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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창업 동료 유형은??

최악의 창업 동료 유형은??

1. 지출을 일절 꺼리는 유형
2. 차별화된 강점이 없는 유형
3. 자신보다 동료의 잘못에 더 민감한 유형
4. 끈기가 없는 유형
5. 경험보다 지식을 앞세우는 유형
6.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않는 유형
혹시 자신이 이런 유형에 속하지는 않는지 체크해보시구
주변에 창업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의견을 여쭤봐 주세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링크를 클릭하세요. >> http://bit.ly/20150721_Creativekorea
출처 - 온라인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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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업 6곳, '朴 대선자금' 제공후 한일협정 체결돼
CBS노컷뉴스 박고은 기자 미국 CIA 1급 비밀보고서 자세히 기록 김종필, 한일협정체결 직전 日에 SOS "67년 대선자금으로 2600만$ 필요" 61~65년 日기업들 공화당에 6600만$ 지원 한일협상 증진용, 日기업들에대한 독점권 대가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 '한일관계의 미래'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한일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 기업들이 박정희 정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4년 공개한 적이 있는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면, 일본 기업들은 1961~1965년 사이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2/3를 제공했으며 6개 기업이 지원한 금액은 6천6백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지급한 청구권 자금(3억 달러)의 1/5이 넘는 금액이 박정희 정권의 비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보고서에는 "김종필에 의하면 민주공화당은 1967년 대통령 선거운동 자금으로 2천6백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돈은) 한일협상을 증진시키기 위해 김종필에게 지불되고, 또한 여러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 내에서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가로 지불된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은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도 자금을 받았는데, 정부방출미 60,000톤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 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5,000$을 지불했다. 민주공화당은 1963년 2월 26일 5.16군사정변 주체 세력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다가, 당의 상징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1980년 해산된 정당이다.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 '한일관계의 미래'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박정희 정권은 국교 수립 이전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던 일본의 기업자금을 토대로 수립되었으며, 매판 자금 수수에 대한 보상으로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또 "일본은 한국 시장을 헐값에 사들여 이후 4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일본 경제에 종속시키고 중간재 수출시장으로 고정시켰다"며 "한일협정 이후 93년까지만 무려 1000억$이 넘는 무역역조를 통해 투자금액의 300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다"고 밝혔다. 사무엘 버거 전 주한미국대사의 미 국무성 보고 전문에는 박정희 정권이 배상 요구보다는 원조를 포함한 일괄 처리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난다. 증거 자료가 없는 일부 청구권의 포기를 먼저 일본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사무엘 버거 전 주한미국대사의 미 국무성 보고 전문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문건에는 "박정희가 내게 말했는데 그가 일본에 제안하기를 증거 자료들이 훼손되어 어떤 청구권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총액 중 경제원조 부분은 패키지 방식과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내용과 함께 "액수가 합의되었을 때 한국인은 그것을 청구권에 대한 보상으로 부를 수 있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증거자료가 없는 부분에 대한 무상공여라고 부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일갈등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한일협정을 졸속 타결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협정의 정통성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면 이제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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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 지내다 연애를 시작하면 연애가 어려운 이유
친구로 지내다 연애를 시작하면 연애가 어려운 이유 다이어트를 위해 당분간은 금주다!라고 선언하고 정확히 2시간 후 걸려 온 전화  "VR, 나와라 술 한잔 좀 하자!" ㅜ_ㅜ 정말 친구도 울 줄도 모르는 놈이다.  반바지에 티만 입고 동네 족발집으로 나가 연애상담을 시작했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이 재수생활을 함께한 친구로 뛰어서 3분 거리에 살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나를 살찌우는 인간이다...ㅜ_ㅜ 이 친구(이하 '친구남')의 여자 친구(이하 '친구녀')도 우리와 같이  재수생활을 했던 친구로서 이 둘은 서로를 알게 된 지 근 7년 만에 커플의 길로 들어섰다.   친구녀는 몰랐겠지만 이 커플은 100% 나의 작품이다....-_-;;; 각설하고 이제 사귄 지 100일을 갓 넘긴 이들이 요즘 들어 시끄럽다.  7년 동안 서로 알고 지냈으면서도 왜 이리 맞지 않는 것일까?  1. 1급 비밀연애 현재 이 둘의 연애는 1급 비밀이다. 워낙 둘 사이에 엮인 인연들이 많고 심지어 친구녀의 옛 남자 친구도 같이 재수생활을 했던 친구다. (난 내 자식은 절대 재수 안 시킨다... 하라는 수능 공부는 안 하고 연애 공부만 하기 때문에...) 이러다 보니 친구남과 친구녀의 연애 생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런 비밀연애는 둘 사이에서 트러블이 일어났을 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게 만들었고 철저히 고립된 연애 생활을 하게 했다. 절대 비밀!!! 2. 서로에 대한 환상이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7년 동안 그저 친구로만 지내다 보니 서로 볼장다본 사이가 되어버렸다. 구남은 나와 나이트 죽순이들과의 추억들을 구성진 가락으로 친구녀에게 낄낄거리며 자랑했었고, 친구녀는 5년간 사귄 남자 친구와 여행 다녀온 이야기며, 기념일의 추억들을 나와 친구남에게 자랑했다. 이렇게 서로의 지난 과거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하다 보니 연애가 결코 쉽지 않다. 난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3. 서로에 대한 환상이 너무 많다? 오랜 기간 서로를 알고 지내다 보니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의 관계가 되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갖은 단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친구 남녀의 경우 친구남은 조용하고 배려심 깊은 친구였지만 막상 사귀어보니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소심할 수가 없었고 친구녀는 활발하고 귀여웠는데 막상 사귀어보니 그렇게 바가지를 긁고 집착이 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모든 커플들 또한 사귀고 나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단점들을 발견하지만 오래 친구사이를 유지했던 커플의 경우에는 서로를 잘 안다는 생각이 깊기 때문에 사귀고 난 후 발견된 단점들에 대해 "속았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바닐라 로맨스의 생각 1. 비밀연애는 부패한다. 비밀연애 초반에는 남들 모르게 몰래 만난다는 일종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느낄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연애는 조금씩 부패하기 시작한다. 사랑은 단둘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주변 환경에서 영양분을 얻어 자란다. 당신의 사랑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기 싫다면. 비밀연애는 하지 말아라. 이쁜 연애를 하고 싶다면 공개해라! 2. 다른 남자나 여자도 다~ 똑같다! 오래된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어가면 서로의 치부에 대해 너무나 잘 알다 보니 싸움만 나면 지난 치부를 들춰내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른 남자나 여자도 모두 비슷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왕년에 나이트 좀 안 가본 남자가 몇이나 되며 과거 없는 여자는 어디 있겠는가?) 당신이 알고 있는 상대의 치부는 사실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가 간직하고 있는 치부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차라리 속 시원하게 미리 알고 만났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3. 포장지와 똑같은 라면은 없다! 오래된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어온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친구일 땐 몰랐는데 ~하더라! 정말 속았어!"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의 포장지를 보면 세상에 그런 일품요리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빨간 국물에 건더기 몇 개에 올라간 국수일뿐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오랫동안 지켜본 것은 그 사람의 포장지일 뿐이다. 라면을 끓여보니 포장지와 전혀 다르다고 슈퍼로 달려가 따지는 사람이 없듯이 친구일 때와 다르다고 상대방에게 따져서는 안 된다.  라면 포장지에는 아주 조그마한 글씨로 '조리 예'라고 쓰여있다. 당신은 그냥 친구일 때 당신에게 보여준 상대방의 모습도 일종의 '조리 예'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일 ‘정냉경냉’(政冷経冷)의 위기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 협력의 길로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징용, 위안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문 대통령은 앞서 12일에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을 전하면서 “일본 비판의 톤을 점점 줄여가고 있다”(日本批判のトーンを徐々に下げつつある)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 협력의 길로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日本が対話と協力の道に出れば我々は喜んで手をつなぐ)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두면서 “양국간 협의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서두르고 싶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또 다른 기사에서 ‘정냉경냉’(政冷経冷)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일간의 정치, 경제 냉각화의 위기가 역사문제, 무역 및 투자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日韓「政冷経冷」の危機 歴史問題、貿易・投資に影)는 내용의 기사다. 이 신문은 기사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대화를 촉구했지만, 양국의 골은 깊다”며 “정치적 대립이 탄탄하게 유지되어 왔던 경제에 미쳐 ‘정냉경냉’의 위기가 다가왔다”(政治の対立が、強固な結びつきを保ってきた経済に及ぶ「政冷経冷」の危機が迫る)고 했다. 사실, ‘정냉경냉’이란 말은 ‘정냉경열’(政冷経熱: 세이레이게이네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표현이다. 정냉경열은 일본과 중국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로,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涛)가 국가주석으로 있을 당시 만들어낸 말이다. 정치 분야는 냉각되고 있지만, 경제 분야는 ‘열기’를 띄고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이 개방 정책을 펴면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경제 분야가 ‘열’(熱)의 관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2000년대 들어 줄줄이 발생했다. 2001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중일관계가 ‘정냉경열’로 돌입했다. 급기야 2012년엔 일본이 센카쿠 열도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냉각됐다. 이런 가운데, 양국 정상들은 관계 복원을 위해 서로 오갔다. 고이즈미의 후임자가 된 아베 총리는 2006년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중국을 택했다. 2007년 4월엔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일본을 찾아 ‘정상 상호 방문’ 재개를 위한 길을 텄다. 이듬해인 2008년 5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일본을 방문해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그렇게 중국과 일본은 ‘정냉’(政冷) 관계를 타계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 왔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는 정냉경냉(政冷経冷)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현재로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어렴풋하게 방향은 제시했다. 공은 이제 일본으로 넘어간 셈이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4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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