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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인간은 참 간사해서, 몇 개월을 코치님과 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매일 식단을 체크받는 게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 적어온 시간이 꽤 된다. 이제 한 5년 정도 됐으려나. 식단 일기를 쓰면서 다이어트 효과를 본 적도 있고,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 기간도 있지만, 뭐가 됐든 습관이 돼서 계속 적어온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차피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었다. 그와 달리 매번 다른 누군가에게 내 식단을 보여주고 관리를 받는 것이 어느 순간 조금 간섭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관리를 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제 운동 좀 했다고 감시받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그것이 상당한 효과를 내게 준 것은 사실이고, 인정하는 바이다. PT가 끝나고 나서,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상황에 철저히 혼자 식단을 관리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조금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매번 식단을 코치님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 어차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먹을 때 굉장히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마저 받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주 세세하게 적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날그날 내가 관리를 잘했는지 못 했는지를 가늠하게 할 한만 정도로는 적어놓기 때문에, 사실상 다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속여봤자 결과는 정직하니까. 이런 일종의 보고 체계가 식단을 관리하게 만드는 하나의 효과인 것은 맞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 강렬한 운동만은 아닌 것도 확실하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바로 그 스트레스에 대한 일탈을 꿈꿨다. 그래서 일부러 운동을 하고 와서는 저녁을 먹었다. 심지어 피자. 일탈은 역시 정크푸드지. 다행히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저녁을 먹어버린 것을 솔직하게 코치님에게 고백도 하려던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코치님을 기만하려던 생각은 없다. 그냥 적지 않았다. 완점 범죄였고, 일탈의 완성이라면 완성이었다. 그런데 이제껏 축적해온 공복의 효과인지, 패턴의 효과인지 몰라도 체중의 증가 폭이 크지 않았다. 뭐 어쩌다 한번 먹었다고 갑자기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번 주 월요일에도 저녁을 먹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번 주 월요일은 계획된 일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번 음식에 손을 대다 보니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식단 일기에 적지 않았다. 나는 나쁘다. 다행스럽게 매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체지방량이 줄고 있는데, 이번 주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다는 것은, 크게 늘지는 않았어도 지난주와 비교하면 감량 폭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이번 주도 역시 어마어마하게 감량되었다. 내가 정말 간사한 것이, 좋은 결과가 나오자 아, 코치님에게 굳이 2주 연속 월요일에 무너진 것을 얘기하지 않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 몸은 월요일에만 무너지는 것을 또 한 번 패턴화시킨 것일까. 이제 다시 고삐를 쥐어야지. 연장했던 트레이닝도 이제 다시 거의 끝나간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1. 그래도 방심하지는 말자. 2. 간섭받기 싫으면 역시 능동적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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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나였을까.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이었다. 이번 달에도 옷을 사면 내가 미친놈이다, 선언했지만 결국 미친놈이 되었고, 생각보다 택배가 빨리 도착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문을 열어보았는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갑옷을 산 게 아닌데. 힘을 주어 문을 열고 나가니 문 앞에는 대량 휴지 묶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작 내 옷은 그 뒤에 보일 듯 말듯 가려져 있었다. 내가 휴지를 주문했던가. 그런 기억은 없었다. 당연히 잘못 왔겠거니, 하고 택배 송장 위 호수를 살폈다. 203호. 호수는 맞는데 내 이름이 아니었다. 이웃들의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니고, 호수를 잘못 기재했더라도 아주 다른 호수를 적은 것은 아닐 것 같아서, 적어도 같은 층의 누군가의 것이겠지 했다. 그러니까 그대로 두면 같은 층의 휴지 주인이 가져가겠지 싶었던 거다. 그래서 물건을 문 옆에 조금 밀어두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라는 일종의 항변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휴지는 문 근처에 그대로 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역시 그대로 있었다. 사흘이 지난 오늘. 이건 뭔가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아예 다른 층 사람의 것이어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구나 싶었고, 집주인 어르신에게 문자를 남겨 택배 주인의 이름을 알려주고, 혹시 같은 건물 세입자가 맞다면 전해달라고 할 요량으로 출근길에 송장을 다시 살폈다. 세상에. 호수만 살핀 것이 문제였다. 처음으로 주소를 제대로 살펴보았더니, 아예 다른 건물이었다. 공교롭게도 호수가 같았을 뿐. 내비로 검색해보니 걸어서 5분 정도의 생판 다른 건물이었다. 우선은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우리 건물 현관에 잠시 두고 문을 나섰다. 퇴근을 하면서는 누구라도 처리했기를 바라면서, 귀가했다. 그럴 리가 없지. 물건은 내가 아침에 두고 간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하. 물건을 들었다. 내비를 켜고 물건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힘이 들어간 팔을 바라보며,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어째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이 주어지는 걸까, 생각했다. 드디어 건물을 찾았다. 뭐 개방된 건물이라면 이왕 온 거 직접 호수까지 찾아가 앞에 몰래 두고 와줄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개방되지 않은 곳이었고,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고, 귀찮다고 생각했고, 건물 현관 앞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며, 일일 택배기사 체험,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말을 떠올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택배 기사도 사람 아닌가, 실수할 수도 있지,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나 귀찮은 건 사실이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두고두고 기억할 미담 하나를 남기기는 개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김지윤 씨 물건은 잘 받으셨나요. 아이고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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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학원 소설창작 수업에서 우연히 접한 소설가 김홍이 장편소설 이후 드디어 첫 소설집을 묶어내 그것을 읽고 있다. 그때 나는 그의 병맛에 가까운 광기에 아낌없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했지만, 그의 소설은 수업 중 호불호가 지나칠 만큼 갈려 누군가는 혹평 중에서도 아주 가혹한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문학계의 주성치라는 별명을 얻은 것 같다. 출판사 홍보였던가, 어디서 그런 카피를 봤다.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지금 절반 정도, 그러니까 단편 4개를 읽었는데, 그의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빠르게 훑어주는 느낌이 있다. 2년 전에 처음 봤던 <실화>라는 단편도 다소 그런 느낌이었다. 디테일보다는 속도감과 유머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랄까. 아직은 그보다는 오한기 소설가에게 더 끌리기는 한다. 이제는 지겨운, 문학 작품을 두고 벌이는, 정치냐 미학이냐의 논쟁에서 예전에는 무조건 미학에 손을 들어주었고, 김홍을 응원하는 것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사실 지금은 그것이 정치와 미학 중 택일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두 가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지금은 다소 귀한 남자 소설가들의 유머러스한 소설 미학들은 여전히 응원하고 싶어진다. 김홍의 소설집을 다 읽은 뒤에는 이제 막 나온 오한기의 <인간만세>를 읽을 예정이다. 여하튼 두 소설가 모두 만세다. * 다음 주 수요일까지 마감해야 할 시의 초고를 완성했다. 어제는 너무나 지지부진해서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꽤 쉽게 풀렸다. 손은 조금 더 봐야겠지만 만족스러운 편이다. 몇 달 전 친구와 다녀온 캠핑에서의 정황들을 가지고 <조난자(가제)>라는 시를 썼다. 쓰고 보니 거의 친구를 향한 헌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친구가 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 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다면, 누군가를 위한 시를 써도 당사자가 대체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시 장르의 태생적 난해함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의 독서 체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탓이 더 크다. 이것은 꼭 내가 우리 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뭔가를 고백하는 느낌이다. 그를 위해 뭔가를 얘기해주는데, 그가 그걸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토록 난감한 상황이라니. 사실 나는 이런 것이 내내 고민이어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요즘은 지나친 수사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시라는 것이 정보 전달의 언어라기보다는 언어 미학 자체의 목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전달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중간이 어디일지를 늘 생각한다. 생각처럼 되지는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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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무일인데 직장 근처에 갔다. 웃기지만 책을 마저 읽고 직장 근처의 도서관에 반납하기 위해서였다. 꼭 그것 때문에만 거길 일부러 간 것은 아니고, 마침 직장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가는 김에 도서관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이나 읽을 요량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주말에는 굳이 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면 도서 반납이 너무 많이 지연될 것 같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마지막 기한인 예약 도서를 빌려야 하니까. 책은 재미있었지만 남은 분량이 꽤 되었고, 한 카페에 한 시간 반 남짓 있게 되자, 고민이 되었다. 커피를 한 잔 더 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카페를 갈 것인가. 결국은 자리를 떴고, 쟁반을 반납하고 나가는데 어떠한 인사도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래 있었던 건가. 나는 눈치를 받고 있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카페에서는 생강차를 주문해서 마셨다. 통유리 밖으로 학교를 파한 중학생 무리가 보였다. 맞은편 분식집에 우르르 몰려가 떡볶이를 먹는 그네들을 보며, 아 맛있겠다, 맛있겠다, 생각했다. 책을 마저 읽고, 도서관 앞의 반납함에 책을 밀어넣으며, 아 나는 독서에 이토록 열정적이구나, 그리고 나는 정말 할 일이 없는 사람이구나, 또 생각했다. 카페에서 책을 읽은 이유는 도서관 역시 휴무일이기 때문이다. 눈독만 들이고 가보지는 못했던 반찬 가게에 들렀다. 적당한 것이 있으면 한두 개 정도는 사려고 했지만,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음 주에 마감인 시를 조금 끼적였지만, 난항이 예상되었다. 아 큰일 났다,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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