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dony
1,000+ Views

Stairway To Heaven

1969년 혜성같이 등장해서, 70년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하드락 밴드 레드제플린 입니다. 68년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를 주축으로 보컬에 로버트 플랜트, 베이스-존 폴 존스, 드럼-존 본햄 등 4명이 '뉴 야드버즈'란 이름으로 활동한게 그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그룹의 이름을 레드 제플린으로 바꾸고, 69년 밴드네임과 동명인 "레드 제플린"이란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이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죠. 헤비메탈과 헤비락 장르를 파생시켯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칭송받는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에서부터 프로그래시브, 펑크 심지어 레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면서 70년대를 통틀어서 가장 사랑받는 그룹 중에 하나였습니다.80년 존 본햄이 폭음으로 사망하면서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총 8장의 정규 앨범과 라이브 음반 1장을 발표했습니다. 71년 발표한 이들의 최고 역작 "레드 제플린 4" 앨범의 수록곡으로 잔잔한 어쿠스틱 멜로디에서 부터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까지 가히 불후의 명곡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곡입니다. 영상 후반부 지미페이지의 기타솔로는 스튜디오 버전에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2017년 주목해야 할 Hip-Hop, TOP 5
1. 창모 일리네어의 하위 레이블 ‘엠비션 뮤직’ 소속 창모!!! 그 외 엠비션 뮤직에는 김효은, 해쉬스완이 있습니다. 요즘 승승장구 중!! 비와이가 2017년 힙합 라이징 스타가 될 만한 랩퍼로 창모를 언급!! 대표 곡 “마에스트로” https://youtu.be/wMkdmElFLUw 2. 문명진 R&B의 최정상급 보컬 문명진의 새로운 싱글앨범 "옆으로 누워" 완전 취향저격!!! 피처링으로 하이라이트 레코즈 소속 레디(Reddy) !!!! 이 조합도 괜찮네?? 문느님 앞으로 완전 기대!!!! https://youtu.be/CTMkirwHXig 3. 비와이 x 씨잼 에이셉 타이와이(A$AP TyY) 와 작업한 ‘라이크미(LIKE ME)’는 각자 래퍼로서 음악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함. 리스너들을 위해 앞으로 많이 많이 한국힙합이 널리널리 퍼지길!! 뭐 굳이 설명이 더 필요없죠.... 요즘 진짜 리스펙! https://youtu.be/S3VtDUV3smY 4. 사이커델릭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의 배경이 되기도 한 커크 킴(Kirk Kim)이 대표로 있는 본토 힙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컴튼시에 기반을 둔 사이커델릭!!!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싸이커델릭 레코즈 비지니스를 힙합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여 한국에 진출!!! 이번 쇼미더머니 6 및 힙합신에서의 활약이 앞으로의 활동 기대!! https://youtu.be/JA1GAaJ_r5g 싸이커델릭 소속 라코! 최근에 나온 앨범!! 5. 오케이션 작년에도 SBS 가요대전에서 지드래곤, CL, 비와이와 함께 무대에 오른 오케이션!! 진짜 이 형은 스웩~ 좋은 곡 너무 많지만 2분4초 부터 들어봐!! https://youtu.be/NAHigJCmVNo 박재범 - 뻔하잖아 (feat.Okasian) 2분 10초부터 들어봐!! https://youtu.be/X0PqkT_dnxs
콜드플레이(Coldplay) 필수정보와 추천곡
|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1~3집과 그 이후로 나뉜다? 초기 콜드플레이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3집까지 콜드플레이의 색깔은 잔잔한 피아노 사운드와 보컬의 우울한 목소리와 가성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집의 Yellow, Trouble, 2집의 In My Place, The Scientist, Clocks. 3집의 Fix You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4집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를 발매하며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보여줍니다. 음악적 변화는 아티스트가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도 하지만, 기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기존의 확고한 자신의 스타일이라는 무기를 버리는 양날의 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4집 Viva la Vida가 발매되었을 때 실망한 콜드플레이의 팬들도 다소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아티스트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세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콜드플레이 1~7집> 4집부터 시작된 콜드플레이의 음악적인 변화는 그 이후로도 지속되었습니다. 4집에서는 아름다운 피아노 반주에 가성의 멜로디 더하는 스타일을 버리고 밴드 악기의 비중이 크게 줄인 것부터 시작해, 6집에서는 Sky Full Of Stars에서 Avicii와함께 락음악과 하우스 음악을 결합하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근의 Something Just Like This라는 곡을 The Chainsmokers와의 콜라보한 것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또한, 7집에서는 Hymm For The Weekend 비욘세와 함께 작업하며 힙합 비트를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콜드플레이의 음악적 변화를 요약하자면 브리티시 락의 정석에서 시작해 엠비언트와 오케스트라를 더했다가, 최근에는 EDM과의 경계를 허물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U2, Travis, Radiohead의 아류 밴드? <콜드플레이와 U2. 콜드플레이는 초기에 U2와 많은 비교를 당했고, 실제로 크리스마틴은 U2의 보컬 보노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콜드플레이가 성공하고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U2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 초기에는 U2, Travis, Radiohead의 아류 밴드라고 평단으로부터 평가, 혹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라디오헤드와 유투의 아류로 비교당하는 것은 브리티시 락, 혹은 브릿팝을 하는 후발주자에게는 숙명 같은 태그일지도 모릅니다. 콜드플레이는 1998년에 결성되었고, 2000년에 첫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브릿팝이 락음악계의 주류였던 90년대 초반을 지나고 그 위상이 매우 약해지던 시기인 만큼 너무나 커다란 밴드로 자리 잡은 라디오헤드나 유투, 트래비스등의 후속 주자로서 보이기 쉬웠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위의 밴드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크리스 마틴은 U2의 보노처럼 되고싶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한편, 또 다른 영국 밴드 버브(The Verve)역시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크리스 마틴은 The Verve의 The Bitter Sweet Symphony를 자신이 썼다면 이라는 워딩을 남기기도 했고, 함께 Bitter Sweet Symphony를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콜드플레이뿐만 아니라 킨(Keane), 뮤즈(Muse) 등과 같은 영국 출신의 밴드들 또한 데뷔 초기에 이 같은 평가가 마찬가지로 붙었던 것도 사실입니다.(크리스 마틴은 한 키보드 연주자에게 매료되어서 함께 밴드를 하자고 했지만, 그는 이미 준비하고 있는 밴드가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바로 그 키보드 연주자가 킨(Keane)의 팀 라이즈 옥슬리) 하지만 콜드플레이는 지속해서 앨범을 발매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거쳐 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확보해 나가고, 음악적으로도 크게 성공함으로써 앞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밴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콜드플레이와 유사한 밴드들> | 크리스 마틴과 기네스 펠트로 <크리스 마틴과 기네스 펠트로> 콜드플레이는 보컬인 크리스 마틴과 기네스 펠트로 부부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종종 스타 부부로서 비욘세와 제이지 부부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콜드플레이가 2집 활동을 하며 투어를 돌던 도중 기네스 펠트로가 콘서트를 관람하러 왔는데, 이때 백스테이지로 기네스 펠트로를 초대한 계기로 친해졌고, 이듬해인 2003년 임신 소식과 함께 결혼 발표를 하며 스타 부부가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10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뒤 이혼한 상태입니다. 콜드플레이의 이해하는데 기네스 펠트로가 중요한 이유는 크리스 마틴이 작곡한 곡들 중 아내였던 기네스 펠트로와 자녀들을 소재로 한 곡들이 다수 있기 때문입니다. Fix you의 경우는 부친상으로 힘들어하는 기네스 펠트로를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 유품 중에 있던 오르간을 사용해 만든 곡이며(링크:카드뉴스 - 아내 기네스 펠트로를 위로하기위한 크리스 마틴의 선물 Coldplay – Fix You), Speed Of Sound는 딸인 애플 마틴이 태어났을 때 아빠가 된다는 경외감으로 인해 만들어진 곡입니다. Magic에서는 이혼한 이후의 심경이 드러나 있기도 하고 2015년에는 Everglow라는 곡에 기네스 펠트로가 코러스 보컬로 참여함으로써 여전히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콜드플레이의 명곡, 대표곡 last.fm과 apple music의 스트리밍, 다운로드 순위를 참조해 그중 한국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곡들을 선정했고,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는 만큼 셋리스트에 포함된 곡 위주로 콜드플레이의 너무나 많은 히트곡 중 추천곡 8곡만을 선정하였습니다. 1. Clocks 2집 A Rush of Blood to the Head에 수록된 초창기 콜드플레이의 대표곡. 콜드플레이 특유의 몽롱한 피아노 사운드의 메인 리프와 함께 몽환적인 사운드가 일품이다. 2004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를 받기도 했다. 2. Viva la Vida 4집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에 수록됨. 기존의 음악적 스타일을 크게 바꾼 모습을 보여주었다. 4집 때부터 참여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의 영향으로 엠비언트적인 요소가 도입되고, 밴드적 사운드보다 스트링과 오케스트라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보다 웅장하고 밝아진 사운드를 들려준다. 기존의 팬들이 기대했던 서정적인 사운드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 같은 변화는 큰 성공을 거두고 그해 그래미 3관왕을 차지하게 해주었다. 3. The Scientist 2집 A Rush of Blood to the Head에 수록된 곡으로 피아노 반주,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를 바탕으로 우울한 보컬 사운드로 곡을 진행하는 초기 콜드플레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콜드플레이의 앨범에서 자주 보여주던 크리스 마틴의 가성이 특히 인상적이다. 4. Yellow 처음 콜드프레이를 세상에 알린 곡. 1집 Parachutes에 수록되었으며 14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초창기 콜드플레이의 다른 히트곡들과는 다르게 피아노 사운드 없이 디스토션된 기타사운드와 정직한 리듬을 바탕으로 전형적인 브리티시 락 사운드를 들려준다. 5. Fix You 3집 X&Y에 수록된 곡. 아내였던 기네스 펠트로가 부친상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며 유품으로 남아있던 건반을 이용해 아내를 위로하는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링크:카드뉴스 - 아내 기네스 펠트로를 위로하기위한 크리스 마틴의 선물 Coldplay – Fix You 6. Hymm For The Weekend 7집 A Head Full of Dreams에 수록된 곡. 힙합적인 비트가 인상적이며, 비욘세가 함께 참여했다. 7. A Sky Full Of Stars 6집 Ghost Stories에 수록된 곡. 스웨덴 EDM 아티스트 Avicii와 함께 작업하며 하우스 사운드를 결합하며 스펙트럼을 넓히는 모습을 보인다.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를 오마주 한 것으로 생각되는 뮤직비디오(링크)도 인상적이다. Verve의 원래 뮤직비디오(링크)가 우울하고 퇴폐적인 느낌을 밝은 버전으로 바꾼 것 같다 8. Paradise 5집 Mylo Xyloto에 수록된 곡.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엠비언트적 사운드가 더욱 강화된 모습이나 스트링의 활용, EDM을 연상시키는 베이스라인 등이 4집 Viva la Vida의 연장선으로 보이기도 하며, 드럼과 기타 등 기존의 밴드 사운드를 좀 더 조화시키는 모습도 보인다. "para-para-paradise"라는 가사의 코러스 부분은 웅장한 사운드 부분은 5집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사운드가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으로 생각되며, 공연시 주된 떼창 포인트이기도 하다 --------------------------------------------------------------------------------------------------------------------------------- 스쿨오브락 홈페이지 : schoolofrock.co.kr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choolofrocklml/
아니.. 중국 노래가 이렇게 좋았다고..?
여러분 혹시 중국 노래하면 뭐하 떠오르시나요? 아마 10명 중에 6명 정도는 첨밀밀을 떠올리지 않을까염? 솔직히 저는 중국 노래는 뭔가,, 굉장히 토속적이지 않을까,, 그냥 뭔가,, 굳이 찾아들을 필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글로벌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죠. umm.. C-POP이라고 해야 되나? 암튼 그닥 씨팝에 관심이 없었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 '지옹하오'가 노래를 하나 추천해주더군요. 맨날 뭔가 중국 노래 좋다고 들어보라며 보내주는 친구인데, 귀찮고 괜히 취향 안 맞을 것 같아서 안 듣고 무시했었읍니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 들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고 저의 고막은 신세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중국어는 뭔가 성조 때문에 조금 쎈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개 빻은 편견이더군요,, 스튜핏,,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같기도 하고.. 가랑비처럼 촉촉하기도 하고.. 개.. 좋아.. 그냥 좋아..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제 기억을 조작해서 학창시절 아련한 첫 사랑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 (아련한 첫사랑 그딴거 없었음) 오늘은 제가 듣기에 좋았던 씨팝을 몇 곡 추천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씨팝은 뭔가 케이팝과는 다른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특히 가사가 좋은 노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가사 해석이 함께 담겨있는 영상들을 가져왔으니 가사도 꼭 함께 봐주세욘 (윙크) 我愿意平凡的陪在你身旁(평범하게 네 곁에 있고 싶어) - 王七七(왕치치) 我 站在山坡上 난 산비탈 위에 서서 悠哉悠哉向下望 여유롭게 내려다보지 我是最大的太阳 난 제일 큰 태양으로 只管把你照亮 오로지 너만을 밝게 비출거야 浪人琵琶 (낭인비파) - 胡66 (후66) 我化成風 不捨一簾美夢 난 바람이 되어 아름다운 꿈을 아쉬워 하네 醉醒穿梭 終究是一場空 취하다 깨고 반복하니 결국 일장춘몽 일세 若非是你 今生又怎會懂 그대가 아니면 이번생에 또 어떻게 깨달았을고 浪人回頭 心動則心痛 낭인은 깨달아 변하고 마음주고 아파하네 芒种(망종) - 赵方婧(조방정) 一想到你我就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恨情不寿 总于苦海囚 원망하지 못하고 고통에 갇혀있어 新翠徒留 落花影中游 청록빛을 남기고 떨어진 꽃의 그림자를 맴돌아 相思无用 才笑山盟旧 쓸모없는 그리움과 사랑의 맹세는 웃어넘겨버리지 谓我何求 나는 무엇을 바라는 걸까 非酋 (운이 없는 사람) - 薛明媛 (설명원) 如果天突然下起了雨 만약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我不会避躲 난 피하지 않을 거야 因为我知道有一个人 왜냐면 난 어떤 한 사람이 会守护着我 날 지켜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那什么(그게 뭔데) - 永彬Ryan.B&李晧轩 (영빈Ryan.B&이호헌) 你像玫瑰般美丽 넌 장미처럼 아름다워 红色脾气在我脑海是你温柔记忆 너의 예민한 성격은 내 머릿속에선 부드러운 기억이야 你我之间隔着一层泡沫看多滑稽 너와 나 사이에 한 겹의 거품을 두고 있는 게 얼마나 웃긴지 失眠飞行(불면비행) - 接個吻(접개문)&开一枪(개일창) 我想和你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一起闯进森林潜入海底 같이 숲속으로 뛰어들어가 해저에 숨고 싶어 我想和你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一起看日出到日落天气 일출부터 일몰까지 같이 보고 싶어 누군가는 분명 취향에 맞겠지.. 라는 생각으로 냄겨놓습니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헙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도시 Best 10ㅣ귀가 즐거워지는 여행
세계 곳곳에 음악의 도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스트리아 빈을 포함해 다양한 음악의 도시들 음악이 있는 여행 힐링여행 어떠신가요? 시드는 사람들을 만족 시키는 음악 센터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시드니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기반을 두고 있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보고, 시기가 맞는다면 시드니 하버에서 야외 오페라를 즐긴다. 이 곳에서 2016년에는 투란도트 공연을 하기도 했다. 또한 롤링 스톤즈가 연주하기도 한 Allphones Arena, Hordern Pavilion 및 The Basement와 The Metro와 같은 소규모 클럽 등의 장소도 많이 있는 도시이다. 음악의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 말러, 브람스가 공부하고 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에서 야외 앙상블을 만날 수도 있고, 링 슈트라세에는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빈 국립 오페라, 국립 오페라 박물관, 무직페라인, 극장 박물관이 있다. 빈 무직페라인의 골든 홀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가 전 세계로 방송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서트 홀이 되었다. 세계 음악의 중심지 빈에서 가장 각광받는 것 중 하나는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곡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4분의 3박자 춤, 바로 빈 왈츠다. 관광명소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무덤과 생애 살던 곳을 볼 수 있고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선레코드,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를 일궈낸 흑인전문레코드사 스택스 레코드, 블루스의 발상지인 빌 스트리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쿠바 음악을 생각할 때 가장 떠오르는 것은 1997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노장 군단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1930~40년대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콤파이 세군도와 이브라힘 페레르 그리고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 노장 뮤지션이 뭉쳐 만든 앨범은 쿠바 음악의 대표 장르인 ‘손’과 ‘볼레로’를 소개하며 전 세계에 쿠바 음악의 건제함을 알렸다. 아바나에서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스튜디오 ‘에그렘 스튜디오’가 남아 후배 뮤지션들이 음악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베를린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세계 곳곳의 화가와 사진가들을 불러모을 뿐만 아니라 음악의 발전도 가져왔다. 유럽 최고라고 알려진 클럽들과 디제이들이 드나드는 레코드 숍 등이 가득하며, 이런 음악이 적응이 어렵다면 클래식을 들어보자. 클래식의 본고장답게 세계적인 수준의 교향악단들과 오페라 극장을 갖추고 있다. 5월에 열리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5월 12일부터 6월 1일까지 3주간 펼쳐지는데 이렇게 날짜가 고정된 페스티벌은 흔치 않다. 5월 12일에 축제가 시작되는 것은 그날이 바로 체코 국민 음악의 선구자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봄 페스티벌은 세계 모든 음악 유산들을 다루지만,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등의 체코의 음악들이 부각된다. " 뉴욕은 클래식, 오페라, 팝음악, 다양한 대중 음악 등등 세계적인 음악적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의 도시이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음악이 실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시도되는 특권이 주어지는 곳이라고 말 할 수 있고 음악 스튜디오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뉴욕이 세계적인 음악의 도시가 된 이유는 첫 번째 산업화가 진행 되면서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뉴욕으로 많은 뮤지션들이 빨려들어왔고, 두 번째로 음악에만 몰입 할 수 있는 환경이 미국 전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실력 있는 뮤지션을 끌어 모으게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런던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을 갖춘 도시이다. 클래식의 경우 Barbican Center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페라의 경우 Cobent Garden이 있다. Ronnie Scott의 재즈 클럽, Purtneyd의 Half Moon, Camden Roundhouse 및 Barfly와 같은 곳에서는 미래의 스타들을 만날 수 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는 60년대 스윙의 중심에 있었던 런던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특히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비틀즈를 비롯한 핑크 플로이드, 클리프 리처드,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레이디 가가, 아델 등 많은 아티스트들의 명반이 탄생했다. 오스틴에는 200개가 넘는 라이브 음악 공연장과 6th Street에 많은 클럽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오스틴에서는 해마다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이 있는데 “South by southwest”는 전세계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이며, “Austin City Limits Music Festivals”는 매년 열리는 음악 축제로 약 13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로 공연하며 매년 70,000명이 방문하는 페스티벌이다 리우데자네이루를 유명하게 하는 또 하나는 바로 카니발이다. 카니발을 위해 디자인 된 700미터의 도로인 삼보드로모에서 매일 밤 삼바 스쿨들이 경연을 펼치며 브라질 전역에 500개가 넘는다는 삼바 스쿨은 오직 카니발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 카니발의 진정한 백미는 브라질 전역에서 벌어지는 ‘길거리 카니발’이니 놓치지 말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실화(퀸)에 대한 이야기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영국 락밴드 '퀸' 특히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이야기 프레디 머큐리 합류 직전, 스마일의 초기 멤버였다가 스마일을 나갔던 '팀 스테필 (맨 오른쪽)'은 합류했던 밴드 '험피 봉' 해체 후 디자인 쪽에서 일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토마스와 친구들'이라고(!!) 70세인 현재도 음악 활동 중이다 퀸의 로고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 머큐리가 디자인 했다 (첫번째)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의 자켓도 프레디가 만들었다고. (두번째) 무대 의상들도 직접 디자인 한 게 많았다고 함 퀸은 멤버 전원이 학사 학위를 가진 밴드이다 브라이언 메이는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후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했다 존 디콘은 퀸 2집까지 중학교 교사였다 프레디는 영화처럼 냥집사인데, 키우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길냥이들이었다고. 길냥이들에게 안락한 환경 마련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새긴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줬었다고. 그중 '딜라일라'라는 고양이를 위해 노래 "Delilah"를 쓰기도 했다 프레디 : (((내 고양이))) 고양이 : “이 앨범을 나의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톰과 오스카,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세상에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라.” < 딜라일라 > - 1985년 앨범 <Mr. Bad Guy> 감사의 말 중에서 (출처 :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ency_culture&wr_id=374 ) '프레디'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칭이라고 한다 작곡할 때는 떠올랐던 멜로디가 머리속에 안 남으면 선율이 허접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주로 피아노로 작곡을 하고 기타 코드는 3개밖에 연주하지 못한다고 말해왔지만 목욕하다가 떠올라서 기타로 뚝딱 만든 노래 =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보헤미안 랩소디'의 코러스는 무려 180번을 오버더빙(녹음한 것 위에 또 녹음) 했고, 마지막에는 테이프의 산화철 부분이 거의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10~12시간씩 녹음한 결과였다고. 곡의 다양한 부분들은 면도칼로 잘라 합친 것이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기타소리와 드럼소리는 실제 퀸의 멤버이자 영화의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라이언, 로저가 연주한 것이라고 둘은 현재도 퀸으로 활동 중 퀸의 기타 음색은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브라이언의 기타가 10대 시절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사용 중이며, 100년 된 벽난로의 목재, 자전거 스프링 등을 사용했다. 퀸은 초기 시절 어느 평론가에게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로저 테일러는 'The Reactions'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는데 보컬 멤버가 탈퇴하여 직접 보컬을 하기도 했었다. 고향에서 공연했을 때 입장료를 받아도 관객이 2~300명 수준이었다고 함 프레디는 학창 시절 밴드를 했었는데 그때는 보컬이 아닌 키보드 연주자였다 이후 60년대에 아마추어 밴드 '아이벡스'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 영화 속 프레디의 노래하는 음성은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고. (마크 마텔 = 프레디와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서 화제가 된 퀸의 공식 트리뷰트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는 캐나다 가수) 프레디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메리를 연기한 루시 보인턴과 데이트 중이라고 함! 존잘존예가 만났네 라미 말렉은 안무가 뿐만 아니라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는데 덕분에 프레디의 작은 행동, 습관, 시선, 마이크를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고 함 영화 속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길다고 한 음반사 관계자에게 캐릭터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언급한 이유 : 그 음반 6분 넘는 곡만 3곡이라서. 게다가 가장 긴 곡은 7분 50초 퀸과 마이클 잭슨은 만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도 함께 했다. 2014년에 마이클 잭슨과의 듀엣곡이 발표되었다. (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 1984년에 퀸이 내한할 뻔한 적이 있었다. 적당한 공연장도 못찾은데다 금지곡이 많아서 실패했다고 공연은 안 했지만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내한했었다. 이후 2014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프레디만의 관객 소통 방법인 '에~오'는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존 디콘은 프레디가 없으면 퀸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는 듯. 실제로 1997년 은퇴하였다 브라이언 메이는 투병 중이던 프레디를 보러 가던 때,  300야드 (274m)를 남겨두고 '올 필요 없다. 사망했다'는 부고 전화를 받았다 프레디의 어머니 제르 불사라는 2016년에 94세로 별세하였다. 당시 브라이언 메이는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알고 지낸 시간만 50년이 넘었고 어머님은 프레디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가 가수의 길을 반대할 때에도 아들을 응원했고 마지막까지 모든 활동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모든 활동에 프레디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대단히 기뻐했다'는 내용 (출처 : https://whitequeen.tistory.com/2148) 프레디는 투병하던 때 불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병이 악화될수록 일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브라이언 메이 : 프레디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고 전혀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저녁에 다 같이 나갔는데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걸 알고는 "브라이언, 어떤지 한 번 볼래?" 그러고는 보여줬어요. 그리고 제 표정에 대해 오히려 프레디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네가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요. -  프레디가 말했어요. "곡을 만들어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 가사도 계속 써줘. 계속 일을 줘.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 "나중엔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돼. 나중에 완성하면 돼." - "프레디 머큐리,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 저에게는 그게 프레디였어요.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았어요. 그 나머지도 모두 포함해서요. ] ( 출처 : https://blog.naver.com/kngjoo/120152157305 )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퀸 정규 앨범인 Innuendo는 프레디가 언제쯤 스튜디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멤버들에게 연락하면 나머지 세 멤버들이 데모 버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을 때 스튜디오에 와서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생전 마지막 싱글인 <The Show Must Go On>는 음이 높아서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하는데, 프레디는 "I'll fuckin' do it, darling('씨X, 하지 뭐' 정도의 뉘앙스.)"이라고 내뱉은 후,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한 보드카를 쭉 들이키더니 삑사리 없이 한 큐에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 출처 : https://namu.wiki/w/%ED%94%84%EB%A0%88%EB%94%94%20%EB%A8%B8%ED%81%90%EB%A6%AC ) Q. 퀸 음악 모르는데 랩소디 보러 가도 되나요? 쿵쿵(짝) 쿵쿵(짝) 위윌위윌뢐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아름다운 이상주의, 히피 [ hippie, hippy ]
히피hippie; <사회> 기성의 가치관ㆍ제도ㆍ사회적 관습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ㆍ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 따위를 주장하며 자유로운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나 전 세계로 퍼짐. ---------------------------------------------------- 종종 예전의 가치들이 더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1960년 15세에서 25세 젊은 청소년들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더 이상의 폭력을 거부하고 삶의 필요요소이자 중요요소인 평화, 사랑, 화합, 자유를 함께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히피 운동이다. 그들은 문화의 차별, 인종의 차별, 계급의 차이도 없는 세상을 지향하며 오직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의 평화와 사랑, 자유를 모토로 삼았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그들에게 음악은 어떤 차별과 경계도 없이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수 있는 도구였고 곧 히피들이 추구하는 이념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된 세상을 꿈꾸는 것, 누군가는 너무나 이상에 젖은 헛된 꿈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러한 이상을 당시 전 세계가 품었다는 것이 그 꿈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그 마음을 지금 이 세상이 언젠가 다시 품을 수 있길.
애비로드에 대해
존 레논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비틀스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서양인들이 신으로 여기는 예수를 감히 인간과 같은 급으로 비교한 발언은 신성불가침 영역을 건드린 금기어였다. 예수는 ‘유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찬송가 대신 비틀즈를 흥얼거리게 되었다고 한들, 너의 음악에 영혼을 팔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하듯 욕했을 것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예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순례길을 떠나고는 했다. 당시의 순례는 오늘날의 여행처럼 몇 박 몇 일로 예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험한 길을 걷다 보면 여정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도 많았다. 목적지는 죽은 예수나 성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당이었다. 지친 여행 끝에 도착한 성소에는 예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썩은 나뭇가지나 천 조각이 보관되어 있었다. 낡아빠진 소품 앞에서 그들이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성소 방문이란 동시대 사람들이 단체로 열망하는 집약적인 목표였다는 사실만이 추정 가능한 역사로 남아 있다.     신에 대한 대중적인 열망은 오늘날 ‘셀러브리티’로 불리는 유명인들에게로 옮겨갔다. 경건한 예배당과 비명 소리 가득한 콘서트 장은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지만, 닿을 수 없는 영역의 대상에 대한 열망에 관해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스타에 대한 추종 심리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식당이나 거리에도 어려 있다.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머물렀던 식탁을 유리관에 전시해 놓은 베트남 식당의 의도는 분명하다. 유명인이 강림했던 흔적으로 손님들을 끌어보겠다는 의도가 유난스럽게 전달된다. 같은 인간을 요란하게 떠받드는 방식은 때론 굴욕적이다. 내가 앉은 자리는 일어나자마자 원상복귀 되는데 누군가의 자리는 그대로 보존되다니. 귀족을 모시는 하인 곁에 선 농부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실 유명세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불행의 조건에 가깝다. 자신을 볼 때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니까. 대신, 죽음이 이르렀을 때. 그동안 괴롭힌 대가를 보상하듯, 만인의 뇌에 그의 이름이 자리할 특실이 마련된다.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그런 일이다. 죽으면 땅 밑에서 사라지는 법인데. 유명한 이름은 누군가의 뇌를 무덤으로 삼는다.     셀러브리티에 대한 부러움은 유치하게도, 유명인이 머물렀던 자리에 앉아 그들이 받았을 시선을 간접 체험해보는 쪽으로 흐른다. 다소 허황된 마음을 벗어나면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선택을 따라해 보고 싶은 계산이 선다. ‘돈 많고 바쁜 사람이 선택한 곳'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삶의 선택권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제 3자’가 주도하는 이 기막힌 심리는 유명인의 ‘영향력’이라고 불리며 온갖 마케팅에 이용되고는 한다.   이 심리는 경매시장에서 살짝 다른 방향으로 틀어 극도로 과열되고는 한다.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화장품이 마릴린 먼로의 것이라는 이유로 몇 천만 원에 팔리는 현상은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다. 경매 시장은 유명인의 손을 닿는 건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동화 속의 왕과 같은 손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틀즈 역시 일찌감치 황금손이 된 케이스다.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은 경매시장에서 1억 원에 팔렸고 조지 해리슨의 기타는 5억 3100만원에 낙찰됐다. 영국의 토마스라는 사람은 앨범 <애비 로드>를 녹음할 당시 비틀즈가 ‘화장지의 질이 억세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칸에 18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애비로드를 표지로 한 12번째의 앨범 재킷을 찍을 당시, 이미 무명의 신인이 아니었던 멤버들은 금손을 가진 왕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비틀즈가 걷기 전의 ‘애비로드’는 세상에 깔린 횡단보도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도시의 질서를 위해 표시된 획일화된 기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틀즈의 앨범 표지를 장식한 이후, 애비로드는 낭만 어린 역사적 장소로 부상했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 동작은 하나의 문화적인 약호가 되었다. 심슨 패밀리까지 그 패러디 대열에 합류했을 때.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고작’ 횡단보도 위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물론 <애비로드> 표지에는 단순히 비틀즈의 유명세를 입은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예수의 탄생 기점을 중심으로 BC와 AD를 나누는 것처럼, 애비로드를 기준으로 비틀즈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되짚어 보면 <애비로드>를 찍기 한참 전의 데뷔시절이 있다. 데뷔 앨범이자 1집 앨범인 <플리즈 플리즈드 미>에는 세상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진난만한 청년들의 얼굴을 특이하게도 아래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순수하고 활기 넘치는 ‘앳된’ 멤버들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반면, <애비로드> 앨범 재킷에는 멤버들의 얼굴을 알리려는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들 카메라 따위는 보지 않고 무심한 시선으로 갈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다.’는 설정 외에는 과한 연출이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심하고 시크 한 표지를 다른 류의 앨범 재킷과 비교해 보면 비로소 우리가 이 사진을 왜 그리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한때 나는 웨스트라이프의 열성팬이었고 그들의 포즈에 미치도록 열광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5초 이상 똑바로 바라보기 있기 힘든 취향이 되었다.(그러나 나는 웨스트라이프를 좋아한다. 문제는 사진이다.) 연출된 각도와 지나친 자의식으로 점철된 이미지는 이들의 앨범에서만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다. ‘매력’이란 무기로 승부해야 하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미지마다 이런 류의 식상한 컨셉은 넘쳐난다. 그들의 내면이 실은 이런 방식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일정한 포즈를 요구하는 사진작가에 의해 억지로 꾸며졌다는 점에서 진실하지도 않다.       <애비로드>가 좋은 점은 멤버들의 자신감이 ‘가짜’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켜세운 어깨와 당당한 보폭. 자신을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자의 의식은 레논의 잔뜩 치켜 올라간 어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차의 질주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STOP’ 싸인 위에 선 비틀즈는 누구보다 횡단보도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횡단보도는 교통‘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규칙이다. 기존 질서에 대항하며 문명의 이기를 비판하는 히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비틀즈가 질서와 체계의 상징과도 같은 횡단보도 위를 걷는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아니 어쩌면. 횡단보도는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했던 히피 정신에 들어맞는 코드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대량생산체제와 기계화의 대표주자인 자동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재조명한다면, 횡단보도는 초록 신호등 앞에서는 오롯이 인간의 것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위한 방어체계다. 어쩌면 <애비로드>는 휴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비틀즈의 고도의 인권운동 전략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소문대로. 사이가 틀어진 비틀즈가 오랜 시간 촬영하기에는 피차 껄끄러워 스튜디오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급히 찍은 사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때의 비틀즈는 마치 그들의 실제 관계를 연출에 도입한 듯, 더 이상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다. 한 팀처럼, 동지처럼,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뿔뿔이 흩어질 행인들처럼.      어느 날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뒤 모두 변했다. 이미 우리는 비틀즈의 삶을 지탱할 수 없었다. 링고스타, 비틀즈 전 멤버  <애비로드> 앨범 발표 후 1년만인 1970년, 4월 9일.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했다. 세월은 흘러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늙었는데 비틀즈의 명성은 그들의 삶과는 별개로 여전하다. 인류의 해마에 들어앉아 아무도 잊어주지 않는 리듬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잡아먹는 포식자가 드문 덕분에 때론 백년을 넘게 사는 거북이처럼. 비틀즈를 집어 삼킬 만 한 건 없다. 최신 곡에 밀려서 사라지는 몇 달 전의 노래 같은 게 아니니까. 최신인기 곡이 비틀즈를 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애비로드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애비로드를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중세시대에 마침내 성소에 이르렀던 순례 객처럼,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 평범한 횡단보도에 마침내 다다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