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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월드]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위대한 군사지휘관 4인

구독 부탁드립니다 제작자 : 랭킹월드 Ranking World 제작자의 개인적인 시각에서 제작된 영상이며 개개인의 생각은 차이가 있을수있습니다 이순신(李舜臣, 1545년 4월 18일[2] (음력 3월 8일) ~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徳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한성 출신이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3] 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깊은 효심을 지닌 선비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장수로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뒤 선무공신 1등관에 추록되고 증 의정부우의정에 추증되고 덕풍군에 추봉되었다가, 광해군 때 다시 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고, 정조 때에는 증 의정부영의정으로 가증(加贈)되었다.

[랭킹월드] 북한에서 일어난 쿠데타 5가지

구독 부탁드립니다 북한에서 실패했던 쿠데타 5가지입니다 해주폭동 (1976년) 19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김일성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하여 북한의 대규모 인민이 봉기를 하게 되었으며 이에 북한의 김일성정부는 협상이고 뭐고 즉시 인민군 4개여단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폭동 가담자뿐만 아니라 죄없는 마을주민까지 합하여 대략 3만명을 무차별하게 학살한다. 황해도 해주지방의 인구가 27만명인것을 감안하여 보았을때 3만명이라는 인원이 사망했다면 큰 규모로 폭동이 일어났다는것을 감안 할 수 있으며 북한의 김일성은 무차별 학살에 그치지 않고 해주지방과 근처에 있던 도시인 개성주민들까지 폭도들에게 선동당했다고 판단하였는지 주민 전원을 정치범수용소에 보낸 뒤 죽을 때 까지 강제노동을 하게 만들었다. 온성정치범수용소 폭동 (1987년 5월) 1987년 5월에 온성정치범수용소에서 어느정치범이 노역을 하고 있던도중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수용소간부가 정치범을 구타하기 시작하였고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정치범은 수용소간부를 역으로 폭행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200여명 가량되는 죄수들까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수용소간부를 죽을때까지 폭행한다. 이후 정치범수용소의 정치범들은 열의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간부들의 사저까지 쳐들어가서 간부들을 죽였으며 이 과정에서 다른 죄수들이 선동당하고 합세하게되어 폭동규모는 5천명을 넘기게 되었으며 주변에 정치범수용소에 주둔하고 잇는 인민군의 일부를 급파하여 고사포와 기관총 등을 이용하여 폭동에 가담하지 않은 죄수들까지 모두 학살하게 된다. 만약 이들이 경비원들을 모두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해서 북한군과 교전을 했다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을것이며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