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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과 자아상실

나에겐 크게 두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자아실현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상실이다. 나의 자아실현에 철학, 작곡, 글쓰기 이런 것들이 들어간다면 나의 자기상실에는 드라마, 영화, 운동, 음식, 만화, 게임 등이 들어간다. ㅡ 자아실현을 하고 살거나 아니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는 자기를 상실하고 망각하고 다른 외부의 것들에 몰입하며 살거나. 정확히 말하면 몰입의 대상을 어느 것으로 할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부에, 자아에, 자기자신에 몰입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다른 것들에 몰입하면서 자기자신을 잊어버릴(잃어버릴) 것인가. 지금의 나는 반반인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자아실현 쪽이지만 드라마를 보거나 만화를 보거나 할 때에는 자기상실 쪽인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자기상실이 우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재밌고 맛있고 귀여운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회사 역시 자아실현보다는 자기상실에 가까운 곳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상실을 하며 살아간다. 낮엔 일을 하며 자신을 상실하고 밤엔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며 자신을 상실하는 식이다. 친구들과의 농담따먹기와 가쉽으로 점철된 수다 역시 자기상실에 가깝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대부분 자기상실에 속한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만화, 이런 경우는 99%가 그렇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로 나눠보면 예술이 자기자신에 몰입하게 한다면 엔터테인먼트는 자기자신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만큼 요즘 작품들에는 예술은 적고 엔터테인먼트는 많다.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의 대부분은 자유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어서 먹고 어쩔 수 없어서 자고 어쩔 수 없어서 일하고 어쩔 수 없어서 사랑에 빠진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음은 계속 늘어난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키워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어쩔 수 없음에 대항해서 자유를 추구해왔다. 어쩔 수 없음이 생존을 인질로 잡고 있기에 죽음을 무릅쓸 용기를 주장했고 자기파괴의 자유를 역설했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이 바뀌었다. 운명애라는 것은 결국 세상의 모든 어쩔 수 없음을 즐기고 사랑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어쩔 수 없음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결국 인생을 사랑하는 운명애가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내 삶에 있는 어쩔 수 없음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테트리스에서 내가 원하는 막대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기 보다는 나오는 도형들을 이용해서 최선을 다해 즐겨보는 거다. 막대기라는 기적만을 기다리며 살다가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망친다. 인생의 관건은 작대기를 기다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형들을 잘 이용하는 것에 있다. 

회사는 먹고 살기 위해 다녀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고 많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꼭 억지로 해야할 필요는 없다. 미식을 예로 들면 어쩔 수 없어서 먹는 밥도 얼마든지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도 재밌게 하고 밥도 맛있게 먹고 잠도 푹 자고 삶의 모든 어쩔 수 없음들을 최대한 즐겁게 향유하려고 한다. 

니체와 스피노자에게 진정한 자유란 어쩔 수 없음의 필연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것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운명애는 자유와 동일어이다. 운명애를 가진 사람들은 모든 어쩔 수 없음을 나는 그것을 원한다로 바꿀 줄 안다. 

삶이 어쩔 수 없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자유는 죽음 뿐이다. 적어도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 그런 식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끌린다. 반면 운명애로서의 자유는 세상의 모든 어쩔 수 없음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즐기려고 하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욕망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어쩔 수 없음에서 벗어날 자유만을 꿈꿨지만 이제부터는 어쩔 수 없음, 즉 운명을 사랑하는 자유를 선택하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면 원래 나는 운명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장점을 발견하고 안좋은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내 성격이었다. 단지 나는 그동안 어쩔 수 없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자유로운 거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삶 안에 있는 수많은 어쩔 수 없음들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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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하여.

데리다의 다큐에서도 나왔던 문제이지만 누구를 사랑하느냐 무엇을 사랑하느냐의 문제는 사랑에 대한 영원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내 결론은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기 보다는 그사람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나왔다. 예를들어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재능이 없고 음악을 잘 모르고 그런 사람이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할수도 없었을테고 당연히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누구로서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로서 사랑해주게 될때라도 그 전에 이미 나의 무엇을 사랑한 사람만이 나를 누구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나에겐 단독적 페티쉬즘이다. 단독적이라는 말은 그사람이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고 페티쉬즘이라는 말은 그사람과 사랑에 빠질때 누구가 아닌 무엇에 의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랑에 일단 빠지면 그사람이 멍청해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멍청하다고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 즉 이미 사랑에 빠진 상태여야만 멍청해도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멍청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즉 그사람의 그 어떤 무엇도 아닌 그 어떤 페티쉬즘도 결여된 그 사람의 온전한 누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미 사랑에 빠진 다음에 페티쉬즘의 결과로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애초에 사랑에 빠질때, 그사람의 누구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그리고 그사람의 무엇과 누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들면 내가 만약 천재적 재능이 없어지고 음악도 잘 모르게 되고 돈을 잘 못벌게되더라도 나를 여전히 사랑해줄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처음부터 재능없고 음악도 모르고 돈도 못버는 나를 만났다면 나를 사랑했을지는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건 이미 내 무엇에 반한 사람이기에 내 누구를 사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외모, 재능, 돈, 학벌, 성격, 지식, 패션, 취향, 그런 모든 부분적인, 가변적인 무엇을 제외한 누구는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될 수 있는데 바로 정이 그것이다. 가족들은 그 가족구성원이 가진 무엇이 얼마나 가변적인지와 무관하게 그 구성원의 누구를 좋아한다. 이것이 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구성원이 애초에 그 누구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누구가 원인이 아니라 여전히 그 누구가 가진 무엇, 즉 가족이라는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정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면 누구나 들 수 있다. 하지만 정과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 음악으로 예를 들어보자. 모든 음악들은 단독적이다.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모든 음악들은 반복청취 시에 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 음악을 사랑하는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정때문에 결혼하고 정때문에 같이 사는 그런 것이다. 정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냥 같이 오래 지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음악을 굳이 자주 반복해서 들어서 억지로 같이 사는, 그런 리스너를 나는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사랑은 대부분 첫눈에 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과 정을 아주 날카롭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사랑과 정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들었으니 헤어지기 힘드니 길들여졌으니 사랑이지 뭐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이고 잘해봐야 우정에 불과하다. 즉 사랑은 무엇을 기반으로 누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정은 무엇이 없더라도 누구와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면 생기는 것이다. 누구라는 영역 만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누구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무엇만 사랑하다가 그 무엇이 사라지면 금방 발을 빼버리는 건 좋은 행위라고 볼 수 없다. (데리다의 와이프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지금의 내가 재능이 사라지고 돈도 못벌게 되고 음악도 잘 모르게 되고 그런 내가 가진 모든 무엇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를 여전히 좋아할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사람이 처음 나를 좋아하게 된 원인이 내가 누구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사람의 단독적인 누구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건 이미 사랑에 빠진 후이고 사랑에 빠진다는 그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독적인 누구를 사랑하게 된다고해도, 그게 정이 결코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랑에 빠진 원인이 누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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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힘들다고 해봤자

노동을 통해서 얻는 돈, 그것으로 소비할 수 있는 물건들은 노동을 항상 무한대로 초과한다. 예를들면 내가 노동을 하지 않고 직접 그 물건들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실제로, 직접 그 물건들을 만들 수 있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노동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당장 컴퓨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뭐 책 정도야 노가다를 뛰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분업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넘어서는 초과분을 소비를 통해 받게 된다. 자연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과학기술과 분업에 의해 엄청 편(리)해지고 쉬워졌다. 그 편리함과 쉬운 삶을 위해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한 노동력의 착취는 결코 그런 종류의 편리함과 쉬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착취 때문에 우리가 편하게 사는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편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하는 노동은 우리가 그 대가로 받는 것에 비해 항상 더 쉽고 편하다. (착취는 돈을 더 받느냐 덜 받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에 대한 대가의 차이는 단순한 돈 몇푼으로 환원될 수 있을만큼 작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라는 문제는 지금 내가 다루고 있는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비로소 가능해진 자본주의의 유토피아적 모습이다. 이것이 유토피아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자신이 투여한 힘이 만들 수 있는 것 이상을 대가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이 자본이라는 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월든처럼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사는 것이 아닌한 말이다. 과학기술 자체를 노동자의 힘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한 노동자는 이미 노동자가 아니지 않을까. 현실적인 예로 공장을 소유한 노동자가 과연 노동자일까. 노동자는 궁극적으로 생산수단 자체를 살 자본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노동자인 것이다. 그래서 그 가설은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자가 투여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오직 노동력 뿐인 것이다. 그런데 결과물은 노동력+과학기술 이렇게 합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항상 자신이 투여한 힘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게 되고 그것이 자본의 잉여가치가 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에 따라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에 비하면 노동력에 대해 돈 몇푼을 더주고 덜주고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는 어차피 페이를 받고 나면 자신이 투여한 노동력 이상의 대가를 소비를 통해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말이다. 이것은 전혀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피지컬하게 잡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돈을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돈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북한의 부자보다 훨씬 절대적인 의미에서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돈 자체의 양 때문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미국의 홈리스들은 북한의 부자들보다 절대적으로는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극단적인 비유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이해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평등은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햄버거는 현실이다. 내 관심사는 돈을 똑같이 받느냐, 혹은 돈을 얼마 받느냐가 아니다. 그 돈으로 현실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이 맞고 그에 비하면 평등이나 돈의 양은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다. 즉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의 키 포인트는 노동력도 아니고 돈의 양도 아니고 과학기술의 발전, 기술혁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대가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잉여가치는 기술혁신에 의해 생긴다는 말은 앞서도 말했듯이 나에겐 단지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피지컬한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노동을 하지 않을 때, 스스로 자급자족을 할때보다 노동을 해서 페이를 받고 소비를 할때 더 많은 것을 갖게 된다. 그것은 거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절대적 차이를 보인다. 예를들어 지금 내가 피아노 하나를 수작업으로 만든다고 치자. 그럼 그건 평생걸릴지도 모른다. 근데 노동을 해서 한달 동안 알바를 해서 산 피아노보다 더 잘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한달 페이로 산 피아노가 훨씬 좋을 거라는 것은 자명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록 (이것은 단순 분업이나 노동력 착취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우리가 돈을 통해 살 수 있는 절대적인 피지컬한 무엇, 그것의 가능성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먼 미래엔 우주전함을 돈으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우리는 한사람이 평생을 통해 일을 해도 우주전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몇달 혹은 몇년 하면 우주전함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니체와 맑스의 공통점은 뭐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생산양식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중요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생산양식의 혁명이야말로 다른 모든 정치적 혁명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혁명적이라고 말한 사람은 니체일까 맑스일까. 예를들면 철도라든지 증기기관차의 발명 같은 것.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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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다수의 성인들이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왜? 몇 몇 사람들 빼고는 다들 꿈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목표였던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즐길거 다 즐기며 살아가도, 내 자신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낀다. 마음속은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모르지만 겉모습은 채우고 싶은것들로 가득차 버린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게 뭐였는지도 모르겠고,어릴적 꿈 조차도 희미해지며 꿈은 돈으로 바뀌어 간다. 삶에 치이고 돈의 노예가 되고,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행복은 찾기 힘들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배고파서가 아니라 꿈을 이루지 못해서일 것이다. 혁명가들의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배고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의지의 심장을 가졌고 강철의 정신을 가졌다. 동지들과 어깨동무를 하면 엄동설한에도 서로의 체온으로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당면한 이 시대는 고독과 불행을 권하는 사회이다. 인간 개개인이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게 자본이 인간을 옭죄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에게는 북극성이 있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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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의 삶이 ㅈ같은 이유에 대하여

요즘 20대의 삶이 즞같은 이유는 기성세대들이 평생에 걸쳐 일궈놓은 것들을 단기간 내에 원하지만 과정도 모르고 그 과정을 겪을만한 끈기도 없다. 만화, 드라마나 쳐보고 인터넷으로 소화도 못할 정보의 홍수에 파묻히다보니 이 현상이 더 심해진다. 남들이 진짜 머리빠지고 피똥싸도록 고통을 겪는 과정같은 것들은 생각도 않고 어느순간 당연하게도 자기도 이상향처럼 될거라 생각만한다. 당연히 변화가 있을리도 없고 그대로인데 이상만 높고 시간은 흘러가니 점차 초조해지지만 행동으로 옮기질 않으니 인생이 좆같아진다. 거기다 꿈이란 것도 소비 그 자체일 뿐, 큰 집에 살고 외제차 모는 것 자체가 꿈인 놈들이 태반이다. 외제차 몰고 그 다음은 뭐가 하고싶냐고 물어보면 어디서 들은 소리를 부적절하게 뱉으면서 "현실을 잘 모르는구나, 인생은 돈 많은게 최고야" 같은 소리나 뱉는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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