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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10(완)

‘작가님~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입주 첫날 말고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관리사무실 직원의 문자였다. 집필실 열쇠를 반납한 뒤 콜택시에 오르자 도착한 그 메시지가 지난 3개월의 방점을 찍는 듯했다. 레지던스 퇴실 한 달 전부터 알아봐 둔 전셋집에 미리 조금씩 짐을 옮겨놔서 큰 짐은 없었다. 다만 현수의 집에서 집필실로 옮겨올 때 미처 챙기지 못한 옷가지들을 가지러 현수네에 잠시 가야 했다. 그동안 갈 시간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당분간은 그 방향으로 오줌도 누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기에 내내 방치하다가 이제야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지금 가고 있는 것도, 곧 쌀쌀해질 계절을 고려해서다. 하필 두고 온 옷가지들이 겨울옷들이기 때문이다. 또 새 학기를 앞두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느라 정신없던 와중에 박 교수님의 전담 조교 제안을 받게 되어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아파트 입구와 집 비밀번호는 모두 아직까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해내려니 그새 가물가물했는데, 막상 번호판 앞에 당도하니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금요일이었고, 현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사실 나는 난장판을 상상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집이 깨끗했다. 물론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런대로 치우고 사는 수준이었다. 내가 녀석을 너무 과소평가했던가. 자연스럽게 옷방에 들어가 옆에 딸린 베란다 문을 열어보았다. 세탁기 앞에는 역시 온갖 빨랫감이 무분별하게 쌓여 있었다. 그럼 그렇지 네가. 나는 왠지 헛웃음이 났다. 거실에는 오후의 햇볕이, 내가 이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던 채광을 과시하듯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직 늦여름이었지만 나는 그 위를 얇은 담요 삼아 누워보았다. 덥다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볕이 닿지 않은 옆자리로 몸을 굴렸다. ‘도착했어? 저녁에 한잔해야지.’ 택시에서 현수에게 보내놓은 메시지의 답장이 이제야 도착했다. ‘한 잔은 무슨. 너 내일도 출근하잖아.’ 내가 다시 답장을 보내자 현수도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너 온대서 연차 냈지. 딱 기다려. 오늘 내가 산다.’ 따져보면 현수는 돈에 인색한 녀석은 분명 아니었다. 아니 역시 무심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있는 놈이 내면 되지, 뭐가 중한가, 그런 식의. 하지만 친구가 아닌 동거인으로서의 현수는 어떤 때에 왜 그리도 칼 같던가. 야박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특유의 무심함이 우리가 어떤 관계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야박함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사실 이 집에서 집필실로 떠나면서 이제는 현수를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괜스레 들기도 했는데, 사실 그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도 내 마음을 영 알 수가 없다. 몸을 일으켜 현수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정작 거주할 때는 잘 들어오지도 않던 이곳. 동거인이라는 위치를 지우고 친구라는 이름으로만 오롯이 돌아오니 오히려 거리낄 것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동네나 한번 둘러볼 생각으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반년을 살면서 이 동네 주변을 돌아다녀 본 일은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 몇 번 중 한 번이 창익이 왔을 때였다. 창익이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왔던 날. 그러니까, 창익을 마지막으로 본 날. 이 우스울 만큼의 아련한 느낌들은 뭘까. (진우 녀석은 내가 메시지로 창익 얘기를 꺼내면 늘 ‘너 지금 무슨 전 여친 회상하냐?’ 식의 답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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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9

레지던스 내에서 가장 큰 방이라고 했다. 집필실을 포함해 방이 두 개, 주방을 포함한 널따란 거실이 한 개. 집필실 배정표를 보니 13평이라고 적혀 있었다. 입주 예정자 오리엔테이션에서 제비뽑기로 결정된 것이었는데, 그조차도 나는 그날 하필 몸살 탓에 불참하는 바람에 관리사무실 직원이 대신 뽑아준 것이었다. 내게 이렇게까지 큰 공간이 필요한가.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운이라니. 넓은 만큼 월 관리비도 가장 비쌌다. 나는 석 달을 머물기로 결정되었는데, 심지어 석 달 치의 돈을 한꺼번에 내야 했다. 뒤늦게 들어온 교정교열 아르바이트비가 고스란히 거기로 들어갔다. 안다.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이 정도의 시설에서 이렇게 저렴한 관리비를 내고 머물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특혜라면 특혜라는 걸. 복에 겨운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처해진 이 사태를 유독 공간의 낭비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었던 건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다. 본래 이곳은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서울의 공공기관으로서 작가들의 집필실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낭독회 등의 문학 관련 행사가 이뤄지기도 해서 외부인들의 방문이 잦은 그런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금은 팬데믹이 도래한 시절. 이 거대한 공간의 철문은 단단히 잠겼고, 그 위로는 ‘외부인 출입 엄금’이라는 단호한 문구만이 고집 센 파수꾼 마냥 붙어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내가 지원한 입주 기간은 6개월이었다. 작가들의 지원이 상당할 것은 예상했던 바이고, 나는 아직 저서 한 권 없는 무명작가이기 때문에 지원서에 다소 비굴할 만큼의 간절함을 구구절절 적어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한 달짜리 단기 입주는 상대적으로 입주 가능성이 컸으나 장기 입주 지원은 보나 마나 쟁탈전에 가까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당초 희망했던 6개월 입주는 무산되었지만 3개월 입주자로 선정된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입주 예정자 발표가 난 것은 작년 연말이었다. 3개월은 아무리 봐도 애매한 기간이었다. 집필? 낯 간지럽지만 그래, 집필도 좋다. 그러나 작가들이 과연 집필실에서 집필만 할까. 그런 순수한 생각은 처음부터 접었다. 뭐 그렇다고 일부러 방탕하게 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써지면 써지는 거다. 그뿐이다. 애초에 나는 이렇게 된 거 가족이나 지인들을 한 번씩 초대해서 조촐한 파티나 열자고 생각했다. 그 계획도 지인들에게 다 말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아무도 초대할 수 없는, 혼자 쓰기엔 쓸데없이 큰 이 공간에 나는 사실상 3개월이라는 애매한 기간 동안 갇히게 된 꼴이었다. 처음부터 관리사무실 직원은 누구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도. 작가들은 필요 이상으로 조용했다. 같은 동에 입주해있는 두 명의 남자 작가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굳이 마주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공용 다용도실 벽에 걸린 출입기에 출석 도장을 찍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나갈 때면 누군가의 방에서 희미하게 게임 효과음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건물 뒤편에 있는 공용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레기로 공동 입주자들의 생활을 짐작할 뿐이었다. 컵라면 용기나 폐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여러 책 종류의 폐지들만이 작가의 정체성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려줄 뿐이었다. 또한 레지던스 전체 공용 세탁실로 세탁을 하러 갈 때면 간혹 다른 동의 여성 작가들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서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표정으로 인사인 것도, 인사가 아닌 것도 같은 애매한 묵례를 하며 서둘러 지나쳐 가기도 했다. 포기하니 역시 편했다. 나는 또 금세 적응해버렸던 것이다. 크게 불만은 없었다. 공간이 넓어서 청소가 힘들다는 점과 낮으나마 산자락에 위치한 곳이라 벌레가 자주 출몰한다는 점 외에는. 한 번은 화장실에 들어서며 불을 켰다가 바닥 한가운데 놓인 엄지만 한 바퀴벌레를 보고 기절할 뻔했던 적도 있지만, 그 후로 구비해둔 여러 통의 살충제가 있어서 이제 두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서울 내에 이렇게 정적을 담보해주는 곳이라니. 작가가 된 후 의외로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어차피 방학이었던 지라 나는 많은 시간 동네를 산책하기도 했다. 조용한 주택가를 거닐며 여기 어딘가에 전직 대통령이 살고 있다고 짐작해보거나 한국 최초의 서양식 슈퍼마켓이라는 곳에 들러 찬거리 몇 개를 사 들고 오기도 했다. 그 사이 몇몇 작가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인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관리사무실에서는 특별히 저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도 초대하지 않기로 했다. 창익은 여전히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현수는 코로나 탓에 업무량이 오히려 늘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처음 지원서에 써냈던 것처럼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입주자’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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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8

창익과 연락이 두절된 지 3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함께 계획했던 서울시티투어는 무산되었다. 그럼으로써 서울을 재발견할 기회는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처음 ‘1’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다. 당연했다. 그가 돌연 사라진 데에는 어떠한 언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던 그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보냈던 메시지 옆의 1이 며칠 뒤에는 사라져 있었다. 핸드폰을 아예 볼 수 없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인데 답이 없느냐고. 나는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다만 무슨 일이기에 이토록 갑작스레 연락이 되지 않는 건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그 메시지 또한 읽었는지 조금 뒤 메시지 옆의 1이 사라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재차 질문을 쏟아내자, 더는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벌써 3주가 지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적은 많은 메시지 옆의 1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아, 차단했나 보구나. 물론 그사이 전화 통화도 여러 번 시도해봤다. 처음에는 신호음은 이어지되 받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에는 신호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음성메시지로 넘어갔다. 사실상 메시지 앱뿐 아니라 번호 자체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가기 전인데 한잔해야 되지 않겠냐. 현수는 7월 전까지 오늘 말고는 시간이 딱히 안 될 것 같다며, 일찍 들어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래 좋다, 어차피 마지막이니. 6월도 벌써 절반이 넘게 흘렀다. 사실 그것도 7월 입주 예정인 레지던시 프로그램 관리자로부터 온 관련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보고 새삼 실감했던 것이다. 명분은 소설가이지만, 대학원에서 과제로 제출하는 소설은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그냥 과제일 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받은 합평들을 토대로 이미 끝낸 소설을 고치기란 여간 고역인 것이 아니어서, 앓는 소리를 해가며 제출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 끝마치고 제출했던 것이다. 어디 발표하기도 부끄러운 내 작품은 제출해놓고도 영 미덥지가 않아서 차라리 자포자기 심정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대학원에서 학점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이제 방학이다. 대학원에서의 첫 방학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현수가 외쳤다. 얼른 와, 얼른! 침대 방에는 무언가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특히 상 가운데에는 커다랗고 둥근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허여멀건 그 음식은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한눈에도 굉장히 비싸 보였다. 저건 뭐냐, 어리둥절해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현수가 말했다. 전가복이래. 전가복이야, 도 아니고 전가복이래, 라니. 본인이 주문해놓고도 낯선 음식인 것이다. 아, 이게 전가복이야? 대박…, 어떻게 이걸 시킬 생각을 했어? 설마……. 심지어 대(大)자다. 내가 널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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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6

일요일이었고,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침대에 모로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는 현수 옆으로 널브러졌다. 화면에서는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통령은 감염병 대응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사소한 기침만 해도 인상을 찌푸리던 현수와 나는 여전히 아주 가끔은 외출 시에 마스크를 두고 나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대체로 팬데믹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사실 익숙해졌다기보다는 반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낯선 시절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간 빠르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네. 왠지 모를 너그러움이 묻어 있는 현수의 말이었다. 한 달도 남지 않았다니. 아무래도 내가 여기서 지낼 남은 시간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닌데, 한 달 넘게 남았는데. 현수가 잔뜩 의문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육 개월 있을 거라고 했잖아. 6월까지 있을 거라고. 현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이어서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기 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현수가 서둘러 입을 떼려고 했을 때는 내가 그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다 읽은 뒤였다. 온갖 역한 것은 다 씹은 표정까지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걸까.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 아니 누군가와 부대끼며 산다는 것 자체가. 하긴 요즘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말수가 줄었다. 가끔 내 귀가시간과 현수의 야간 조 출근 시간이 겹쳐 조우할 때면 우리는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혼 없는 인사를 나누며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알 수 없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고, 심지어 나는 현수가 나간 뒤에는 어떤 편안함 마저 느꼈다.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차라리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사는 것이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다. 훗날 어떤 빚도 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 나온 행동들이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현수의 삶을 훼손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현수도 인정한 바이다. 더구나 살림에 관해서는―낯 간지럽다고 생각해서겠지만―칭찬에 인색한 현수조차 아낌없이 나를 추켜올리곤 했다. 다만 안 그래도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수는 내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재밌어졌다거나 그렇지는 않다고, 솔직한 의견을 전해왔다. 아마도 현수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겠지만 이왕 들이기로 한 것이니, 또 그게 다름 아닌 친구이기도 하니 조금은 덜 심심하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오산이라면 오산이었던 것이다. 나는 차라리 내가 살림이고 뭐고 다 할 테니, 또 돈까지 내며 뒷말 없게 하겠으니 대신 내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는 입장이었을 뿐이다. 요즘의 현수와 나의 관계를 보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이 단박에 떠오른다. 아니다. 현수는 나에 비하면 특별히 사람에게서 피로를 느끼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름의 조건을 붙이면 그에게도 적용될 만한 문장일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은 지옥이다. 아무튼. 아, 그랬던가. ‘아, 그랬던가’는 무슨. 녀석은 6월까지 지낼 거라는 내 말을 6월에 나갈 거라는 말로 잘못 이해했던 게 틀림없다. 밥이나 먹자. 중국집 콜? 콜. 난 짜장. 그럼 난 짬뽕. 세트로 시켜. 탕수육도. 나는 배달 앱을 켰다. 지난번 함께 먹은 배달 음식을 현수가 계산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배달음식 계산을 대부분 현수가 했다. 나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어느 날 현수는 눈치를 살피며 ‘이번에는 네가 계산…… 할 거지?’라고 조심스레 나를 떠본 적이 있다. 듣자하니 오래 속앓이한 말투였다. 아이고, 치사한 새끼. 그때부터는 칼 같은 셈법을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공평한 더치페이가 시작되었다. 따지고 들자면 이제는 내가 좀 더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현수는 내게 정말로 이렇게 많은 월세를 줄지는 몰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로 그럴 생각으로 물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아니, 준다는데 어떻게 마다해.’라고 반문해 왔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다. 그렇다면 예상보다 많은 월세를 받고 있으니 배달 음식 정도는 본인이 좀 더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말 이상한 계산법이다. 그렇다고 정말 부담이 될 만큼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뭐 그런 식인가? 정말 이상한 새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 앞으로는 국물도 없다 너 이 새끼, 라는 생각에 미칠 때쯤 ‘전가복’이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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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5

주말 오전이었다. 현수와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 티브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대구 시장의 긴급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었고, 내용은 대구의 한 특정 교회에서 촉발된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번 사태로 저 교회가, 아니 종교 집단이 대대적으로 공론화되니 조금 놀라웠다. 이번 기회에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대다수였겠지만, 나는 창익을 통해 이미 전부터 알고 있는 곳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그 교회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목을 받을 줄. 창익도 나도, 심지어 그 조직의 당사자들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라면 핍박이니 뭐니 하는 말들로 수식하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자위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문득 그 날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얼핏 봤을 때 나는 잘못 온 문자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발신인이 정확히 내 이름을 명시하며 뭔가를 주장하고 있었기에, 기어이 나는 바쁜 연말 업무 중에도 서류철 옆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다소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비유였다. ‘먹을 게 없다고 똥을 먹을 순 없잖아요?’ 발신자는 자신이 창익의 누나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러면서 따지듯이, 다소 훈계조로 내게 말하고 있었는데, 내용인즉슨 이런 것이었다. 최근에 창익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을 알고 있다. 창익에게 오랜만에 생긴 여자친구이니 자신도 처음에는 기뻤으나, 정체를 알고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도 뻔히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무책임하게 창익에게 그 사람과의 연애를 부추기느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창익의 누나의 말마따나 그에게 최근 여자친구가 생겨 놀라운 마음과 함께 나 역시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의 연애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창익이 그녀의 정체, 아니 정체랄 것까지는 없겠지만 색다른 정보를 고백해왔을 때 나는 연이어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창익에게 어느 순간 자신이 특별한 교회에 다니고 있음을 고백해왔다고 했는데, 바로 그 교회였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 교회에 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신교 집 안에서 자란 나로서는 일요일이면 의무적으로 교회에 나가기는 했으나, 믿음에 대한 회의가 심각하게 들던 차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것이 말 그대로 의무적이고 습관적인 주일성수일 뿐이었다. 다만 내가 다니는 교회, 더 넓게는 교회가 속한 교단 내부에서 바로 창익의 여자친구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이단으로 지목하고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뿐이다. 또 내가 다니는 교회를 비롯해 같은 교단으로 보이는 교회 입구에는 죄다, 지목된 바로 그 교회 관계자의 출입을 엄금한다는 공지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알고 있을 뿐 관심은 없었다. 글쎄, 내가 독실한 종교인이었다면 조금 더 관심을 두고 들여다봤을지도 모르겠다. 그 교회의 이단 여부나 심각성 같은 것은 내게 어느 먼 나라의 가십거리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특별히 그 교회를 옹호해서 창익의 연애를 부추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익이 종교에 휘둘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창익의 연애가 빈번한 편이었다면 나도 어쩌면 반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라기보다는 괜찮겠냐고, 한 번쯤은 떠봤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말은 이미 했던 것도 같다. 창익이 처음 여자친구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렇다, 나는 그 교회가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호기심에, 어떤 문제 같은 것은 없는지 가볍게 물어봤던 것뿐이다. 나는 다만 무지했기에, 다짜고짜 튀어나온 종교 얘기에 어리둥절했기에 창익에게 오히려 그 종교의 정체 같은 것을 물어본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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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4

이제 완전한 독박 가사가 시작되었다. 결국 내가 현수에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빨래와 청소는 차라리 내가 완전히 전담할 테니, 최소한의 것들을 제외하고는 차라리 어떤 것도 손대지 말라고.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혼선 없이 완전하게 집안일을 통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맞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빨래였다. 현수는 그의 성향에 걸맞게 겉옷이나 속옷, 또는 수건 등 빨랫감의 어떠한 구분도 없이 빨래를 하는 편이었고, 빨랫감을 지나치게 방치해두었다가 세탁기를 돌리는 편이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내가 현수와 빨랫감을 분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빨래 바구니 공간을 이미 초과한 빨랫감들을 나름대로 구분하다가 그의 속옷들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막상 그의 속옷들을 보고 있자니 그 역한 냄새하며 필요 이상으로 묻어 있는 오물들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나는 그것들을 손도 대고 싶지 않았다. 친구로서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 몸은 그것을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전용 세제를 사다가 우선 세탁기부터 청소했다. 그리고 내 빨래와 현수의 빨래를 따로 돌렸다. 다소 번거롭기까지 한 그 작업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물론 현수는 그 사실을 모른다. 혹시나 의심할 것 같으면 너의 빨랫감이 너무 많으니 약간의 분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만일 터였다. 진짜? 와 그 새끼 진짜 돈을 받네. 삼십이면 너무 센 거 아님? 집안일도 다 한다며. 진우의 메시지였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제안한 거니까 뭐. 내가 대답하자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밥은? 밥은 머 그냥 대충 사 먹지. 집에 뭐 먹을 게 없다. ㅋㅋㅋㅋㅋ 호구 잡히셨음?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이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 특별히 먹을 게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냉장고에는 언제 시켜 먹고 남긴 건지 모를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에서 사두었다가 유통기한을 이미 넘긴 것들,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양념장들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정말 모조리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음식이라 할 만한 것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아니 방치된 김치뿐이었다. 언젠가 한 번 현수와 밥을 먹는데 엄마가 얼마 전에 보내준 김치라며 맛이 어떠냐고 은근히 압박 질문을 해왔던 그것이다. 잔인한 새끼. 울며 겨자 먹기로 김치를 씹으며 울상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던 것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남의 집 쉰 김치란 고역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맛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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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어디쯤 3

애초에 그런 제안을 섣불리 할 게 아니었다. 창익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결국 성사되어 함께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내 의견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본격적으로 알아본 직장인 연극단의 조건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연극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싹 달아난 것은 아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조금 미루고 싶었다. 뭐 어차피 계획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게 창익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던가 보다. 창익은 내가 처음 직장인 연극단 체험을 제안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연극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 원데이 클래스 과정으로 연기 교육을 받고 온 얘기를 더러 해주기도 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이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잘 볼 수 없던 창익의 모습이어서 조금 놀라운 것이기도 했다. 창익은 다소 비꼬는 투로 내 우유부단함을 지적했고, 나 역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초래한 일이므로 사과부터 했다. 그러나 창익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지,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말까지 했다. 넌 항상 네 마음대로구나. 나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마음대로라니? 내가 먼저 제안을 한 것은 맞지만, 또 그 말을 번복한 것도 맞지만, 모든 일이 말한 대로 반드시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고, 계획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더구나 양해를 구해가면서까지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는데.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끝끝내 자세를 낮췄고, 모두 내 탓이라고 화를 풀라고 얘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저녁, 나는 창익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돌이켜보자니, 그제야 나는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주 앉아 내내 창익의 기분을 풀어주는 동안에는 그저 난감한 감정을 수습하기 바빴던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창익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당연히 창익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창익에게서 장문의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연극단 일은 그렇다 치고, 조금 새로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언젠가 했던 말들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관계에 대한 회의감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일, 연애,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붙들어온 작가 데뷔까지도, 모든 것이 진전이 없었고, 그로 인해 촉발된 부정적인 생각이 관계에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거의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창익은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마 고역에 가까웠을 것이다. 창익을 불러내 나는 습관적으로 혼자 술을 마셨고, 그럴 때마다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쏟아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창익이 그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모든 관계는 다 부질없고, 우리의 관계도 사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 요약하자면 그런 말이었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사실 여전히 별 감흥은 없었다. 그건 관계를 인질 삼아 창익을 협박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관계라든지 인연에 대한 원론적인 얘기를 다소 부정적으로, 또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한 말에 가까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그 말에 대한 창익의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으므로, 또 관계의 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역시 다소 긴 사과 답장을 보내려고 일일이 문장을 적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게 그렇게 대단히 진심 어린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창익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우리 관계를 허투루 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관계는 너만 괜찮다면, 문제없다고 안심을 시켜주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답장을 미처 다 적어 보내기도 전에 창익이 보낸 또 다른 장문의 메시지 한 통이었다. 거기에 적힌 내용을 보고 나는 창익에게 보내려던 메시지 내용을 일단은 지웠다. 창익이 연달아 보내온 메시지 내용은 나로서는 다소 억지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는 늘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아니, 넷이었던가. 중학교 시절 처음부터 붙어 다녔던 창익과 수환, 그리고 나 사이에 어느 순간 정우라는 친구가 들어와 어울렸지만, 대학 진학 이후로 다시 제멋대로 사라져버려 결국 우리 셋만 남아 관계가 내내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환과도 완전한 남남이다. 내가 먼저 관계를 끊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환과 관계를 끊은 이후로도 창익과 수환의 관계는 얼마간 이어졌다. 나는 그것에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창익을 아끼지만 내 소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창익은 조금 불편해했지만, 시간차를 두고 수환과 나를 따로따로 만났다. 물론 처음에는 창익이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중간에서 보기에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수환은 진중하고 차분한 친구였지만, 언제나 미묘하게 모임에서 권력을 쥐고 싶어 했다. 고작 셋뿐인 모임에서 말이다. 누구도 합의한 적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는 다소 노골적으로 굴었다. 진심인지 혹은 좋은 게 좋다는 사고방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창익은 그러한 수환을 치켜세워주며 그의 욕구에 일조해주었다. 수환은 늘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의 이치에 맞지 않는 흐트러짐을 은근히 경멸했는데, 그러한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우리 모임은 결국 수환의 눈치를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그 무렵 이러한 관계가 과연 친구로서의 관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고, 더 문제인 것은 수환이 누구를 그렇게 지적할 만큼 흐트러짐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파가 닥쳤던 그 날 우리는 늘 만나던 장소에서 모이기로 했고, 수환의 은근히 비꼬는 말투를 애초부터 차단하기 위해 나는 약속 시각보다 훨씬 일찍 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역시 약속을 잡을 때부터 수환은 늦지 말라고 강조했는데, 사실 그 완전무결한 척하는 태도가 벌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셋 중 상대적으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수환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말 그대로 수환이 그렇게 칼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경중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태도이다. 수환이 완벽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수환도 약속에 늦을 수 있다. 그건 문제가 아닌데, 어쩌다 본인이 늦었을 경우 정작 그의 태도가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수환이 모임 전의 일정에서 돌아오면서 시간 계산을 잘못한 탓에 20분 남짓을 지각했던 것이다. 그날은 하필 창익도 비슷하게 늦었던 터라 딴에는 당당할 수 있었던 걸까.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수환은 뒤늦게 나타나 사소한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본인도 미안하고 난처해서 할 말을 잃은 것이겠지만 왜 그럴 때면,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평소 같은 의연함이 발휘되지 않는지 우스울 뿐이었다. 우선 우리는 가까운 술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들이 쏟아졌지만, 내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근데 넌 무슨 내로남불이냐? 하여튼 혼자 고상한 척은.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황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끌어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이 나오고 보니 나 역시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창익은 난감해했고, 수환은 표정 없이 앉아있었다. 그와 관계를 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끝끝내 수환의 사과라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체 메신저 방에서도 별다른 통보 없이 나와 버렸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이제까지의 세월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날 후로 많은 생각을 했다. 흔히 연인과는 맞지 않으면 이별을 고하면서, 친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져야 할 이유는 뭔가. 관계의 공백기를 갖는다는 것이 연인과 친구를 비교할 때 얼마나 다른 종류의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친구 관계가 연인보다 상대적으로 질긴 것은, 친구의 경우 공식적인 선언 없이 시간을 갖는 것이 조금 더 자유롭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풀리지 않는 갈등을 두고 시간만 갖는 것이 과연 해결책인가. 나는 그러한 관념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친구도 맞지 않으면 이별을 고하면 된다. 인연이 거기까지인 거다. 그게 대수인가. 사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창익도 수환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건 나 역시도 조금 놀라웠는데, 내 문제와는 별개였다. 창익도 사실 수환에게 불만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수환이 은근히 자신을 무시한다고, 창익이 종종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기는 했다. 성향 자체가 그럴 뿐, 수환이 창익을 특별히 더 무시한다거나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역시 창익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가 보다. 이제는 내가 나가고 없는 단체 메신저 방에서 수환과 나눈 대화들을 캡처해 보여주며, 창익은 수환이 자신을 무시하는 게 틀림없지 않으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수환과 창익의 대화를 얼핏 살펴보니 창익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역시 특별히 무시했다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냥 그건 수환의 성향이었다. 나 역시 먼저 수환에게서 등을 돌리기는 했지만, 우습게도 그런 창익을 보며 굳이 너마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최선은 창익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창익을 꼬드겨 수환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역시 그뿐이었다. 셋이 둘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창익마저 수환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수환과의 관계는 완전하게 단절되었다. 수환의 안부는 이제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나마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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