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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수행과 무상함

모든 두려움의 바탕에는 죽음에 대한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으며 따라서 영적 수행에서 되도록 이른 시기에 이 두려움의 힘을 빼줌으로써 많은 내적 작업을 에둘러 갈 수 있다. 육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동물적 본능에 더하여 에고 자신에 대한 사랑인 자기애에서 기인한다. 죽음은 체험의 종말을 의미하며 체험은 생명과 같다. 따라서 에고는 선형적이고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 육체적 죽음의 불가피성은 인간 삶의 주된 수수께끼며 따라서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부인함으로써 대응한다. 종교와 영적 교육은 죽음을 육체적 삶의 양식에서 영적 삶과 존재로 그저 바뀔 뿐이라고 재맥락화해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육신 삶의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체험의 지속성, 즉 우리가 지상에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유익한 임상적 비유를 들어보면 두통이 날 때 지난 번 두통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하는 것은 진짜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직 현재의 것만이 문제가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몸으로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남는 문제란 손자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집착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삶에 대한 감정적 집착의 상당 부분은 주로 감정적이고 편애하는 것들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란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것과 그 익숙한 것에 대한 감정적 집착이다. 인간 삶과 그 관계들이 '집'이 된 것이고 따라서 사람은 익숙한 것을 떠나 미지의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에너지나 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생명의 법칙에 의해서 생명의 지속성은 보장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앙이 요구된다. 질량과 에너지처럼 생명은 사라지지 않고 모습만 바뀐다(이 진술은 1,000으로 측정됨). 그리하여 죽음이란 실제 몸을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소아)라는 상태는 변하지 않으며 육체적 종말로 분리된 후에도 지속된다. 즉 천국 또는 다른 영역으로 가거나 환생을 선택할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이 진술도 1,000으로 측정됨). 영에게 있어 육신 삶에서 배운 교훈은 영적 진화에 중요하지만 몸을 가진 동안이란 그저 하나의 삽화일 뿐이다. 따라서 육체이탈과 임사체험을 한 사람은 훨씬 잘 준비가 되어 있다. 헌신, 희망 및 신앙으로써 죽음의 두려움 대신에 낙관, 기대 및 평화와 사랑인 신적 섭리의 이끄심이 들어선다.

기적현상, 영적 노력과 행복

※ 홍보 겸 올립니다. 요즈음 번역중인 '실체, 영성과 현대인(데이비드 호킨스)' 내용 일부 발췌입니다. 판권 없이 순전히 함께 공부할 목적으로 번역하는 것이니 동학(同學)께서는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적 현상은 고도화된 영적 에너지 장에 존재하는 권능이 드러나는 것처럼, 조건이 채워지면 잠재력이 현실로 되는 원칙이 작동한 결과이다. 바로 이 강력한 에너지를 전통적으로 '쿤달리니'라 부르며 이것은 인간 내면의 에너지 시스템을 통하여 흐르는 영적 에너지다. 그것은 궁극에 가서 상위 에테르체이기도 한 영적 에너지체에 힘을 주고 빛을 발하게 한다. 이 영적 에너지는 의식수준 200에서 발생해서 상승하기 시작한다. 발생 초기 혜택은 좌우뇌의 균형과 뇌신경 전달물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또 엔도르핀 분비를 자극해서 뇌의 정보 처리방식을 바꿀 뿐 아니라 인식체계를 바꾼다(Newberg, 2006). 그 결과 고차원 의식수준에서는 기적적 치유가 일어나는데 유명한 "기적수업(A Course in Miracles)"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사들은) 임상경험을 통하여 의식의 장에서 나오는 권능이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는 것을 확인한다. 영적 노력은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많은 유익이 있는데 건강 증진, 가정 생활의 개선은 물론 사회적 역량이 증대한다는 연구보고가 넘쳐난다. 나아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이 의식수준에 통계적으로 직접적 관련이 있다. 편의를 위하여 여기에 의식 수준을 초월하여에 있는 도표를 보인다. [발췌 -역주, 깨달음(700~1,000) 100, 평화(600) 100, 기쁨(570) 99, 무조건적 사랑(540) 96, 사랑(500) 89, 이성(400) 79, 수용(350) 71, 용기(200) 55, 이하 생략, 단 ( )은 의식의 로그지수, 뒤 숫자는 행복도를 나타내는 %임](원서 197~198쪽)" 링크 : http://www.cinecafe.kr/treecloud_forum

에고는 닦을 수 있는 게 아님

정신 문화 내지 영성 수련의 역사는 우리 홍산문화로는 5천년을 말하고 수메르나 이집트로 가면 1만년도 얘기하지만 붓다와 예수로 가면 3천년 이내가 됩니다. 제 얕은 독서로 말하자면 전해지기를, 대략 진인(진아, 참나, 영혼)과 소아(에고, 육신)의 이분법으로 수양체계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체험이 전제되어야 하지요.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학교와 기독교에서 은연중에 입력받은 선악 이분법에 의한 모범생 만들기는 사회에 잘 기능하는 조직원 키우기이자 집단 강제력이 필요한 방법입니다. 제가 경험한 천주교의 죄론도 사실상 형법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궁극의 실재(신 의식, 무극)는 하늘의 경찰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수덕 수양 내지 영성(정신) 수련의 기초는 의식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며 그 지식을 근거로 하여 에고 초월, 즉 깨달음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에고로 에고를 닦아 완덕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그것은 형벌체계와 함께 가는 것이면서 통속의 인간을 키우는 체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통찰이 벌써 천년도 전에 있어서 엊그제 거론한 복성서를 인용코자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직 참나가 밝게 비추면 어긋남이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에고로써 에고를 막으려 하는 것은 에고를 더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惟性明照, 邪何所生. 如以情止情, 是乃大情也.)"

제 말년 삶 또는 공부에 대하여

제 번역 작업의 시작은 전원생활 3년차에 약간의 소득을 얻고 남아도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이 좋아 첫작품은 동학(同學)이라 할 수 있는 분의 기획으로 출간까지 하였습니다. 이 책(해피포켓)은 시크릿의 연장선 상에 있는 내용이지만 명상을 통해 '존재 상태'를 바꾸지 않으면 구두선에 그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한 에고 만족의 극대화는 세간의 초월을 통한 깨달음과는 다른 차원의 패러다임입니다. 2013년 10월 제 나름의 근본 결단을 한 후에는 가정 경제를 위한 소득 활동 이외에는 경전이나 경전에 버금가는 책을 최소 1년에 한 권씩 번역하기로 하였습니다. 2014년엔 전자책 '나비는 자유롭게 난다'를 번역하여 동학들에게 발표하였고 2015년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저술의 발췌 요약집인 '에고 소멸, 참나 실현'을 번역했습니다. 여의치 않아 출간을 못했지만 필요한 분께 파일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2016년엔 브라이언 콕스 교수의 '인간 우주'를 공부삼아 번역했으나 판권을 확보 못해 파일로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년 이상 진도를 못 나가던 당나라 이고의 '복성서' 번역을, 현대 중국어 해설 덕분에 마쳤습니다. 복성서는 기본적으로 위 호킨스 님 책과 천 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제를 설파한 논문이라서 매력이 있습니다. 이 짧은 논문은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 주창자들이 그 전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금년에는 2014년에 도전했다 포기한 '실체, 영성과 현대인'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비록 판권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동학들과 공부하는 목적이므로 별 문제 없지 싶습니다. 과거에는 한동안 정치적 선전 내지 운동의 목적으로 인터넷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논어가 말하는 학습 목적으로만 글을 쓰고자 합니다. 따라서 제게 진정한 벗이란 '거경궁리'를 함께하는 분들입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세간의 정을 나누고 생활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쪼록 벗님의 공부가 날로 향상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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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과 창의성

어제는 유튜브로 황농문 교수의 몰입과 창의성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공대 교수이기도 한 황 선생이 딱 한번 간화선을 거론했지만 그 핵심 노하우가 명상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몰입을 위해서 단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한가지 생각을 할 것과 편안히 선잠에 빠지는 것을 배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창의성이란 해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최적의 답을 찾을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명상의 공통점은 몸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온갖 흐트러진 생각을 끊고 내면의 깊은 침묵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방법에서는 선잠에 빠지는 듯한 상태를 권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욕심으로 된 에고를 철저히 파악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일에 달인이 될 때까지 매일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의식이 끊임없이 상승하는 것인데 확인하는 방법은 덕과 지혜가 자꾸 커지고 심지어 원하지 않지만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기는지 보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매일의 과제는 해답이 미리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창의이자 창조가 된다고 봅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동서 고전이기도 한 최고의 인문학 책을 손에서 놓지 말고 신비주의적 영성이 발견한 방편들을 실천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수단을 실험해 보는 겁니다. 길은 좁고도 곧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평생 노력하는 일 자체가 자리이타(自利利他, 이것이 경제학의 외부효과이자 불가의 무주상 보시라고 저는 믿습니다)가 되도록 살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니?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늘 나라가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루가 6:20)"라는 말씀이 곤혹스러운 이들을 위해 앞에 '마음이'를 가져다 붙인 것은 그리스도의 심중에 가닿지 못한 타협책으로 판단됩니다. 제 판단은 대략 반세기 전에 천주교 세를 받았으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포기하고 수행을 위한 참고로만 여기는 자의 판단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그의 의식 수준이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있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단순하게 '하늘 나라'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을 저는 공자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다 아는 듯 싶은 구절을 옮겨봅니다.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빈민가 뒷골목에 사는 것, 딴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 하는데, 안회(顔回)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도다(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논어 옹야편)" 이 문구에서 안회의 즐거움이 바로 루가가 말하는 '하늘 나라'라고 보는 겁니다. 제가 아는 한 가지 사례를 덧붙이면 무명의 예수회 수도사 얘기입니다. 중세 지중해의 갤리선 얘기는 검색에 맡겨드리며 여행중에 운나쁘게 갤리선에 노예로 팔려가 노꾼이 된 수도사가 어느날 용케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중노동을 면치 못한 신세가 됐지만 그토록 바라던 궁극의 체험을 하고는 언제나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산다는 증언입니다. 안회를 극찬하고 당신의 수제자로 여기신 공자님의 체험세계를 알 수 있다면 루가의 표현 대신 '마음이'를 덧붙인 다른 복음들은 고육지책의 유통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몸뚱이를 비롯한 모든 물적 조건에서 벗어나 오롯이 '의식'으로만 존재하게 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의식의 진화라는 것이 요즈음 제가 도달한 공부의 결론입니다. 죽는 순간의 의식 수준이 이승에 있는 동안 닦아낸 수능 점수(?)라고나 할까요?

과학과 영성의 통합 시대

우연히 시골의사 박경철 님의 아주대 강연을 들었는데 취지는 좋으나 극단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인 해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즉 1% 안에 드는 부를 쌓아 99%의 유기체적 인간(organic matter)과 차별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1%의 부자들이 세계의 부를 통제하면서 세상이 더 팍팍해지는 현실에 대한 처방으로는 'integrity'가 있는 사람이 과반수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인데 그런 사회라야 사랑과 평화가 실행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세상의 많은 고통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 니다(금융을 장악한 이들이 잉여 상품을 하층민에게 분배하기만 하면 세계적 호황과 평화가 올 것입니다. 지금 AI와 4차 산업혁명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해법은 4대 성인의 공통 해법인데 이제 이것을 세계적으로 통하는 현대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리학과 의식에 대한 이론으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책은 전자기학, 입자물리학, 에너지 장, 세포이론 등으로 존재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호킨스 님은 의식 지도에 관한 박사학위(국내에 '의식 혁명'이란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로 이 일을 꽤 성공적으로 해내었습니다. 요컨대 과학과 영성의 통합 이론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기존 종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 종교는 부족 종교이거나 왕정 시대의 종교라서 미개한 의식에 빠지게 하고 외양 중시적입니다. 즉 통합 목적을 위해 획일화와 강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와 언어 차이로 분열과 갈등을 부르고 자주 위선에 빠집니다. 요컨대 존재의 근원을 인격신으로 이해한 과거의 종교는 현대인의 의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문명화된 지역일수록 기성 종교를 이탈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로 확인됩니다. 4대 성인이 가르치신 바를 공통 언어로 전파하여 적어도 51%의 사람이 실천하게 되면 민주주의와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문제는 최적으로 해결되고 많은 이들이 존재 자체에서 무궁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 전제로서 동서 영성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에고 탈피와 정화과정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접근하거나 합일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존재의 근원을 이해하고 체험할 때 진정한 덕과 지혜, 사랑과 평화에 이르고 창의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성취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