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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참견] ㄹㅇ 보는 내가 홧병날 것 같은 어제자 연애의참견
이 에이스가 바로 고민녀 ㅇㅇ 이 고민녀는 사내비밀연애 중이었음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성공해서 신난 분위기에 갑자기 새로운 직원이 들어옴 방금 막 들어온 직원한테 공들였던 프로젝트를 넘기라는 팀장..;; 말도 안된다고 얘기했지만 팀장은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나 ;;;;; 결국 고민녀는 퇴사를 결정함 이직해보려 하지만 다 티오가 없는 상태 ㅠㅠ 그냥 여유를 즐기기로 하고 남친이랑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중이었음 요즘 회사에서 일 못하는 낙하산이랑 일하려니까 힘들다는 남친 그런 남친한테 고민녀는 필요할 때 얘기하라며 도와준다고 함 며칠 뒤 고민녀는 취업소식을 듣게 되었음 친구랑 통화중이었는데 갑자기 남친한테 전화 옴 그러더니 자기 좀 도와달라는 남친 여친은 또 그걸 진짜로 도와줌......하........ 코피까지 흘려가면서 남친 프로젝트 도와주는 중;; 근데 남친은 자네............ 남친 프로젝트 성공 소식에 홈파티 하자면서 밥 차려놓고 남친 기다리는 중인데 남친이 안옴 ... 남친한테 차를 빌려줬는데 갑자기 차 빼달라면서 전화가 옴 일단 달려가긴 했는데 회식하는 것 같아서 못 들어가고 망설이는 고민녀... 근데 하필 그 낙하산을 만나버림 ;; 이미 사내 연애 하는 거 다 알고 있었던 직원.. 그러더니 갑자기 내조 어쩌구 하면서 덕분에 도움 많이 됐다고 함..;; 남친 쟤한테 프로젝트 뺏겼냐고.. 그러더니 당연히 당신들은 자길 도와야한대 ;; 그러더니 이 바닥에서 아웃 시킨다면서 협박함 ; 해명할 기회를 줬더니 미안하다고 하는 남친 참내...;;;;; 그 여자 빽으로 자기도 같이 올라가고 싶다는 남친 ;;; 그 와중에 이직하기로 했던 회사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서 이직할 수 없게 됐음.. 그 낙하산이 소문낸 것 같아서 알아보러 회사 찾아감 ?????????????????????? 알고 보니 남친이 그 소문 내달라고 한 거였음 ;;; 진짜 이거 보고 홧병 올 뻔 했음 하.. 진짜 욕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거 겨우 참았다
[실.따 - 5월10일] 박시후 사건 종결! 피해여성 고소 취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건이었죠, 박시후의 성폭행 사건이 피해여성의 고소 취하로 3개월 여만에 종결되었습니다! 10일 오전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피해여성은 9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박시후와 그의 후배 연기자 K씨에 대한 소를 취하했다고 합니다. 아직 소를 급작스럽게 취하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고, 박시후의 변호를 맡은 법률법인 푸르메 측도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박시후는 '청담동 앨리스'에서의 인기를 몰아 한류스타로 발돋움 하려는 중 갑작스럽게 연예인 지망생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입었었죠. 수사 과정에서 지인들의 카톡 공개, 거짓말 탐지기 수사 등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과연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가에 대하여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었지만 박시후가 연예계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입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폭행 관련 사건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물복용, 접대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연예인들이 1년 여의 기간이 지난 후 아무렇지도 않게 복귀한 것을 예로 들며 박시후의 내년 복귀를 벌써부터 점치는 이들도 보이네요.
[연애의참견] 아침드라마급 막장 전개의 끝을 보여준 연참..jpg
와 그 와중에 다른 여자도 있음....; ;;;;;;;;;;;;;;;;;;;;;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가 있지?;; 저렇게 파혼당한 후 다시는 연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고민녀 고민녀가 힘들 때마다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놨던 떡볶이집 사장님 파혼한 남친이 고민녀한테 폭력 쓰려고 할 때 도와준게 바로 이 사장님이었음 그 계기로 둘이 친해지게 됨 그치,,, 그 놈이 그놈이지...ㅠ; 고민녀는 자기가 사장님한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음 바로 사장님한테 고민함 거절이네....... 딱 봐도 거절이야..... 거기에 고민녀는 또 소주 뚜껑으로 반지를 만들어줌 ㅋㅋㅋ 한 달 정도 구애하던 어느 날 사장님이 가게를 비웠는데 손님이 옴 ?!?!?!?!???!?!?!??!?!??? 돈 사이에서 발견한 소주 뚜껑 반지.. 아닌척 하면서 사장님도 마음 있는거였음 그렇게 둘은 사귀게 됐음 남친 일 도와주다가 반지를 발견함 !!!!!!!! 그대로 고민녀 손에 끼워지는 반지... 남친 가게에 갔는데 웬 여자가 앉아있음 아 다행히도 알바래 알바..,,, 근데 알바라고 뽑아놨더니 맨날 놀기만하고 제대로 하는 일이 없음 ;;; ?????????????????;;;;;;;;;;;;; 이 당당함 뭔데 남친한테 짜르라는 식으로 얘기했더니 알아서 한다고 화냄 ;;;; 결국 고민녀는 그 알바랑 남친의 사이를 의심하게 됨 갑자기 그 알바가 고민녀 사무실에 찾아옴 ; 다짜고짜 우리 사이에 돈 빌려줄 수 있지 않냐면서 1억 5천이나 빌려달라는 알바;; 근데 갑자기 남친이 들어오더니 저 알바 끌고 나가려고 함 ????????????? 아 설마 ??????????????????????? ⸌◦̈⃝⸍ˀ̣ˀ̣ˀ̣ 당황스럽다 진짜 ;;;; 아니 이게 아침드라마가 아니라고? ㄹㅇ 이건 아침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이다 ;;; 손에 땀이 다 나네 ;;; 뒷얘기는 링크 첨부함 근데 이것두 아예 끝까지 있는건 아님 ㅠ...
사극 속 여배우들의 비쥬얼
다 가려도 꽃보다 예쁜 한지민 국민여동생의 원조 문근영은 2001년에 명성황후 역을 맡았어요 2008년 드라마라 지금보다 많이 앳된 모습의 문채원 문채원의 드라마 속 정인은 문근영이었는데요~ 닷냥커플로 인기를 끌어 결국 동성커플 최초로 베스트 커플상을 받기도했어요 말이 필요한가요? 김태희 권력을 지향한 요부 '장희빈'역할을 맡았는데.... 어떻게 왕을 사로 잡았는지 넘나 수긍이가는 미모 백제 무령왕의 딸 수백향 역할을 맡은 서현진 분명 백제 사람인데 미실이 느껴진다...! 한효주에게 연기대상을 가져다준 동이! 액받이 무녀에서 중전까지! 고생 많이 했던 한가인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화정>의 정명공주 이연희 얼굴만큼은 아무 논란이 없을것 같네요.. 비쥬얼 백점! 한석규 이제훈 김유정까지 출연한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혜경궁 홍씨 역할을 맡은 박은빈 드라마가 크게 흥하지 못해 박은빈이 누군지 잘 모를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을것 같네요ㅠㅠ... 조선시대 배경인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시대에 맞지않는 앞머리 스타일링을 선보여 작게 논란이 되었던 수지 김소은은 천추태후, 마의, 밤을 걷는 선비 세번의 사극에 출연했어요! + 울지않고 예쁜 김소은 황진이 역할로 그해 KBS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던 하지원 개인적으로는 하지원의 인생연기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사도(The Throne)(2015)
대놓고 표현하진 못했으나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아버지, 따뜻한 눈길 한 번이라도 원했던 아들의 엇갈림 한국영화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이준익 감독이 5년만에 사극영화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그간 이준익 감독의 대표적인 사극영화를 꼽자면 단연 "첫 사극 천만영화" 타이틀을 달성하면서 영화배우 이준기를 스타덤에 올린 <왕의 남자>가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 이후에 이준익표 핸드메이드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대중들 속에서 묻혀져 갔다. 사극 영화였던 <황산벌>과 <왕의 남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만, 그 이후에 개봉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나 <평양성> 은 잘 모른다. 2013년 영화 <소원>을 통해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면서 재기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은근히 이준익표 사극영화를 갈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와중에 이준익 감독이 송광호와 유아인을 앞세운 <사도>의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져오면서 관객들의 기대를 높혔고, 올 가을에 마침내 개봉했다. 사실 '사도세자' 와 '영조' 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가장 핫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 기록이자, 많은 이들의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는 처벌을 내렸고,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는 일주일 뒤에 그 안에서 숨을 거두는 비극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이외에 조선왕조의 두 인물이 집중조명받는 또다른 이유는 영조의 다음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성왕으로 불린 정조였던 점이다. 조선 전기의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의 성왕으로 칭송받던 정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였고, 정조의 업적과 그를 죽이려 들었던 세력들의 근간이었다. 실제로 정조의 업적 재조명하기 위해 이를 소재로 다룬 <제국의 아침> 이라던지 <역린>, <이산> 의 파급력만 보더라도 이 영화 또한 관객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 역사가 어떠했고 당시 인물은 어떠했다라는 평가는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관상>처럼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다뤘고, 줄거리는 언급할 필요 없이 실록이나 이 외 당시 사건을 다룬 서적에서도 충분히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조' 와 '사도세자' 의 관계 신분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춰 언급하고자 한다. 젊을 적에 병으로 세상을 달리한 자신의 아들을 먼저 땅에 묻어야만 했던 슬픔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영조,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자신이 그토록 바래왔으며, 후위를 물려줄 아들이 태어났다. 바로 장헌세자이자 훗날의 사도세자였다. 얼마나 기뻐했으면, 아버지인 영조는 늦둥이 아들이 읽을 책을 손수 집필하는 열의를 보였고, 아들의 나이가 겨우 3살일 때 세자에 책봉시켰다. 완전히 드러내진 않았지만, 벌써부터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세자의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기대와는 조금씩 다르게 흘러갔다. 영조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했지만, 세자는 놀이와 그림을 좋아했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부자지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대부분의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이 비슷했던 것 같다. 영조는 세자가 자신의 기대에 100% 부응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었다. 자신의 아들이 올바른 성군이 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아들 장헌세자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영조로부터 관심을 끌어 자신을 이뻐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규율에 엄격했던 아버지는 자신과 세자를 보는 눈이 많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기에, 의도치않게 따뜻한 한 마디보다 냉혹한 한 마디가 먼저 나가곤 했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은 서운함과 섭섭함을 느꼈고, 자신의 할머니(인원왕후)와 어머니들(정성왕후, 소유영빈)의 다정함에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고, 아버지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가 겁내거나 피하기 시작했다. '왜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나에게 엄하게만 대하는 걸까?' 하는 속상함을 가슴 속에 지니면서. 세자가 성인이 될 무렵, 영조는 그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사실상 왕위계승준비에 들어갔고, 자신은 뒤에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주변환경이 영조와 장헌세자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신하들간 당파 대립은 여전히 지속했으며, 자신들의 세력을 잃지 않으려고 부자관계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바로 영조가 종묘를 돌면서 세자에게 "왕에게 있어서 자식은 웬수가 되기도 한다" 라는 말을 꺼낸 이유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자 사이에 놓여있는 장애물의 숫자는 많아지고,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증가하게 되었다. 아버지인 임금은 세자인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부족하고 한심하게 보기 시작했고, 세자는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모질게 대하는 아버지가 미웠고 싫었다. 한 번 틀어져버린 이 부자의 관계는 겉잡을 수 없이 뒤틀렸고, 결국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가며 둘 중 하나가 쓰러져야만 하는 사태까지 가고야 말았고, 생사의 갈림길어서야 비로소 멀리 돌아온 임금과 세자, 아니 아버지와 아들은 조용히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었다. 임금은 아들인 세자를 향한 애정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 아니었고, 완전히 놓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아들을 역적으로 만들어 내치지 않았으며, 뒤주 사건으로 가족 간의 문제로 해결하려 했다. 그리고 먼저 간 아들의 호를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로 명명하면서 그의 지위를 복권시켰다. 이를 보면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의 위엄은 상당히 거대했고 감히 우러러 볼 수 없었지만, 위엄은 아들을 향한 애정에 비해 한없이 무기력했다. 군주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억눌려있던 세자는 그저 부모 앞에서 재롱피우고, 칭찬받고 싶었고, 따뜻한 눈길 받길 원했으나 왕조 앞에 단절되었다. 이 멀리 가버린 두 사람을 이어준 유일한 연결고리가 있었으니, 바로 세손이었다. 세손은 어릴 적부터 영특하고 효심이 깊었던 지라, 조부인 영조와 친부모인 장헌세자-혜경궁 홍씨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어린 세손의 눈에 보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틀어지고 어긋나버린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회복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어느날 밤, 할아버지와 독대하던 세손은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공자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말단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고. 저는 그 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면서 얇으면서도 두터운 창호지 하나를 두고 대치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놓았다. 얼핏보면 '사도세자' 와 '영조' 라는 두 역사적 인물을 내세우면서 기존 역사를 다룬 다른 영화들처럼 역사의 재구성 혹은 재해석을 유도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역사적 인물을 이용하여 가족간의 관계 혹은 애정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게 이준익 감독의 또다른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송광호와 유아인은 이 영화에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열연한 것이다. 후반부를 치닫을 수록, 코 끝을 찡하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와의 관계, 혹은 자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라는 게 아닐까 싶다. 괜히 오늘따라 등이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원문 : http://syrano63.blog.me/220491342188
리뷰] 사도 (+ 추가)
사도리뷰할게요 (주요인물 캐스팅) 송강호 - 영조 역 전혜진 - 영빈이씨 역 : 영조 후궁, 사도세자 모 유아인 - 사도세자 역 : 영조와 영빈이씨 자 문근영 - 혜경궁홍씨 역 : 사도세자부인, 정조 모 소지섭 - 정조 역 :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자 김해숙 - 대비마마 인원왕후 역 : 숙종부인 박원상 - 홍봉한 역 : 혜경궁홍씨 부, 사도세자 장인 (그외 인물들 캐스팅) 박소담 - 문소원 역 진지희 - 화완옹주 역 서예지 - 정순왕후 역 이대연 - 김상로 역 강성해 - 김한구 역 이광일 - 민백상 역 최덕문 - 홍인한 역 정석용 - 홍내관 역 최민철 - 채제공역 박명신 - 정성왕후 역 조승연 - 이천보 역 손덕기 - 홍낙인 역 최지웅 - 내금위장 역 차순배 - 박내관 역 조하석 - 나경언 역 한국진 - 나내관 역 강현중 - 수어사 역 권범택 - 늙은대신 역 (사도세자가 그렸던 개그림 및 친필) 우선 영화는 사극이고,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 전체적 얘기는 가족얘기를 지향하고 있는 형태의 영화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실망하신 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전 더 좋았는데...) 전체적느낌은 스토리의 힘보다 연기력의 힘이 더 강한 영화입니다. 사도세자 이야기가 역사로 듣긴 참 애절하고, 특별한 케이스라 늘 '영화로 만들면 참 좋은 소재인데 왜 안만들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1인입니다. 그런데 고증이 많이 없다보니, 익히 아는 짧은 얘기라 쉽지않을 소재인 것 또한 생각은 했었지요. 근데 사도는 그걸 잘 해결하고 역사적 얘기만 담을려는 방향을 틀어 아버지와 아들과의 갈등에 중점에 초점을 두면서 연기력되는 배우를 주연으로 탄탄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재미만 중점을 두시는 성향의 사람들이 보긴 생각보다 별로다라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극장 나오는데 그런 분들이 더러 계시더군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영화는 주연의 연기력과 두 캐릭터의 갈등 심리 위주로 봐야 재밌는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대를 하고 갔는데 실망하진 않았고, 볼만했습니다. 중반부에 '갈등에 대한 고조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싶어서 조금은 루즈한것도 없잖아있기는 했지만, 그게 크게 작용하지는 않고, 그전의 스토리나 긴장감이 유지되서 집중도가 이어지기때문에 전체적으로 나쁘진 않았습니다. (평점 준다면 10점 만점에 7.8점 정도 별점을 준다면 5개 만점에 3개반정도.) 그리고 영화 인트로 타이틀이 나오기 전까지의 영상은 영화기대치를 높이는데 한 몫한 연출이였습니다. 특히나 유아인의 타이트샷으로 시작한건 매우 잘한 연출임을 말하고 싶네요. (음악도 한 몫 했습니다) 결국 인트로 그 장면이 나중에 중요한 씬으로 또한번 반복됩니다. 전 그 부분에서 울어버렸어요. 결국 사도세자는 정말 좋은 아빠이고, 정조를 많이 아꼈으며, 어린 정조가 한 대사는 사도세자 맘을 대변한 거나 다름없음을 알고나니 눈물이 흐르더군요. 이 영화는 역사 기본을 알아야 인물간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조가 누구고, 정조가 누구고, 정도는 알고가야 제대로 인물적 감정연기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특히 영조가 살아온 인생을 알고 가면, 왜 영조가 사도세자한테 그렇게까지하는지에 대해 더 이입할 수 있고,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갈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는만큼 보이기때문이죠) (역사적 내용을 모르신다면 영조와 사도세자 얘기에 픽션을 가미했던 '비밀의 문'이라는 드라마를 보신분이라면 조금이나 도움이 되겠더라구요. 그 드라마에서 영조가 선위를 자주 했던 인물이라던지, 사도세자가 서유기같은 그당시 검증되지않은 책들을 좋아했다던지, 사도세자와의 갈등을 다뤄줬거든요.) 영조는 늘 말로는 선위하겠다했지만 그 선위하겠단 말로 신하들이 자신을 얼마나 원하는지, 내가 왕의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싶어했던 인물이죠. 영화에서도 자신은 왕에 뜻이없다하지만 자신의 업적과 위신을 무너뜨리는 결단을 내린 아들을 못 마땅해하죠. 그 긴시간을 왕좌에 있었음에도 아들에게 선위하지않고, 결국 아주 오랫동안(15세부터 13년 5개월동안) 대리청정을 시킨 걸보면 그 누구보다 권력을 지키고 싶었던 인물이지않았나싶어요. 선위하다 :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다.[같은 말] 양위하다. 이 영화는 영조와 사도세자와의 갈등을 대부분으로 하고 있기에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인물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어야 이해도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쓴 정조 엄마다 이정도로만 알고가도 되긴하지만, 혜경궁 홍씨는 남편을 배척한 인물이기도하다라든가, 영조가 뒤늦게 후궁을 들였다라든가, 김상로가 영조와 사도세자를 이간질 시켰다든가 등 더 깊숙한 역사얘기를 알고가면 더 재밌습니다. 왜냐면 정조와 사도세자 외의 인물에 대해선 설명이 부족하기에 모르면 재미가 없어지고, 그로인해 '쟤는 누구 왜저래' 이러다 영화가 추구하는 인물의 중점도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근데 대부분 역사 모르고 보시는분은 없을거란 생각듭니다.) 지금 학생신분이라 역사를 모른다면, 단지 영조랑 정조 이름만 아는 사람이시라면 기본적인 건 검색하고 알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쯤에서 제가 느낀 영화의 단점을 말해볼게요. 첫번째 단점은 소지섭의 캐스팅입니다. 특별출연인가라고 알고있는데. 연기가 너무 안습입니다. 아역 정조가 연기를 너무 잘한 것도 있고, 분량이 적은 것도 있고, 발성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지만 사도세자 묘에서의 연기가 좀 오글 거리더군요. 두번째 단점은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 즉 엔딩의 씬입니다. 그 씬은 진짜 없는게 훨씬 나았을거란 느낌입니다. 부채를 통한 억지감동을 주려한 그전의 감동을 낮추는 정말 필요없는 씬입니다. (그 씬땜에 별점이 확 마이너스 ㅡㅡ) 씬도 불필요하다 느꼈지만 질질 끈다는 느낌이 들기도하고, 정조가 추는 춤의 행위와 사도세자씬과 엮기위한 연출이라는게 너무 작위적이었습니다. ( 그냥 영조가 금천교에서 석고대죄하는 사도세자를 지나친 그 씬슬 좀 더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끝냈으면 젤 좋았지싶은데 그게 안되서 그 뒤를 늘여 소지섭이 성묘간것까지 찍었구나하고 이 씬은 인내로 봤습니다. 그런데 그뒤에 또 나오니 진짜.) 암튼 올해 젤 핫한 배우는 유아인이네요. 연예인 스타가 아닌 '배우'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고, 티비, 영화 모두 소화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제대로 각인시켰네요. 사도 영화를 보면서 베테랑 속 유아인은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다보고 난 뒤 유아인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겠구나' '페이스 좋다. 어떤 캐릭터를 씌워도 어울리겠구나' '몸값 많이 오르겠구나'하고 느껴지더군요. (드라마로 흥행한 배우가 영화로와서 망한경우는 너무 많은 반면, 영화로 흥행한 후에 드라마로 넘어가서 망하거나 욕먹는 배우는 거의 없죠. 그게 그만큼의 시간을 견디고 쌓은 연기력 내공이 있기때문이라고 보는데, 유아인은 전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배우가 아닌가싶네요.) 또 이 영화를 보면서 의외의 인물 화완옹주 진지희 역할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더라구요. 좀 찾아서 공부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영화는 볼만했고 추천합니다. 실제 영조와 사도세자 시대의 일화들이 고증이 매우 잘됐기때문에 그거하나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사극적 긴장감이나 빠른 액션이 있을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은 보지마시거나 기대치를 낮추고 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지극히 인물구도로 감정을 타고가는 영화이고, 예고편에서 그렇듯 가족사로 이입해서 보는 영화이기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많은걸 바라고 강요하는 부모님, 자녀에게 채찍은 주고 당근은 주지않는 부모님,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부모님, 자녀를 자녀 자체로 보지않고 부모 소유물로 보는 부모님, 자녀와 대화가 적은 부모님들은 꼭 보시길 바랍니다. (부모의 기대감은 특출난 자녀도 망가뜨릴 수 있고, 애정결핍은 많은걸 뒤엎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걸 얻고, 반성하게 될것입니다.) 슬플 수 있으니 화장지 챙겨가시는 것도 잊지마세요. 저랑 제 지인은 둘 다 울었습니다. 극장안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저희 말고도 여럿들리더군요. 아마 사도세자가 살았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대가 원하는 군주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문무에 뛰어나고, 부정부패를 보지 못하는 성격으로 대리청정기간에 정치를 잘했으나, 아버지의 갈등으로인해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악귀나 귀신을 쫒는 책들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해진걸로 알고있습니다.(이때 더 미치기시작했다고 기록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서적 문제였지싶네요) 아마, 영조가 자리를 빨리 물려줬다면, 영조가 조금 빨리 죽었다면 사도세자는 왕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고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또 반대로 죽고나서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기때문에 지금의 사도세자도 있는게 아닌가싶어요. 아들이 아니였다면 사도세자는 더 미쳤거나 무능한이미지로 역적의 이미지로 역사에 남았을거란 생각도 드네요. 독하긴했어도 어찌보면 혜경궁홍씨가 자녀를 잘 키운거라고 볼 수도 있고, 잘 선택한거라고 볼 수도 있죠. 이래서 역사는 늘 양면을 보면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예나지금이나 옆에서 부정부패저지르고, 이간질한 인간들은 늘 있었다는게 불변의 법칙인가 싶기도하고... 암튼 영화보고 술한잔해서 머리가 너무 아픈 와중에 빠른 리뷰를 썼는데 추후 생각나면 추가 할게요. 머리 찡하고 아프니 여기까지...이만~^^ 진지희씨가 연기한 화완옹주 화완옹주(和緩翁主)는 영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옹주 중 한 명입니다. 아름다운 미모에 당차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진 보기 드문 여자로 유명하지만 그 성격 때문에 친 오빠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에 일조하고 본인도 후에 파문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화완옹주가 아무리 권력욕이 강했다고 하나 친 오빠의 죽음에 일조한 것은 역시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신빙성있는 주장이 바로 소론을 가까이하는 사도세자와 이를 기피하는 노론에 대한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부왕 영조(英祖)의 태도가 가장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화완옹주는 영빈(映嬪) 이씨(李氏)의 딸로 사도세자와는 친 오누이 관계입니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존재감이 없는 옹주였습니다.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 즉 그녀의 언니들이 살아있었을 때 영조는 어린 화완옹주보다 나이도 많고 현숙(賢淑)한 화완옹주의 언니들을 더 사랑했으며 자주 만나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손을 떠나 정치달에게 하가하고 슬하에 딸도 낳았으나 젊은 나이에 남편과 딸을 모두 잃고 과부가 됩니다. 이 때에는 화완옹주의 언니들도 대부분 사망하여 세상에 없었기에 영조의 관심은 졸지에 혼자가 된 화완옹주에게 쏠렸고 궁궐에 거처를 내주어 화완옹주를 그 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존재감없는 어린 시절, 남편과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잔뜩 비참해진 상태가 된 화완옹주가 눈길을 돌린 곳은 바로 정치판이었습니다. 당시 조정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져 있었는데,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노론은 숙종의 비 인현왕후 민씨와 후궁 숙빈 최씨를 지지하던 서인에서 비롯된 당파로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밀접한 도움을 주었으며 소론은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와 경종(景宗)를 지지하던 남인에서 비롯된 당파로 영조 재위 기간에는 당연히 노론이 활성했습니다. 노론은 당시 조정의 세력을 꽉 잡고 있었고 때문에 화완옹주도 노론을 택하게 됩니다. 김해숙씨가 연기한 인원왕후 천한 각심이의 아들로 태어나 불안한 왕자 시절을 보내던 영조를 왕세제로 만들고, 또 아무 권력 기반도 없는 고위(孤危)한 왕세제를 보호하여 대권(大權)을 전한 이도 대비였다. 그가 바로 영조의 어머니 인원왕후이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명분상으로는 엄연히 영조의 어머니였다. 인원왕후는 숙종의 세번째 부인인 만큼 나이가 많지 않았다. 영조보다 불과 일곱 살 연장일 뿐이다. 누나뻘의 어머니였다. 인현왕후가 1701년 8월에 죽었고, 이어 10월에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터라, 궁중의 안주인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숙종은 결혼을 서둘렀고 이듬해 10월 인원왕후를 궁으로 들였다. 열여섯 살의 인원왕후가 마흔네 살의 숙종을 만나 궁궐로 들어온 것이다. 이미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세자로 정해져 있었으나, 젊은 왕비가 아들을 낳으면 후계는 또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원왕후는 후사를 얻지 못했다. 인원왕후는 자기 친자식에게 왕위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숙종이 죽자 궁궐의 최고 어른으로서 왕권을 경종에게 넘기는 과정을 도맡았다. 왕조 국가에서 왕권을 잇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 일을 대비가 맡은 것이다. 대비가 옥새를 치마폭에 싸서 다음 왕에게 넘겨준다는 말도 여기서 연유하였다. 또한 대비는 임금의 임종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선왕의 유훈(遺訓)을 듣고 그것을 선포하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임금이 어떤 유언을 남겼는지 대비의 입을 통해 공식화할 수 있다. 인원왕후는 권력을 경종에게 넘겼을 뿐 아니라, 병약한 경종의 후계로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은 즉위한 이듬해에 바로 후계를 정하자는 어찌 보면 무엄하고 어찌 보면 위험한 상소를 받았다. 경종은 대신들에게 결정을 미루었는데, 대신들은 인원왕후에게 가서 정해줄 것을 청했다. 이에 인원왕후가 경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거기에는 “효종대왕(孝宗大王)의 핏줄이자 선대왕(先大王)의 골육(骨肉)으로는 주상(主上)과 연잉군이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의논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었다. 영조를 후계로 정하라는 말이었다. 이로써 영조는 왕세제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임금을 만드는 더없이 막중한 책무와 권력이 대비에게 있었고, 이런 식으로 대권은 정해지고 넘겨졌다. 영조는 왕세제가 되었고 또 대리청정까지 했는데, 그동안에도 인원왕후의 보호를 받았다. ㅡ 김해숙은 사도세자를 미워하는데까지 이른 영조를 꺾기 위해 왕이 왕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자 "윤허한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윤허한다는 단어가 여러차례쓰시는데 모르신분들을 위해 여기에 추가 할게요 윤허 (允許) [윤ː허] [명사] 임금이 신하의 청을 허락함. ㅡ 영조가 중전을 멀리한 일화 영조가 왕이 되기 전 훗날의 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이해서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입니다. 영조가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면서 칭찬을 했다네요. 그러자 부인은 무심코 "궂은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영조가 그날로 부인을 동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수리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발을 생각해서 화가 난 거죠.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는 살았을 적에 맨발로 물지게를 많이 지고 다녀서 항상 손과 발이 아프다고 했으며, 발이 거칠어서 버선이 안 들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조는 아내에게 화가 나서 이후로도 아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후궁들만 찾았고, 그래서인지 정성왕후는 66세가 되어 죽을 때까지 자식을 한명도 낳지 못했습니다. 영조의 후궁들은 모두 대궐의 궁녀나 여종 출신이라네요. 특히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이씨 역시 대궐의 여종이었답니다. 배우 최민철씨가 연기한 채제공 (사도세자편에 서있는 인물입니다) 체제공은 숙종 46년에 태어나 영조 11년인 1735년에 16세로 향시에 급제하고 영조 19년인 1743년에 24세의 젊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 무렵 영조의 탕평책이 어느 정도 시행되던 때였기에 남인계열이던 채제공은 그런 분위기에서 한림학사가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영조의 특명에 의해서 29세에 한림벼슬을 거쳐 34세에는 충청도 암행어사가 돼 균역법의 폐단을 알아냈고 변방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국왕에게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벼슬은 1798년 79세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날 때까지 55년의 세월 동안 계속됐고, 영의정이라는 최고의 벼슬에 올라 영조·사도세자·정조의 3대에 걸친 명재상으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문신이 채제공이었다. 이대연씨가 연기한 김상로 (영조 측에서 영조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입니다) 관련 블로그 http://m.blog.naver.com/hdnews9001/130082576725 사도세자나, 영조, 정조, 혜경궁홍씨에 대해선 다들 아시니까 첨부를 안하려하다가 그나마 역사가 짧은 사도세자(장조) 에 대해 잘 설명된 블로그를 찾아서 첨부해 봅니다. 궁금하시거나 알고 영화보고싶으시단 분은 가서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되실것 같으네요. http://m.blog.daum.net/mikyung2g/18209454 설민석의 사도역사 강의 1 설민석의 사도 역사강의 2 설민석의 사도 역사강의 하이라이트 혜경궁홍씨가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라고 기록한 이유 이준익 감독이 전하는 '사도'의 길고 긴 이야기(인터뷰, 스포多)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54300 만화로 보는 영조의 교육방식과 미친 사도세자 http://m.blog.naver.com/yejin6073/22048410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