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yj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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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전역식에 간 효녀 박보영

박보영을 뿌리칠수 있는.. 조정석 멘탈이 대단하네요 ㅋㅋ
애교 끝판왕 박보영 ㅎㅎ
3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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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정석 극한직업 찍는것같던데
거미씨가 싫어합니다
같은여자가봐두 박보영 넘 사랑스러웡~♥♥♥
조정석도 뿌리치느라 힘들었데요..너무 사랑스러워서ㅠㅠㅠ
워 특전부사관으로 전역 ㅋㅋㅋ장인어른 클리어가 힘들어서 포기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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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이 1박2일에 출연했던 이유
1. 과속 스캔들 이후 박보영은 여러 작품이 들어왔었음 찬란한 유산, 선덕영왕등 대부분 대박친 작품들.. 근데 기회를 날려버림(박보영은 하고 싶어했는데 소속사가 막음) 심지어 박보영이 날린것도 아닌 소속사가 확답 안주고 그래서 걍 다른 사람 캐스팅 2. 소속사가 확답을 주지 못한 이유는 그 당시 박보영이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영화를 촬영 중이였음(소속사 측에서는 올림픽 주제 영화가 흥한다면서 이걸 강력 추천) 3. 처음엔 박보영이 척추측만증이라 이 영화 못한다고 거절했는데 소속사 대표가 끈질기게 징징거려서 어쩔수 없이 함 4. 영화 촬영중 박보영은 머리를 크게 다침.. 처음부터 못한다는 영화 가지고 억지부린 소속사가 박보영 생각해서 정리해주겠따고 함 근데 말로만 그렇게 하고 딱히 잘된일이 업음 5. 영화사 보템은 영화 출연을 이행하지않는다는 이유로 박보영을 사기혐의로 고소함 6. 소속사 측은 본인이 고소당한게 아니라 '박보영'이 고속당한거라고 나몰라라함(당시 박보영 나이 20세..) 7. 이뿐만아니라 소속사는 박보영과 상의하지 않고 스타 화보촬영을 수락했다가 마음대로 거부하는 짓을 하며 들어오는 드라마 족족 확답을 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임(선덕여왕, 찬란한 유산 이후 드라마 캐스팅이 안들어왔음) 박보영 이미지만 바닥으로 몰게함
짤줍_800.jpg
굿모닝 하늘이 예쁜 월요일 다들 잘 깨어 계신가여 넘모 피곤하지만 하늘 예쁘니까 800번째 짤이니까 버팁니당 ㅋㅋ 800이라니 800이라니!!!!!! 이시국이라 그런지 매일이 단조로워서 700에서 800까지 오는 데는 다른 때보다 특히 더 순식같이었던 것 같진 하지만 시간은 분명히 큰 차이 없이 흘렀을테니까 숫자를 믿고 시작해 봅니당 ㅋㅋㅋ 내가 적고도 뭔소린지 원 ㅋㅋㅋㅋ 암튼 짤 기기할까영 1 이시국 빨간마스크ㅋㅋㅋ 2 ㅋㅋㅋㅋㅋㅋㅋㅋㅋ커엽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쓸데없이 구체적이네 4 나는,,나에게,,반했따,, 5 ㅎㄷㄷ 그르네 6 쟁반노래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 ㅇㄱㄹㅇ.... 하지만 오늘은 월요일이고 좀전까지 일했지...ㅠ 8 녀석들 ㅠㅠㅠㅠ 코로나도 안걸리구 수명도 늘구 귀엽구ㅠㅠㅠㅠㅠ 9 잉 아저씨 넘모 따뜻하잖아여ㅠㅠ 10 하루만에 한국말을 트이게 하는 술 ㅋㅋㅋㅋㅋ 11 유병재 누나 드립력도 남다르네여 ㅋㅋㅋㅋㅋ 12 차고가 부족해서(없어서) 포기한다 1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ㄱㄹㅇ 15 이것이..엄마의..사랑.. 1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셋뚜야 셋뚜 17 나나연이지만 마지막은 커여운 걸로 장식해봅니당 이건 쫌 커엽네 ㅋㅋㅋㅋㅋㅋㅋ ㅋ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구 기분이 꿀꿀하면 하늘 한 번씩 보시구 짤 보고 좀 더 웃고 그러시길 짤둥이는 내일도 또 옵니당 ㅋ 그럼 전 이만 짤 주우러 빠잇ㅇㅇ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파헤친 고종의 비자금의 진실
그것이 알고싶다 767회분 '고종 황제의 비자금은 어디로 갔는가' 1900년대 초반,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고종은 내탕금(황실이 사용하는 재정)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1907년에 100만마르크 정도의 금액을 독일은행에 비자금을 만들게 되는데  현시가로 따져보면 약 500억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고종이 쓴 비자금의 용도는 일본 영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러사람의 항일운동 자금줄이라 명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야사를 기록한 책이지만 한국야담사화에서도  독립운동가(우당 이회영 선생)에게 자금 하사 상하이임시정부 설립 밀사 파견을 기록했으며 그 외 도쿄보다 2년 일찍 전차 설립도 고종의 내탕금으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07년 고종황제는 폐위를 당한 후,  고종은 러시아에 이범진 영국에 이한우 미국에 헐버트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데 이런 부분들도 전부 고종 비자금,  즉 내탕금으로 해결하고자했습니다.  그래서 헐버트에게 위 자금을  찾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호머 헐버트(1863-1945)는 조선 후기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던 선교사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죽을때도 한국에 와서 죽었고 고향보다 한국에 묻히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종황제 비자금을 받아서 한국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헐버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하이에 있던 비자금을 '나베시마'라는 인물이 빼내가버렸습니다. (노어이...) 그알 팀이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했는데.. 1. 본사건물이 철거되면서 도이치 뱅크에 자료가 없다는 점 2. 1923년, 독일이 전쟁 배상금으로 많은 화폐를 찍어내면서 화폐개혁을 통해 10억마르크가 1마르크로 변했다는 점 3. 상속채권과 같은 채권의 재산권행사는 30년이라는 점 4.1952년 독일채권회의가 열렸지만,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여 권리가 없다는 점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손댈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일전에 50만 마르크를 빼간 일본에게서는 법적인 책임이 없을까요? 나베시마.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최측근 인사로써, 외교관으로 활동한 인물로, 통감부의 공을 크게사 후에 외무총감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통감부래안을 살펴보면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의 비자금 실체를 알고 고종의 명령서를 위조하여 '덕화은행'의 돈을 인출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돈을 이완용 부자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인한 사람이 이윤용(이완용의 형)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씹빨... 요즘 1905년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증거들이 하나둘씩 발견되면서, 일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1965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청구권의 관한 부분의 포기를 선언하였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도 불리합니다.  고종이 독일에 보낸 서한 내용입니다 본인에게는 아직 2천만의 신민이 있습니다.... 절박함이 보이지만 이미 일본이 열강들과의 조약을 맺으며 동맹관계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 관해  서울대 역사학과 이태진 명예교수님 의견. 경기대학교 안창모 교수님의 의견. 그알에서 예전에 다뤄줬던 고종황제 비자금편인데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예전에 그림자 살인이라는 영화가 나왔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