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선수단 내 소통 부재 아닌가 싶다”, “(외국인)감독의 전술 문제로 생각한다”, “우리가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함에 따라 제기됐던 부진의 이유들이다. 심지어 “어느 나라나 잘 할 때가 있고, 못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사이클을 봤을 때 잠시 주춤하는 타이밍이다”란 안이한 견해를 내놓는 축구계 관계자도 있었다. 한국 축구는 ‘3000만 유로(약 400억원)의 사나이’ 손흥민을 갖고 있다. 여기에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박주호, 권창훈, 황희찬 등 쟁쟁한 유럽파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행을 조기에 확정한 일본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도 이런 한국의 유럽파들을 부러워했다.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 8강 성과를 일궈냈다. K리그 클래식도 올해는 주춤했지만 지난해 전북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정상에 오르는 등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우승 4번, 준우승 두 번을 했다. 그래서 최종예선 내내 부진을 거듭할 때도 그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았다. 감독 탓, 정신력 탓, 소리아(카타르 공격수) 탓, 소집일수 탓, 중국화 탓, 잔디 탓에 이어 지금은 관중 탓, 함성 탓까지 나왔다.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9차전 홈 경기에서의 졸전을 본 뒤 많은 팬들이 알아챘을 것이다. 한국 축구에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꼭 선수의 실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엉망인 잔디에서 10명이 싸운 이란의 수비벽 하나 뚫지 못하고 유효슛 ‘0개’로 경기를 끝내는 대표팀의 모습은 선수, 지도자, 행정 등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실력이 모두 뒤졌음을 방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론을 포함해 모두가 최종예선 부진의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었다.
‘노란 불’이 꼭 국가대표팀에만 켜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U-19 및 U-16 아시아선수권 탈락, 수개월에 걸쳐 담금질했던 U-20 대표팀의 올해 U-20 월드컵 16강 하차, 지난 7월 U-22 아시아선수권 동티모르전 무승부, 사실상 직업 선수들로 구성된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 등은 한국 남자 축구의 전체적인 경쟁력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썩어가는데 그 동안 축구계 수뇌부들은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거나 부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최종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시리아. 카타르, 중국이 서로 물고 물리는 레이스를 펼친 덕분에 한국은 천만다행으로 2위를 지킬 수 있었다.
8~9차전에서 끝날 것이란 기대와 다르게 한국 축구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최종전을 통해 러시아행 ‘벼랑 끝 승부’를 펼친다. 여전히 본선행 확률이 높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냉철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우즈베키스탄전 승리를 한국 축구의 자존심 찾기로 부르고 싶지도 않다. 마지막 양심을 되찾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오프가 남아 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다. 월드컵 본선행 실패는 대표팀을 넘어 지난 4년간 한국 축구의 총체적 부실을 의미한다. 러시아에 가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