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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 태안 앞바다에 간다. 물론 목적은 휴양이다. 안면도는 아니다. 휴가 때도 못 간 바다를 뒤늦게 가고 있다. 사실 바다는 성수기를 피해 가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인적이 드문 바닷가. 바다에까지 노트북을 들고 가고 싶지는 않아서,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정확히 2시 21분까지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앉아 버텨보았지만,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으며, 나는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엔간해서는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이 글을 핸드폰을 이용해 써보기로 한다. 적응력의 문제겠지만, 글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이용해 쓰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효율이 높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시 쓰던 게 편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펜으로 시를 쓰는 게 고역에 가까워졌다. 더구나 이렇게 분량이 꽤 있는 글은 특히나 그렇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낭설이 있다.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을 것도 같다. 내가 추측하는 바로는, 천재인 경우 두뇌 회전이 빠르므로, 생각의 진행 역시 빨라 쓸 거리는 넘치는데, 손의 속도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그 속도의 불일치가 악필을 낳는 게 아닐까. 천재를 떠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예쁜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예쁜 글씨를 쓰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예쁜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꽤 많은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므로 글씨가 목적이 아니라 글이 목적인 사람이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드는 일이란, 그것이 더 익숙했던 세대가 아닌 이상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분량이 조금 남았다. 그래도 바다에 가는 건데, 나머지 글은 바다에 가서 이어가 보기로 한다.) 바다다. 신두리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펜션 바로 앞이 바다로 이어져 있다. 썰물이라 바다가 저 멀리에 보인다. 일행들이 백사장으로 걸어 나간다. 나도 따라나선다. 걸어가며 글을 쓴다. 물에 도착했다. 발목을 담갔다. 조개를 캐는지 호미나 모종삽을 들고 쪼그려 앉은 사람들이 있다. 여기저기 미역 뭉치가 보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미역을 가지고 가자고 한다. 오늘 생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께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도 사진을 싣는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메라 대신 메모장을 들고 바다에 온 유튜버라도 된 것 같다. 일행 중 둘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상반신만 보인다. 상반신만 내보인 채 둘은 마주 보고 대화를 하고 있다. 보통의 거리에 서 있는 것처럼. 어쩐지 마그리트의 그림 같다. 물론 마그리트는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이제 목만 보인다. 그들의 목이 수면 위에 떠 있다. 목 두 개가 수면 위에 떠있다. 미역을 가지고 가자던 사람도 바다로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한때 나와 함께 출판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다. 셋 중 두 사람은 충남 서산시가 고향이고, 한 사람은 그 옆의 예산군이 고향이다. 그들은 집 근처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 피서를 즐기기 위해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캠프파이어를 하는 사람들 같다. 세 사람의 빈 슬리퍼가 앞에 놓여있다. 저 앞의 바다 위에는 세 개의 머리가 떠 있다. 아니다. 다른 피서객들의 머리도 몇 떠 있다. 세 사람은 이제 홀딱 젖은 채로 걸어 나온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 미역을 가지고 가자던 사람이 미역 한 뭉치를 들고나오며 내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말한다. 혹시 오늘 생일이야? 이제 그들과 함께 숙소로 걸어간다. 숙소 앞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등대를 본다. 백사장을 지나가는 앰뷸런스를 본다. 누가 바다에서 다치기라도 한 걸까. 몸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앰뷸런스를 보며, 해파리에 쏘인 걸까, 하고 말한다. 늙은 바다를 들것에 싣기 위해 온 앰뷸런스가 아닐까, 하고 내가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예약한 펜션은 입실자가 우리 말고는 없다. 펜션을 통째로 빌린 것 같다. 우리는 잠시 나란히 누웠다. 그들은 조금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바다의 시가 한 편 완성되었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엄마야, 가을이 다 여기 있었네! - 뮤지엄 산
기분 좋게 서늘한 날들에 방심하던 사이 시린 바람이 갑작스레 옷깃을 파고들었던 지난 주말,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museum SAN)을 방문했더랬어요. 원래 안도다다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일행 중 한명이 이전에 다녀왔다가 반해 버린 바람에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하여 주말 아침부터 출발하여 다 같이 신나게 다녀왔더랬죠. 하늘만 보고 가을을 느꼈던 서울에서의 날들이 무색하리 만치 온갖 가을이 다 모여 있던 뮤지엄 산의 풍경에 칼바람에도 꿋꿋이 바깥을 지켰더랬어요. 운명처럼 이렇게, 프레임 속에 낙엽이 뛰어들기도 했고요. 히. 긴 말 말고,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아- 가을이다-' 느껴졌던, 정말 온갖 가을이 다 모여있던 뮤지엄 산의 풍경... 한번 같이 보실래요? 주차장 마저 너무 예뻤지만 주차장 풍경을 미처 찍지 못 해 너무 아쉽네요 ㅜ.ㅜ 정말이지 빨강, 노랑, 초록, 주황, 모든 가을의 빛깔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달까. 사실 뮤지엄산이 일반인들(?)에게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었어요. 우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갈 수 없는 곳인지라 근처 골프장을 찾는 어르신들이나 찾는 곳이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이 물과 함께 하는 카페의 뷰가 유명해 진 이후로 북적대게 된거죠. 제 사진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실은 정말 엄청 많았단 말이죠, 사람들이. 사실 뮤지엄 티켓도 그렇게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주차장이 가득 차서 주차장에 차를 대지도 못했더랬어요. 뮤지엄에 이렇게 사람 많은거 처음 봤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 모든 가을 속에 폭 파묻혀 있으니 정말 갈만한 곳 아니겠습니까. 건축 뿐만 아니라 물소리, 바람소리, 우수수 나뭇잎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 걸음 걸음 떨어지던 낙엽들, 뮤지엄 정원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 모든 것이 아름답던 곳. 반사되는 물빛마저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ㅠㅠ 그저 두기만 해도 아름다운 곳이니 당연히 어디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포토 스팟이죠.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인생샷들이 탄생하기도 한답니다 *_* 트랜치 코트 입고 바들바들 떨었지만 넘나 맘에 드는 사진을 건졌고요... 억새도 여기저기 심어져 있어서 가을가을한 샷들을 마구마구 얻을 수 있답니다 후후 전시도 다 너무 맘에 들었고요. 정말 맘에 들었던 터렐의 전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없지만... 종이 전시들은 촬영이 가능해서 몇장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던 해질녘까지 *_* 그리고 원주시내로 나와서 겁나 맛있는 고기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_* 아름다운 하루였어... 지금, 가을의 끝물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해요. 평일에 시간이 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찾기 좋은 곳이겠지만 주말이어도, 사람이 많다 해도 정말 가볼 만한 곳이에요. 시간이 된다면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을을 배웅하러!
정신분열증 화가 루이스 웨인의 작품들.jpg
19세기 영국, 고양이를 좋아했던 화가 루이스 웨인. 최초로 의인화 고양이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어릴때부터 미술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본래 꿈이었던 음악을 접고 화가가 되기로 한다. 루이스가 23살이 되던 해에  10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지만, 곧 아내는 유방암에 걸려 힘든 투병을 시작했다 어느날 부부는 밤산책을 하다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루이스는 그 고양이를 거둬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키우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아내는 투병을 하는 동안  고양이 피터를 보면서 기운을 찾았다. 루이스는 고양이를 예뻐하는 아내를 위해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를 본 아내가 매우 좋아했다 루이스의 그림을 보던 아내는 이 그림들을 잡지와 신문사에 내보자고 했고, 루이스도 이에 동의해 자신의 그림들을 세상에 내보내게 된다 루이스의 귀여운 고양이 그림들은 출판과 동시에 큰 인기를 누렸는데 아쉽게도 아내는 그림이 출판되기 직전에 죽었다. 하지만 고양이 그림세로 유명세를 얻은 루이스는 더 다양한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아내가 죽은 후 적적하던 루이스는  고양이 피터에게 안경을 씌워주기도 하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여기서 영감을 받아 의인화한 고양이 그림이 탄생하게 된다 의인화 한 고양이의 모습은 전에 없던 획기적인 것이었다 19세기에는 흑사병의 원인이 쥐라고 생각하여 가정집에서도 흔히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가 친숙한 동물이었고 이런 의인화한 모습이 특이하고 코믹하여 더욱 인기가 많았다 그림들은 상당히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루이스는 오로지 그림과 고양이밖에 몰랐고 저작권에는 관심이 없었던 탓에 그의 그림은 무단으로 도용되고 복제되었다. 다시 그림을 팔려고 해도 이미 복제된 그림이 너무 많아 희소성이 떨어져 헐값에 팔리기 일쑤였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결혼도 하지 않은 동생들과 어머니까지 다섯명을 부양해야 했던 루이스는 큰 자금난에 빠졌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게 된다 이 후부터 루이스의 고양이 그림은 점점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루이스 웨인에게 큰 전환점이 찾아온다 바로 '정신분열증' 정신분열증에 의한 환청, 망상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던 루이스 웨인. 점점 고양이 그림들은 기호, 패턴화 되기도 하였고 배경은 단순해졌다. 그리고 말년에 가까워올수록 고양이 그림은 점점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해진다 현재 루이스 웨인이 그린 그림들의 변화는 심리학 교과서에 활용되기도 한다. 그는 냅스버리 병원에서 평화로이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병원 안의 정원과,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고양이들로 그는 안정을 되찾았으며, 그림을 계속해서 그렸다. 사망 이후에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묻혔다고 한다. [출처 : 더쿠넷] 이미 예전에 서프라이즈에도 나왔었고 꽤 유명한 이야기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가져와봤습니다. 언제봐도 오싹하네요. 안타깝기도 하고... 다만 저 기하학적인 고양이그림들 중 일부는 정신분열증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직업에서 영감을 받은 고양이 직물 패턴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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