은 적은 편이라고 해. (이 장르의 선구자이며 본격적으로 써먹고 유행시킨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슨상님은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크툴루 신화에 대한 작품을 연재했어) 초월적 존재의 으마무시~한 스케일을 묘사하면서 그것에게 무차별적으로 짓밟히는 필멸자의 극한의 공포와 절망을 묘사하는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나무위키가 말해주넹 쿄쿄 어지간한 필력과 능력치로 비벼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이뜻이지 ㅠ https://youtu.be/8OTO7Rqln9Q 코즈믹 호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 한글자막 흐에 ㅠ 썸넬 이미지 극혐이지만 코스믹 호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봐볼만한 영상이라 첨부할게! 마지막으로 코스믹 호러와 연관이 있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 몇 편을 추천할게 ㅇㅇ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 한 두 편 봐보면 아... 이것이... 하는 늬낌이 퐉! 올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미스트 미스트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거대한 괴물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코스믹 호러 작품 ㅠ 안개는 러브크래프트식 코즈믹 호러에서 절망감을 못 박게 하는 필수품 중 하나라고 해 원작 소설의 엔딩을 완.쥬.늬. 뒤틀어버린 충격적 결말 때문에 개봉 당시 호불호가 크게 갈렸지만!!! 지금은 상식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세계와 맞닥뜨린 인간의 공포와 절망을 잘 그려낸 코스믹 호러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어 결말 후폭풍이 넘 쎄섴ㅋㅋㅋㅋㅋ 인생 최악의 영화라고 평하는 사람도 많궁..ㅠ 2. 서던리치 : 소멸의 땅 제프 밴더미어의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엑스카미나를 연출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SF 호러 영화야! 넷플릭스가 코스믹 호러 작품을 뿜뿜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유가 뭔진 모르겠엌ㅋㅋㅋㅋㅋ 갑자기 나타나 생물을 왜곡시키는 미지의 공간인 쉬머에 들어간 탐사대의 일을 그린 작품인데 비주얼 쇼크 ㅇㅈㅇㅈ 쌉ㅇㅈ 갠적으로 첨엔 이게 뭔 ㄱ ㅔ~~소리야앗!! 하면서 봤는데 한번 더 보면 왘 ㅆㅂ... 하고 보게되는 작품! 기과함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작품=33 3. 버드박스 미지의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 채 자살한다. 세상이 망하고 5년 후. 두 눈을 가리고 세상을 멸망시킨 존재가 활보하는 지옥과도 같은 집 밖으로 나선 멜로리. 멜로리 밖에 모르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일말의 확신조차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희망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과 아이들. 버드 박스에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등장하지 않아! 그러나 한 장면에서 고딕풍의 그림을 통해 그들의 모습이 암시되긴 허지.. 이 영화는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의 부름'과 많이 닮아있다고 해,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도! 흠,,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 중 가장 순한맛이라 첨으로 코즈믹 호러에 도전한다면 추천할게 (씨익) 4. 이벤트 호라이즌 사라진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떠난 구조팀의 이야기. 러브크래프트의 많은 소설처럼 이 영화는 우주 너머에 있는 공포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감당할수 없는 공포로 미쳐가는 구조팀의 모습이 압권이야......ㅎㄷㄷ 오래된 작품이지만 쫄깃함은 진짜 역대급...ㅇㅈ 그런데 영화 중반에 '저 세상'을 보여주는 장며니 너~~~~~~~~~무 잔인해서 영화사가 액기스 30분 가량을 날려버렸다고 해.. ㅠ 유튜브에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있긴 한데... 쨋든 아깝... 5. 매드니스 ‘서터 케인’이라는 유명 소설가가 <광염 속으로>라는 원고를 탈고 후 실종된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그를 찾게 된 사설탐정 ‘존 트렌트’는 케인이 어디로 갔는지 실마리를 얻기 위해 그의 소설을 탐독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홉스의 끝’이라는 마을을 수상히 여긴 그는 케인과 절친했던 편집자 ‘린다 스타일스’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고, 마치 소설 속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마을과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기괴한 광기에 휘말리게 된다. 거의 뭐 급행열차를 타고 속절없이 절망이라는 역을 향해 치닫는 전개와 이 거슨...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극한의 연출로 ‘러브 크래프트’ 스타일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매드니스! 이것도 1995년도에 개봉한 고전작이지만 존잼이야.. 보고 있는 나까지 좀 미쳐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갓띵작 붐업! 붐업! (뭔가 줄거리가 길어지고 설명이 짧아지는 기분이라면.. 맞아.. 슬슬 쓰기 귀찮아짐) 6.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총 5편이 개봉된 호러 영화 시리즈. 우연히, 혹은 자력으로 재앙을 피한 사람들이 결국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죽음'이라는 현상을 다룬 데스티네이션! 옛날에는 그냥 단순한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현상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인간을 다뤘다는 점에서 아주 신선한 코즈믹 호러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지 큐큥 7. 캐빈 인 더 우즈 5명의 젊은 남녀가 시골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숲 속 낡은 오두막에 자리 잡은 이들은 지하실에서 신비롭고 무서운 골동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상한 주문을 읽어서 좀비를 불러낸 것을 시작으로 온갖 괴물들이 일행을 덮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오두막 밑에는 먼 옛날부터 고대신에게 인신 공양을 해온 거대 조직이 숨어 있었고, 주인공들은 공양을 위해 유인당한 미끼였던 것. 호러 영화를 자주 보고 즐긴 공포마니아라면 한번쯤 봤을만한 크리처와 살인마, 초자연적 존재들이 우당탕탕 몰아치는 영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뻔하다 싶은 클리셰들이 모두 비틀어지는 것도 또 다른 재미ㅇㅇ 개인적으로 얘도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닥추 + 그 외 완전 붐업까지는 아니지만 꽤 괜찮은 코즈믹 호러 무비 추천이얌 1. 트라이앵글 2. 에이리언 3.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4. 클로버 필드 5. 그래비티 6. 러브, 데스 + 로봇: '독수리자리 너머' 에피소드 7. 사일런트 힐 분명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는 잘 모르지만 이런 '미지의 존재'가 주는 위압감과 공포를 즐길줄 아는 챔피언들을 위해 주절주절 적어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장르는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눈치) 나만 좋아하는게 아니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큼큼.. 암튼 뭐 마무리는 대충 하련다. 혹시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잠재능력 200% 올려주는 10가지 비법 - Part 1
우리나라 유명한 뇌과학자 중 한분인 이시형 박사..님의 글을 종종 찾아보는 편인데요, 이건 꼭 공유해야겠다..라는 저도 모를 사명감에 주말에 열심히 적어봐요 빙글에 공유하면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배운 점을 열심히 적게 되더라고요 :-) 보통 더 멋진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를 포함 >-<) 그런 면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에요.!! 길지만, 꼭 ! 끝까지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실거라 확신합니다. --- 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스트레스가 줄고, 의욕이 생기며, 성과가 높아진다. 당신의 뇌를 트레이닝해야 한다. 거창한 훈련이나 화학 요법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습관들이다 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감동'이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숨이 멎을 정도의 감동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뇌를 젊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는 각종 IT기기의 짜릿함에 재미들려 흥미를 느낀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때 뇌의 '전두엽'부분은 침묵하고 있다. 이제부터, 아주 작은 실천으로 잠들어 있는 전두엽의 가능성을 깨워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금부터 설명할 전두엽 10계명은 뇌를 젊게 유지하고,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핵심 비결이다. 1.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라. 낙관적인 사람은 하찮은 일에도 감동소포가 잘 터지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둔하다. 우울증 환자는 늘 울기만 할 것 같지만 실은 잘 울지 못한다. 그래서 우울증이다. 뇌의 기능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치료가 되어 간다는 증거다. 눈물이 나기까지의 뇌 시스템을 보면 이해가 쉽다. 감동적인 영화라도 쉽게 눈물이 나지 않는다. 얼마간의 뜸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명감독이 하는 일이다. 울기 직전엔 긴장과 스트레스가 오고, 실제로 교감 신경이 흥분 된다. 울고 싶은 심경이 쌓여 가면 전두전야에 혈류가 증가하면서 공감 뇌 기능이 활성화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왈칵 눈물이 난다. 순간 교감에서 부교감으로 스위치가 일어나며 치유 효과가 난다. 벅찬 감동은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잔잔한 감동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삶에 대한 환희, 사는 맛, 멋, 낭만, 보람, 잔잔항 행복 등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감동 없는 삶이 어찌 인생이라' 아인슈타인이 실제 남긴 명언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보자.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 생활의 팁 - 거울 속 나에게 칭찬을 해주자 '나 안돼' '나 싫어' '짜증나'라는 생각이 들거든 거울 앞으로 가라. 그리고 소리를 내어 자기 칭찬을 해보자 (소리를 내는게 중요) "넌 행복해, 넌 예쁘게 생겼어, 넌 진솔하고 멋진 사람이야"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차츰 익숙해진다. 그러다보면 진짜 그런 것처럼 느껴지고 만족스럽고 행복해진다. "넌 안돼" "내가 싫어" 이게 인간의 한계를 만든다. 오랜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이다. 2. 일단 시작해보는 거다 연구에 의하면 긍정적 생각보다 부정적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세상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아서다. 고인 몰이 썩듯이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건 당연한거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움직이고 활동을 해야 바람이 일고 온몸에 기의 흐름이 일렁인다. 집에만 갇혀 있고, 멍하게 있으면 우울함이 자연스럽게 기어들어온다. 이건 과학적인 실험결과다. 구상이나 기획을 해도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생각만 하면 안 되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위축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펴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만다. 이럴 때 처방은 간단. 일단 생각을 접고 해보자. 엉성해도 좋다. 실수가 있어도 좋다. 일단 도전이 시작되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게 더 많아진다. 대뇌에 작업 흥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기 싫던 마음이 언제 들었냐는 듯 나도 모르게 일에 빠져들게 된다. 뭔가를 시작하게 되면 잠잠하던 뇌 회로에 흐름이 일어나면서 가벼운 흥분이 온다. 이 상태에 접어들면 부정보다는 긍정이, 비관보다는 낙관이 더 많아진다. 이게 대뇌의 본성이다.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가벼운 기대감, 흥분을 뇌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컬럼을 쓰든 연설을 하든 준비가 엉성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면 술술 풀려나가 정말 멋진 글이, 연설이 된다. 무슨 일이든 겁 없이 도전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도전한다고 물론 다 되진 않는다. 하지만 도전하고 움직이는 이상 뇌에 작업 흥분이 일고 새로운 회로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이게 우리 뇌를 신선한 활력으로 넘치게 하고 생기와 의욕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곧장 시작하라. 우리 뇌는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게으름을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적극적 의지를 준다. 시작하라. 성패는 다음이다. 이것만으로 축복이고, 자신의 행복이다. ● 생활의 팁 - 못생긴 스타들의 인기비결 '저렇게 생겨도 스타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적 있을거에요. 하지만 잘 보세요. 저렇게 생겼기에 스타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약점이나 결점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것을 소재로 멋진 유머까지 만들어 냅니다. '못생겨서 미안합니다' 작고한 이주일씨 성공비결입니다. 자신을 생긴대로,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털어놓으세요. 당신 주위에는 웃음이 터지고 사람이 모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솔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3. 아침 1시간이 운명을 가른다 전두엽 관리의 열쇠는 규칙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부지런해야 한다. 성공한 정신 노동자는 예외 없이 아침형 인간이 많다. 우선 효율성 측면에서 아침 1시간은 저녁 2시간에 필적한다. 1시간만 일찍 일어나도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허둥대지 않고, 또 운동이나 독서를 할 수 있고, 아침 식사에서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으며,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또 1시간을 버는 것이다. 매일 아침에 책을 1~2시간만 본다고 하더라도 1년에 100권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때 영어공부를 꾸준히만 하면, 영어 실력은 남달리 발전해 있을 것이다. 아침 1시간이 당신의 운명을 바꾼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침에 써야할 기획서, 보고서, 컬럼 등을 잠들기 전 대충 머릿속에 정리해 두면 정말이지 아침이 기다려진다. 가벼운 흥분이 인다. 자는 사이 생각해 둔것들이 요약, 정리, 편집되어 아침에 일어나면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숙면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이다.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좋다. 아침이 기다려지게 하라. 맛있는 커피, 즐거운 산택, 읽다 덮어둔 책, 내일 아침 새롭게 해볼 것들, 좋은 습관, 운동, 아이들과의 대화 등 아침이 기다려질 거리를 만들어라. (이시형박사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아침 5시 클럽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 하루 밤샘을 해 본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컨디션이 엉망이다. 리듬이 완전히 난조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루의 생활 리듬을 일정하게 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밤 10~11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늦어도 밤 12시를 넘기면 안된다. 사람이 죽는 것도 이 시간대가 가장 많다. 어쩌다 취침 시간이 늦더라도 기상 시간만은 일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걸 기점으로 해서 세로토닌의 조절 기능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 생활의 팁 - 짧고 깊은 수면을 위한 습관 1) 저녁에 워킹 30분 하기 2) 더운물로 10분간 목욕하기 3) 밤 10~11시에 잠들기 4) 아침 5~6시에 기상하기 5) 점심식사 후 낮잠 20분 자기 6) 오후 6시~7시에 저녁 식사하기 (더 늦게 하지 않기) 사흘만 해보세요. 훨씬 개운해지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4. 책과 함께 있으면 행운이 따라온다. 가끔 난처한 청을 받게 된다. 영향을 끼친 책을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영향을 끼친 하나의 책이 있진 않다. 매일 먹는 밥과 같은게 책인데, 무슨 밥이 따로 있으며 무슨 책이 따로 있나. 그냥 좋은게 밥이고, 책이다. 어떤 책이든 가리지 말고 일단 펼쳐라. 책의 주인공, 저자와 함께 걸어라. 그러다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럴 땐 바로 적어야 한다. 선 채로도 좋고, 길가 벤치에도 좋다 책과 메모장, 펜은 필수. 언데 어디서든 펼쳐 들 수 있어야 한다. 생각에 빠져 아주 엉뚱한 길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이게 지적즐거움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내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진다. 잠잠하던 뇌에 지적회로가 생기는 순간이다. 정말 기분이 상큼하다. 이게 젊음과 건강의 비결이다. 지적 자극이 주어지는 한 뇌는 결코 늙지 않늗나. 수많은 뇌 과학 실험으로 실증된 것이다. 잔잔한 뇌에 지적 자극과 지적 쾌감이 가해지면 그 파장이 조용히 온 뇌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디어가 잠재의식의 기억 창고에서 줄줄이 올라온다. 따로따로 있던 것들이 한데 이어져 기막힌 조합을 일구어 낸다. 와! 이런 순간을 뇌 과학에서는 스파크, 플래시라고 부른다. 이런 순간은 조용히 있을 때도 오지만, 책과 함께 있으면 이런 순간이 훨씬 더 쉽게,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다. ● 생활의 팁 - 책을 아무렇게나 여기 저기 놓아두자. 기분이 좋지 않거나 뭔가 필요할 때 그냥 책장에 가서 아무책이나 뒤적뒤적하고 쳐다보자 아무책이나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적당한 곳에서 펼쳐라. 여기저기 몇장을 넘기면서 기웃거려 보라.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책 속의 메시지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주고, 기분도 다르게 만들어 준다. 어떻게 이런일이? 책의 구절이 머릿속에 스파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5. 당사자 의식을 가져라 '여기는 내가 주인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는 확고한 당사자 의식이 중요하다. 떨어진 휴지는 나그네에겐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해결책을 강구하랴. 창조는 대단한 게 아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출발한다. 주부가 찌개를 끓일 때도 나만의 맛을 창조하려 하고, 말단 직원이 문서를 복사할 때도 어떻게 하면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머리를 써야 한다. 이런 지적 자극이 계속 되는 한 머리는 늙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와 상관없이 뇌는 쓰면 쓸수록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가 증식된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다. ● 생활의 팁 - 복싱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이런 명언을 했다. 링의 주인은 나다. 누구도 얼씬거리면 안된다. 이게 바로 KO펀치의 비결, 힘이다. 즉, 내가 해내야 한다. 이건 내가 한다. 내가 해보겠다라는 주인, 당사자 의식이 해내는데 실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art 2는 여기에서 http://www.vingle.net/posts/443806 <출처 : 이시형 박사, 세로토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