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ollowing
329
Follower
5
Boost

파리_기나긴 이동중지 명령이 드디어 해제가 되었다

https://youtu.be/NF_8eFIP4gE 어제, 기나긴 이동중지 명령이 드디어 해제가 되었다. 지역 별 위험도에 따라 해제되는 항목들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킬로 이내로 제한되던 이동 반경이 100킬로 까지 확장되고 매번 사유서를 작성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파리의 경우에는 공원들과 자르댕,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극장과 스타디움은 여전히 폐쇄가 되지만 일부 상점들의 영업들이 재개되고 센느 강의 뚝길이 개방된다. 에펠탑을 품고 있는 마르스 광장과 앵발리드 앞 광장 또한 개방이 된다. 지난 주말에는 마치 곧 있을 이동중지의 해제를 반대하기라도 하는 듯 장마 같은 비가 내렸다. 이동중지가 해제되는 첫날인 어제는 감히 밖으로 나설 마음을 못 가질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인지 너그러운 월요일의 거리는 이동중지가 이어지던 날들의 딱딱한 낮들보다 더욱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몇 시간에 걸쳐 번개가 내리쳤다. 천둥소리도 없이 하늘만 계속 번쩍거리는 게 마치 알프레도가 이어 붙어준 흑백의 키스 필름들 같았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도 자꾸만 눈을 못 떼게끔 매혹적인 찰나의 파괴적인 번쩍임. 고백을 해야 하거나 후회를 해야 하거나 다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섬뜩한 광경이 여러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파리는 하늘도 낮아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조금 멀리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도 잘 갈아 놓은 칼들이 내 눈까지 넘쳐와 나를 자꾸 찔러댔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던 번쩍임들이 바람에 흘러 우리의 집 위까지 왔다. 그러자 무성 필름들은 드디어 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샤워 같은 비와 함께 망치 같은 소리가 비처럼 내려왔다. 이젠 번쩍임들은 온통 소리에 오염되어 오래된 책 속의 두려운 상징 같은 게 되어 버렸다. 그쯤 커튼을 내려 창을 가렸다. 먼지 안개와 빌딩 숲에 갇혀 원치 않게 잊어야 했던 번개, 무지개, 일출, 구름의 그라데이션들을 머나먼 이곳에서 낯선 전염병 때문에 방 안에 갇힌 후에야 보게 되었다는 게 참으로 우습다. 나의 지난 2달은 무척이나 일정했다. 그 지겨운 일상에서 오직 다른 것은 영화와 글들, 그리고 하늘과 그녀의 말 뿐이었다. (난 그 소중한 차이들이 내 삶 그 어떤 비참한 곳에서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

파리_끝없이 이어지는 이동제한, 무지개가 뜬 하늘

https://youtu.be/8rpOyo3P-vQ 4와 13이 함께 있어 남들은 불길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고 위로를 했고 나는 괜찮다며 그만큼 특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했던 나의 생일을 먼 이국 땅의 작은 스튜디오에 갇힌 채 맞게 되었다. 프랑스는 4월인데 해가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길어서 저녁 10시는 되어야 거리에 어둠이 내린다. 자정이 되자마자 엠마가 축하를 해주었는데 그땐 아직 거리 위에 밤이 짙지 않아 시계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년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느끼게 해주는 쓴소리만 같아서 그다지 생일이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엠마는 이동제한 때문에 장난감 하나를 못 사준다며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이동제한이 무한히 길어지는 만큼 우리의 취침시간도 자꾸 늦어만 져서 매일같이 아침 해가 수탉의 엉덩이를 꼬집는 것을 연기된 마지막 일과처럼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하늘이 온전히 보이는 창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처음 살던 성북동의 4층 집에서는 하늘이 잘 보여 참 좋았는데 시야도 돈이 되는 땅이라 곧 커튼처럼 건물이 꼭 맞게 들어서서 시계가 아니면 낮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이사로 커튼이 조금 물러서거나 옆으로 비켜서기도 했지만 하늘을 온전히 바라보려면 늘 상상이 더 필요했다. 프랑스에서는 거리를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참 즐겁다. 미세먼지가 하늘의 색을 가리지도 않고 높은 건물들이 시야를 자르지도 않아서 매일의 날씨와 계절의 변화들을 온전히 다 지켜볼 수 있어 좋다. 나날의 색들과 제멋대로인 구름들을 그냥 바라본다. 그 안에는 어떤 줄거리나 의미도 없지만 순수히 나를 사로잡는 색과 형태들이 늘 떠 있다. 집에 돌아와도 다행히 우리의 앞에는 늘 하늘이 있다. (우리의 스튜디오는 한쪽 면이 창으로 다 덮여 있는데 아침이면 그곳에서 해가 떠오른다.) 우리의 책상은 하늘을 마주하고 놓여 있다. 그래서 나는 쓰고 싶지만 쓰기는 또 싫은 글을 손바닥 돌로 눌러 놓고 (도망가진 못하게 내가 꼭 쓸 거니까.) 눈 가까이까지 흘러 내려온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파리의 밤하늘에 슈퍼문이 떴다

며칠 전이 우리의 5주년 기념일이었다. 괜스레 시계를 자주 보았을 뿐, 언제나처럼 작은 성냥갑 같은 우리의 안전한 보트 위에서 바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 가까이 모여 앉아 있었다. 기술도 지식도 없는 집안에는 부적이 가득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머리에 손을 대어 서로의 머리 열을 비교하는 것, 체한 이의 엄지 검지 사이를 비명을 낼만큼 눌러 주는 것, 울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괜찮다 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늘 나란히 모여 앉는 것. 나란히 앉으면 서로가 서로의 모니터에 그리고 있는 것들이 다 보인다. 모니터에 반사되는 근심도, 열처럼 피는 열정도, 접히는 모니터가 환영처럼 남기고 간 절망의 얼굴도 다 보인다. 어쩌면 서로의 실패를 바라봐주는 일이 가족이 되어가는 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니었잖아. 늘 함께 생활을 하는 스튜디오 안에서 상대 모르게 편지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척 진땀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인 요즘이라서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몇 달째 써야지 말만 하던 시나리오를 드디어 쓰는구나 흐뭇해하며 엠마는 나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 엠마는 몰래 화장실에서 편지를 적었던 거 같다.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우리의 창은 우리의 유일한 스크린이자 우리의 유일한 알림판이 되어 버렸다. 상장처럼 자랑하려고 늘 서로가 써 준 편지를 창에다 붙여 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기념일까지 창은 낯선 이국의 풍경보다 안전한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투사해주게 되었다. https://youtu.be/JvaNZWq9zmc 어제는 선물처럼 가장 큰 달이 우리의 편지 옆에 떴다. 선명한 흉터로 자기임 드러내는 노란 구멍. 그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들이마시고 후후 내뱉는 입구멍, 우리를 잡아다가 그 뒤의 무엇에다 고발하는 섬뜩한 눈동자였다. 막 설거지를 끝낸 싱크대의 가득 찬 물들이 어느새 찌이익 소리를 내며 빨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처럼 그 구멍 또한 이곳의 지나치게 가득 찬 모든 것들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곤 호흡처럼 저곳에서 오는 것들이 있었다. 호흡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만 같은 다른 향의 공기. 안개처럼 다른 감각으로 걸어야 할 것 같은 밤. 그 몽롱함에 취해 다 큰 이의 손을 잡자 하고 함께 소원을 빌었다. 속삭이는 입술. 사그락 거리는 호흡. 엠마의 쪽이 더 길어 나는 그녀의 기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며칠 째 아침이 올 때까지 잠을 못 이뤘다. 아침의 강한 햇살이 우리의 덧창에 탄흔을 내어 우리의 침대에는 노란 무덤들이 꽃피었다.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잠에 들면 일어나서 멍한 얼굴을 한참 동안 더듬어야 한다. 지난밤의 흔적을. 그 마지막 표정들을. 어제도 그제도 7시까지 버티다가 못 견뎌 잠에 들었다.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은 8시 반, 한 시간만 더 깨어 있다가 마트를 다녀와서 편한 마음으로 자야지 했는데 마지막 코너를 못 넘기고 그만 리타이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오늘도 7시쯤, 깜박 잠에 들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깨어 버린 시간은 8시 반. 깬 김에 다녀와야지 하며, 무거운 옷들을 들어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이동 사유에 관한 증명서를 디지털로 쓸 수 있게 되어 나서는 일이 조금 간편해졌다.

파리, 이동제한 조치가 시작된 지 3주 차가 되었다

이동제한 조치가 시작된 지 3주 차가 되었다. 지난 2주간의 조치에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2주간의 추가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적어도 5월 초까지는 이동제한 조치가 이어질 거라고 한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이동제한 조치가 이어질 거라 예상을 한다. 확실한 것은 이번 봄은 우리들의 계절이 아니라는 것. 아이러니하게 모든 땅에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어쩌면 백혈구가 죽여야 하는 침입자 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죽음은 단 하나라도 절대로 수치 안으로 다 잠기지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무한한 슬픔일 테다. 우리 집의 창에서 보이는 유일한 꽃나무의 흰색이 마른 초록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봄의 한가운데에 우리의 기념일이 있어 봄마다 여러 곳의 봄꽃 아래에서 우리의 시작을 기념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기념일은 햇살이 덮다 만 맨살 위에서 서로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선물로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많이 웃고 있으니. 만 5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함께 추억을 쌓는 사이에서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로 그리고 이젠 서로의 건강을 함께 쌓고 또 공유해야만 하는 사이가 된 것이 신기하면서도 자꾸 헛웃음이 난다. 성공을 꾸밀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그 많은 꾸밈에도 능력은 다 탄로가 나버렸고 그저 사람 하나만 홀딱 벗겨진 채로 서로의 앞에 서 있다. https://youtu.be/-JqDXmrVGGE 혹시 계란을 살 수 있을까 싶어 마트의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 힘겨운 기상을 했다. 이불 안에 숨어 미룰 수 있는 핑계를 잠시 궁리하다가 장군님의 기침소리에 놀라 군화를 꺼내 신었다. 어제 엠마가 행주와 커피필터로 직접 만들어준 마스크를 끼고 8시 15분 쯤 집을 나섰다. 익숙해지지 않는 긴장감을 마시며 마지막 현관을 나서자 건너편 아파트에서 키 큰 흑인 남성분이 철제 현관을 덜 깬 손으로 밀며 집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졸린 걸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