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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1] 낮잠 3

오후 수업은 없었다. 혜주와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우선 지하철역으로 가는 스쿨버스에 몸을 실었다. 커튼을 젖히자 햇빛이 들어왔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기다리고 있었고, 곧 졸업이었다. 신임 학생회장 P는 여전히 조금 못 미더운 데가 있었지만 이제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지난주 인수인계를 모두 마치고 나자 후련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제 당장의 진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과는 거리가 먼 동기들은 취업이냐, 4년제 대학 편입학이냐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지난주 겨우 원고를 모아 신춘문예 공모전에 투고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기대할 바는 못 되었고, 마찬가지로 취업이냐 편입이냐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네가 이번에 떡하니 등단해서 우리 학번 최초의 소설가가 될지 누가 알아? 나는 조바심을 내는 혜주에게 이렇게 격려하곤 했지만, 또 그건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 크게 힘이 되지 않을 말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까 앞일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었고, 그것만이 일말의 위로라면 위로였으며 격려라면 격려였다. 버스에서 내리다 말고 혜주가 느닷없이 우측 중간쯤의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몸을 숙였는데, 바닥에서 뭔가를 줍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혜주가 보랏빛 가죽 지갑 하나를 들어 보이며 내게 익살스런 눈짓을 했다. 버스에는 기사 아저씨를 제외하고 우리 둘뿐이었다. 혜주를 앞세우고 서둘러 내린 내가, 그게 뭐냐고 묻듯 혜주와 혜주의 손에 들린 지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웠어. 혜주의 말이었다. 혜주와 나는 옆 건물 입구로 들어가 지갑을 열어보았다. 스쿨버스이니 당연히 같은 학교의 학생이 떨어뜨리고 간 지갑일 터였다. 학생증이 있었고, 살펴보니 우리 학과 옆 건물을 쓰는 학과의 모르는 여학생이었다. 프랜차이즈 카페 멤버십 카드 몇 장과 절반 조금 넘게 도장이 찍힌 종이쿠폰 몇 장, 그리고 체크카드 한 장과 현금 이만 원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현금 이만 원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뒤 지갑은 근처에 세워진 우체통에 넣었다. 이만 원쯤은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만 원어치의 가벼운 죄책감. 훗날 업보처럼 이만 원 어치의 벌을 받는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십만 원, 아니 오만 원만 됐더라도 적어도 우리 둘 중 하나는 진지하게 그대로 돌려줄 것을 제안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말없이 그 모든 것을 실행했다. 우리는 이만 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막 구내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백반을 먹은 후였다. 이만 원이라는 돈은 둘이서 뭔가를 하기에는 참 어중간한 돈이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학생회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던 우리는 늘 궁핍했고, 요 근래에는 캠퍼스 주변 산책이나 하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다. 약소한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등록금 일부 면제 식의 지급이었고, 그나마도 학생회장인 나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몇 차례 의논 끝에 평소 봐두었던 카페에 가기로 했다. 저 카페 예쁘다. 이런 말은 많이 했지만, 돈이 생겨도 가보지는 못했던 그런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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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1] 낮잠 2

모처럼의 이른 퇴근길이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승진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것은 변변찮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는 턱없이 미진한 보상이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이직을 생각 중이었다. 그 전에 여행이라도……, 아니다. 나는 한동안은 그냥 푹 쉬고만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전철 입구를 올라와 신호등 없는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막 건넜을 무렵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방금 건너온 보도블록 저편의 골목에서부터 누군가를 다급하게 외쳐 부르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남자가 부르는 상대가 나라고 생각해서 돌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남자의 시선은 분명 이편에 고정돼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남자가 호명하는 상대로 추측되는 사람은 없었다. 조그만 구두수선 방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인 둘과 좌판에 희멀건 더덕을 늘어놓고 있는 왜소한 노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고, 남자는 잰걸음으로 보도를 건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하지만 그가 저 멀리서부터 외쳐 부른 상대는 바로 나인 것 같았다. 결국 그가 당도한 곳은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이었다. 남자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굉장히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뭘까 이 남자는. 복권 배달하는 분이시죠? 그의 말이었다. 복권이라니. 이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게다가 그의 말투는 너무나 확신에 찬 것이어서 나는 순간 내 기억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불러대도 이쪽에서 그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면 긴가민가할 법도 한데,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나를 완벽하게 동일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내가 복권과 관련됐던 기억은 없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복권을 팔았던 기억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취업 준비 기간 중 고작 두 달가량 스쳐 가듯 했던 일에 불과했다. 이미 3년도 더 지난 일이다. 게다가 복권 판매도 아니고 복권 배달이라니?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닌데요. 나는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한 표정과 말투로, 티 나지 않게 최대한 화를 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이토록 확신에 찬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고유성이 완벽하게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아니에요? 그가 얼굴에서 웃음을 조금씩 거둬들였다. 내 말을 듣고도 다소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요. 그가 어리둥절해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사과 한마디 없었지만, 그것은 그의 무례함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나와 동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얼떨떨함으로 느껴졌다. 그러자 나 역시 내가 잊고 있는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정말 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멍해진 기분을 떨쳐내고 나 역시 발걸음을 뗐다. 돌아보았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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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1] 낮잠 1

혜주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조건을 다는 듯 물었다. 너, 내가 똑같은 경우라면……, 나한테 다 말해줄 자신 있어? 내막도 모르는데 이런 조건을 다는 혜주가 조금 귀여웠다. 혜주는 분명 내게 뭔가 말할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내 망설이고 있던 차였다. 굳이 구내식당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하던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통화를 마치고 온 뒤의 혜주는 뭔가 영 수상해 보였다. 느낌상 학생회 누군가와의 통화였던 것 같지만 부러 묻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의 추궁을 유도라도 하는 듯 과장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결국은 젓가락질을 멈추게 했다. 뭔데, 얘기해 봐. 아니야, 밥 먹어. 이런 줄다리기식의 대화가 몇 번을 오갔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조르는 단계에 다다랐다. 어차피 혜주의 태도가 이미 토로에 기울어있어 보였으므로, 힘을 실어주기로 하고 닦달 아닌 닦달을 했던 것이다. 비밀 누설에 대한 책임을 내 쪽으로 덜어와 혜주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자 했던 마음도 있지만, 사실 궁금했던 것이 제일 크기는 컸다. 뭐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겠나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당연하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그러나 혜주는 여전히 이래도 되나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우리끼린 절대 비밀 없는 거야, 알았지? 그 말을 끝으로 혜주가 풀어놓은 얘기들은 조금 흥미로운 것이었고, 예상대로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었지만, 듣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까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가평의 한 펜션으로 떠나기로 계획이 돼 있었다. 신임 학생회가 결성되고, 전대 학생회와 함께 몇 번의 회의를 거쳐 LT, 그러니까 리더십 트레이닝이라는 구색 좋은 학생회만의 모꼬지를 가기로 한 것이다. 학생회라고 해봤자, 초반에는 신임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각자의 친분으로 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신임 부학생회장으로 뽑힌 J의 인맥과 신임 학생회장으로 뽑힌 나의 인맥이 반반씩 섞여 우선 학생회의 머릿수를 채우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변동이 있더라도 말이다. 조교와 전대 학생회장은 학사 일정이 생각보다 빠듯하다며, 서둘러 학생회를 결성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자친구인 혜주 역시 학생회 임원 중 한 명으로 우선 섭외했고, 혜주 역시 기다렸다는 듯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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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0

빙글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후로 한 달 남짓이 지난 것 같다. 그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다. 물론 잡지에 발표를 해야 해서 시 한 편을 쓰기는 썼지만, 그건 사실 이미 써놓은 글을 가지고 조립하고 조금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지난 일 년 동안 글의 질을 떠나서,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매주 꾸준히 썼던 탓에, 그것도 습관이 들었는지 글을 안 쓰는 순간들이 어색하고 좀이 쑤셨다. 아니 조금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그동안 못 읽은 책들을 읽은 것도 유익한 일이기는 했지만, 역시 글 쓰는 자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돼야 함을 새삼 느꼈다. 사실 작년에 흘리듯이 뱉은 말 중 하나는, 올해에는 매달 짧은 소설을 한 편씩 쓰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날짜를 매달 마지막 날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 벌써 2월이고, 시작부터 나는 또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지난 학기 소설 수업에 써냈던 소설을 게재할까도 싶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속이는 일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라, 그만두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그대로 중계하는 꼴로 두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게을렀다는 것 외에 어떤 변명이 더 필요할까만, 사실 꼭 게을렀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그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영화의 대사들을 반복적으로 듣거나 하는 일들로 나날을 채웠기 때문이다. 최근에 뒤늦게 읽은 시인 이성복의 산문집에는 정말로 여러 형태의 글들이 수록돼있었는데, 그 속에는 소설도 있고, 그가 받은 문학상 수상소감도 있고, 그가 즐겨 쓰는 비유들로 얘기하는 일종의 시론도 있고, 독서일기라기엔 조금 애매한 글도 있고, 글쓰기에 대한 다짐,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기들도 있다. 물론 그의 사유는 배울 점이 많지만, 어떤 일기들은 너무나 사소해서 이 글의 저자가 과연 이성복이 아니었어도 내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떤 비유들은 너무 과해서 읽다가 지치는 데도 있었다. 그 글들은 엄밀히 말해서 독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을 위한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그는 글에 대한, 또는 시에 대한 열망이 깊으면서도 오래 이어지는 일종의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그는 그저 그 슬럼프마저도 그대로 적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독자에게도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일로 보였다. 또한 그는 일만 매의 글을 쓸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을 달성했을지, 혹은 달성해나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꽤 탐나는 계획이었다. 나는 작년에 수업 발제나 과제, 발표용을 제외하고, 대략 오백여 매 분량의 글을 썼다. 오백여 매의 분량이라는 것은 꽤 두꺼운 장편소설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들을 지금 읽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그것이 의미 없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쓰기의 꾸준함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느냐에 있다.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올해 내가 시도할 글은 앞서 언급했듯이 ‘소설’이다. 아니 ‘소설 비슷한 것’이다. 아무리 짧은 소설이라고 해도 열다섯 매의 분량은 될 것이며, 그렇다면 한 달에 한 편의 소설이라 해도, 분량 면에서는 작년에 매주 꾸준히 쓴 글과 다를 바가 없다. 올해 나는 우선 소설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습관을 들이는 훈련 목적이 가장 크다. 매달 한 편이니 총 열두 편으로 계획했지만, 어차피 첫 달부터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올해 안으로 열두 편을 써보자는 것인데, 여기에 더해 열두 편 이상이 될 수 있으면 그렇게도 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쓰려는 소설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생활소설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그래서 올해 글쓰기 프로젝트 이름도 정했다. 바로 ‘생소’다. 눈치챘겠지만,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부여된다. 첫째는 ‘생활소설’의 약자로서의 의미이고, 둘째는 흔히 알고 있는 “생소(生疏)하다”라는 말의 어근으로서의 의미이다. ‘낯섦’과 ‘생활’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이 썩 나쁘지 않다. 물론 내가 앞으로 쓰려는 생활소설은 생활에서 시작될 뿐, 반드시 현실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 소설의 방향은 나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것들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마디를 해보고 싶었다. 기약 없이 게재할 예정이지만, 가능하다면 일정한 주기로 올려보겠다. 이 글쓰기들은 우선적으로 나를 위한 것들이겠지만, 불특정 독자들이 우연히 보고 조금이라도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큰 기쁨이겠다. 그럼 조만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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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동안 여러모로 일을 도와준, 알게 모르게 폐를 끼친 이를 위해 와인 한 병을 샀다. 드디어 읽기 시작한 철학 잡지는 생각보다 깊이가 없는 느낌이다. 마지막 연말 모임에서는(고작 둘이 만난 거지만)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친구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9월 21일에 쓴 38번의 글에서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묻고 있다. “……너는 어떻게, 지금보다는 행복하니?” 그날의 너의 예상처럼 지금 나는 그때의 너보다는 행복하다면 행복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의 네 조바심만 없어졌을 뿐,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그날의 너는 오늘의 내가 이 글을 네가 앉아있는 그 카페에서 쓰고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다른 카페에서 쓰고 있다. 생은 매 순간 그날그날의 새로운 짐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 개월 만에 나는 그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맞닥뜨렸다. 새로운 계획, 새로운 고민. 한낱 개인적인 글에 몇몇 분들이 성원해주었고, 격려도 해주었다. 이 역시 작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의 최종회에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남자주인공이 사고를 당해 기약할 수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그가 잠시 잠에라도 든 것처럼 그의 결혼식 날짜를 잡고,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대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이깟 비극 따위가 우리 삶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듯. 그보다 강력한 염원이 또 있을까. 나는 어쩌다 내 글을 읽게 된 분들에게 그런 말밖에는 해줄 것이 없다. 생의 길목에서 비극은 늘 성가시게 우리 곁을 따라붙겠지만, 우리 합심하여 그 비극이란 놈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행복할 계획이나 세우자고. 에이포 한 장을 문단 나눔 없이, 매주 한 번 가득 채우는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문단을 별도로 나누지 않아, 글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것을 ‘시’라는 명목으로 악용했다. 그러나 얻은 것은 분명히 있다.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시간에 이 글이 희미하게나마 이정표가 됐다는 것. 나는 올해의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길목마다 빵조각을 뿌려두는 행위를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망각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어느 순간 이마저도 먹어 치우겠지만. 이 시, 그러니까 52개의 글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조와 함께한 일주일』이고, 부제는 「토요일」이다. ‘조’는 실재인물인 동시에 텅 빈 기표이다. 이제 ‘조’는 그 사이 어디쯤 있다. 나는 이제 조의 행방을 모른다. 이 시 속의 토요일은 52개의 토요일인 동시에 단 하루의 토요일이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이제 토요일인 오늘이 저물고 있다. 내일은 무슨 요일일지 아직 모르겠다. 한동안은 그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에는 12개의 짧은 소설을 쓸 예정이고, 새로운 시를 쓰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더 큰 필력이 필요하다. 앞의 문장을 쓰고,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쯤이 늘 고비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도 문장을 쥐어짜고 있는 것 보니, 나는 능력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인 것 같다. 이 짜릿한 비관주의. 창밖의 노점에는 붕어빵이 6개에 1,000원이라고 쓰여있다. 너무 싼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미니 붕어빵이다. 가지런히 배열된 미니 붕어빵 옆에는 다코야키가 배열돼있고, 그 앞에 마네키네코가 세워져 있다. 아니, 노점에서도 한일전이? 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석 잔째 마시고 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아주 사소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본가를 떠나려고 한다. 친구는 본인이 없는 곳에서 가족들이 늙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나 역시 내가 떠나는 순간 급속도로 늙어갈 가족들이 눈에 뻔히 보인다. 그러나 슬프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이다. 최근에 모 잡지에 실린 선생님의 시 중에서는 이런 유의 문장이 인상 깊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고요. 그놈의 중요한 내 인생 때문에 몹시도 슬프다. 토요일이 저문다. 토요일에는 토요일의 시를. 저무는 토요일을 본다.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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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 아니 조금 전까지 눈이 왔다. 첫눈이다. 올겨울에 처음 본 눈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첫눈이다. 첫눈이었다. 비가 좀 섞여 있었지만, 눈은 눈이었다. 첫눈은 첫눈이었다. 오늘은 늘 듣던 음악이 아니라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캐럴 음악을 틀었다. 캐럴을 좋아하지만, 12월이 아니면 절대 듣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 특유의 신비감이 깨져 12월에 들으면 오히려 감흥이 사라져버릴까 봐.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지키려는 행복이 있다. 옆 테이블에서는 다섯 분의 할머니와 한 분의 할아버지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또 다른 옆 테이블에는 한 청년이 노트북으로 뭔가를 쓰고 있다. 그도 나처럼 이런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도 그러고 있다면 재미있겠다. 이상한 사람이 또 하나 있군,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윤희에게』의 상영관이 점점 줄어들자 불안해져 급히 예매하여 보았다.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소 신선한 접근이었다. 나는 이제 퀴어 서사가 퀴어라는 소재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러니까 세상이 퀴어를 바라보는(대개 편견으로 점철되는)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세상을 보고 싶다. 물론 서사가 변화하려면 현실이 우선 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이미 편견이 깃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들 특유의 섬세한 시선들을 신뢰한다. 헤테로 섹슈얼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사가 확장되는 그런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한다. 온통 하얗게 물든 스크린 속의 오타루를 보며, 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일어났다. 청일점이던 할아버지가 내 테이블에서 가져다 쓴 의자를 도로 가져오며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세상에. 저렇게 매너 좋은 할아버지가 있다니. 죄송하다고 하실 것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저런 할아버지처럼 늙고 싶다. 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권박 시인의 김수영문학상 시상식을 다녀왔다. 카페의 벽면 한쪽은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작은 케이크를 하나 건넸다. 그녀는 수상소감을 말하며 펑펑 울었고, 축사를 하던 이원 시인도 울먹였다. 이원 시인이 울자 객석에서도 몇몇이 울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수상자였다면, 울면서 “김수영 시인을 생각하면…… 안성기와 양조위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라고는 아무래도 말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누가 내 축사를 맡아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제부터 외롭게 다시 시를 쓸 생각을 하니 설레기까지 한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다. 노트북에 뭔가를 끼적이던 다른 옆 테이블의 청년도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간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연말모임에 참석하러 가야 한다. 내가 출판 교육을 받던 당시의 멤버들인데 당시의 교수님도 포함되어있다. 올여름에 함께 바다를 갔던 그 멤버들이다. 교수님은 우리를 좋아한다. 우리가 교육과정을 마친 뒤로도 매년 찾아갔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교육과정 당시에는 가장 문제적이었던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기술은 형편없고, 아이디어만으로 밀어붙여 잡지를 만들던 시절. 잡지에 그의 인터뷰를 기획하여 실으며, 이제껏 가르친 학생들 중 가장 문제적이었던 자들은 누구인가, 라고 물었고, 혹시 우리냐고 덧붙였는데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는 좋은 스승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소속을 갈망하는 이주민들이었던 그때. 그로부터도 벌써 6년이 넘게 흘렀다. 밖은 눈이 올 것만 같고, 눈이 오지는 않는다. 그냥 흐린 날 같지만, 눈이 올 것 같은 예감으로 풍경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마지막 학기를 마쳤고, 이제 나는 자유다. 여전히 할 것들이 많지만 어쨌든 자유다. 읽고 싶은 책들을 실컷 읽어야겠다. 얼마나 누리고 싶었던 사소함인가. 오늘은 술을 끊은 지 삼백일째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세종시의 대통령기록관을 다녀온 이후로 삼백일이 지난 셈이다. 그날 새벽에 본 티브이 프로에서 소개된 보쌈 맛집을 다음 주에 갈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소위 떡밥을 회수하듯, 지난 기억을 떠올려보고 있다. 그 모든 기억이 지금의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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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벌써 50번이야?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주가 50번째 글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앞 문장을 쓰면서 아, 근데 진짜 벌써 50번인 건가? 라고는 생각했다. 50회 특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어리둥절한 채 앉아 카페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정면의 카페 통유리를 통해 보는 볕이 참 따사로워 보인다. 어리둥절한 채 앉아있다는 문장을 쓰고 나서 정말 어리둥절한 채 5분가량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는 시인들과의 송년 자리에 우연히 합석하게 됐고, 친한 시인 형은 술을 너무 빨리 마시더니, 결국에는 금방 취했다. 한 일 년 만에 보게 된 그는 취하자 노래방에 가자고 사람들에게 권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러자 그는 졸랐고,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곱 곡 정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에는 다시 노래방을 가자고 졸랐고,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대략 스물일곱 번 정도 노래방을 가자고 더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조금 불쌍했고, 다른 친한 시인 형 한 명은 저 정도까지 조르면, 심지어 죽은 사람도 일어나서 그래, 가자 가 까짓것, 이라고 할 법도 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가수이기도 한 시인이다. 결국 그를 불쌍히 여긴 가수이자 시인 형과 나는 노래방을 가자고 스물일곱 번 정도 말한 시인 형을 부축하여, 노래방에 갔다. 8, 9년 전쯤 이렇게 우리가 밤새 술에 취해있던 날들이 떠올랐다. 결국 소원을 성취한 형은 예전처럼 자신이 노랠 부르기보다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을 즐겼고, 신이 나면 지휘를 하는 습관도 여전했다. 가수 형은 그를 이르러, 저 형은 10년 전이랑 바뀐 게 없다며, 껄껄 웃어댔다. 그러고는 문득 내게 택시비를 쥐여 주었다. 물론 나는 마다했지만, 받지 않으면 혼이 날 것 같았고, 결국 택시비를 받아들었고, 그를 안아주었다. 결국 한 시간을 채우고 노래방을 나와 택시를 잡는데, 노래방을 가자고 스물일곱 번 정도 말한 형이 내게 또 택시비를 주었다. 물론 나는 마다했지만, 결국 택시비는 내 수중에 들어왔고, 나는 결국 두 시인 선배들에게 택시비를 받았고, 사랑받는 후배 시인 같은 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미안했고, 나만 변해버린 것 같아 조금 슬퍼졌다. 나는 이제 술을 끊어서 그들과 함께 취해줄 수도 없었다.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예전의 그 철없던 시절을 많이 지나왔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고, 그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내가 뭘 해줄 수 없다는 사실 같은 것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관계가 틀어져 버렸고, 균열이 생겼고, 온전해 보여도 결코 처음의 그런 때 묻지 않은 마음들이 아니게 돼버린 일들을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예정된 균열을 숨긴 채 만나게 될까.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만큼 상처를 많이 주고도 살아서 나는 변명할 여지도 없다. 우리의 시간이 어떻게 망가지고 치유되든 따사로운 볕은 무관하게 번져있고, 바람은 제 갈 길을 간다. 연말이고, 나는 연말이라는 착시로, 예정된 몇몇 연말 모임에서 촌스럽게도 다소간 멜랑콜리해질 것 같기도 하다. 지난밤 노래방에 가자고 스물일곱 번 정도 말한 형에게 전화가 왔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시겠죠. 그는 자신이 실수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고,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잘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친한 이들이 술에 취하면 조금 두려워진다. 그들이 나로부터 상처받은 말을 간혹 드러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그 속엣 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은 아니지만, 역시나 그 말이 서운했구나 싶어지면서 머쓱해지고, 심지어는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그것을 예상한다는 것 자체가, 상처받을 것을 이미 알면서도 그에게 상처를 준 증거니까. 내가 저지른 타인의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조금 씁쓸해진다. 다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나의 비겁함을 어떡해야 할까.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도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늘은 아무도 다치지 않는 날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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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서울에 몇 번 눈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예전에 잠시 머물렀던 잡지사의 뱀 같은 놈, 아니 대표가 했었던 말에 따르면, 어떤 나라는 첫눈이 오는 날이 공휴일이라고 한다. 물론 그게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라면 참 낭만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첫눈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온 듯 만 듯 아주 조금만 내리고 말아서, 거의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아주 드물게 누군가 그것을 목격했다면, 그래서 그가 국가기관에 전화를 걸어 이르기를,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방금 눈이 오는 걸 보았습니다. 어서 공휴일 지정을 하시죠, 라고 한다면, 아 그런가요. 지금부터 공휴일입니다. 모든 사업장은 문을 닫고 쉬세요, 라고 공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고, 공교롭게도 눈이 내린 시각이 만약 자정이 되기 한 이십 분 전이라면, 대체휴일로 다음날이 공휴일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또한 유일하게 첫눈을 목격한, 그러니까 너무나 미미하게 내려서 자신이 눈을 본 것이 맞나 싶지만, 그래도 분명히 눈은 눈인 것 같은데, 어차피 국가기관에 알리면 믿어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첫눈을 신고하지 않는다면, 그런데 두 번째 내린 눈이 하필이면 또 함박눈이어서 이번에는 누가 봐도 공휴일로 지정되어야 마땅해서 공휴일로 지정된다면, 유일하게 첫눈을 본 사람이, 아닌데…… 이거 첫눈 아닌데…… 라고 조용히 읊조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요즘은 문득 시다운 시를 생각한다. 시다운 시, 그러니까 시의 장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시. 열정적인 많은 시 쓰는 자들, 심지어 몇몇 시인들 역시, 자꾸만 시에서 시가 아닌 다른 것을 하려고 한다. 물론 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기저에 시다움을 깔고 있어야 한다. 시에서 변형 서체나 특수기호 등으로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려는 사람, 시에서 영화적 재현을 하려는 사람, 시에서 연극을 시도하려는 사람. 물론 가능하며,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를 위한 방법적 수단이어야 한다. 그 안에 영화나 시각예술만 있고 시가 없다면 그건 난감하다. 그것은 시도 안 되고 영화나 시각예술도 못 된다. 영화는 영화 장르에서 실현해야 하고, 시각예술은 시각예술 장르에서 실현해야 한다. 시는 아무것이나 들여도 되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나 역시 습작 초에는 시에서 시가 아닌 다른 것들을 구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시는 시일뿐이다. 다른 장르를 손쉽게 구현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시 일러두지만, 시를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 다른 장르를 끌어오는 것은 괜찮다. 시의 자장 안에서 통제된다면 그건 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다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다. 다짜고짜 내가 왜 시론을 펼쳐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고,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겨울밤을 본다.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어둠은 조금씩 짙어진다. 문장이 어둠을 불러온다. 삼보일배하듯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이 사적이고 무용한 문장들과 한 해를 지냈다. 내년 여름에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석 달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분명히 1월 입주 신청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의 착오일 수도 있다. 나는 연희에 입주하기 위해 지원서와 함께 아주 얌전한 시들을 골라서 첨부했다. 연희와는 여름에 만난다. 그곳에서 대작을 쏟아낼 기대 같은 건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쉬러 가는 거다. 두렵다. 내년 여름이 순식간에 다가와 있을 것 같아서. 또 겨울도 부쩍 올 테고, 올해 겨울은 생각도 잘 안 날 만큼 많은 세월이 흘러있겠지. 흰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하겠지. 허허허, 젊은이 따뜻한 커피 한 잔 주시겠소? 아니다. 늙었다고 갑자기 그런 말투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어눌해진 말투일 테고, 얼굴에 핀 검버섯을 거울을 통해 보며, 많이 늙었구나. 너도 그렇고. 그렇지 않니 할멈?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 넘쳐도 문제였지만, 이렇듯 할 말이 없어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고역이었던 것이 바로 이 연재 글이었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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