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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호기심보다 더 중요한 것

젊었을 땐 하루 동안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조수들을 데리고 병동을 돌며 환자와 환자의 가족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을 때면, 엄청난 전투를 치른 개선장군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많은 사고와 예기치 않은 비극, 실수가 분명 있었으므로. (……) 나는 성공적인 수술로 많은 환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반면 끔찍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신경외과 의사의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사이사이에 깊은 절망의 마침표들이 찍히게 된다. ―헨리 마시, 『참 괜찮은 죽음』에서 내 배를 날카로운 칼로 자르고 내장과 신장을 손으로 만진다. 톱으로 두개골을 열고 뇌를 파헤친다. 빨간 장미를 빨간 장미로 보게 하고, 나의 기억, 감정, 자아, 나의 모든 것의 본질인 뇌를 도려낸다. 싸구려 할리우드 호러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매일 이 세상 모든 수술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의사란 어떤 사람들일까? 평생 안 봐도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봐야 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의사들. 하얀 가운을 입은 지상의 신들. 다 큰 나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 강하고 냉정하기 짝이 없던 악덕 정치가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고, 언젠간 상처와 병으로 죽어 갈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의사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헨리 마시(Henry Marsh)는 영국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중 한 명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대영제국 데임(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 CBE)‘ 작위를 수여받았고, 2004년 영국 TV 최고 방송상을 탄 BBC 다큐멘터리 「그들의 손 안에 너의 목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바로 이 유명한 의사의 책 『참 괜찮은 죽음(Do no harm)』의 첫 문장은 “나는 자주 뇌를 잘라야만 한다. 정말 하기 싫은 짓이다.”로 시작한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해답보다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아무리 기억해 보아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단 한 번도 동의하거나 허락해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어느 날 그냥 눈을 떠 봤더니 지구, 대한민국, 우리 집에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의 없이 태어난 세상에 살아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이 세상, 대한민국, 가족의 모든 규칙과 조건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을 통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선택하지도 않은 단순한 우연의 결과인 전통과 규칙을 필연이라 착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으로 열심히 살기 위해 바둥거릴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conditio humana’ 즉 인간의 조건이겠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말도 안 되는, 믿고 싶지도 않은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하는 인간.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질문해 왔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모두 학문은 이 코미디 같은 인간의 조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 우주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 질문이 있으면 구글을 검색하는 것이 21세기의 진리다. 왜? '구글신'은 모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글에게 물어보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대답(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은 무엇이냐고." 엔터키를 누르자마자 화면에 답이 뜬다. 답은 바로 “42”라고. 구글신을 믿지 못한다면, 이번엔 애플의 '시리(Siri)', 마이크로소프트의 ‘코르타나(Cortana)' 아니면 아마존의 '에코(Echo)'에게 물어보자. 도대체 “삶에 의미는 무엇이냐고?(what’s the meaning of life?)” 역시 답은 매번 동일하다. 42가 삶의 의미이며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이란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진정한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전설에 등장하는 모든 영웅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루크 제국의 왕 길가메시는 편안한 삶을 살지 않고 괴물 훔바바를 죽이기 위해 삼나무 숲으로 원정을 가는가 하면 불사신이 되기 위해 우트나피슈팀을 만나러 방랑한다. 영생을 얻는 대신 삶과 죽음의 비밀을 이해한 길가메시는 고향 우루크로 돌아온다. 10년 동안의 트로이전쟁에서 드디어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또다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인육을 먹는 키클롭스의 눈을 멀게 하고, 유혹자 사이렌들의 노래를 견뎌 낸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지만, 그는 더 이상 20년 전 떠나기 전의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아내 페넬로페마저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떠나는 자에겐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바로 헤어짐이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의 세상과 이별한 자에겐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그리고 떠남을 경험하고 성숙한 자는 다시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자는 더 이상 예전의 떠난 자가 아니다. 그게 바로 귀향이다. 이렇게 모든 영웅들은 결국 헤어짐, 성숙, 그리고 귀향을 통해 드디어 진정한 영웅이 된다. 물론 모든 영웅들이 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에서 숨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머나먼 바빌론에서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는다. 지금도 젊음과 반란의 심벌인 제임스 딘. 그가 만약 스물네 살이라는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대머리에 배가 나온 중년의 제임스 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웅은 늙어서도, 평범한 삶을 살아서도, 아니 행복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함께 홀로’의 길을 고민하라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장폴 사르트르, 『닫힌 방』에서 한 남자가 죽고 지옥에 '떨어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온 몸이 불에 타고,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에게 고문당하고, 사람들의 비명과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곳, 그러니까 지옥이라면 당연히 단테의 『신곡』이나 할리우드 영화 장면을 연상시키는 뭐 그런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남자가 도착한 곳은 의외로 호텔 방이었다. 고문도, 괴물도 없는, 그냥 평범한 호텔 방. 아니, 아주 평범하지는 않다. 창문도 없고, 방문을 다시 열지도 못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시 지옥에 떨어진 두 명의 여인들. 난생 처음 보는 세 명의 남녀가 한방에 갇혀 서로에 대한 탐색이 시작된다. 젊은 에스텔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여자다. “당신에겐 이런 증상이 없지요. 나는 내 모습을 못 보면 나를 만져 봐도 소용이 없어요.” 에스텔은 방 안의 유일한 남자 가르생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또 다른 여자 이네스는 가르생을 혐오하며 자신이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쉼 없이 널 봐줄 테니까. 너는 한 줄기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빛 조각처럼 내 시선 안에서 살게 될 거야.” 이제 이 세 명은 앞으로 영원히, 탈출도 구원도 희망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치유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질투하고 배려해야 한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1944년에 발표한 희곡 『닫힌 방(Huis clos)』의 내용이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진짜 나는 누구인가

가끔 이른 아침 눈을 뜨며 우리는 걱정과 근심에 빠지곤 한다. 나는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진심으로 내가 원했던 것일까? 나를 믿고 바라보는 이들의 기대만큼 과연 내가 믿고 신뢰할 만한 사람일까? 하지만 이 수많은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하나의 희망이 있다. 바로 나는 언제나 ‘나’라는 믿음이다. 오늘 아침 이 질문을 하고 있는 ‘나’는 어제 바로 이 장소에 잠들은 내가 아니던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마지막 장면에서 레오폴드 블룸의 아내는 막 사랑하기 시작하던 먼 옛날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잠에 든다.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와 역시 변하지 않은 갑갑한 현실을 경험하게 될 다음날 아침의 그녀. 이 둘은 당연히 동일한 인물이지 않을까?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인간의 몸은 수십조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만들어지고, 분열하고, 죽는다. 허파 세포는 이삼 주마다, 간 세포는 5개월에 한 번씩 만들어진다. 창자 세포들이 교환되는 데는 이삼 일이 걸리고, 피부 세포들은 시간당 삼사만 개씩 죽어 매년 3.6킬로그램이나 되는 세포들이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는데도 바닥에 하얗게 쌓인 ‘먼지’ 대부분이 바로 얼마 전까지 ‘영원히’ 대리석 같은 피부로 만들기 위해 씻고 바르고 마사지해 주었던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며 ‘변치 않는 나’를 확인하는 우리는 어제 잠들은 ‘나’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평범한 청년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지, 카프카는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한 가지를 알게 된다. 바로 그레고르의 변신은 그의 가족들의 변신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롤리타는 없다 2: 공감의 인문학

사랑에 빠지면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고, 못 맡던 냄새를 맡게 된다. 사랑은 감정, 지성, 감각, 에너지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상대에게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투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는 권태라는 이끼가 끼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긴장감을 잃고, 관성적으로 되고, 권태에 빠져들면 삶은 무감각하고 지루한 것이 되고 만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하기 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낼 수 있기에, 사랑은 주어진 세상을 완전히 특별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랑을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물이든, 공부든, 취미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랑을 하고 열정을 바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더 많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한다. ―이진숙, 「모두 하는 사랑, 모두 다른 사랑」, 『롤리타는 없다』에서 자연은 늘 그렇게 거기에 있다. 자연은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찰할 줄 아는 안목은 “살기 위해서 살고, 자기 자신을 즐길 줄 알고, 참되고 소박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의 취향”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은 삶을 사랑하고 좋은 삶을 살려는 사람의 최고의 친구이다.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사랑의 배경이 자연이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신 엘로이즈』에서 젊은 시절 쥘리와 생 프뢰 역시 젊은이다운 유혹에 빠질 뻔하기도 하고 사랑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 선택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서로 사랑합시다.”였다. 좋은 삶을 위한 분투가 바로 좋은 사랑을 위한 가장 훌륭한 노력이었다. ―이진숙, 「지속 가능한 사랑의 기술」, 『롤리타는 없다』에서 단테는 인간들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결함이 있고, 그 결함만으로 지옥에 빠질 이유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실 꼭 죽어서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지옥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콤플렉스, 정말 지긋지긋하게 증오하면서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과 상황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통,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빠져드는 열등감……. 이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해소되지 않으면 지옥은 사후 세계,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은 스스로 만들어 갇히는 것이다. 단테에게는 지옥, 연옥, 천국이 패키지 코스로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왔고, 우리에게 충실하게 보고해 주었다. 우리는 매일 단테처럼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연옥과 천국이 패키지처럼 주어지지 않은 우리는 지옥을 모면하는 삶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삶은 삶 자체의 가치로 빛나야 한다. ―이진숙, 「어느 지옥 여행자의 안내서」, 『롤리타는 없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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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없다』세월

● 여자가 혼자 낯선 호텔방을 찾을 때 상처의 시간이건 행복의 시간이건 시간은 흐르고 그녀의 몸은 조금씩 탄력을 잃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좀 늦은 듯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모든 것이 어중간한 그런 나이였다. 호퍼의 그림 「아침 햇살 속의 여인」(1961)은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의 삶으로부터 떠나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는 유명한 대사 속의 그 태양, 어제의 내일인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다. 이제는 희망을 말할 때가 아니라 행동을 할 때이다. 여인은 기어코 일어나서 단호하게 과거로부터 등을 돌려 시작의 아침을 향했다.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의 주인공 로라 브라운은 그림 속 여인처럼 홀로 낯선 호텔에 들었다.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낯선 호텔에서 남편을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기획한 것도 아니고, 남편의 눈을 피해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다. 로라가 간절히 원한 것은 오직 책을 읽을 수 있는 두세 시간이었다. ―이진숙, 『롤리타는 없다』에서 지칠 줄 모르던 책벌레 소녀 로라 지엘스키는 동생의 친구이자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전쟁 영웅 댄 브라운과 결혼해서 로라 브라운이 되었다. 지엘스키라는 특이한 이름에서 브라운이라는 평범한 이름이 그녀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내성적인 독서광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댄은 선량하고 믿음직한 남편이었고 아들 리치는 엄마를 닮은 감수성 예민한 꼬마였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모든 것이 나무랄 데 없었지만 모두 그녀의 것이 아닌 것처럼만 느껴졌다. 남편과 아들은 모두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남편과 아들을 사랑했다. 차이는 하나였다. 남편과 아들은 가진 것을 더 가지고 싶어 했다. 그들은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엄마를 원했다. 반면 그녀는 갖지 못한 그것을 원했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혼자 두세 시간 책을 읽는 것, 엄마나 아내 이전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잘못된 것은 없었지만 제대로 된 것도 없었다. 로라는 세상에 통용되는 기준으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다. 무표정한 호텔 방에서 홀로 있는 그녀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가 원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절망적일 만큼 삶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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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없다』안나 카레니나

● 사랑에 빠진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은 누굴까?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고, 소통을 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있다. 사랑의 얼굴은 시대마다 다르다. ‘연애는 되지만 사랑은 안 된다. 달콤한 속삭임은 되지만 진지한 맹세는 금지다.’ 이 황당한 룰이 지배하는 곳은 사치스러운 무도회용 드레스 위에 위선과 거짓이라는 장식품이 필수적이었던 귀족들의 사교계였다. 안나의 사랑은 그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다. 진정한 사랑, 인간적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안나의 비극을 낳았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청년 장교 브론스키에게 마음을 빼앗긴 안나는 흔들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족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으로 돌아온다. 역에는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이 마중 나와 있다. 다정한 환대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이상하게 생긴 남편의 귀”였다. 덩치에 비해 가늘고 느린 목소리도 거슬렸다. —이진숙, 『롤리타는 없다』에서 새롭게 눈뜬 감정은 이전에는 깨닫지 못한 불만에 구체적인 이미지와 소리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왠지 남편의 귀와 목소리 같은 남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 그러나 그의 출세와 사회적 지위와 심지어 사랑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그 부분들이 크게 보이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남들에게는 중요한 점잔 빼는 사교계의 관행, 사회적 지위와 관습 등이 그녀에게는 무의미해져 버렸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것을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함께 춤을 추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무도회 장면이다. 여러 사람들이 북적대는 정신없는 무도회에서 오로지 그 둘만을 바라보고 있는 안타까운 한 사람이 있었다. 브론스키에게서 청혼받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다른 여주인공 키티였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들었다. 키티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주고받는 사소한 눈길, 표정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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