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ollowing
339
Follower
5
Boost

파리일기_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zlTMPWmYS-E 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 콩피느멍때문에 집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밤낮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밤을 지새운 채 오전 수업에 좀비처럼 앉았다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러고도 침대에서 좀 더 등을 굴려대다가 오후 서너 시쯤 잠이 들어 밤 9시 10시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어제는 평소처럼 9시쯤 일어나 잠시 움직여 보았다가 눈이 너무 안 뜨여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보통 때면 그러다가도 결국 일어나 앉아 커피 샤워를 하곤 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엠마도 잠이 들어 있어 그 온기에 취해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는 무척 긴 느낌이 든다. 수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오랜만에 배당받은 오후를 어떻게 쓸지 고민을 해 보았다. 습관이라는 중력 바꿔 걸리면 바닥이 천장이 되고 천장이 바닥이 된다. 집에만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옷을 고쳐 입고 3중 현관을 열고 나가는 일이 좁은 계단을 걸어내려 가 지하철에 올라타고 하는 일이 우주복을 껴입고서 로켓에 실려 날아가는 일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연말이고 하니 어디든 한 번쯤은 나가자 했었지만 그 버거움과 조금의 두려움이 주저함이라는 문턱으로 우리를 둘러싸버려 트후티네뜨의 작은 바퀴로는 쉬이 넘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텔레비전이 되어 주면서 좁게 좁게 맞았다. 그리고 손님들은 아침이 되자 잠자리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공간으로 정 없이 돌아들 가버렸다. 그렇게 이름 난 다리 아래에서도 연결을 잃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들처럼 우리의 시간들은 어느 낚시 바늘 하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은은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속도로 마흔이라는 이름의 강이 되었다. 마흔이라는 안내표지도 꿈에서는 무척이나 차갑고 커다랗고 그러했었지만 실제에선 좁게 선 내가 쉬이 넘어갈 만큼 구멍도 사이도 꽤나 커 나는 진동 없이 침묵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정말 나갈 거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물었고 응이라는 대답 대신 나는 늘 입던 바지를 들추고 개어진 대로 각이 지어 버린 낯선 바지를 꺼내 입었고 엠마는 마른 마스카라를 물로 풀어내었다. 마침내 우리는 외출을 했다. 조금 떨어져 있어 한동안 가지 못한 아시아 마트와 한인 마트도 들를 겸 장바구니도 3개나 쑤셔 넣고 따뜻한 차와 카메라도 같이 쌓아 넣고 대기권을 넘을 각도에 올라탔다. 파리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행 중이라 멀리까진 가지 못하고 파리 식물원이 있는 에꼴 드 보따니끄 가든을 들렸다가 센 강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센 강은 구름이 비켜서 있었다. 겨울바람이 꽤 세찼지만 우리는 강에 닿아 있는 가장 아래 둑까지 내려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벌써 봄이 장전되어 있었다. 며칠 사이 추워진 날씨에 코까지 붉어진 우리는 서로를 예보 옆에다 세워두고 기점 같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어떤 일들은 이런 사진들 근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원에는 운동 겸 산책을 하는 노부부들과 경주처럼 거친 러닝을 하는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센 강변을 걷자 마치 서울에 있다가 파리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스웠다. 그래 시간들은 신발 끈을 묶을 때도 흘러가지. 작년 파리 지하철의 전동차마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 간격을 유지하라는 스티커가 붙었을 때만 해도 얼마 안 가서 떼야할 텐데 괜한 돈을 들이는구나 싶었는데 오늘 보니 그 스티커들이 어느새 수만 발에 닿아 닳아 있었다.

파리일기_그리고 어제 오후 3시쯤 B2 합격증을 받았다

https://youtu.be/wZkjl7Mwi_U 파리에 온 지 1년 하고 40일이 지났다. 지난 10월에는 거의 매일처럼 비가 내렸고 해가 온전히 든 날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작년에는 어떻게 했었지 생각을 해보다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기념도 없이 홀연히 지나갔음을, 계절이 침 발라 넘기는 미용실 잡지의 페이지들처럼 몇 가지 색깔만 보여주고서 왼 허벅지 위에서 툭하고 뒤집혀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비에 젖어 떨어진 낙엽들은 바스락 소리도 없다. 비로 쓸어도 쉽게 쓸리지가 않아 미화원들은 강풍기을 들고 다니며 여름의 흔적을 길가로 밀어낸다. 한 번의 빗질에 양말마다 머리카락이 또 가득이다. 방을 빙빙 돌며 테이프를 찍찍이는 엄마는 매일같이 덧창 너머에서 부지런하다. 어느 정도는 죄책감이 무거운 아침을 들어 열고 겨울이면 방향을 잡아 앵글 안으로 잘도 들어오는 붉은 해에 감탄을 한다. 아 오늘은 어김없이 수업을 가야겠구나. 어느새 우리의 창을 가려주던 나무는 내밀한 제 덩치를 들어내고서 옷걸이처럼 우리의 눈을 긁어댄다. 사랑하는 이들만 아는 베기는 어깨, 힘을 놓기 미안한 갈비뼈, 그 앙상한 스케치. 몇 차례나 갱신한 신분증에도 롤로 말아 부풀린 풍성함들 사이로 팔을 넣어 만지면 놀라 조금은 슬프던 작은 내 사람. 겨울은 더 작게 견뎌야 한다. 바꾸지도 않는 침대는 자꾸 커져만 간다. 경계가, 우리와 남이 고무장갑에 자꾸 구멍을 내는 식칼처럼 느껴지던 우주 같은 어젯밤. 서머타임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8시가 되어도 해가 다 뜨지 않아 새벽 같은 거리를 삐죽 나온 입을 마스크 안에다 넣고서 한 발쯤 앞서 걷는 그를 따라 학교에 가곤 했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면 그제야 아침다운 빛이 아이들의 곱슬머리 속으로 숨고, 아이들은 날개같이 등을 가로지르는 사각 가방을 메고서 아빠나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로 총총이며 걸어간다. 나처럼 칭얼대는 애는 없네. 2시간의 수업에 12번도 넘게 핸드폰을 두드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흐부아, 제일 경쾌한 프랑스어, 계단을 내려왔을 때 누군가가 길에 잠시 세워둔 샤리오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고 있을 때면 짧지만 그래서 유난히 하얀 이곳의 낮 빛이 연출하는 지독한 콘트라스트에 배고픔에도 빠른 추위에도 몇 호흡은 서서 뭔가를 바라보곤 해야 했다. 같은 하늘을 다른 내가 보는 것, 다른 하늘을 같은 내가 보는 것, 아니 같은 하늘을 같은 내가 달리 보는 것. 투덜대며 끌려가던 수업이 1달 반도 못 견디고 다시 중단되었다. 일일 확진자가 수가 천 단위라니 하며 놀랐는데 1만, 2만을 금세 넘어서더니 10만을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긴 여름밤만큼 쌓인 설거지 거리가 우리를 다시 서로의 좁은 방으로 갈라 넣었다. 이동제한이 다시 실시되기 직전에는 이슬람을 풍자한 만화를 두고 프랑스가 무척 시끄러웠다. 몇 번의 테러가 있었고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마우스로 색을 뒤집으며 읽어 보던 텍스트가 가까이 비명을 만들고 총소리를 내고 울음과 외침을 만들며 내 신경 주위에서 움직거렸다. 쉬웠던 판단들도 이제는 무엇 하나 쉽지가 않다. 인종차별과 종교 갈등, 파업, 빈부격차, 이민자, 난민, 전염병 많은 것들이 놀라도록 내 어깨를 툭툭 치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못 정하고서 내일이면 까맣게 잊을 단어들만 외우고 외웠다.

파리, 8월의 일기

8월이 되자 파리의 낮과 밤은 한껏 달아올랐다. 건조한 공기 덕분에 그늘과 조금의 바람이라도 있다면 그럭저럭 견딜 만은 했지만 시야를 위해 커튼을 걷어 올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책상이 모래사장이라도 되는 듯 나는 하루 종일 상의를 다 벗고 지냈다. 그러던 날씨가 한 번의 비로 툭하고 꺾여버렸다. 마치 요리가 끝난 프라이팬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뿌린 것처럼 차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다 사라졌다. 창 위에 늘 상연되는 잎들의 무료 영화도 어느새 가을의 씬들을 그리고 있다. 아 우리가 파리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색들이다. 반가움과 함께 불쾌하지 않는 쓸쓸함도 함께 느낀다. 2주 정도는 평생 안 하던 찬물 샤워도 했었다. 그치만 오늘 20분 정도 거리로 무료 나눔 하는 책상을 받으러 갔을 때 재킷 안으로 스며드는 아침 바람에 잊었던 한기를 다 느꼈다. 4년을 앉아 뭔가 애를 썼을 책상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분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걸까. 검정 책상을 덜어내도 빼내야 하는 짐이 작은 방 안에 가득했다. 웃으며 덕담을 나누고 우린 스스로도 우스운 모양새로 책상을 두 대의 투흐띠네뜨에 나눠 걸친 채 주말의 아침 공기에 덜거덕 조금의 소음을 보탰다. 책상은 뭐라도 만들라는 듯 가을의 창 옆에 자리 잡았다. 여기에서 쓰는 글들, 여기에서 조각내 붙이는 씬들, 나는 잠시 저 내일로 흘러가서 벌써 그리움을 느꼈다. 애써 품에 안고 와서 한 달을 채 못 돌린 선풍기는 다시 비닐과 종이가방으로 싸서 온수통 위 선반에 넣어두었다. 시간이 흘렀다. 감상도 채 못 남긴 시간들이..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빈자리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반성을 하고도 또 반성을 해야만 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 https://youtu.be/o_jAT51GWw8 지난 8월에는 엠마의 생일도 있었다. 매년 다른 날에 찾아오는 것이 좋다고 음력을 고집하는 엠마의 생일이라 놓칠까 긴장하며 그 간격을 매일 세어 가고 있었다. 엠마 없이 혼자서 외출을 해본 일이라고는 작년 가을 형의 결혼식을 위해 혼자 한국을 다녀왔을 때와 이동중지 기간 동안 잠깐 장을 보러 다닐 때뿐이고 늘 같이 나가 같이 돌아오는 것도 모자라 늘 같은 순간에 화장실을 가고 다시 붙어 모든 곳에 발자국을 함께 찍는 우리이기에 엠마 몰래 혼자 선물을 사러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뭔가를 주문해보려고도 했지만 나란히 놓인 모니터에 뭔가를 몰래 띄우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무엇이 필요한 지 묻고 물으며 며칠을 괴롭혀 보았다. 마지못해 그녀가 고른 것은 이발기였다. 그건 선물이 아니라고 떼를 써 보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것이 더 싫다며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그였다. 결국 엠마는 예전에 비가 내리는 던 겨울, 중고 직거래를 하러 갔다가 바람만 맞고 오게 했던 그 눈물의 이발기를 손에 넣었고 배송이 올 때까지 유튜브로 남자의 머리를 깎는 법을 보고 또 보았다.

파리일기_여름, 개선문, 샹젤리제, 프티몽후즈

https://youtu.be/9qmQF6POn8k 한강이 노랗게 부어있는 사진을 보았다. 며칠 전에는 왠지 모르게 나도 부어있었다. 멀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그 어떤 소식도, 나에 관한 것들도 나의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것들도 모두 건조한 뉴스 맨트만 같아 눈 귀 모두로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아픔들에 둔감해진 나는 정말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 맞나 부다. 반쯤은 비에 발이 다 젖고 반쯤은 건조한 여름 덕에 두드러기가 다 난다. 시끄럽게 밀려오는 뉴스들의 사이, 이 고요한 방에 빠진 우리는 우선 떠 있기 위해 번갈아 발장구를 친다. 흘러가버릴까 때론 꿈에서도 서로를 꼭 붙들고서 두 명 분의 발장구를 친다. 어느 날은 맑은 웃음이 모르게 다 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더 단서 없는 하늘을 보며 지난 일들에라도 성을 내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벅차게 자잘한 일들이 떨어지지 않는 입이 도무지 담기지 않는 말들이 다만 시작도 아니고 여전히 실체 없는 것들의 준비를 위한 것이라는 것. 그래 그것이 나를 제일 지치게 한다. 무엇을 만드는 일 아닌 곳에 머리와 시간을 써 본 적이 20년은 더 되었으니. 성급해 준비는 늘 우스웠고 시작은 언제나 오늘만의 단어였던 난 그 많았을 지난 배움들을 이제야 뻐근한 등으로 종기 나는 엉덩이로 징그러운 한숨으로 얼차려처럼 배우고 있는지도. 늦었는지도.

파리일기_코로나 속 여름, 뤽상부르 정원

https://youtu.be/bFbzJPZuezs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 엠마가 냉장고에 넣어두어 시원해진 커피로 잠을 지우고 버터에 구운 빵을 꿀을 발라 먹어 배를 달랜다. 그리고는 바로 책상에 앉아 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30분 정도씩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게 공부를 하고 있다. 11월에는 DELF B2를 따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찍어 온 영상들도 만져볼 여유가 없다. 살면서 이렇게끔 긴 시간을 앉아 공부를 해본 적이 있나 싶은데도 프랑스어는 도통 늘지가 않는다. 몇 시간도 진득하니 앉아 공부를 하는 엠마와 달리 마흔을 앞둔 나는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초등학생 마냥 40분이면 몸이 근질하다 못해 아픈 느낌이 든다. 억지로 붙들고 달래어 한 두 페이지를 끝내곤 아이고 큰 한숨을 던지며 슬쩍 침대에 누워본다. 그렇지만 이내 스며드는 죄책감에 애먼 커피만 더 타 와 슬그머니 다시 책상에 앉는다. 공부하기가 너무 괴로운 나를 달래려 일주일에 하루씩은 쉬기로 엠마가 약속을 해줬다. 오늘 마침 그날이 되어 주문한 책도 받고 한인마트도 갈 겸 뤽상부르 정원에 가기로 했다. 7호선 주시으역에서 네모난 모양의 10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오데옹역에 내렸다. 오데옹역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6개의 국립 극장 중 하나인 삼각 지붕의 오데옹 극장이 있다. 오데옹 옆쪽으로 난 고풍스러운 길을 따라 뤽상부르 정원을 향해 걸었다. 작년 가을 캐나다에서 온 어학원 친구가 같은 클래스 친구들에게 함께 가서 맥주 한잔씩 하자고 했던, 선생님이 아름답다고 늘 가보길 권유하던 그 공원을 이제서야 가게 되었다. 그때는 날도 추웠고 또 떠들썩하게 몰려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라 어색한 미소만 보내곤 가지는 않았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파리의 공원들을 다 가보자 했던 것이 코로나 때문에 이제야 여름의 해 아래서야 가게 된 것. 뤽상부르 정원의 구성은 튈르리와 크게 다르지가 않다. 궁전을 두고 인공연못이 있고 인공연못 주변을 광장처럼 비우고 그 외곽으로 나무들과 산책길이 나있다. 다만 정원 자체가 직사각형 모양이라 주변 건물들이 연못에 가까이 다가와 있어 마치 벽을 두른 것처럼 느껴지는 튈르리와는 달리 꽤 길이가 되는 숲길 뒤로 건물들이 물러나 있는 뤽상부르가 사방으로 더 은은한 시야를 제공한다. 더구나 나무들 너머로 얼굴이라도 내밀고 있는 엥발리드, 오데옹, 팡테옹, 에펠탑과 함께 긱 방향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