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D.M.C.
Run-D.M.C.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의 기본을 만든 선구자)
맴버로는 왼쪽에서 부터 조지프 런 시먼스. 대릴 DMC 맥대니얼스, 故 Jam Master Jay 입니다. 미국힙합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그룹이었으며, 조지프 시먼스는 매니저로 일하던 형 러셀 시먼스를 따라 커티스 블로의 공연무대에 DJ로 서면서 음악을 자신의 길로 삼게 되었습니다. 살고있던 뉴욕 퀸스의 동네 Hollis의 친구 맥대니얼스와 미젤을 끌어들여 Run DMC를 결성하고 형의 연줄을 통해 레코드계약도 얻어냅니다. 2004년 롤링 스톤지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뮤지션' 에서 48위에 오르게 되고 2009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 Run–D.M.C. (1984) (DJ.DOC가 생각나는건 아마도 기분탓 일꺼에요....)
이렇게 만든 싱글 'It's Like That'과 앨범 'Run-D.M.C.'는 기존의 올드스쿨힙합과는 다른 단순하고 강렬한 비트위에 강하게 끊어 내뱉는 소리지르는듯한 랩으로 힙합의 새로운 조류, 뉴스쿨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King of Rock (1985)
뒤이은 2집 'King Of Rock'도 하드록 기타를 앞세운 타이틀트랙과 댄스홀/레게를 랩에 도입한 'Roots, Rap, Reggae'등을 통해 연속 히트를 얻어내게 됩니다. ▲ Raising Hell (1986)
▲ Aerosmith
Permanent Vacation (1987) - Pump (1989) - Get a Grip (1993) - 아마게돈 O.S.T (1997)
러셀 시먼스와 데프잼 레코드를 공동 창립한 릭 루빈을 프로듀서로 맞아 제작한 1986년의 3집 "Raising Hell"로 Run DMC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첫 싱글인 'Walk This Way'는 원작자인 Aerosmith의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직접 참여하여 랩과 록이라는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교류-융합을 이뤄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차트에서의 성공으로 힙합이라는 신생장르가 미국 팝의 메인스트림에 안착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힙합의 전성기 "골든에라"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Aerosmith도 기나긴 부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팬을 얻었으며, 'Permanent Vacation' - 'Pump' - 'Get A Grip' -'아마게돈 주제가' 로 이어지는 10년의 전성기를 맞게 해주었습니다. 'Walk This Way'의 랩록퓨전은 퍼블릭 에너미+앤스랙스, 페이스 노 모어의 랩메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펑키/얼터너티브, RATM, 콘, 림프 비즈킷의 뉴메탈로 이어지게 됩니다. ▲ Tougher Than Leather (1988) / Back from Hell (1990)
이후 시대의 조류에 맞게 업데이트한 4집으로 성공을 이어갔지만, 뉴 잭 스윙과 R&B를 도입한 5집이 상업적 비평적으로 실패하고 멤버들의 알콜 약물문제과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휴식에 들어 가게 됩니다. 이후 1993년 Pete Rock & CL Smooth, Q-Tip, EPMD, Naughty by Nature, 퍼블릭 에너미의 프로듀서 봄 스쿼드, 크리스 크로스를 성공시킨 저메인 듀프리,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라는 호화 참여진을 내세운 "Down With The King"앨범으로 컴백에 성공합니다. ▲ Crown Royal (2001)
이후 런은 목사로, DMC는 가정으로, 잼마스터 제이는 후배양성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오랜 침묵후 다시 스튜디오에 모였지만 이번에는 앨범의 방향성을 놓고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런은 당시 유행하던 뉴메탈에 맞춰 강하고 록적인 사운드의 유지를 원했지만 DMC는 좀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싱어송라이터'스러운 변화를 원했습니다. 회사가 런의 손을 들어주면서 DMC는 아예 앨범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완성된 앨범은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 키드 록, Nas 등의 호화게스트를 자랑했지만 'DMC와 잼마스터 제이가 없는, 시대를 따라잡기 급급한 이벤트 앨범'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망했습니다. 에어로스미스와 함께한 합동투어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런마저 음악활동에 염증을 느끼며 나가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30일, 퀸스의 자기 스튜디오에서 잼-마스터 제이가 총격을 입고 사망하면서 Run D.M.C.는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일단 이후의 모든 랩/힙합음악을 하는 사람은 Run D.M.C.의 영향아래에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기존의 올드 스쿨 힙합이 소울이나 펑키 음악의 반주나 브레이크를 잘라 그 위에 랩을 얹었다면 이들은 직접 신시사이저 기본 루프를 만들고 드럼머신으로 비트를 찍은 다음 턴테이블로 스크래치를 넣는 힙합의 기본 작법을 완성시켰습니다.
패션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존의 경우 펑키그룹의 의상을 그대로 들고와 색색의 반짝이옷을 입었다면 이들은 거리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디다스 체육복에 검은 중절모, 끈없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유행시켰으며, 이후에는 티셔츠, 청바지, 가죽 재킷, 커다란 금목걸이 라는 힙합의 기본 패션을 확립했습니다. 무대에서도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Afrika Bambaataa 등의 대규모 편성에서 벗어나 "턴테이블 2대와 마이크"를 잡은 "1DJ & 2MC"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골드, 플래티넘, 멀티플래티넘 앨범, 최초의 MTV등장, 롤링스톤즈 표지등장, 최초의 거대기업 후원(아디다스) 등 힙합음악사에서 수많은 '최초'를 달성합니다. 잼마스터 제이는 50cent를 언더에서 처음으로 발굴하였습니다. (50 센트를 Eminem이 발견 하고 키워준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알겠지만 Eminem이 발굴한건 50센트가 총 맞은 후에 얘기임) 처음으로 랩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잼 마스터 제이는 박자 타는 법부터 마디 수 세는 법, 훅 쓰는 법부터 녹음하는 법까지 다 알려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그의 첫 앨범을 기획하기도 하였으며 전반적으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50 센트가 썼던 곡 중 “Ghetto Qu’ran”이라는 곡이 발단이 되어서 잼 마스터 제이가 죽었다고 합니다만, 결국 50 센트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기도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흐름에 기반한 짐작일 뿐입니다. 물론 그 짐작이 가지는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말이죠... 런의 형 러셀 시먼스는 데프잼의 공동창립자로 힙합계 최고의 부자중 한 사람이며 아들 대니얼도 '디지(Diggy)'라는 예명으로 래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 You Be Illin' ("Raising Hell" 1986)
▲ Run D.M.C. - The Kings (D-Generation X)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코미디프로 쇼 비디오 쟈키의 코너 '씨커먼스'에서 이들의
'You Be Illin''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씨커먼스를 아시는 분들은 나이가...ㅋㅋㅋ)
레슬링팬들에게는 DX의 테마곡을 랩으로 바꾼 The Kings'로 알려져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