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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일기_오르세 미술관과 어느 죽음
https://youtu.be/u0-EDTpdlDY 9월 6일, 파리는 며칠 째 청명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여름답지 않은 쌀쌀한 밤기운에 솜이불 속으로 피난을 가 야 한 해가 벌써 끝이 난 것 같다 하며 아쉬워하던 내담을 엿들었는지 구름을 힘껏 닦아 낸 하늘을 보니 아직 태양이 꾀나 우리 이마 가까이에 있었고 그 덕에 습관처럼 챙긴 청자켓은 하루 종일 짐이 되었다. 어제는 눈이 멀듯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고다르의 영화 속에서 미셀이 총을 맞고 쓰러진 거리들을 걸었는데 오늘 벨몽도가 타계했다는 비보가 라디오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영화 속에서 미셀은 이유도 없이 자기 삶을 구겨 불쏘시개로 만들곤 태연하게 그것으로 불을 붙여 담배를 피곤했는데 벨몽도는 수십 편이 넘는 영화와 많은 무대에도 오르고 은발의 머리로 헬기에 매달리는 장면을 직접 연기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미셀은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자신을 내려다보는 경찰들과 패트리샤 바라보며 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겨버렸는데 벨몽도의 마지막은 어떠했을지. 자연은 시간에 떠내려간다. 이미지만이 냇가의 돌처럼 버티고 앉아 철철 하는 물소리를 낸다. 소리를 듣고 냇가를 찾은 이는 돌을 건드려 무게를 가늠해보고 모양을 재고 금세 비웃고 제멋대로 시간 위에 돌을 놓아보다가 마침내 자리 잡은 제 미약한 돌이 못 붙잡는 끝없이 성실한 시간에 압도되고 만다. 뭘 하는 거지. 낡은 공방에 가득 그림을 채워도 공허만은 지워지지 않아 화가들의 그림에는 왠지 모르는 쓸쓸함이 늘 담겨 있다. 육신을 썩지 않게 한다면 시간에 둑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시체의 속을 비워내 육신을 미라로 만들었고 사람의 데스마스크를 뜨고 돌을 깎아 시체를 두 발로 다시 서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순간 그 찰나를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들렸고 과학의 힘을 빌려 이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들까지도 (우리도 모르게) 방부처리를 하게 되었다. 남겨진 것들은 구글도 감당을 못할 만큼 넘치고 넘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들은 더 이상 어떠한 물소리도 내지 못한다. 흘러가는 것에도 버티는 것에도 나는 이제 감각이 희미하다.  9월 5일,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에 오전부터 서둘러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점심시간에 예약을 한 것이 주효해서 별다른 대기 없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실내에는 더 부지런한 이들이 이미 가득했다. 사람들이 많은 미술관은 그림을 보기보다는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을 보는 곳이 된다. 나는 그것을 나름대로 즐긴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싶어 하는 유명한 그림들. 감격하는 사람들과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것과 그들을 스쳐가는 사람들. 자기 취향을 광고하듯 남이 지나치는 그림 앞에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 지나 서다 돌아와 그 자리에 다시 서보는 사람들. 파리의 미술관에서 그림만을 온전히 감상하기란 그 어떤 요일 그 어떤 시간대에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는 남긴 사람과 들린 사람의 욕망이 제멋대로 가득 드러나 있기에 나는 그곳들이 늘 즐겁다.  미술관을 나와 하얀 먼지가 일렁이는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센강의 유람선에 가득한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했고 우리도 그들을 좋은 그림처럼 느꼈다. 파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표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2021년 9월 6일 벨몽도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아니었다면 좀처럼 부유하는 좌표를 알 수 없는 가을 속의 여름이었고 팬더믹 속에 오아시스였다. 9월 7일, 사관학교에 들어간 지 20년 만에 대학 시절 마지막 학기의 수강신청을 한 지 13년 만에 다시 수강신청을 했다. 30학점. 프랑스어는 좀처럼 늘지 않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 강의실에 앉아 당황한 얼굴이라도 짓고 있어야 한다.  돌고 돌아 당신이 씻어준 복숭아를 그리고 돌고 돌아 두 걸음 앞서 걷는 당신을 찍는다. 몇 년을 술래 잡던 의미는 결국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스러지고 온통 마음이 다구나 씁쓸한 단맛을 느낀다. 내 첫 영화 본 어떤 이는 그 덕에 자신이 영화를 통해서 뭘 하고 싶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했는데 나는 그만 그게 부끄러워 말을 자꾸 배우러 다닌다. 파리에 온 지 2년. 나는 다시 물소리를 낼 수 있을까. 돌을 고를 때 돌을 쥐고 첨벙 걸을 때 돌을 놓을 때 무엇보다 내게 마음이 있어야지. 아무렴. W, P. 레오 2021.09.1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비극을 막은 소신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습니다. 다행히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한 과학자로 인해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학자는 바로 당시 미국 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공무원 프랜시스 올덤 켈시입니다. ​ 1960년 9월, 켈시 박사는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임산부 입덧 방지제의 신청서를 받았습니다. 이 약은 효능이 좋아 이미 유럽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승인도 쉽게 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켈시 박사는 제출된 문서를 검토하면서 동물 실험은 물론 임상 연구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진 중 일부는 미국 의학협회에서 거부된 논문을 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약의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 하지만, 엄청난 이윤이 걸린 제약회사에서는 켈시 박사에 대한 집요한 로비와 협박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켈시 박사는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이후 탈리도마이드는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이 약의 영향으로 12,000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후였습니다. ​ 이 일로 인해 켈시 박사는 소신을 지킨 강직한 공무원의 표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주는 최고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허술했던 미국의 의약품 허가 제도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 그러나 켈시 박사 본인은 ‘나는 그저 서류를 깔아뭉갠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라고 말하며 겸양을 표했을 뿐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쉽게 넘기는 일들로 인해 수많은 사고와 때로는 인명의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많이 발생합니다.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소신 있게 항상 충실하게 행한다는 건 참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 지금 자기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그런 여러분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소신은 중대하고 갈 길은 멀다. 그것을 각오하고 사명감에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논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소신#사명감#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긍정의 힘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전장에 나가보니 적군의 수가 아군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병사들은 ‘이제 삶이 끝나는가 보다’ 하며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이를 보던 알렉산더 대왕은 병사들의 사기를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지 고심했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일 방도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 잠시 후, 겁에 질린 병사들 앞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났고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신의 계시는 이렇다. 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우리는 패할 것이다.” ​ 알렉산더 대왕은 비장한 표정으로 동전을 높이 던졌고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의 순간, 모두는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시했습니다. ​ 동전은 앞면이었고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길로 병사들은 사기가 충전돼 용감히 싸웠고 결국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 전쟁이 끝나고 한 장군이 알렉산더에게 말했습니다. ​ “운명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동전의 앞면이 나온 것처럼 승리할 수 있었다니…” ​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했습니다.. ​ “사실 그 동전은 앞뒤가 다 같은 앞면이었다네!” 지금 어떤 일을 하면서 도전을 하고 있다면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어차피 안 될 거야’라며 미리부터 포기하고 계십니까? 마음과 생각을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기도 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 – 노만 빈센트필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긍정적사고#하면된다#도전#도전정신#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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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제의 일기. 어제 일기를 차마 못 썼던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잠들어버려서다. (나 많이 뻔뻔해졌네.) 그래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일기를 써야 돼, 써야 돼, 써야 되는데, 하다가 그렇게 됐다. 당연히 변명의 여지는 없다. 조카네 학교에서는 확진자가 나와 비상이 걸렸고, 그래서 이번 명절은 나 혼자만 본가에 가기로 했다. 반쪽짜리 연휴가 될 듯하다. 사실 나도 눈도장만 찍고 바로 집에 오고 싶기는 하다. 정작 집에 있을 때는 나태에 찌들어 있음에도 해야 할 것은 늘 많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추석 특선을 이제 매년 내놓을 생각인지 작년 추석 때쯤 했던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올라왔는데, 정말 기대 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감독과 출연 배우에 비해 참 먹을 것 없는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잔치였다. 좋게 말하면 재미 빼고는 다 있었던. 이번 <오징어 게임>은 개인적으로 아주 기대해온 작품이다. 역시 감독과 배우들이 탄탄하다. 특히나 배우 이정재의 격렬한 팬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아주 크다.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들을 몇 개 읽었고, 첫 창작집으로서의, 또 자전적인 부분으로서만이 의의가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다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면 다자이 오사무는 확실히 시적인 데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소설가에게는 소설가다운 것을 가장 요구한다. 이틀 치의 일기를 써야 해서 사실 작년에 빙글에 올렸던 생소 프로젝트 단편소설 <낮잠>에 대한 복기라도 해볼까 했지만, 또 내가 쓴 소설의 복기를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시일이 많이 지나서 그 소설을 기억할 만한 이가 있을까. 아무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할 소설의 복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일기는 적어도 거울 속에 비친 독자, 그러니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언젠가는 의욕이 생기면 해볼 마음은 있다. 어쩌면 거울 속의 비친 것이 나뿐만이 아닐 수도. 너무 모호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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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하도 어지러워 먼저 읽을 책들을 한쪽으로 빼서 쌓아보았다. 돌 쌓기처럼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나태의 타파를 기원하는 것인가. 보름달을 보고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따져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고, 고만고만한 소원들은 딱히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에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내내 그러할 텐데 그 문장인즉슨,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은 죽은 어떤 가수의 노랫말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가사를 보며 그거 하나 모르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자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쥐고 오랫동안 으쓱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릴 땐,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뭔가 멋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다. 나는 정말로 꿈이 있다거나, 일종의 드림워커로서 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멋에 취해, 아니 그런 게 당최 뭐가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한 일을 하나 선택해 이게 내 꿈이라 믿고 젠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생과 면담을 하며 자꾸 꿈을 강조한다. 학생은 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딱히 문제아인 것도 아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면 맥주나 한 캔하고 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방식 아닌가.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모두가 야심 찬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닌가, 그런 생각. 사실 영화 속 학생도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이 꿈일 뿐. 그런 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다. 사실 요즘 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는 것. 그러나 인생이 지루해서, 이렇게라도 꿈이라는 최면을 걸어놓고 살지 않으면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완전히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뱉는 것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인생은 매번 넘고 넘어야 하는 산들뿐이라 다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역시 요즘은 그 부질없음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태껏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사실은 없어서일지도. 아니,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서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고, 가능 범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기 때문일지도. 너무 비관적인 생각으로 들리려나. 그러나 사실 꿈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삶이다.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보며 사는 것이라서 현실을 지나가기가 어쩌면 수월할 것이며 그 자체가 기쁨일 테고, 꿈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큰 불만이 없으므로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둘 다 삶의 비중을 미래에 놓느냐, 현재에 놓느냐의 차이일 거다. 꿈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삶이다.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 대신 전통의상 입은 모습 챌린지 중인데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탈레반 재집권 후 니캅 등을 착용하라는 압박에 맞서 형형색색의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며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DoNotTouchMyClothes(내 옷에 손대지 마) #AfghanistanCulture(아프간문화)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아프간 여성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아프간 전통의상은 눈까지 다 가리는 '검은 부르카'와 눈만 내놓고 전신을 가리는 '니캅'과 다르게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와 밝은 색상이 돋보였다. 온라인 저항운동은 아프간 아메리칸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일했던 바하르 자랄리 전 교수가 주도했다. 자랄리 전 교수는 12일 친 탈레반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며 "아프간 역사상 이런 옷을 입은 여성은 없었다. 이것은 아프간 문화와는 완전히 이질적"이라며 "탈레반의 선전으로 왜곡되고 있는 아프간 전통의상을 알리기 위해 내 사진을 올린다"고 적었다. 그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올리며 "아프간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자"고 말하며 다른 이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진짜 너무 아름답고... 저쪽 동네 여성 전통 복식 첨 보게 되어서 더 맴아픔 ㅜ 저렇게 찬란한 문화 양식 다 두고 대체 언제부터 좆도 근본 없는 니캅, 부르카가 전통 된거임 그렇게 부르카가 좋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처입기 운동 하지 왜 괜히 애먼 여자들한테 뒤집어 씌워 해연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