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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재고찰》 출간
- 마케터 리뷰
가끔인지 자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내 가치관에 다른 사람이 간섭할 권리는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되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을 일단 흥미롭게 보실 수 있습니다.(그러나 출판사 직원으로서 참 말하기 싫지만 내용이 어려워 쉽게 읽을 수 없더군요. 순도 99.9% 학술서입니다.^^) 아무튼 이런 개인주의적인 혹은 가치관을 다양하게 인정하자는 태도가 종교를 믿는 태도와 유사하거나 기원이 되는 태도라면 어떨까요? 심지어 종교 부흥에 기여했다면요? 조금 더 흥미가 생기실까요?
이 책은 윌리엄 제임스의 저서이자 종교학 분야의 고전인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다시 바라본 책입니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간단히 알고자 하신다면 제목 앞에 '개인의'만 붙여주시면 됩니다. 개인이 종교를 '강렬하게’ 경험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각각의 경험은 고유하다는 것이죠. 좀 과하게 표현하면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마'나 CF의 유행어인 '니들이 게맛을 알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지요.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철학자라고 말해지는 찰스 테일러가 나온지 100년도 넘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향성》을 왜 다시 보고 있는 걸까요? 사실 찰스 테일러의 개인적인 사정까진 모르겠지만 그저 책이 좋아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찰스 테일러는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통해 오늘날의 종교와 사회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테일러는 제임스가 100년 전에 오늘날의 개인주의 사회를 본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임스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교리나 사회 문화가 아니라 개인적인 '강렬한’ 종교적 경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로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했더니 시험에 합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도라는 '강렬한’ 종교적 경험 때문에 앞으로도 종교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경험을 공유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한 사람이 성공했다고해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개인의 경험은 때때로 어떤 법칙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 법칙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으니까요. 누구누구의 1등 공부법이 모든 사람을 우등생으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요. 아무튼 이처럼 개인의 '강렬한’ 경험은 개인 고유의 것이고, 누구나가 자신의 인생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선 '강렬한’ 경험을 개인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겠죠. 대충 이런 관점이 제임스의 종교관입니다.
사고가 빠르시거나 감정이 예민하신 분은 제임스의 논리에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임스는 20세기 초에 사람들은 거듭나기 위해서 개인적이 될 것이다란 걸 예상한 학자였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느낌이 있습니다. 왜냐면 제임스의 말 대로 '개인'이 중심이 된다면 세상은 온통 조각나야하니까요. 사회를 이루거나 국가에 소속되거나 공동체를 이뤄야 하는 목적의식도 불분명해지겠지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정도가 다 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런 현상을 '세속화’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책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말하긴 어려워서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의 교리를 실천하며 사는 개인이나 국가의 질서를 따르는 개인의 자리에 개인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인이나 개인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들어서게 된다구요.
개인적으로 종교의 세속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이것도 간략히 설명하면 종교혁명 이전(개신교 이전)엔 성직자만 구원을 받거가 구원을 내려줄 수 있었지만 종교혁명 이후엔 모두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단, 이 윤리가 자본주의와 합쳐지면서 자기 직업에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란 논리가 만들어졌지만요. 참고로 이 논리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노동자에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다른 곳으로 이야기가 빠져나가긴 했지만, 아무튼 종교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용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교관으로 큰 부흥을 이루기도 했구요.
이런 세속화 문제 때문에 테일러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다시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처럼 개인과 국가(사회)의 관계가 불편한 세상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적어도 100년 전부터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거듭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서양의 종교개혁이 원인이 되었든, 종교개혁을 이룬 서양 문물의 수용이 원인이 되었든 간에 말이죠.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현상이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다원주의라고 찰스 테일러는 말합니다. 개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존중도 받게 되었지만 사실 모든 가치를 존중하긴 어려운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의 종교와 하나의 국가에서 모든 개인이 각자 거듭나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면 참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종교 안에서도 개인주의가 성장하고 있고 종교 밖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이클 샌델과 함께 공동체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찰스 테일러는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세속화되고 개별화(원자화)된 종교관과 가치관이 공동체적 사고와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100년 전의 글에서 예측할 수 있는 불안한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어느 것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다원주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말이에요.
_문예출판사 문예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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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현대 종교의 다양성》 을 통독하고 쓴 내용입니다. 이해 부족으로 책에 대해 잘 못 표현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출판사 공식 소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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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기
교보문고 : http://goo.gl/K9AJBD
인터파크 : http://goo.gl/RzTe1s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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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있고 읽어브고싶은데 앞서 학술서느낌이라 말씀하셔서ㅜㅜ 관련 책중에 쉽게 읽힐만할 책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tmdws0116 다소 거칠게(어떤 분이 보시기엔 많이 천박하게 보일 정도로..) 책을 요약을 했습니다. 책의 뼈대만 보면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나 인용되는 글들과 여러가지 맥락을 알아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 용어 등이 다수 등장하여, 관련 책을 많이 읽은 경험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책이 신학 강의에서 이루어진 강연록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아니라 강의를 듣는 사람에 맞게 구성되어 어려움이 있는 점 이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tmdws0116 님 책에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책과 비슷한 책은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인간> 정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책 또한 학술서라 읽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의 내용과 주제가 같고 쉬운 책은 떠오르지가 않네요.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예스24나 알라딘 등의 서점 미리보기를 통해 살짝 보시고 직접 판단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아래 간략하게 요약하여 드려봅니다. 책의 논리 구조를 알면 좀 더 쉽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제임스란 철학가가 개인의 종교적 삶은 교리가 아니라 개인의 종교적 경험으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2. 제임스의 주장은 근대 이후 종교가 맞이한 위기를 정확히 본 것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정확히 내놓은 것이다. 3. 왜냐하면 근대 이후 합리(과학 등)적 사고가 발달함에 따라 신(종교)를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20세기 이전엔 신을 부정하는 것은 곧 죽음과 같았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이야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4.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계속 신을 믿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5. 그건 제임스가 미래를 완전히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6.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를 믿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믿음이 약해졌고, 합리적은 사고를 믿는 사람은 종교를 믿는 사람을 보고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7. 근대 기독교가 종교적 경험을 통한 '거듭남'(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의식이나 악이나 우울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으로 부흥(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하느님을 믿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논리로)을 이루었지만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분열되어 있다. 9. 종교도 합리도 진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종교는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10. 종교가 사회 통합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고, '거듭납'의 논리는 상업의 형태로도 등장했다. 11. '이 물건을 쓰면 인생이 변합니다', '이 물건을 통해 당신 자신만의 삶을 찾으세요.' 등이 종교의 '거듭납'이 세속화된 예이다. 12. 비록 제임스가 말한 믿음의 형태는 현대에 완전히 변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에 가고 사회를 살아나가고 있다. 13. 왜나하면 사람들은 개인적인 종교 경험만이 아니라 관계(교육)를 통해서도 믿음(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14. 이 부분은 제임스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15. 믿음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다는 제임스의 이론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한 종교의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16. 여기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17. 뒤르켐이 말한 것처럼 연대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18. 그러므로 좀 더 의식적으로 연대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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