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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이 세상의 중간 어디쯤

1월 8일 여행 기록 론다에서 짧은 일정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네르하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론다에서 네르하에 가는 것은 만만치 않다. 직행이 없어서 말라가를 경유해야 하고 대기 시간까지 총 소요 시간이 4시간은 걸린다. 하지만 네르하와 프리힐리아나 사진을 보고 이미 반한 상태여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또 워낙 바다를 좋아하기에 안달루시아의 멋진 바다를 지나칠 수도 없었다. 나즈막한 언덕, 귀여운 올리브 나무들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가끔 버스가 안달루시아식 하얀 작은 마을에 경유할 때면 골목 사이를 다니기도 한다. 버스가 말라가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에 반팔, 반바지를 입고 운동하거나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시쯤 말라가에 내려 2시 반에 출발하는 네르하행 버스 티켓을 끊고 간식 거리와 음료를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덥다. 조금 뒤 온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말라가의 멋진 해변이 보인다. 언젠가 말라가도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네시에 네르하에 도착. 긴 이동 시간 때문에 피곤한지 숙소인 아브릴 호스텔에 도착하니 그냥 쉬고 싶다. 짐을 정리하고 잠깐 누워서 쉬다가 유럽의 발코니 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하얀 집들이 있는 골목을 10분 정도 걸으니 금방 바다가 나온다. 네르하는 규모가 작은 시골 마을이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꽃장식이 된 하얀 건물들과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큰 야자수들이 더 바다를 돋보이게 해준다. 그리고 유럽의 발코니 앞으로 탁 트인 지중해가 펼쳐진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 본 바다라 그런지 가슴이 들떠온다. 언제나 그렇듯 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지는 것만 같다. 역시 바다는 언제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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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 칼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

1월 7일 여행기록 세비야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눈을 뜨자 어제의 햇살은 온데간데 없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일어나자마자 론다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혼자서 우산을 쓰고 가노라니 좀 서글픈 기분이 든다. 3시 반에 출발하는 론다행 직행 버스표를 사서 돌아왔다. 돌아와서 어제 못 본 세비야 대성당에 들어갔다. 입장 시간인 열한시에 시간을 맞춰서 갔지만 이미 줄은 성당을 한 바퀴 돌 정도로 길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줄은 팍팍 줄어들었고 생각보다 빨리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자 고딕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무려 1세기에 걸쳐서 지어졌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하지만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으로부터 세비야를 탈환한 후, 원래 있던 이슬람 사원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라 한다. 천정의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양식은 이슬람 천장 양식의 영향이라 한다.(이외에도 히랄다 종탑, 오렌지 안뜰에 이슬람의 영향이 남아있다.) 날씨가 맑았던 어제 찍어놓은 대성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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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심장 혹은 진짜 얼굴 세비야

1월 6일 여행기록 1. 주헌절 때문에 공치게 된 하루 일정 - 뭐 어때? 놀고 쉬면 되지 세비야는 그라나다, 바르셀로나와 함께 여행 전부터 기대가 컸던 곳이었다. 그런데 하필 1월 6일은 주헌절(동방박사의 날, 스페인의 어린이날 같은 날로 공휴일)로 웬만한 곳은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오전 아홉시부터 거리를 돌아다니고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거리는 관광지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적이 없고 조용했다. 플라멩고 박물관에 표를 사기 위해 갔지만 10시, 11시 두 번 다 문이 닫혀 있었다. 게다가 동행하는 동생과 세비야 대성당에 갔으나 오늘은 문을 닫는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여행의 악재는 여기서도 계속되는 건가. 미리 조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스타벅스 근처에 있는 인포에 가면 플라멩고 박물관 예약을 해준다고 해서 가서 물어봤다. 여직원 말로는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고 오늘은 모든 곳이 다 문을 닫는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만난 동행 말로는 이날 플라멩고 박물관 공연을 봤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어쨌든 동생과 나는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세비야에서의 일정이 2박이니 큰 상관은 없긴 하다. 내일 대성당을 보면 되니까. 그래서 우린 그냥 쉬고 놀기로 했다. 일단 타파스 맛집 bodega에 갔다. 자리를 잡자마자 밀려드는 사람들. 엄청나게 사람이 많고 직원들도 바쁘다. 가지튀김, 오징어튀김 등 유명 메뉴 위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 끌라라. ^^ 레몬향이 나는 맥주인데 정말 부드럽고 맛나다. 샹그리아보다 더 맛있고 부담없어서 스페인에서 하루에 한 잔씩은 마셨던 것 같다. 음식은 명성과 줄에 비해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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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만난 첫 낙원, 코르도바

1월 5일 여행 기록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안달루시아다. 처음부터 마드리드를 빼고 안달루시아와 바르셀로나만 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기대하고 또 기대하던 안달루시아 5박 6일 일정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그렇게 설레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날씨는 끝까지 잔뜩 찌푸린 채 바람과 비가 흩날려 거지 같았다. 아토차 역에서 처음 타보는 렌페(기차) 때문에 긴장도 되었다. 하지만 별 일 없이 무사히 렌페에 타고 짐도 짐칸에 올리니 긴장이 풀렸다.(성수기에는 짐칸 사수 전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아까 아토차역에서 산 크로와상과 과일을 먹었다. 스페인에서 먹은 크로와상은 다 정말 맛나다. 코르도바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하늘이 영 어두침침하게 흐리다. 아, 오늘마저 흐리면 안되는데. 고대하던 첫 안달루시아 여행인데 제발 날씨 좀 맑아지게 해주세요. 기차에서 내려 인포의 여직원에게 코르도바 지도와 시내로 가는 버스 안내를 받고 나섰다. (정말 친절하고 예쁜 아가씨) 맞은편 버스 터미널 코인라커에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짐을 맡기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버스를 타고 메스키타 근처에서 내렸다. 기차 안에서와 달리 거짓말처럼 날씨가 화창하다.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 보드랍고 하얀 구름. 갑자기 코르도바 전체가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밝아보였다. 1. 처음 만나는 안달루시아 그래서인지 코르도바는 정말 신선한 충격일 정도로 좋았다. 톨레도에서 느낀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과 그 아래에서 빛나는 오렌지 나무 가로수들, 새하얀 벽의 집들. 모든 것이 평화롭고 환해 보였다. 한 번도 이런 공간을 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오랜만에 여행의 기쁨을 느꼈다. 스페인이 다시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다. 갑자기 그동안 풀죽어있던 여행 의욕이 솟아났다. 아, 이래서 내가 여행을 다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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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서 발견한 불운 대처법

1월 4일 여행 기록 1. 안풀리면 어때? 그게 인생인데 시차 때문인지 매일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견딜 수 없이 졸려 8시 정도에 잠들고 열한시 경 깼다가 다시 잠들고 새벽 5시면 깬다. 한국은 이 시간이 훤한 대낮이라 지인들과 밀린 연락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그나마 잠을 좀 자서 7시에 일어난다. 스페인에 온 후로 톨레도에서 빼고 날씨가 계속 흐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밤 같이 깜깜하다. 해도 8시가 넘어서야 뜬다. 아침을 먹고 다 준비해서 8시에 나섰는데 밖은 깜깜하고 비까지 흩날리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민박 직원분이 1월은 스페인의 우기에 해당해서 날씨가 안좋다는 말이 맞았다. 겨울 스페인이 따뜻해서 여행하기 좋은 것 아니었냐니까 그건 2월 이야기란다. 어째서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몰랐던 걸까. 어쨌든 오늘은 영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스페인에 온 후로 왜 이리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 게다가 체력도 영 별로다. 그 두 가지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지하철을 타고 몽클로아(3,6호선 moncloa)역에서 내려 블로그에서 본 데로 던킨 도넛 옆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서 한참 기다린 후 9시 15분 버스를 탔다. 그저께 톨레도에 갈 때처럼 가는 길에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랐지만 반대로 비는 점점 더 쏟아졌다. 도착할 때쯤 되니 거의 소나기 수준으로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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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성, 톨레도

1/2 여행 기록 여행 초반의 악재로 상한 마음은 톨레도에서 반전을 이루게 된다. 마드리에서 동행하기로 한 동생을 만나 톨레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드리드의 하늘은 흐리고 우중충했는데 톨레도가 다가올수록 하늘은 맑아졌다. 톨레도에 도착한 순간 스페인에 온 후 처음으로 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의 톨레도는 마치 천상의 성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아기자기하고 아담하고 섬세한 그 도시에 완전히 반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이걸 보려고 이 고생을 해서 여기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첫 순간이 바로 톨레도에서였다. 처음으로 스페인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을 느꼈다. 가슴은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의 감격으로 벅차 올랐다. 그간의 고단함 뿐 아니라 영혼 자체가 치유되는 것 같았다. 톨레도에서 탄 이층 버스와 파라도르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하늘이, 그리고 구름이 이렇게 땅에 가까이 있는 모습을 거의 처음 보았다. 하늘과 땅이 원래 이렇게 가까웠던가. 구름이 원래 저렇게 땅에 닿을 듯 풍성하고 거대했던가.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이런 풍경이 가능한 이유는 건물의 보존에 있는 것 같았다. 시야를 가리는 거대하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스카이라인 자체가 낮다. 톨레도를 중세에 시간이 멈춘 작은 도시라고들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화 유산과 전통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노력,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감수성, 또한 거대자본의 탐욕에 제동을 가한 노력으로 이를 지킬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한국대도시의 엉망진창이 된 스카이라인과 국적 불명의 도시 경관을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왔다. 톨레도 이층 버스를 탄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일단 이층이라 위에서 전경을 조망할 수 있었고 풍경이 아름답고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에 잠깐 멈춰서 사진 찍을 시간까지 준다. 덕분에 여유롭게 도시를 조망한 후 골목길을 걸었다. 길을 잃어도 행복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거리와 기념품점을 구경하다가 톨레도 대성당 앞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를 만났다. 팝 'time to say good bye' 가 성당 앞 거리에 가득찼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환희로 넘쳤다. 아, 이래서 다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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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현실도피가 아닌 인생 그 자체

1/1-2 여행 기록 1. 우아한 순간, 설레는 순간은 언제나 짧다 벼르고 벼르던 보름 간의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좋았다. 창가 자리에 앉았고 몇 달 간의 계획과 노력이 드디어 실현된 순간이었고 여행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 생각되는 날씨도 체력도 다 좋았다. 새해 첫날이라 어마어마한 인파가 공항에 몰릴 것이라는 위협적 예측 보도와 달리 사람도 그렇게까지 많진 않아서 괜히 일찍 간 나는 세 시간 전에 출국 수속에 면세품 인도까지 다 마쳐 버렸다. 남은 시간 동안 일기나 쓸까 하다가 카페 베네에 빈자리를 발견,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앉았다. 어젯밤부터 짐싸고 일찍 일어나느라 고단했기에 나름 한가하고 우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거니 하며 한 모금 마신 순간,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자를 받게 되었다. 우아한 시간은 오 분도 누리지 못했고 커피는 한 모금밖에 못 마섰다. 비행기가 무려 네 시간이나 지연되었다는 아시아나 항공의 문자는 아무런 이유 설명도 없이 다소 무례하기까지 했다. 가서 항의를 해도 내 환승 시간이 최소 환승 시간인 한 시간 이십분 이상이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해줄 수 없다는 건조한 답변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는 4시에 바로 출발하지도 않았다. 결국 제 시간에 환승을 못할까봐 계속 맘을 졸여야 했다. 경유 장소인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열 시간의 비행 역시 만만치 않았다. 확실히 대학생 때와는 몸이 달라진 건지, 그 땐 낯설고 먼 곳으로 간다는 설렘이 더 컸던 건지 예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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