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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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헌절

오늘은 최초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 '제헌절'입니다. 아토미와 처음 헌법이 공포된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고 오늘 하루, 나라사랑의 마음을 되새겨 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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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판결보니 대법관들도 무시하는게 헌법인데, 법조인도 아닌 일반 서민들이 왜 제헌절을 존중해줘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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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 신발과 옷의 충격적인 진실..(인터넷 쇼핑 자주하시는분들 충격주의)
사회를 믿고 사시는 분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 될 수도 있어서 우선 죄송하구요;; 여러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없는 상품이나  첨들어보는 브랜드의 보세 상품들 판매하는 그쪽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운동화, 구두, 티셔츠, 속옷, 할것없이  '사이즈 갈이'라는 짓을 어마어마하게 하는 편입니다 '물론 다 그렇진 않다'라고 말하기 좀 민망할 정도로 제가 아는 업체들은 '대부분' 다 했습니다 사이즈가 있으면 그냥 보내겠지만 있더라도 찾기 귀찮으면 '사이즈 갈이' 할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 그냥 대부분 대놓고...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이즈 전체가 다 있으면 그런일이 적지만 너무 다양한 상품들이 있기때문에 보통 재고가 다 빠져 나가는 상품들이 매일같이 존재합니다 100개 택배를 보내면 15개정도는 사이즈 갈이를 해서 나갔구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노브랜드 신발이나 의류등의 경우 '택'이 없는 경우가 거의 80~90%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택갈이도 간단;) 사이즈 스티커를 땟다 붙이는 정도로 사이즈 갈이를 해서 270인데 265사이즈를 넣어주거나 심지어  270 주문했는데 260 을 270 스티커 붙여서 작은 신발을 바꿔 넣어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신발이 작겠죠  그러면  '왕복 택배비 5000원 부담 하세요' 라고 문자 보내죠 참고로 택배가 많은 업체의 경우 업체측에 남는 택배비는 2500원이 아니라 1600원까지 떨어지는 업체도 있구요 그럼 반품이든 교환이든 하면 2명정도만 이렇게 해도  신발로 남는 마진만큼 남습니다  재고 한사이즈 남은 상품  처리 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270 하나 남았는데 260 265 270 275 280 으로 올려 판매합니다  그리고 뭐든 주문 들어오면  270으로 스티커 바꿔 나가는거죠  255 270 사이즈 신발 2개만 있어도 전사이즈 있다고 판매가 가능한거죠  260을 주문하셨다면 실제 받은 신발은  250일까요 270일까요? ㅠ  구두는 안심하시는 분들... 보세 구두의 사이즈는 스티커는 당연히 스티커 갈이해서 쉽고  국내생산의 경우 스키커든 뭐든  사이즈 갈이 하기 쉽게 만들면 되지만 중국산 수입의 경우  (중국산이라고 품질 낮은건 아님) 바닥에 보통 각인 되어 들어와서 그래서 의심 안하시는데...사실... 제가 일했던 업체는  인두가 택배 포장대 옆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사실 디게 간단합니다...... 270인데 265 인두로 살찍 문질러 찍으면 됩니다... 2초면 됩니다.. 스티커는 가는데 5초정도 걸린다면  이건 더 간단하죠......... 구두 사이즈가 이상하시면 사이즈 각인되있는게 '뭔가 문질러 다시 찍힌것' 같이 보이시면 의심해보시는게 좋구요.. 구두 깔창에 사이즈가 있는 경우는 깔창을 본드로 붙여놔서 일체형인듯 착각 하시는 경우가 있지만 당연히 깔창 땟다 다른사이즈 깔창으로 본드로 붙이는건.. 너무 간단한 일이구요 박스에만 사이즈가 표기된건 박스만 바꿔주면 되는거라 특별히 어려운게 아닙니다..  보통 한 판매자가 다양한 공장들의 다양한 도매상들의 상품을 모아 판매하는 만큼 ... 다양한... 사이즈 갈이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결론은!! 이거 안당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 팁은 배송요청 메시지에 '지난번과 '똑같은 사이즈' 재구매 했어요 사이즈 틀리지 않게 잘 부탁드려요!' 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는겁니다 그러면 사이즈 갈이 하지 않는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기존에 주문한 고객처럼 보이니  지난번 보낼때 사이즈 갈이를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을 해서  그 사이즈를 찾아 보내야겠지만 배송직원이 그정도 귀찮은 수고를 하진 않구요 그냥  '주문했던 고객인가보다, 정사이즈로 보내야겠군' 하고 생각하고  '정사이즈'로 정확하게 배송하는 편입니다 아니면 대놓고 말씀하세요 '사이즈 갈이 안하실꺼쥬!?ㅠ_ㅠ' 라고 하면 ㅎ;; '뜨끔!'할껍니다;;; ★두번째 팁은!! 해당 판매자의 '특가 상품을 주목!!'하라! 입니다;; 판매자의 양심을 민낮을 가장 확연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은 '특가상품'입니다 가장 재고를 빨리 털어야 할 '특가상품'을 판매할때 이 사이즈 갈이가 가장 많이 발생할것이고 이때 판매자의 양심이 흔들립니다  '남은 재고' 사이즈가  1개씩 표기/품절이 뛰엄뛰엄 되어있는 판매자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신발이면 255 270 이렇게 두 사이즈만 남았습니다, 하고 판매하시는 판매자들,  이 분들은  재고 떨이를 위해서 250 255 260 265 270 275 로 표기하여 판매하면 순식간에 판매 됩니다 270남았으면 270으로 정직하게 팔고 있는거니  재고떨이조차 정직하게 판매하고 계신 판매자분들이니  본 상품들을 사이즈 갈이 하실일이 없겠죠 단!, 특가상품들이 사이즈 표기가 사이즈 갈이 불가능한 형태라면 조금 더 생각해보셔야 하구요~ 왜냐하면 각 보세 판매자들은 대부분 다양한 공장과 도매처에서 상품을 가져오기때문에 사이즈 갈이 불가능한것들이 재고가 되면 어차피 사이즈 갈이는 못하는것이니까요~ 그래서 첫번째 방법이 좋습니다~  ★3번째 팁입니다 이미 100% 사이즈 갈이로 예상되는 분들이 많이 보이셔서.... 댓글들을 읽고 팁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저는 사실 받아보면 대충 사이즈 갈이인지 아닌지를 알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걸 확인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때문에 이미 당하신분들이 할수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일단 구매한 상품을 교환할때만 가능한 방법인데요  일반적으로 그냥 사이즈가 안맞다면 모두 사이즈 갈이로 의심은 하지 마시고  이런 저런 이유로  사이즈 갈이로 상당한 의심이 될 경우 써볼만한 방법입니다 약간 귀차니즘이 있는 방법이므로 귀차니즘 극복 가능하신분들만 읽어주세요^^;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아이디로 앞뒤 사이즈 상품을 주문하는것입니다' 설명 드리자면 예를들어 260신발을 주문했는데 너무 큽니다 그러면 일단 반품 걸어놓고 실제 택배는 보내지 마시고 다른 아이디로 해서 255 265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이때 의심했던  255와  260이 같은 크기인지를 확인해봅니다 크기가 다르다면 내 의심이 잘못된것이고  260과 265를 반품하는 첫번째 아이디의 반품택배로 묶음 반품 하는 방식인데요 그러면 교환 택배비는 똑같이 5000이 발생되므로  추가로 발생되거나 하는 비용은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이때 의심했던 255와 260이 만약 사이즈가 같다면 이 판매자는 애초에 사이즈 갈이를 해서 보내준겁니다 게시판에 문의를 하고 내가 이러저러해서 의심해서 확인했는데 당신이 사이즈 갈이 해서 보낸것을 확인했다, 고 하면  판매자는  '실수' '죄송'  할껍니다  왕복 택배비는 당연연한것이고 상품값이든 보상이든 판매정지든 당해야겠지만 판매자의 '실수'라는 말 앞에서 단순 '실수'의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우리는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어째뜬 정당하게 왕복 택배비는 판매자의 부담이 되는것입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상품을 받으면 이게 사이즈 갈이 한건지 아닌지 대충 알고 있다보니 교환할때  이 방식으로 추가 확인해서  택배비는 면제 받은 경우가 3번정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이거 뉴스 나와야 할 일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뉴스'도 '고발프로'도  사실 팔려야 가치가 있는건데 안팔리나봐요  고발 프로그램에 이게 한번 나온적이 있습니다 몰카로 제가 아는 업체도 찍어 갔더군요.. 그때 크게 느낀게 있는데 '방송의 힘이란게 참 대단하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하잖나요?  그래서  그 이후로 '이제 사이즈갈이는 안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무일도 없어서  좀 놀랬습니다 무슨 사회적 비판이나 정부의 전수조사라던지 관련기관의 단속이라던지 그런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일도 없더라구요 아----무일도;;;.. 그냥 이런 게시판에 욕 좀 하고 의심좀 하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사회가  보도에 큰 관심이 없었나봐요  그냥  안팔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안팔리는 보도중에 하나였나봐요  최근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업체에 놀러간적이 있는데 여전히 뭐 하고 계시더군요  다들 모르고 당하는 사기.. 'XL가 원래 이렇게 작나요...?' '예, 상품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교환/환불은 택배비 5000원' 그만 당하시길 바라며 ㅠ  이상 '내부고발자'...는 아니고 '내부 였던 고발자'...입니다 혹여나 여러 업체에서 이런 피해를 당한거 아닌가?라고 찜찜하게 생각하고 계신분 있다면  저도 일했던 사람으로서 죄송합니다!..  ※참고로 '노브랜드 양심판매자'는 누구인가? 가 궁금하시면 몇천원짜리 티셔츠,  만원짜리 신발 팔면서  사이즈가 제품 본체에 천으로 붙어있는 경우는  정말 정말 보기 힘들정도의 '양심'있는 공장/판매자 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사이즈 갈이 절대 하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로 보시면 됩니다  공장은 사실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생산을 했을 뿐이고 사이즈 갈이는 판매자가 하기때문이죠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뭐냐면 공장에서 사이즈를 제품에 붙여버리게 되면 판매자가 찾아주질 않아요 왜냐면 사이즈 갈이를 못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상품을 생산한다는 의미, 아시겠죠?  평범한 표기가 아니라 '애초에 판매자가 찾지 않더라도 나는 사이즈 갈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라는 선언같은거라 보시면 됩니다 정말 양심적인 분들이죠  업계에서 만원짜리 신발팔면서 몇천원자리 티셔츠 팔면서 제품에 사이즈 표기하는건 그 제품이 저렴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는지는 명백합니다 애초에 10단위로 판매하는 판매자 역시 양심적인겁니다 왜냐면 노브랜드 신발은 보통 공장에서 10단위로 생산 하는 경우가 80% 정도 되는데  250 260 270 280  이렇게 생산해서 인터넷 판매자들에게 주면 250 255 260 265 270 275 280 사이즈로 변신!! 하게 되는데  이걸 실제 사이즈 그대로 10단위로만 판매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좋은분들이시죠  제 개인적으로는 '정상적인 분들'을 '좋은분들'로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어느 업계에 있더라도 '관행'이란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분들은 '정상인' 이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분들은 '좋은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판매자는 사이즈 갈이 안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판매자들은 응원해주시고 많이 팔아 주세요! PS. 이미지 크게 보기 PS. 이 문제의 해결방법 - 각 마켓들이 사이즈 표기 표준만 규정하면 끝 - 그거 하는 마켓은 단 한곳도 없음  예를들어 같은 판매자의  A상품의 L사이즈의 티셔츠가 바닥에 놓고 가슴 사이즈 재면 50cm고  B상품의 L사이즈의 티셔츠가 바닥에 놓고 가슴 사이즈 재면 52cm면 그것만 표기하면 되지 양아치처럼 '상품마다 사이즈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라고만 적어놓고 '아몰랑'하진 않을꺼고 판매자마다 재는 방식 중구난방이고  바닥에 놓는 방식때문에 어느정도 길이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 사이즈 갈이 하는 티셔츠 판매자는 확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신발의 경우는 완전히 사이즈 갈이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같은 판매자의 여러 형태의 신발이 있더라도 신발 사이즈 표기 외에 '바닥 길이 표기 의무화'만 하면 신발 사이즈갈이는 사실상 업계에서 간단하게 불가능하고  신발 사이즈 갈이는  대한민국에서 끝나게 되는 문제입니다  각 마켓이 각자의 기준을 가진다면 판매자는 G마켓 옥션 네이버 위메프 쿠팡 티몬 마켓마다 사이즈표를 다시 만들어야하고  너무 번거롭기때문에 대형마켓들이 모두 협의해서 재는방식과 표준표기방식을 표준화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어찌되껀 관계자분 보고 계시다면 대한민국 이런 비양심적인 사이즈 갈이는  이정도 했으면 이젠 끝낼 수 있게 어떤 다른 형태의 상품이라도  표준이 될 수 있는 규정을 고민해서 만들어 주시고 반드시 ★의무화★ 해주세요  더이상  옷을 받아보고  신발을 받아보고 '작네' 라는 생각은 하더라도  '왜 작을까?'란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게끔  이쯤됐으면 이젠 만들어 주실꺼죠?  출처 뽐뿌
반값 택배 시작...편의점 GS25 '최저 1600원 택배
물류배송 인프라 활용 최대 65% 저렴 접수부터 수령까지 약 4일로 다소 길어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25일 1600원에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반값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다. 자사 물류 배송 인프라를 활용해 일반 편의점 택배보다 요금을 최대 65%까지 낮췄다. 다만 접수부터 수령까지 걸리는 배송 기간은 약 4일로, 다소 길다. 반값 택배는 소비자가 GS25 점포에서 택배 발송을 접수하고 택배를 받는 상대방이 GS25 점포에서 찾아가는 구조의 택배 상품이다. 화물을 보내는 사람이 GS25의 택배 키오스크(터치 스크린 방식의 택배 접수 단말기)에서 접수할 때 택배를 받을 GS25 점포를 지도에서 선택하면 배송지가 접수 된다. 택배 화물이 상대방의 GS25 점포에 도착하면 받을 사람에게 택배를 찾아갈 수 있도록 메시지가 전송된다. 반값택배의 배송에는 GS25에 상품을 공급하는 물류 배송 차량과 물류 센터가 이용된다. 전국에 배치된 GS25 상품 배송 차량 500여대가 접수된 반값 택배를 1차 거점인 GS25 센터 30여곳으로 운송한다. 이후 화물은 GS허브센터로 집하된 후 다시 GS25 배송 차량을 통해 수취 점포로 이동된다. 반값택배는 접수부터 수령까지의 소요 기간이 약 4일로 일반 편의점 택배보다 다소 길다. 하지만 요금은 최대 65%까지 저렴한 서비스다. 중량이 10kg이면서 물품 가액이 50만원인 화물을 택배로 접수 할 경우, 일반 편의점 택배의 가격은 6000원인 반면 반값택배는 2100원이다. 가격은 최소 1600원부터 2100원까지 무게에 따라 달리 책정되는데 물품의 무게가 500g 미만이면 최소 요금인 1600원이 적용된다. 500g~1kg 사이의 물품은 1800원이고 1kg~10kg까지는 2100원이다. 중량이 10kg을 초과하거나 가로·세로·높이의 합이 1미터가 넘는 부피의 상품, 물품가액 50만원을 초과하는 상품, 변질 우려가 있는 식품류 등의 화물은 접수할 수 없다.
[탐정 손수호] "삼청교육대, 성고문, 수지 김.. 그때가 좋았다고?"
마구 잡아다 가혹행위 했던 삼청교육대 성고문 하고도 피해자에 실형, 부천서 사건 살해 피해자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수지김 사건 가족이 이런 일 당하고도 '그때가 좋았다' 할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시히 들여다보는 시간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요즘 법정을 둘러싼 뉴스가 참 많죠? ◆ 손수호> 최근에 법조계 기자들이 바빠요. 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 결정 후 첫 재판, 고 장자연씨 보도 관련해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MBC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 첫 변론기일, 드루킹 김동원 항소심 첫 공판, 여기에 사법농단 재판개입 관련 수사와 재판도 많아요. 게다가 전두환 재판도 있었죠. 이번 광주 재판은 5.18 민주화 운동 관련된 거잖아요. 그런데 그 외에도 전두환 집권 기간에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정말 너무 많지만 그중에 몇 개를 좀 골라봤어요. ◇ 김현정> 내란죄, 반란수괴죄 이런거 말고 집권 기간에 발생한 일들 말씀이죠? 이쯤에서 한번 떠올려보죠. 그때 그 시절 그 사건. 어떤 것부터 볼까요? ◆ 손수호> 먼저 삼청교육대. ◇ 김현정> 삼청교육대. 사회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 가두고 때리고 막 이랬던 거 아닙니까? ◆ 손수호> 그렇습니다. 전두환씨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줄여서 국보위 위원장일 때 ‘삼청계획 5호’에 따라 만든 보호감호시설이 삼청교육대였는데요. 국보위 사무실이 서울 삼청동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범죄자, 불량배 모아서 훈련 통해 교화시킨다고 설립했는데, 그런데 문제는 기준이 이게 애매모호했어요. ◇ 김현정> 기준이 모호해요? ◆ 손수호> 네, 그러다 보니까 원래는 현행범, 재범 우려자, 깡패, 도둑, 강도, 매춘업자. 이런 사람들이 주요 교화 대상이었죠.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둘째로 치고. 그런데 한번 들어보시죠. 불건전 생활 영위자,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사람, 사회 풍토 문란 사범. 이렇게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저도 잡혀갈 수 있을 것 같다를 이런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에요. ◆ 손수호> 사실상 누구든 잡아 가둘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건데요. 결국 중고등학생 중에서도 약간 문제아 취급 받는 사람들, 은둔형 외톨이, 우울증 환자, 지적장애인 또는 연고 없는 사람까지 다 잡아갔어요. 게다가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종교인, 야당 인사, 지지자, 노동운동가, 전두환 비방하거나 집권 민정당에 반대하는 학생도 잡혀갔고요. 할당량 정해놓고 인원 채우다 보니까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을 교도소 정문 앞에서 바로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그 안에서 가혹 행위도 있지 않았습니까? ◆ 손수호> 그렇습니다. 폭행은 물론이고 성폭력까지 빈곤했고 또 심지어 배가 너무 고파서 땅에 떨어진 밥알 주워 먹었는데 그 이후로 조교들한테 맞아 죽은 사건도 있었고요. ◇ 김현정> 총 통계, 정확한 통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통계 같은 게 나온 게 있어요? ◆ 손수호> 사망자가 총 54명. 그리고 후유증으로 인해서 나중에 사망한 사람은 397명. 정신 장애를 입거나 또는 기타 상해를 입은 사람이 무려 2678명이 공식적인 통계고요. 이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참다 못해 항의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때 항의한다고 기관총, 소총 난사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김현정> 도대체 이런 곳을, 삼청교육대 같은 걸 왜 만든 거예요? ◆ 손수호> 일단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었고요. ◇ 김현정> 공포 정치. ◆ 손수호> 그리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활용. 특히 좀 정적 등을 수용하는 그런 수단으로 활용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겠죠. ◇ 김현정> 이른다 데모하다 잡혀간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죽고 이런 사람들 많잖아요.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삼청교육대가 떠오르고. 또 전두환 집권 당시 어떤 거 기억나세요? ◆ 손수호> 사실 이 사건만 해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중요한 사건인데 바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입니다. ◇ 김현정> 권인숙 씨 사건. ◆ 손수호> 86년 부천서 경찰관 문귀동이 학생 운동가 권인숙을 성폭행한 사건인데요. 2년 동안 재판 끝에 처벌은 받았어요. 하지만 극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참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고 있습니다. ◇ 김현정> 순탄치 않았다는 건 뭐였습니까? ◆ 손수호> 처음에 문귀동을 조사한 검찰은 실제로 성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사건 당시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고 발표했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요. 그리고 “성적모욕의 허위사실 유포는 운동권이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쓴다는 증거”라면서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려서 ‘부천서 성폭행 사건’이라고 하지 말고 ‘부천서 사건’이라고 쓰도록 강요합니다.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그 유명한 장세동의 지시에 따른 거죠. ◇ 김현정> 사건을 덮기 위해서 안기부장, 지금의 국정원장까지 나선 거예요. ◆ 손수호> 그렇기 때문에 문기동은 오히려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 권인숙에게 오히려 징역 1년 6개월형이 선고됐었죠. 하지만 그 후에 민주화 과정에서 재정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이루어졌고요. 이렇게 재판을 한 끝에 결국 가해자 문귀동에게 징역 5년형이 선고됐습니다. ◇ 김현정> 전두환 집권 시절의 사건들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세 번째는 뭔가요? ◆ 손수호> 수지김 사건. ◇ 김현정> 수지김 사건. ◆ 손수호> 간첩 조작 사건입니다. 87년 홍콩에서 사업하던 윤태식이 아내 김옥분과 말다툼하다가 살해했어요, 아내를. 그런데 처벌을 피하려고요. 싱가포르에 가서 북한 대사관에 망명 신청합니다, 월북하겠다고. 그런데 북한 대사관에서 안 받아줬어요. 그러자 미국 대사관으로 갔어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도 쫓겨놨습니다. 오히려 미국 대사관에서는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습니다. "이상한 사람 왔다." 결국 한국 대사관에 끌려갔거든요. 거기서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아내가 간첩이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한 거예요. ◇ 김현정> 그런데 아내가 간첩이었다고 하면 살인 혐의를 피할 수 있는 거예요? ◆ 손수호> 국가보안법. 87년 당시 국가보안법 21조 3항에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를 범한 사람을 체포할 때 반항하거나 또는 교전 상태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살해하거나 자살하게 한 경우에는 체포한 경우에 준해서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간첩을 살해하면 처벌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금 받는 거예요. ◇ 김현정> 간첩이면 사살해도 괜찮다. 죽여도 된다. ◆ 손수호> 이 규정은 지금도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그걸 입증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간첩, 아내가 간첩이었다는 걸. ◆ 손수호> 윤태식이 첩보영화 마니아였다고 하는데요. 일단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요? ◆ 손수호> "아내가 수지김이라는 북한 간첩이었고 빚쟁이들한테 잡혀 있다면서 싱가포르로 나를 불러냈다. 그래서 북한 대사관으로 끌고 와서 납치하려고 했고 내가 어렵게 탈출했다." 이런 걸 만들어낸 거예요. 사실 지금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하겠지만. ◇ 김현정> 이거 어떻게 속아요, 여기에? ◆ 손수호> 당시 87년도였거든요.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기 위해서 정말 윤태식의 시나리오를 이용해서 '납북 사건'으로 조작을 한 거죠. ◇ 김현정> 우리 사회에 간첩이 있다라는 걸 그 당시는 이용하고 싶은 정권이었으니까. ◆ 손수호> 이거 역시 안기부장 장세동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 김현정> 반공을 강조하던 정권에서 진짜 월북하려던 사람은 봐주고 억울하게 살해된 사람은 간첩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랬던 것들인데. ◆ 손수호> 사실 안기부가 윤태식을 고문까지 했거든요. 그래서 사건 전모를 이미 확인을 했어요. 안기부가 속아넘어간 게 아니에요. ◇ 김현정> 다 알면서? ◆ 손수호> 다 알면서도 이렇게 활용을 하고 악용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거죠. 그것 때문에 가족들은 계속 간첩 가족으로 결국 손가락질받고 누명 쓰고. 형제, 자매 5명도 다 고초를 겪었는데요. 언니는 연좌제로 해고된 다음에 정신이상을 일으켜서 타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고 오빠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고 여동생 3명 다 이혼당하고 심지어 중학생인 조카도요, 간첩 식구라면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끝에 자퇴했습니다. ◇ 김현정> 중학생도요? ◆ 손수호>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거죠. ◇ 김현정> 그러면 살해자는, 살해자 윤태식은 아무 처벌 안 받았어요? ◆ 손수호> 살인죄로는 당시에 처벌 안 받았어요. 다른 사기로 2년 6개월형을 받기는 했는데 그 후에 출소해서 지문 인식 기술 벤처사업을 합니다. 승승장구했어요. 정치권과 연줄도 있었고. 그런데 그 후에 주변에서 볼 때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언론이 붙고 피해자 가족들이 나서고 해서 수사가 이루어집니다. 나중에 공소시효 완성 50일 남겨놓고 결국 구속됐고요, 결국 징역 15년 6개월형이 선고됐습니다. ◇ 김현정>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도 처벌 받았나요? ◆ 손수호> 그 사람들은 이미 공소시효 완성돼서 처벌을 면했어요. 하지만 법원은 한 집안 사람들의 인생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음을 인정해서, 국가가 유족들에게 총 4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요. 배상 후에 국가가 당시 안기부 간부들과 윤태식에게 구상권 행사해서 법원이 장세동 9억 원, 윤태식 4억5천만 원을 국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해서 무너진 인생이 보상이 되겠냐마는 어쨌든 일부라도 과거의 잘못이 바로잡혔다는데 의미가 있겠네요. 오늘 손 탐정이 5공 시절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뭡니까? ◆ 손수호> 오늘 얘기한 사건들, 전두환 정권 때는 덮여 있다가 나중에 민주화가 되면서 결국 드러나고 관련자들을 단죄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통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있거든요. "살기 편했다, 경제 호황이었다, 나라에 기강이 있었다, 전교조 민노총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요. 그런데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오늘 얘기한 사건을 당했다면 어떨까. 내 아이가 학교에서 싸웠다는 이유로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하고 항의하다가 기관총 맞아 죽었다면? 또 내 딸이 경찰서에 끌려가서 고문 성폭행 당했는데 가해자는 처벌 안받고 오히려 내 딸이 감옥가면? 또 내 누나가 억울하게 살해당했는데 이상하게 간첩으로 몰리고 온 가족이 손가락질을 받고 인생 망치게 된다면? ‘그래도 경제는 호황이니까 괜찮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되니까 참을만한 세상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 김현정> 전두환 씨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이런 망언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당시 저질러졌던 만행들. 세 가지 굵직한 것들 가지고,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가 짚어주셨습니다. 손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사진=한국스마트속기협회)
서울나들이 ㅡ 경복궁에서
#서울나들이 #경복궁 오랫만의 서울나들이 다녀왔네요. 서울구경차 다녀온건 아니구요, 서울에 업무차 다녀오면서 잠시 짬을 내어 경복궁엘 들렸네요. 보통 사적지들은 월요일엔 휴관하는 곳이 많은데 경복궁은 월요일에도 입장이 가능하더군요. 경복궁에 가보니 의외로 아주많은 외국인들이 한복입고 다니는 모습을 볼수가 있더군요. 아마도 여행사측에서 제공하는 한복입기체험이 아닐까 싶더군요. 우리도 여행사통해서 외국여행가면 해보는것처럼 우리나리여해온 외국관광객들도 마찬가지 일듯하네요. 개설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樓)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하는 신하들을 가까이에 두었으며, 경회루 남쪽에 시각을 알리는 보루각(報漏閣)을 세우고 궁 서북 모퉁이에 천문관측시설인 간의대(簡儀臺)를 마련하였으며,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欽敬閣)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였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 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여기에다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흥선대원군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또한,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 밖에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인멸시켰다. 1945년 광복 후 궁은 공원으로 개방되는 한편, 일인(日人)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71년에 궁의 동북 담장 가까이에 지어진 목조기와건물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들어있던 국립박물관이, 1986년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을 고치면서 이 건물로 이건되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낙성되었다. 한편, 일제에 의해 건물이 훼철되는 피해를 입은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1991년부터 침전·동궁·흥례문·태원전·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고종 당시 지어진 건물의 40%가 복원되고,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로조 지어졌던 광화문도 원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내용 경복궁의 주요건물 위치를 보면 궁 앞면에 광화문이 있고 동·서쪽에 건춘(建春)·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에 신무문이 있다. 궁성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다. 광화문 안에는 흥례문이 있고 그 안에 개천(開川) 어구(御溝)가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어구에 돌다리인 금천교(禁川橋), 곧 영제교(永濟橋)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으며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근정전 뒤의 사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인 사정전이 있고 그 동·서쪽에 만춘전(萬春殿)·천추전이 모두 남향으로 놓여 있다.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침(燕寢)인 강녕전이 있고 그 앞 동서 양쪽에 연생전·경성전이 있다. 강녕전 뒤에는 양의문(兩儀門)이 있고 문 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이 있으며 잇대어서 동쪽에 원길헌(元吉軒)·서쪽에 함광각(含光閣)·동북쪽에 건순각(健順閣)이 있다. 그 뒤로는 후원이 전개되어 소나무가 우거지고 연못·정자 등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흥례문으로부터 이곳까지에는 동서로 낭무(廊廡)가 각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이밖에 궁 서쪽에 수정전이 있고 그 위에 경회루가 있는데 수정전은 의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이며, 경회루는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베풀던 곳이다. 또한 건춘문과 영추문 안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현재 궁내에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전 등이며, 복원된 건물은 강녕전·자선당·태원전·광화문 등이다. 근정전(국보 제223호)은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이며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근정문(보물 제812호)은 정면 3칸의 중층지붕건물이다. 근정문 좌우로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경회루(국보 제224호)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장대한 누각 건물로 하층은 네모진 돌기둥을 세우고 상층에는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주변에는 네모난 큰 연못을 파고 우측면에 세 개의 돌다리를 놓았다. 누각 건물로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에 속한다. 향원정은 육각형 평면을 한 정자로 연못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목조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보물 제809호)은 침전건물의 하나인데, 이 건물에는 후원의 담장과 굴뚝에 묘사된 십장생(十長生)무늬가 특히 주목된다(경복궁자경전십장생굴뚝, 보물 제810호). 사정전 북쪽에 있는 아미산은 여러 단의 화계(花階)와 그 사이의 나무·괴석 등이 눈길을 끌며 전체적으로 사철의 변화에 따른 조화를 보여 주는 한국식 정원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도 봉황·귀면·당초문 등을 새긴 육각 화문(花文) 장식의 굴뚝(경복궁아미산의굴뚝, 보물 제811호)이 있다. 이밖에 18세기에 만든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하는 기기인 풍기대(風旗臺)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보물 제847호).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때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보물로 지정된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겨져서 현재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등 일부만 남아 있다. 특징 경복궁이 자리 잡은 위치는 도성의 북쪽 북악산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주산(主山)의 바로 아래이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明堂) 터이다. 궁의 왼쪽으로 종묘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인 좌묘우사(左廟右社)를 따른 것이다. 고종 때 중건된 궁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궁성의 둘레는 1만 여척으로, 시가지를 내려다보듯이 남면(南面)하였고 궁의 주요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에는 정전과 편전들이 놓이고 뒷부분에는 침전과 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른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을 좌우에 놓거나 배치에 있어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경복궁이 조선조의 정궁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의의와 평가 경복궁은 비록 궁내의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져서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었지만, 창건 때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조선왕조 정궁의 면모를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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